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어떤 불투명함

지하련 2023. 1. 15. 14:04

 

뿌연 하늘 사이로 비가 내렸다, 한겨울을 시샘하듯. 저 멀리 솟은 빌딩의 불빛이나 지하철에서 나와 나에게 뛰어오는 연인을 분간하기 어려운 안개가 걷혔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불투명함이 있다. 찬란하게 맑은 세상을 흐리게 하는 불투명함. 거칠고 불쾌한 불투명함. 또는 어둡고 신비로우며 불길한 흐릿함. 산을 집어삼키고 마을을 집어삼키고 강과 바다 위로 드리워지는 불투명함이다. 반대로 바깥 세상에는 무관심해지며 자기에게로 향하게 하는 불투명함. 외부와의 단절을 끊임없이 일으키기에 결국엔 자신만 남게 만드는 불투명함이다. 나를 향하며, 내가 속한 시간과 공간의 테두리를 가늠하게 하고 그 곳을 공유했던 존재들과 사물들을 떠올리게 하는 불투명함, 종종 어떤 향기나 그립고 아련한 흔적으로 마음을 따스하게 하지만, 때론 어떤 공포나 아픔, 견디기 어려운 충격에 휩싸이게 만드는 불투명함이기도 하다. 이 두 가지 불투명함은 종종 한 곳에 같이 머물기도 하는데, 그럴 때 우리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거의 없다. 그냥 죽은 듯 누워 어두워져 가는 천정을 바라볼 뿐이다. 아니면 독한 위스키 다섯 잔으로 내 영혼을 취하게 하거나.

 

그렇게 하던 시절도 있었다. 세상을 뒤덮어가는 불투명함 앞에 서서, 앉아서, 누워서. 

 

 

 

어둠과 눈이 내린 어느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