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어느 저녁

지하련 2023. 1. 26. 19:55

 

조금 빨리 사무실을 나왔지만, 그래도 집에 오면 늦었다, 늘. 연휴 때 미사에 가지 못했고 음력으로 다시 시작하는 새해라, 나름 반성한다는 뜻으로, 평일 저녁 미사엘 갔다. 본당 보좌 신부님 헤어 스타일이 변해 다른 신부님이 오셨나 생각했다. 퍼머를 한 단발이었다가 이젠 단정한 스타일이다. 나이 든 신자들은 좋아하시겠다고 적었다가, 나도 나이 들었음을 떠올린다. 평일 저녁 미사를 금방 끝난다. 그래도 미사를 보고 나면, 마음이 조금은 편해진다. 이제 서둘러 집에 갈 시간이다. 저녁 8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집에 도착하니, 아들은 학원에서 오지 않았고 아내도 퇴근을 하지 않았다. 살짝 냉기가 도는 어두운 집에 전등을 켰다. 조금 늦게 들어오는 불빛, 인공의 환함. 

 

나는 다시 집을 나왔다. 면세, 침묵, 고대, 오른손, 알고 싶지 않은 것들과 같은 단어가 들어있는 제목을 가진 책 다섯 권을 들고 나와 근처 도서관으로 갔다. 계속 안경에 김이 서린다. 최근 들어 자주 안경에 김이 서려 신경이 예민해졌다. 앞이 안 보이는 건 아니지만, 내 의도와 무관하게 불투명하게 변하는 건 참 싫다. 다섯 권 중 한 권만 읽었을 뿐이지만, 늘 읽을 수 없는 권수의 책을 빌린다. 나머지는 읽지 않은 채 그대로 반납했다. 한 권은 참고용으로 일부만 읽을 목적이긴 했지만. 결국 히토 슈타이얼의 '면세미술'은 새 책으로 주문했다. 도서관에서 두 번이나 빌렸고 이번엔 초반부를 조금 읽었는데, 그냥 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읽는다면 오래 시간이 걸릴 듯했다. (히토 슈타이얼의 글은 그 짜임새가 좋진 않지만,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다양한 고민거리를 던진다. 전방위적 예술가란 히토 슈타이얼에게 어울리만한 표현이다. 한때 백남준이 이런 예술가로 인정받았는데, 지금은 누가... ) 

 

도서관에서 뒤라스와 조르주 상드를 빌렸다. 데버라 리비의 책에서 언급된 이들이다. 이렇게 좋은 책은 좋은 책을 부른다. 한겨울 추위에 사람은 사람을 찾고 그렇게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한다. (좋은 사람들이 만나면 한땐 늘 언제나 술을 찾는다고 여겼다) 나는 좋은 사람인가, 과연. 다시 집중해 글을 쓰면 잘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가 접었다. 글을 쓰는 건 힘든 일이고 상당히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그게 싫은 건 아니지만, 체력적으로나 심적으로 어느 정도 감수할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되기에, 그냥 접었다.

 

어떤 부류의 작가나 예술가에겐 창작은 상당히 고통스러워서 견디기 힘든 과정이다. 그걸 용케 버티는 이들은 작가나 예술가가 되고, 그걸 버티지 못하는 이는 그냥 술만 마시는 거다. 내가 알던, 뛰어난 이들 상당수는 그렇게 술을 마시면서 청춘을 낭비하더니만, 그냥 평범해졌다.  

 

도서관을 나와 집으로 오는 길에 아스파라거스와 양송이 버섯, 상추와 맥주를 샀다. 집에 와서 버너를 꺼내고 밥을 새로 지으며 반찬을 셋팅했다. 아들이 집에 와 있었는데, 외투도 벗지 않은 걸 보니, 학원이 끝나고 바로 온 것이 아니거나 집에 왔으나 씻지 않고 빈둥거린 듯했다. 아들에게 한 소리를 하곤, 재활용이라도 하고 오라고 했다. 그 사이 나는 상추를 씻고 아스파라거스와 양송이 버섯을 쟁반을 놓았다. 그 사이 밥 짓는 소리가 밥솥에서 흘러나왔다. 행복하고 따스한 소리다. 예나 지금이나 밥 짓는 소리는 술잔에 술 따르는 소리만큼 좋은 소리다. (아, 이런 문장은 자제를...) 재활용을 끝내고 온 아들은 자기 엄마와 같이 들어왔다. 나는 냉장고에 있던 삼겹살을 꺼내 굽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늦은 저녁을 하기 시작한 시간은 아홉시가 다 되어서였다. 그렇게 먹다가 아들이 먼저 들어가고 이내 아내도 들어가고, 혼자 식탁 정리를 하고 삼겹살 기름 흔적이 남은 바닥을 닦고 설겆이까지 하니 11시가 훌쩍 지나 있었다. 그러는 사이 나는 맥주 한 캔과 포도주 반 병을 마셨다. 

 

다행이다. 요즘 요리가 즐겁다. 요리 도구를 사고 요리를 하고 설겆이를 한다. 가족이 내가 한 음식을, 요리를 좋아해주니 다행이다. 원래는 볶음우동을 할까 했다. 머리 속으로 레시피를 생각했다. 일종의 요리 설계도를 떠올린 것이다. 그러다가 냉장고에 있던 삼겹살이 생각났다. 연휴 때 처가에서 가지고 온 것이다. 다행이다, 저녁 미사에 갈 수 있어서. 어제 아침에도 갔는데, 설 연휴라 새벽 미사만 했음을 뒤늦게 알았다.

 

이렇게 살게 될 것임을 그때 알았다면 후회를 덜 했을 텐데 말이다. 무수한 실패, 무수한 아픔, 무수한 후회 뒤에 알게 되는 건 참 사소한 것이었음을, 그 땐 몰랐다. 아직도 그 때 성당을 따라 가야 했음을, 뒤늦게 깨닫고 있었다. 하긴 그게 문제가 아니었지만.

 

한 달 전쯤 제대로 된 까르보나라를 만들었다. 상당히 고급스러운 맛이었지만, 동시에 편향된 맛이었다. 일반적이지 않았다. 계란 노른자로만 만들었는데, 식당에서 이렇게 만들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딱히 한국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맛도 아니라, 다들 크림을 만든 스파게티를 까르보나라라고 하고 있다. 그냥 크림 스파게티라고 하면 될 걸 왜 까르보나라라고 하는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카르보나라 스파게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