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시선들, 캐서린 제이미

지하련 2022. 2. 15. 21:19

 

 

시선들: 자연과 나눈 대화 Sightlines 
캐서린 제이미(Kathleen Jamie), 장호연(옮김), 에이도스

 

 

스코틀랜드 시인 캐서린 제이미의 수필집이다. 책 뒷표지에 실린 여러 찬사들과 이 책이 받은 여러 상들로 인해 많은 기대를 했지만, 그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어쩌면 번역된 탓일지도 모른다. 역자의 번역이 아니라 캐서린 제이미의 언어가 한글로 번역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역자는 이미 에드워드 사이드의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를 탁월하게 옮긴 바 있으니, 도리어 믿을 만한 번역가이다.

 

이 수필집은 캐서린 제이미의 두 번째 모음집이며, 영어권에서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니 영어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더구나 자연사(自然史)와 연관된 경험들을 바탕으로 쓰여진 글들은 그녀가 시인이었음을 잊게 한다. 도리어 자연과학 다큐멘터리 작가이거나 이와 연관된 직업을 가진 건 아닌가 하는. 그리고 이런 소재/주제로 근사한 수필을 쓸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상당히 전문적인 내용까지 언급되면서 시인 특유의 감수성이나 그 시각은 사라지지 않는다. 한글로 된 이런 수필들도 만났으면 좋겠는데, 그러기엔 독자 층도 적고 오로지 글만 써서 살아가기엔 순수 문학과 관련된 시장은 너무 협소하기만 하다. (그런데 원고료는 아직도 그대로이겠지. 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책을 읽으면서 괜찮았던 문장들을 옮긴다. 나도 글쓴이처럼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나는 항상 가넷의 삶을 부러워했다. 해안이나 배 위에서 보면 우리와 완전히 다른 삶처럼 보인다. 소박하고 엄격한 대기, 빛, 파도와 더불어 사는 삶, 먹구름을 배경으로 반짝거리거나 단검처럼 몸을 접어 물고기를 향해 돌진할 때 가넷은 몸이 아니라 마음처럼, 동물이 아니라 광물처럼 보였다. 나는 한 마리 가넷이 외로이 바다를 탐문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좋다. 나이 지긋한 귀족 시인이 고뇌하며 시상을 떠올리는 모습 같다. (94쪽~95쪽)

 

가넷 Gannet

 

태양은 한낮에도 남서쪽 언덕 위에 낮게 걸려있다. 빛이 남서쪽에서 쏟아지는데 바람과 같은 방향이다. 햇빛과 바람이 같은 방향에서 함께 도착하는 것이다. 재빨리 이동하는 구름의 하늘에서 빛과 공기가 신속한 팀을 이뤄 몰려든다. 바람은 풀을 들어 올리고 앙상한 나뭇가지를 움직이며 태양이 그 위에 빛을 내린다. 이 모든 것이 한 번의 동작으로 이루어진다. 빛과 공기는 동일한 실체가 가진 다른 양상이다. 빛은 면도칼처럼 날카롭게 풀들과 버드나무, 사과나무, 자작나무 가지에 파고든다. 정원은 온통 왼쪽을 향하고 있는 빛의 필라멘트다. (107쪽)

 

 

캐서린 제이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