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대선과 공적 영역

지하련 2022. 1. 25. 13:10

 

 

어떤 문제, 사태에 대해 아예 관여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 무관심한 사람들에게는 그 누구도 비난 하지 않는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관여를 하는 사람, 관심을 가지고 어떻게든 그것을 해결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겐 비난을 거듭한다. 이 때까지 그 누구도 관심을 가지고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던 어떤 문제였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 비난과 공격을 퍼붓는 것이다.

 

사적 이익의 영역에서는 First Mover Advantage가 있지만, 공적 이익의 영역에서는 First Mover의 Role & Responsibility만 있을 뿐이다(하지만 영악한 관료들과 정치인들은 공적 이익의 영역에서마저 Advantage를 누리려고 한다).

 

이번 대선은 한국 사회의 현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현재를 어떻게 딛고 나가느냐에 따라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그러나 다들 바라보는 미래가 다르기도 하거니와, 의외로 미래 지향적이면서도 비판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 드물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선거가 되지 않을까.

 

폴 크루그먼은 공화당이 진보적일 때 미국은 좀 더 평등했고 경제는 발전했다고 말한다. 지금까지의 우리나라 성장은 내적 요인도 있겠지만, 대외적인 요인도 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 오는 시대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불리한 대외적 요인을 극복할 수 있는 내적 요인이 중요해지는 시간들의 연속이 될 것이다.

 

이 점에서 이번 대선은 우리의 내적 치부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검사 조직이 저토록 형편없었음을 알게 하였고 그 조직에 줄타기를 하고 있는 기득권 언론들의 모습은 나로 하여금 추악함까지 느끼게 한다. 또한 대선 후보로 나온 이를 제대로 지원해주지 못하는 집권 여당의 정치력, 실행력을 보면서 왜 우리는 이들을 지지하고 있는가에 대해 회의감을 들게 만든다.

 

문제가 되는 것은 드러내고 이를 해결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반대로 문제가 되는 것을 감추고 이야기하지 않는 것도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면 모르니까. 나는 노무현 정부 이후 우리 국민들이 드러내고 해결하는 것에 대한 학습이 되었다고 믿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두 번의 아픈 리더십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문제를 제대로 아는 것이다. 결국 뭔가를 안다는 것, 그것도 제대로 안다는 것. 이것은 자신이 리버럴한 지식인이며 스스로 똑똑하다고 여기는 이들에게 해당되는 화두다. 유명 대학까지 나온 이들이 뭔가 이상한 것에 빠져드는 건 비판적 사고를 못하고 제대로 알려는 태도를 가진 바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실은 이런 태도가 있다고 한들, 에코 챔버처럼 온라인 공간에서 한 쪽으로의 편향성만 키워나갔을 가능성도 상당히 높다. 

 

이 점에서 개인적으로 하버마스가 말한 바, 공적 영역의 회복이 중요하다고 여긴다(지금 하버마스 이야기를 하면 좀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처럼 보이려나. 요즘은 온통 아감벤, 지젝 이러고 있던데). 인터넷 초창기 일부 진보적 이론가들은 온라인 영역이 이러한 공적 영역(공론장)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확인해본 바, 온라인은 새로운 사적 영역에 가까운 곳이었다. 온 세상의 사적 영역화가 지금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한 쪽에서는 자기 노출에 대한 강박적 플랫폼 -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그리고 다른 한 쪽에서는 거대한 사적 공간의 확장 - 페이스북 - 이 이루어지고 있다). 

 

결국 어떤 문제에 대한 정의, 그것을 둘러싼 충분한 논의, 그리고 그것에 대한 확대와 재생산 등이 중요하다는 걸 알지만, 과연 얼마나 진전시킬 수 있을 것인가. ... 여튼 나도 뭔가 하긴 해야 할 나이가 되긴 했다.

 

*** 점심 시간을 이용해 궁시렁궁시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