책들의 우주/문학

자비 A Mercy, 토니 모리슨

지하련 2022. 1. 23. 21:32

 

 

 

자비 A Mercy 

토니 모리슨(지음), 송은주(옮김), 문학동네, 2014년 

 

토니 모리슨의 2008년도 소설. 토니 모리슨의 소설을 읽는 건 수십년만이다. 고등학교 때 읽은 <<사랑하는 사람들>>(Beloved)는 흐릿하기만 하다. 방황하던 십대 시절, 사랑을 알고 싶어 읽었지만, 그 때 읽기에는 상당히 어려웠던 작품이었다. 그러나 나는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몰라도 힘겹게 끝까지 읽었고 슬프고 아련한 기분에 빠졌다, 아니면 그 시절 전체가 슬프고 아련했을 련지도.

 

왜 그녀는 이 소설에 <<자비A Mercy>>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성당 미사 때 읖조리던 '자비'라는 단어와 겹치는 건 플로렌스에게 글을 가르쳐준 신부님 때문일까. 하지만 소설 초반에 등장하는, 위선적인 카톨릭 신자로 인해, 그리고 그 이후의 침례교도들을 보면 이 소설이 딱히 교회에 우호적이진 않다. 하긴 중세 시대 전체가 교회 중심이어서 바람직한 신앙의 모습을 보여준 것도 아니니, 17세기 후반 미국 사람들의 신앙과 그 사회의 잘잘못을 비교하는 것은 잘못된 접근일 것이다. 언제나 그 시대에 맞는 신앙이 있을 뿐이다. 

 

짧지만 상당한 집중력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읽기에 그리 호락호락한 소설은 아니다. 다수 인물들의 목소리를 교차시키고 중첩시키면서 17세기 후반 미국과 노예들의 삶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소설의 첫 머리에 강렬한 인상을 주며 등장한 제이컵 바크는, 독자로 하여금 노예들의 삶을 해방시키고 기존 시스템에 저항할 것이라는 희망을 예상하게 만들지만, 토니 모리슨은 그런 손쉬운 작법을 구사하는 소설가가 아니다. 

 

소설을 다 읽을 때쯤 되면, 나도 모르게 정말 잘 씌여진 소설이라는 찬사를 하였는데, 그것은 각각의 인물들을 통해 미국의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보여준다고 할까. 그래서 미국적 가치가 무엇인지 물으며, 각 인물들의 삶의 지향점을 묻는다. 사랑인가, 자유인가, 종교(교회)인가, 아니면 재물(집)인가를. 그래서 바크에게 집이란, 레베카에게 결혼이란, ... 그렇게 흑인 소녀 플로렌스에게 사랑과 자유를 묻는다. 결국 어떻게 임신을 하게 되었는지조차 모르는 소로가 아비도 모른 채 태어난 아기에게 온 정성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면서 젊은 나라 미국이 어떻게 현재에까지 이르게 되었는가를 상상하게 만든다. 결국 이 소설은 신부님 - 제임스 바크 - 대장장이 - 소로로 이어지며 미국의 자녀들이 어떻게 성장하는가를 다룬다. 

 

흑인 노예든, 백인 노예든, 인디언이든, 심지어 백인들의 자녀든, 살아가면서 마주하게 될 꿈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 밑바닥에는 노예 제도를 지탱하게 만드는 어떤 시스템을 은연 중에 비판하고 있지만. 그래서 남편을 잃은 레베카가 생사의 고비를 지난 후 변하게 되는 것처럼, 이 소설의 인물들은 결국 시스템 속에서 자신의 꿈과 자유를 희생당하며 사는 것으로 끝이 난다. 

 

나는 밤새도록 걸어요, 홀로. 주인님의 장화가 없으니 힘들어요. 장화만 있으면 돌이 울퉁불퉁한 강바닥도 건널 수 있는데. 숲을 지나 쐐기풀 우거진 언덕을 더 빨리 내려갈 수도 있어요. 이제 무엇을 읽어도 풀이해도 다 소용 없어요. 개의 머리, 마다의 뱀, 그 모든 게 의미를 잃었어요. 하지만 당신을 내 생명이라고. 나를 위험으로보버, 이리저리 뜯어 보다가  휙 내팽개쳐버릴 이들로부터 지켜줄 나의 안전장치라고 늘 생각했는데. 자기들에게 내 소유권이 있고 나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믿는 모든 이로부터. 나는 당신에게 아무 것도 아니예요. 당신은 내가 황무지라고 말해요. 맞아요. 당신의 입이. 당신의 눈이 떨고 있나요? 당신은 두려운가요? 그렇겠지요. (222쪽) 

 

 

토니 모리슨(1931 -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