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비즈

룬샷, 사피 바칼

지하련 2022. 3. 10. 12:04

 

룬샷 Loonshot
사피 바칼(지음), 이지연(옮김), 흐름출판

 

 

“때로는 회사 자체가, 회사를 조직하는 방식이 바로 최고의 혁신이더군요.”
- 스티브 잡스(264쪽)

 

 

이 책에 대한 찬사가 왜 이어졌는지는 책을 끝까지 다 읽은 후에야 알 수 있었다. 그만큼 좋은 책이고 찬사를 받을 만했다. 읽는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말이다.

 

작년 이 책을 구입한 다음, 지하철로 출퇴근하며 절반 정도 읽다가 그만 두었다. 안타깝게도 중간에 책의 흐름을 놓쳤기 때문이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내용을 놓치지 않으려면 상당히 꼼꼼한 독서가 요구되었지만, 나는 흔한 비즈니스 서적이라는 생각에 좀 가볍게 읽다 흐름을 놓쳤다. 그리고 반 년 정도가 지난 후 다시 처음부터 꼼꼼히 읽었다.  모두가 쉽게 자연에서 발견할 수 있는 법칙으로 시작하여 기업과 조직의 문제 해결과 혁신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상당히 은유적이며 시사적이었다. 상당히 울림이 있었던 비즈니스 서적이었다. 저자가 말하는 대로 조직 내에서 실천하기란 쉽지 않아 보이지만. 

 

책 초반 상전이(相轉移, phase transition)이라는 자연 법칙을 이야기할 때는 비즈니스 서적보다는 자연과학서에 가까운 느낌이 들 정도다. 저자가 스탠포드대 물리학 박사이니, 자연 법칙에 대해선 상당히 깊이있게 설명해준다. 그리고 이 고비를 넘기면 흥미를 읽지 않고 끝까지 읽게 된다. 처음에는 왜 저자가 그토록 '상전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지 이해되지 않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자연 법칙에 대한 이해와 기술 혁신에 대한 여러 사례들 다음, 책 후반부에 이어지는 시스템 사고와 조직, 실제 비즈니스에 대한 이야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해가 된다. 

 

1. 가장 중요한 획기적인 아이디어는 룬샷loonshot으로부터 나온다. 룬샷은 종종 그 주창자가 ‘미친 자’ 취급을 받는, 많은 이들이 무시하는 아이디어다.
2. 언뜻 미친 것처럼 보이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전쟁에 이기는 기술, 생명을 살리는 제품, 업계를 바꿔놓는 전략으로 탈바꿈시키려면 대규모 인원이 필요하다
3. 상전이라는 과학적 원리를 팀이나 기업, 혹은 어떤 형태든 목적을 가진 집단의 행동에 적용해보면 룬샷을 더 빨리, 더 잘 키워내는 실용적 법칙을 도출할 수 있다. (15쪽)

 

룬샷이라는 단어를 '혁신'이라는 단어로 바꾸어도 좋을 듯싶지만, 혁신은 과정이 녹아있다면 룬샷은 상전이처럼 한방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그래서 아이디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아이디어가 어떻게 만들어져 세상을 변화시키는가를 설명한다. 

 

상전이 현상 (출처: 나무위키)

 

상전이의 경계에서 두가지 상태가 공존하는 현상을 상분리(相分離, phase separation)라고 한다. 얼음과 물의 상태는 서로 나눠지면서도 여전히 연결되어 있다. 
어느 쪽 상태도 압도적이지 않은 이 순환 관계를 동적 평형(動的 平衡, dynamic equilibrium)이라고 한다. (57쪽)

 

1. 모든 상전이의 중심에는 경쟁하는 두 힘의 줄다리기가 있다.
2. 상전이는 시스템 속성(온도나 차량 밀집도 등)의 작은 변화로 두 힘의 균형이 바뀔 때 유발된다. (286쪽)

 

사피 바칼은 룬샷은 제품형과 전략형 두 가지로 나누며 여기에 대해서 자세한 사례를 들어가며 설명한다. 

 

‘제품’ 측면에서 놀라운 돌파구(최종적으로 승리하기 전까지 많은 사람이 무시했던 기술)가 마련되는 것을 제품형 룬샷P-type loonshot이라고 부르기로 하자.(128쪽)

‘전략’ 측면에서 놀라운 돌파구(새로운 기술의 개입 없이 사업을 하는 새로운 방식 혹은 기존 제품의 새로운 활용)는 전략형 룬샷S-type loonshot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129쪽)

 

그리고 이 책의 핵심적인 내용이 중후반부에서 언급된다. 즉 왜 앞에서 그렇게 상전이에 대해서 설명했는지 뒤에 가서 자연스레 알 수 있다. 또한 상전이가 동적 평형 상태에서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데, 이것을 기업이나 조직에서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상전이, 즉 룬샷이 성공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야한다고 강조한다. 다시 말해 룬샷이 나오고 성공할 수 있는 시스템(체계)를 어떻게 마련할 수 있는가가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앞서 이야기했듯 약한 고리는 아이디어의 공급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현장으로 이전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 약한 고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사람이나 문화가 아니라 ‘구조’(시스템설계)다. (266쪽) 

 

시스템 사고는 ‘결과의 질’ 뿐만 아니라 ‘의사결정의 질’을 용의주도하게 점검한다는 뜻이다. 예컨대 결과가 실패라고 해서 반드시 의사결정 자체 혹은 그 이면에 깔린 의사결정 과정이 나빴다고 볼 필요는 없다. 결과는 나빴으나 의사결정은 훌륭했던 경우도 있다. 잘 선택한 ‘똑똑한 리스크’였으나 결과가 나빴을 뿐이다. (256쪽)

 

1장에서 버니바 부시가 자신은 “전쟁 준비에 기술적으로 도움을 주거나 한 적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는 얘기를 했다. 마찬가지로 캣멀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은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게 아니라 ‘시스템’에 신경 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257쪽)

 

그리고 룬샷을 성공시키기 위한 원칙을 아래와 같이 요약한다.

 

1.상태를 분리하라
- 예술가와 병사를 분리하라
- 상태에 딱 맞는 툴을 마련하라
- 맹점에 주의하라: 두 가지 유형의 룬샷(제품형 룬샷과 전략형 룬샷)을 모두 육성하라 

2. 동적 평형을 만들어내라.
- 예술가와 병사를 똑같이 사랑하다.
- 기술이 아닌 기술 이전을 경영하라 : 정원사가 되라
- 분리된 그룹을 서로 연결해줄 프로세스 수호자를 임명하고 훈련하라

3. 시스템 사고를 퍼뜨려라
- 조직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유’를 계속 질문하라
- 의사결정 과정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진물하라
- 결과주의 사고를 가진 팀을 찾아내고, 이들을 도와 시스템 사고를 채택하게 하라. (268쪽)

 

룬샷은 프랜차이즈에 치중하는 제국이 아니라 룬샷 배양소에서 번성한다. 룬샷에 능한 것과 프랜차이즈에 능한 것은 한 조직이 갖는 두 가지 상태다. 그 조직은 팀일 수도 있고, 회사일 수도, 국가일 수도 있다. 그게 바로 창발의 과학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교훈이다. (438쪽)

 

읽는데 다소 시간이 걸리긴 하겠으나, 적극 추천한다. 기대 이상으로 좋았던 책이었다.

 

사피 바칼Safi Bahc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