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수전 손택: 영혼과 매혹, 다니엘 슈라이버

지하련 2022. 11. 5. 09:38

 

 

수전 손택: 영혼과 매혹

다니엘 슈라이버(지음), 한재호(옮김), 글항아리

 

 

작가의 삶이란 “가장 특권적인 삶 (…) 끝없는 호기심과 활력, 무한한 열정으로 가득한 삶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린 마음에 여행가가 된다는 것과 작가가 된다는 게 동일한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48쪽)

 

“손택은 마리아 칼라스와 같은 방식으로 공격성을 표출했습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과 함께라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둬야 했죠. 손택은 뭔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공격을 개시했습니다.” 테리 캐슬도 손택이 언제나 뭔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비난과 공격을 퍼붓고 무례하고 까칠하게 굴 준비가 돼 있었다는 데 동의한다. (379쪽)

 

 

단번에 시선을 잡아끄는 이 책은 매력적인 책 크기와 수전 손택의 사진이 책 표지로 장식되어 있다. 표지 사진 밑에 큰 글씨체로 SONTAG라고 적혀 있으니, 손이 가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랄까. 나 또한 그것 때문인지 몰라도 서점에서 이 책을 보자마자 바로 집어 들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뭔가 깊이감이 빠진 것 같다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다. 어쩌면 내가 예술가나 비평가에 대한 평전에 대해 가지는 일종의 기대 때문일지도 모른다.

 

비평가 수전 손택이 미국 현대 문화에 끼친 영향은 분명하다. 영화와 사진에 대한 깊은 관심과 탁월한 비평들은 이 장르들이 미국 비평계에서 주류 예술로 인정받는 데 도움을 주었다. 특히 몇 권의 비평서들은 도발적이며 새로운 관점에서의 해석으로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그녀를 둘러싼 상반된 평가는 여기에 있다. 그녀는 비평가, 평론가에 머물렀을 뿐, 그녀가 쓴 소설이나 만든 영화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또한 깊이 있는 사유의 세계를 보여준 것도 아니라서, 지속적으로 재해석된다거나 학문적으로 연구되지도 않는다. 이 평전 또한 그녀의 저서들을 훑고 그녀의 삶을 스쳐 지나갈 뿐이다. 마치 인용문들의 연결들 같다고나 할까. 내가 실망하는 부분도 이 지점이지만, 이것이 책의 장점일 수도 있겠다.

 

내가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가장 큰 이유는 수전 손택을 알고 싶어서였다. 수전 손택의 책을 읽지 않은 건 아니고 <<해석에 반대한다>>라든가, 몇 개의 에세이, 단행본으로 나온 인터뷰집 등을 읽었지만, 나에게 특별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도리어 사람들이 왜 수전 손택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궁금했고 이 책을 읽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 읽고 난 다음 기억에 남는 건 ‘센 언니’ 캐릭터 정도랄까. 남성 위주의 보수적인 주류 문화계에서 살아남은 센 언니. 성격이 괴팍했고 무분별하게 소비를 했으며 보수적인 미국 사회에서 보기 드물게 좌파진영에서 시작된 정치적인 활동을 했다는 것 정도다. 그녀가 어떻게 인정을 받고 어떤 책들을 썼으며 누구를 만나고 교류하였는지 상세하게 기술되지만, 그것은 비평가로서의 수전 손택을 부각시키기보다는 도리어 문화계 스타 수전 손택이라는 이미지를 나에게 각인시켰다. 어쩌면 무너져가던 미국 지식인 사회에서 ‘수전 손택’의 존재는 흥미진진한 별과 같았다. 특히 여성 작가들과 예술가들에게 그녀의 존재는...

 

“오늘날은 그런 시대, 대부분의 해석 작업이 반동적이고 사람들의 숨통을 막아버리는 시대다. 도시의 공기를 더럽히는 자동차와 중공업 공장이 내뿜는 매연처럼, 예술 해석의 분출도 우리의 감수성을 해친다.” (168쪽)

 

이 책은 수전 손택의 일생을 볼 수 있는 동시에 20세기 후반 미국 사회를 엿볼 수 있기도 하다. 다니엘 슈라이버는 1960년대와 1970년대를 아래와 같이 요약한다.

 

1964년은 미국에서 일반적으로 ‘1960년대’의 시작으로 여겨진다 - 실제 연대가 아니라 저항과 사회 격변을 상징하는 가공의 시대로서, 1964년은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초반을 잇는 다양한 가닥 - 사회 비판, 하위문화, 대중문화, 정치적 자유주의 - 이 엮여서 정치와 언론, 미술, 연극이라는 경기장에서, 특히 삶의 양식이라는 전형적인 미국식 경기장에서 각축전을 벌인 다양한 급진적 운동을 낳은 시점이었다. 1964년은 마틴 루서 킹 주니어가 노벨상을 받고, 미 의회가 인종차별주의 종식을 위해 큰 걸음을 뗀 공민권법을 통과시킨 해였다. 평화운동과 신좌파가 생겨나고, 리버풀의 록밴드 비틀스가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서 열풍을 일으킨 해였으며, 저항 행위와 기분 전환용 마약, 동양의 신비주의, 성적 해방이 보헤미안 거주 지역 밖으로 퍼져나간 해였다. 심지어 중산층 아이들까지 갑자기 앨런 긴즈버그를 읽고, 선종을 공부하고, 마리화나를 피우기 시작했다. 앤디 워홀의 뮤즈 에디 세즈윅이 뉴욕으로 이주하고, 워홀 자신은 맨해튼의 중심인 47번가에 있는 새 작업실로 이사해서 내부를 전부 알루미늄포일로 씌운 전설적인 실버팩토리를 만든 해였다. 그리고 이 해는 수전 손택이 유명해진 해이기도 했다. (144쪽 ~ 145쪽)

 

1970년대가 시작되자 기대했던 미학적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고 과거의 아방가르드도 동력을 잃었음이 명백해졌다. 남은 것이라곤 더는 시대에 맞지 않아 보이는 미학에 자기지시적으로 의지하는 것뿐이었다. 추상표현주의 그림과 누벨바그 영화, 누보로망이 회화와 영화, 문학에서 뒤늦게 꽃을 피우며 과거를 지배한 하이모더니즘 역시 이제 과거의 유물로 보였다. 더욱더 급진적인 미학적 담론이라는 한쪽과 보수적인 다수의 견해라는 다른 한쪽 사이에서 진퇴양난에 빠진 모더니즘은 사실적인 묘사와 전통적인 예술관행을 향해 전환하는 과정에 있었다. (235쪽)

 

수전 손택의 <<사진에 관하여>>는 읽지 않았는데, 읽어봐야 겠다. 이 책에서 그녀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어떤 준비를 했는지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기도 하고 보기 드물게 다양한 이들의 찬사를 받은 책이기도 했다. 

 

<<사진에 관하여>>의 전반을 관통하는 공통된 맥락이 있다면, 그것은 사진이란 일차적으로 소비문화가 현실과 과거를 소비재로 만드는 수단이라는 손택의 관점이다. 즉 사진은 현실과 과거를 이미지로 대체한다. 사진의 힘이 미치는 범위는 “사실상 현실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서 플라톤주의를 없애버리는” 지점에까지 이른다. 심지어 이미지와 현실의 구별조차도 점점 더 어려워진다. 이미지는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현실적이다.”, 이미지는 “형세를 역전시킴으로써 현실을 이기고” 현실을 “그림자로” 만들어버린다. 손택은 “현실뿐만 아니라 이미지까지 포함하는 생태학”을 호소하며 책을 논리적으로 마무리한다. (270쪽 ~ 271쪽)

 

국내에 수전 손택이 잘 알려지기 전, 나는 가타라니 고전의 책을 읽다가 알게 된 수전 손택의 <<은유로서의 질병>>에 흥미를 느껴, 그 때 당시 원서만 전문적으로 판매하던 종로 한신문화사에 가서  이 책을 구입했다. 문학 전공 대학생이 영어로 읽기엔 상당히 어려워 초반에 그만두고 말았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흐른 후 <<해석에 반대한다>>가 번역되었고 나오자 마자 읽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 때 이 책을 발칙하고 경쾌한, 잘 씌여진 비평서로 읽었다. 그 뿐이었다. 지금도 수전 손택에 대한 내 평가는 이 정도다. 한나 아렌트는 현대 철학사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 만큼의 사유를 하였고, 가라타니 고진은 평론가, 비평가를 넘어 일본 문학을 새롭게 재해석한 것에 머물지 않고 현대를 그의 관점에서 사유하며 통찰력 있는 저서들을 썼다. 하지만 수전 손택은 여기에 미치지 못한다. 수전 손택을 깎아내리려는 목적이 아니라 수전 손택에 대한 높은 평가는 탁월한 에세이스트, 또는 비평가에 국한될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수전 손택의 명성은 지극히 미국적 상황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아마 상당 수의 보수적인 미국 지식인들은 여기에 동의할 것이다. 

 

유럽도 전개되는 양상이 비슷했다. 연로한 롤랑 바르트는 전통적인 지식인과 작가는 멸종하고 대부분이 대학교에 자리를 잡은 새로운 종이 그들을 대체하고 있다며 입버릇처럼 불평하곤 했다. 손택도 이런 묘사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손택은 1980년 인터뷰에서 시대에 역행해 작가이자 지식인으로서 보편적인 역할을 지키는 것이 자신의 목적이라고 공표했다. (288쪽)

 

한 비평가는 그가 이름을 날릴 수 있었던 것은 “미국에 지식인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307쪽)

 

하지만 그녀의 명성이 누군가가 보기에 과장되었다고 하더라도, 앞서 이야기했던 대로 그녀의 발자취가 후배들에게 끼친 영향은 분명하다. 아마 누군가는 그녀를 보며 작가를 꿈꾸었을 것이다. 뉴욕 문화계에서 이름을 날리는 작가나 예술가를 희망했을 것이고 그 중 일부는 그 꿈을 이루었을 것이다.   

 

모든 기억은 개별적이며, 재현할 수 없다. 기억은 개인과 함께 죽는다. 집단기억이라는 것은 기억이 아니라 일종의 규정이다. 즉, 이것이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이것이 그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우리 마음속에 그 이야기를 고착시키는 사진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4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