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서양중세문명, 자크 르 고프

지하련 2006. 3. 19. 17:34




쟈크 르 고프(지음), 유희수(옮김), <<서양 중세 문명>>, 문학과지성사, 1995년 3쇄(1992년 초판)



사람들은 서양 중세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왕과 왕비, 기사, 장원 경제, 십자군, 아더왕 이야기, 왕비와 기사 간의 로맨틱한 사랑, 높이 솟은 첨탑의 고딕 성당. 아마 이런 것들이 아닐까. 아닐 지도 모르겠다. 어느 새 나도 모르게 중세에 대해선 전문가 수준이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이 책은 서양 중세의 문명사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요약하고 정리한 책이라, 독자에 따라선 설명이 인색하다고 여길 수 있고 완독하는 데에 다소 많은 시간이 걸리는 책이다. 하긴 천 년 중세 문명을 일목요연한 구성과 설명으로 다 담아내기 위한 저자의 노력을 감안한다면 이 시간마저도 짧게 느껴질 정도이다. 재미있고 쉽게 읽히는 중세 개론서 한 권을 읽고 난 뒤 이 책을 읽는다면 정말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이제 서양 중세를 암흑시대로 가르치는 선생은 없겠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만일에 하나, 아직도 그렇게 가르치는 선생이 있다면 바로 선생 자리에서 쫓아내야할 것이다(아마 내 눈으로 목격하다면, 바로 달려들지도(?) 모르겠다).

중세를 암흑시대라고 부르게 된 계기는 15세기 이탈리아의 인문주의자들에 의해서이다.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의 눈에 중세야말로 고대의 학문과 문화를 엉망으로 만들어놓은 시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지적은 르네상스의 입장에서도 틀린 지적이다. 왜냐면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연속성은 중세 고딕 문화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쟈크 르 고프는 중세를 지속적인 르네상스의 역사로 파악한다. 계속되는 이민족의 침략 속에서 문명의 연속성을 확보하기 노력이 계속되었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중세를 미화하거나 과장하지 않는다. 이 점은 이 책의 장점에 속한다.

이 책은 우리가 중세에 대해 알아야하는 대부분의 주제들에 대해 논하고 있다. 이런 표현이 적당할지 모르겠다. 서양 중세에 대한 현대적 이해를 담고 있는 교과서.

중세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가지고자 하는 이들에게 매우 좋은 책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