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대선 결과를 보며 나는 절망하고 좌절하고 슬퍼할 것이다.

지하련 2022. 3. 10. 22:43

 


잠을 설쳤다. 잠을 자지 못했다. 내일 출근을 위해 잠자리에 누웠으나,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출구조사 결과를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정확한 예측.

 

온라인공간, 특히 Social Media는 에코챔버(echo chamber)현상이 심한 곳이다. 여론이 왜곡된다. 왜곡될수록 사업자의 입장에서는 좋다. 그래서 포털이나 Social Media는 이 왜곡을 막지도, 막을 생각도 없다. 그러한 왜곡이 심하면 심할수록 트래픽은 늘어나고 광고 수익으로 이어진다. 이는 언론도 마찬가지여서, 이제 정론지 같은 건 없고 온라인에는 모두 ‘스포츠신문’화가 되었다. (* 예전에 인터넷이 활성화되기 전에는 흑백의 종이 신문과 컬러의 스포츠신문이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 흑백의 일간지를 구독했으며, 스포츠신문은 주로 터미널 가판대에서 팔리고 버려졌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중요하지 않다. 사실이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소문이 퍼지고 있다고 전하면 된다. 아니면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다고 인용하면 된다. 그리고 이로 인한 왜곡이 심해지더라도 상관없다. 왜냐면 그들은 책임지지 않는다. 오직 그들의 사업에 대해서만 책임질 뿐, 여론이 어디로 흐르던, 그래서 이 나라의 미래가 어떻게 되던 상관없다. 그러나 이러한 왜곡으로 인해 여론은 협의를 통한 합의를 향해가지 못하고 갈등과 대결로만 흘러간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잘못된 정보가 잘못된 방식으로 유통되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 첨예하게 드러난 것이 이번 대선이었다.

 

어떤 이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영화 <<아수라>>가 나왔다. 나는 그 영화를 알지 못했다. 그래서 ‘아수라’라고 치는 동시에 첫 번째 키워드가 ‘아수라 이재명’이었다. 엄청나게 작업을 한 것이거나 많은 사람들이 검색했다는 뜻이다. 어떤 이와 대화에선 세 명이 죽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황당했다. 그런데 정치에 관심 없는 대부분은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찾아보지 않는다. 딱히 찾아볼 곳도 없다. 이재명 후보가 전과 4범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 중 하나는 2004년 성남의료원 건립이 당시 새누리당 의원들의 날치기로 폐기되었을 때 생겼다. 성남시의 한 두 군데의 종합병원이 폐업하여 종합병원이 사라지게 되어, 거의 2만명에 가까운 성남시민들의 직접 발의로 공공병원을 건립하자는 건의안이 새누리당(현 국민의 힘) 의원들의 단합으로 날아간 것이다. 성남시 의회에서 건의안 통과를 고대하던 당시 이재명 변호사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난리를 피웠다. 그리고 그 곳에서 ‘특수공무집행방해죄’로 전과가 생긴다. 그의 전과들은 다 이런 식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전과 4범만 기억할 뿐, 그 전과가 어떻게 생겼는지 관심 없다.

 

이재명 후보가 성남에서 유명했던 인권변호사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도리어 다른 후보들의 비방으로 인해 많은 부분 희석되었다. 그런데 인권변호사였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인권변호사라고 해서 인권사건만 수임하라는 법은 없다. 먹고 살아야 할 것 아닌가. 하지만 이재명의 많은 부분들은 가려져 있었고 대부분 그를 둘러싼 험담들만 있었다.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 이재명은 나쁜 사람으로 인지되었을 것이다(그 유명한 욕설 사건도 이런 식이다. 누가 그 상황에 욕을 안 할 수 있는가!). 대선 후보로 나오기 전부터 이런 이야기들이 만들어지고 유포되었으니(그것도 여당 지지자들에 의해서), 대선후보까지 된 것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저널에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수년 전 읽었던 이재명 성남시장의 인터뷰가 상당히 인상깊었다. 그 때부터 이런 사람이 리더가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의 거칠고 직설적인 스타일은 종종 사람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키지만, 성남의 여러 궂은 사건들을 처리하면서 생긴 것이라면, 그가 가난한 집안의 소년공으로 성남에서 살아남기 위해 버텨야 했던 그 시절을 고려한다면, 그것은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을 일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재명 후보를 둘러싼 이야기들 중 좋은 이야기를 찾기가 어려웠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일까. 나쁜 이야기들은 앞에 나오고 좋은 이야기는 뒤로 물러났다. 나쁜 이야기들은 기사화되었고 공유되었으며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었다. 하지만 좋은 이야기는 기사화되지도, 공유되지도,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지도 않았다. 그냥 싫은 것이다. 소년 시절 공장에서 다니다가 검정고시로 고졸학력을 취득해서 대학에 들어간 것도, 사법고시를 패스해 인권변호사 활동을 한 것도, 성남시장이 되고, 경기도 지사가 된 것도, 국회의원도 아닌 이가 대선 후보로 나선 것도, 대선후보 경선에 나와 좋은 배경을 가진 이들을 비판하던 이재명이 싫었던 것이다.

 

결국 소모적이었다. 나 또한 이 분위기에 휩싸였다. 그래서 나 역시 대립과 갈등에 사로잡혔다. 너무 슬프고 힘이 없다. 미국의 어떤 이는 이재명 후보가 하버드 법대에 지원했더라면 합격했을 것이라고 글을 올렸다. 그런 삶을 살아 놀라운 성적으로 대학 입학 자격까지 취득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가능성이라고.

 

나는 그 가능성을 지지했다. 나는 이 나라 사람들의 절반을 믿을 수 없다. 그리고 민주당에 대해서는 너무 실망했기에 이제 그 지지를 거둘 것이다. 20세기 후반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탈정치화’를 이야기했을 때, 나는 프레드릭 제임슨이 <<정치적 무의식>>에서 이야기했듯 ‘항상 정치화하라’라는 말로 대응했다(이 문장은 운동권의 구호가 아니라 탈근대적 관점에서의 정치적 무의식, 일종의 내재화를 의미한다). 하지만 이번 대선으로 한국 정치에 대한 관심을 끊기로 했다. 정치 따윈 신경을 쓰지 않을 작성이다. 적어도 앞으로 5년 간 정치에 대한 관심을 접을 것이다. 투표도 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러나 대의민주주의에서는 투표라는 행위가 너무도 중요한 정치활동이기 때문에, 그것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그만큼 노력해야 한다. 내 주위의 대부분 사람들은 이재명을 지지했다. 그들이 좌파냐고? 아니다. 그저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배웠고 세상이 어때야 하는지 아는 사람들일 뿐이다. 가난하지도 않고 특별하게 부유하지도 않다. 그저 먹고 살 만한 사람들이다. 일부는 종부세 대상자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재명을 지지했다. 그리고 그는 낙선했다. 그 중요한 투표를 무성의하게 투표한 이들에게 환멸을 느끼며, 그 중요한 투표 행위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돕지 못한 정치 단체에 대해서도 깊은 실망과 절망을 했다. 내 투표로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문재인 정부는 실패한 정부가 되었고(특히 인사와 부동산 문제로), 민주당은 가장 무능한 거대 정당임을 다시 한 번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주었다.

 

앞으로 한국 정치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 언론, 특히 주류 언론을 읽지 않을 것이다. 또한 내가 국민의 힘을 지지하지 않는 이유와 마찬가지로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재명 후보가 민주당에서 어떻게 자리잡는가를 지켜볼 것이다. 그저 바라볼 뿐이다.

 

촛불 시위에 나가고 그 이후 정말 높은 기대를 가졌던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게 바랬던 것들 대부분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리고 그렇게 이루어지지 못한 것에 대해 책임 지지 않았으며, 겨우겨우 세웠던 대통령 후보도 당선시키지 못한 정당이다. 무능한 정당이다. 그렇게 많은 의석을 가지기도 뭐하나 제대로 된 개혁을 이루지 못한 정당이다. 동시에 이재명 후보를 둘러싼 무수한 유언비어들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나왔음을 잊지 않을 생각이다.

 

앞으로 5년 동안 최선을 다해 한국 정치에 대해 절망하고 좌절하며 분노하며 슬퍼할 것이다. 그리고 이재명 후보가 다시 일어서길 기도할 것이다. 나는 그의 정치적 역량이 이번 기회로 더 단단해지길 기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