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일인칭단수, 무라카미 하루키

지하련 2023. 9. 9. 17:20

 

 

 

일인칭단수

무라카미 하루키(지음), 홍은주(옮김), 문학동네

 

 

다 읽고 보니, 하루키의 소설을 읽는 건 무려 이십년만이다. <<해변의 카프카>>가 나온 지도 벌써 이십년이 지났다. 일 년에도 여러 차례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이름을 읽거나 보게 되지만, 정작 그의 소설을 읽진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일년에 읽는 소설은 채 열 권도 되지 않고 심지어 서재에는 읽으려고 사둔 소설만 수십권이 될 터니.

 

우연히 도서관 서가를 지나치다 이 소설 <<일인칭단수>>를 보게 되어 빌려 읽었다. 예상한 대로의 하루키 소설이었다. 늘 기대하는 모습 그대로 이 소설집에서도 하루키는 가볍고 경쾌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읽은 <<해변의 카프카>>는 너무 진지했다고 할까. 하루키가 어딘가 진지해지면, 그 순간 모든 그의 매력은 반감되고 깔끔하던 그의 작법은 도리어 어설퍼진다. 그 이후 나는 그의 소설을 읽지 않았다. 그리고 하루키만은 좀 진지해지지 않았으면 바랬는데, 이 소설집은 딱 알맞았다.

 

뭐랄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이상한 자신감이 생긴다. 그러나 마음 잡고 소설을 쓰기 시작하는 순간, 나는 수렁에 빠졌음을 직감하곤 바로 그만 두는데, 늘 거리두기에 실패하기 때문이다. 가령,

 

나는 이제 이 뒤를 이어 써갈 힘이 없다. 이런 기분 속에서 살아있는 것은 뭐라 말할 수 없는 고통이다. 누구 내가 잠든 사이 가만히 목을 졸라 죽여줄 사람은 없는가? ? 아쿠타카와 류노스케, <톱니바퀴> 중에서(102쪽)

 

<위드 더 비틀즈> 안에서 인용된 아쿠타가와의 글은 묘하게 죽음(자살)과 연결되어 있지만, 소설은 그냥 경쾌하다. 경쾌하다고 해서 유쾌하거나 즐거운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딱히 슬프거나 절망적인 어조도 아니다. 어차피 사람들은 이런저런 사연이 있고 그런 사연으로 인해 이른 나이에 이 세상을 자발적으로 떠날 수도 있으니까. <<일인칭단수>>는 그런 이야기들로 엮인 소설집이다.

 

그라운드에서 수비 연습을 하는 선수들의 아직 얼룩 한 점 없는 유니폼, 눈을 찌르는 순백색의 볼, 수비 연습용 배트가 한가운데로 볼을 쳐내는 행복한 소리, 맥주 판매원의 야무진 외침, 경기 직전 아무 것도 적혀 있지 않은 스코어보드 - 그 곳에는 이제부터 전개될 줄거리의 예감이 가득하고, 환성과 한숨과 노호가 소홀함 없이 준비되어 있다. (128쪽)

 

적절한 시니컬함이 하루키의 매력이다. 인생의 진리를 모른다기 보다는 ‘진리를 안다고 한 들 내 인생이나 일상은 변하지 않아’라는 식이다. 그런데 하루키가 그런 진리나 진실을 심각한 표정으로 문장을 구사하는 순간 안타깝게도 소설은 맥을 추지 못한다. 그러나 이는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소설에 자신의 취향을 본격적으로 드러낸 최초의 소설가들 중 한 명인 하루키는, 이 소설에서도 여지없이 위스키(칵테일), 버드(찰리 파커의 별명)나 보사노바 재즈, 야구 등을 이야기한다. 그가 한국에 처음 소개되었을 땐 참 힙~한 소설가였는데.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요즘 힙~한 소설가는 누구일까.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