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자본의 무의식

지하련 2023. 8. 20. 15:58

 



남북한 밖에 거주하는 한인 인구는 중국인, 유태인, 이태리인, 인도인 다음으로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큰 디아스포라 집단을 이루며 본국의 인구 대비 비율로는 이스라엘 다음으로 두번째이다. - 박현옥, <<자본의 무의식>>, 185쪽(김택균 옮김, 천년의 상상)

 

캐나다 요크대학교 박현옥 교수의 책 <<자본의 무의식>>을 읽으며 한국인 디아스포라, 그 기원과 역사, <재외동포법>의 숨겨진 의미, 만주 이주의 역사나 배상의 정치학 등에 대해 새롭게 알아가고 있다. 영정조 르네상스에서 바로 세도정치 체제의 전환, 개화개방과 쇄국을 오가던 구한말 위기, 한일 합방의 이후의 일제 식민지가 이어지듯, 어쩌면 이번 정권이 그러한 몰락의 시작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함께 하면서 말이다.

 

거의 육백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의 중심 주제는 자본주의와 새로운 형태의 통일에 대한 연구이다. 다소 딱딱한 이론들의 틀을 먼저 제시하면서 글의, 책의 구조를 쌓아가는 형태라 읽기 쉽진 않지만, 내가 몰랐던 내용을,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것들까지 함께 알 수 있어 상당히 유의미한 독서 경험을 제공해주고 있다.

 

조선족의 역사적 무의식은 한국과 중국 가운데 하나를 자신의 공동체로 임명하고 동시에 다른 하나를 배제함으로 구성된다. 이러한 수행적 행위를 통해 조선족은 자신의 자본주의적 현재를 과거와 미래를 준거로 시간화하여 경험한다. - 위의 책, 297쪽

 

자본주의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한국인들을 하나로 모으고 있다는 것(통일)이 핵심적인 논의인데, 아직 책의 중반까지만 읽은 터라 다 읽고 난 다음 감상을 전하는 것이 좋겠지만, 상당히 정치적이면서 시사적인 논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땅을 기반으로 한 정치적 통일만을 염두에 두던 우리들에겐 흥미로운 주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이중국적의 수사법을 통해 중국 문화를 열등하고 원시적이라고 비하함으로써 조선인들은 중국에서 자신들의 신분이 의심받는 것에 항의하였다. 중국 문화에서 조롱의 대상은 조선의 미곡 농법과 대비되는 중국식 건지 농법과 중국식 의복의 조야함 뿐만 아니다. 그리고 조선인들의 자녀 교육에 대한 헌신과 대비되는 중국인의 자녀 교육에 우선하는 배금주의적 가치관, 중국에서 감정적 공명의 결핍, 춤과 악기의 촌스러움, 후진적인 결혼 풍습, 나아가 조선의 아름답고 푸르른 경관과 대비되는 중국의 거칠고 황량한 풍경을 망라한다. - 위의 책, 330쪽

 

일제식민지 치하에서 만주행은 식민지 체제에서 의도된 바이기도 하다. 독립 운동을 위해 가는 경우도 있었으나, 실은 만주국이라는 일본이 세운 나라를 채우기 위해 조선인들로 하여금 이주를 권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 후자였을 것이다. 만주 지역의 비옥함이라는 환상이 조선 사람들에게 퍼졌고 이주 시 토지의 무상 제공이나 금전적 지원을 약속 받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만주행은 이루어졌다.

 

바렌보임: 팔레스타인 필하모니는 들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사이드: 전혀 못 들어보았는 걸요. 하지만 부모님은 들어 보셨는지 종종 토스카니니가 카이로에서 팔레스타인 필하모니를 지휘했을 때에 대해 이야기하시곤 했어요. 
- 에드워드 사이드&다니엘 바렌보임, <<평행과 역설>> 중에서

 

지금의 팔레스타인이 왜 그렇게 되었는가 묻는다면, 이스라엘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유럽과 미국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히틀러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 작은 나라의 운명은 그 나라 사람들의 의지로는 한계가 있다. 한국은 그런 경험을 한 지 백 년도 채 지나지 않았으나, 과연 지금 정부는 그런 의지가 있는지 의문스럽다. 팔레스타인 필하모니를 아르투로 토스카니니가 지휘했다는 것만으로도 팔레스타인 필하모니의 수준을 알 수 있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박현옥의 책을 읽으면서 아직까지 한국 사회는 일제 식민지를 향해 가던 구한말의 무능력함이나 한국전쟁 속에서 일어났던 말도 안 되는 비극, 그리고 산업화의 미명 속에 이루어졌던 유무형의 폭력이나 억압을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민주화된 사회라는 이름으로 그러한 아픔을 그냥 덮어두려는 건 아닌가 의심스럽기도 했다. 책을 읽으며 이런 저런 생각이 들어 메모를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