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나는 산티아고 신부다, 인영균 끌레멘스

지하련 2023. 6. 23. 15:01

 

나는 산티아고 신부다

인영균 끌레멘스(지음), 분도출판사 

 

 

고향집에서 성당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5월이지만, 꽤 더운 날씨의, 일요일 오전. 신부님은 강론 중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이야기하셨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해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렇다고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세스 노터봄의 <<산티아고 가는 길>>을 몇 년째 읽고 있는데, 이 기행수필은 노터봄의 명성에 걸맞게 예술에 대한 탁월한 식견과 우아한 문장으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여기엔 번역가 이희재 선생의 한글도 한 몫 했을 것이다. 

 

확인할 길은 없지만 나는 안다. 돌아오는 사람, 떠나가는 사람의 감정이 쌓일 대로 쌓여서 그곳에만 가면 어쩐지 반가움도 더 부풀려지고, 아쉬움도 더 부풀려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 그런 곳이 이 세상에는 있음을. 섬세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라면 암스테르담에서 눈물의 탑 언저리를 맴돌며 부드럽게 잡아끄는 공기의 흐름을 느낄 수 있으리라. 눈물의 탑 주변에는 뒤에 남은 사람들의 슬픔이 두텁게 쌓여 있다. 요즘은 그런 이별의 아픔을 영 느낄 수가 없다. 여행하는 데 몇 년씩 걸리는 것도 아니고, 가야 할 목적지를 정확히 알고 있으며, 무사히 돌아올 확률도 크니까 말이다. - 세스 노터봄, <<산티아고 가는 길>>(이희재 옮김, 민음사), 7쪽 

 

산티아고 순례길이 궁금해서 이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저 문장 때문이었다. 아마 세스 노터봄은, 지금 살아있는 작가들 중 기행 문학으로는 최고의 위치에 있지 않을까.

 

여행, 길을 떠난다는 것의 의미가 상당히 달라졌다. 불과 몇 백년 전만 하더라도 길을 떠난다는 건 목숨을 걸고 감행하는 행위였다. 그러니 '암스테르담 눈물의 탑' 언저리 이야기를 저렇게 하는 것이다. 어쩌면 포구가 있었던 모든 장소는 어떤 보이지 않는 생의 비장함이 감돌았었을지도 모른다. 산티아고 순례길도 그런 의미였을 것이다. 고향집 근처 성당 본당신부님의 이야기는 잔잔하게 내 마음을 움직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들 중 야고보라는 이름을 가진 이는 두 명이다. 그래서 우리는 대 야고보, 소 야고보로 구분하는데, 소 야고보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적다. 예수의 형제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며, 이집트, 또는 시리아에서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야고보 성인이라고 할 때는 대 야고보를 뜻한다. 스페인의 수호 성인이며, 산티아고는 야고보를 스페인어로 옮겼을 때의 명칭이다. <<나는 산티아고 신부다>> 책 초반에는 스페인에서의 그리스도교 역사, 산티아고 성인의 여러 이야기를 전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베리아 반도는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가 서로 교차하여 지배했던 곳이다. 이슬람 세력이 강성했을 때 이베리아 반도 대부분이 이슬람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다. 

 

산티아고 성인의 묘지가 있었던 그 곳에 교회가 들어서고 그 곳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원래는 예루살렘으로 향하던 순례길이 이젠 산티아고로 변한 것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여러 경로가 있는데, 그 중 프랑스 남부 생장드피르포르에서 시작하여 피레네 산맥을 넘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프랑스길이 가장 유명하다.

 

산티아고 사도의 유해가 모셔진 성지는 차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Santiago de Compostela' 도시로 발전한다. '콤포스텔라'라는 지명은 '별들이 쏟아지는 들판'이라는 라틴어 '캄푸스 스텔라Compus Stallae'에서 유래하였다. (39쪽) 

 

이 책은 산티아고 순례길 중간에 있는 라바날 데 카미노에 있던 수도원에 있었던 신부님의 이야기이다. 수도원에서의 생활도 나오고 수도원에 오는 한국인 순례객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며 자신이 직접 걸었던 산티아고 순례길 경험도 나온다. 하나하나 재미 있는 에피소드이면서 동시에 걸어간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다시 되새기게 만든다. 800킬로미터를 걸어가는 것 자체가 상당한 육체적 고통과 인내를 요구하는 일이기 때문에, 상당한 각오가 필요하다. 최소 30일 이상의 일정으로 가야하는 거리이기도 하고, 한국에서 가려면 최소한 수백만원 이상의 경비가 필요하다. 하지만 종교를 떠나 세계 각지에서 각지 다른 이유로 이 곳을 걷는 이들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이미 관광상품화되어 나온 것들이 많아져 그 의미가 퇴색되었지만, 이 책을 읽는다면 아마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다. 무언가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것이 있을 때, 산티아고 순례길도 어쩌면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책을 다 읽고 난 다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에 대해 생각했다. 거꾸로 된 십자가에서 죽은 베드로부터 ... 누구 하나 편하게 죽은 이가 없을 정도로. 믿음이란 그토록 중요하고 그토록 위험한 것이다. 조선시대 천주교가 자생적으로 싹튼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상이 잘못되었다고 느낄 때, 우리는 새로운 사상을 찾고 불러들이게 되며, 시간이 지나 그것은 믿음이 되고 신앙이 된다. 종종 그것이 잘못된 근본주의로 흘러 많은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대체로 종교는 순기능이 더 많다. 현대의 회의주의자들은 종교라든가 신앙에 대해 과격하게 공격하지만, 그 논리적 공격의 끝에 깔려 있는 이성의 어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봉사하는 성직자 수도자들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가리비 조가비에 축복하고, 사도의 무덤을 참배한 순례자들에게 영적 기쁨의 선물로 나눠주었다. 게다가 조가비는 산티아고가 한때 어부였음을 떠올리게 해 안성만춤이었다. 지금은 산티아고로 가는 거의 모든 순례자가 조가비를 목에 걸거나 배낭에 달고 걷지만, 처음 조가비는 순례를 온전히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이들만의 특권이었다. (73쪽)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해 알아보다가 유튜브 동영상을 살펴보았다. 많은 이들이 자신들의 순례길 여행을 영상으로 찍어 올리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아래 유튜브 영상이 단연코 최고였다. 

 

 

이젠 신앙과는 무관하게 많은 이들이 찾는 길이 되었지만, 이 책은 그 순례길의 종교적 의미와 역사,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과연 어떤 길인가를 다시 묻고 생각하게 한다. 읽고 난 다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으며, 결국 나도 죽기 전에 무조건 산티아고 순례길에 가겠다는 마음을 굳히게 만들었다. 실은 우리 모두 태어나면서부터 일종의 순례길 위에 있을지 모르지만.  

 

이 새로운 길, 곧 우리의 일상 삶이 바로 ‘진짜 카미노’이다. (23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