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얼론 Alone, 에이미 션, 줌파 라히리 외 17명

지하련 2024. 1. 20. 08:03

 

 

 

얼론Alone

에이미 션, 줌파 라히리, 제스민 워드, 마야 샨바그 랭, 레나 던햄 저 외 17명(지음), 정윤희(옮김), 혜다 

 

 

책을 찾았지만, 나오지 않았다. 서가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텐데, 찾지 못한 건...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실은 집 근처 구립 도서관에서 빌려 읽던 중이었는데, 어딘가 두고 잃어버렸다. 서가와 바닥에 놓인 책들 사이로 빨려 들어갔다. 쌓인 책들 사이의 공간은 끝이 없는 미지의 세계다. 때는 업무가 밀려 드는 늦가을이었고 대출 기간을 넘겨 연체를 하던 중, 연체 안내 문자를 보고 부랴부랴 책을 찾았는데, 어디다 두었는지 나는 기억해내지 못했다. 가끔 있는 일이긴 하다. 가지고 있던 책을 다시 사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결국 찾지 못해, 새로 구입했다. 

 

도서관에선 주로 내가 사지 않을 것으로 보이나, 상당히 재미있어 보이는 책으로 빌려 읽는다. 외로움, 고독이라는 소재/주제가 끌리기도 했고 줌파 라히리도 눈에 보여 책을 빌렸다. 생각보다 흡입력이 있진 않았고 그냥 잔잔했다.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수필집이다. 읽으면서 몇 개의 문장을 메모하긴 했지만, 뭐, 대단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금방 읽을 수 있다. 빠르게 읽으면 세 시간이면 완독이 가능한 수준이랄까. 그러기엔 좀 아쉬운 책이기도 하다. 적어도 사흘이나 나흘에 걸쳐 읽으면 적당하다고 할까. 다양한 작가들이 등장해 자기들의 이야기를 펼쳐놓는 것도 재미있고 다들 글을 잘 쓰는 작가들이라 꼼꼼하게 읽게 만든다. 

 

목격하라, 내가 사는 미시시피주가 2013년이 되어서야 공식적으로 노예제를 폐지하는 수정 헌법 13조를 비준했다는 사실을. 목격하라, 미시시피주가 2020년까지도 주 깃발에서 남부연합기의 로고를 삭제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제스민 워드Jesmyn Ward, 72쪽)

 

위 글을 읽으면서, 좀 한심해보인다고 할가. 미국이라는 나라도 참 흥미로워서, 미국 정치인들은 자기 나라도 참 문제가 많은데,  다른 나라들까지 간섭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하지만 전후 한국에 대해 미국이 관심을 가진 탓에 이 정도까지 온 것 또한 사실이지만. 제스민 워드의 글에서 미국 흑인들이 마주하는 현실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임을 알게 된다. 

 

평소 나는 고독을 즐겼다. 내게 외로움은 환상과 현실이 뒤섞인 상태, 벌거벗은 마녀들이 모여드는 하지(夏至)의 불가사의한 힘이 내 안에서도 펼쳐지는, 호화로움 그 자체였다. (레나 던햄Lena Dunham, 90쪽)

 

외로움은 인생의 지평선 위에 보초처럼 서 있다. 우리 모두는 이 세상에서 홀로 왔다 홀로 떠난다. (메기 쉽스테드Maggie Shipstead, 110쪽)

 

내가 혼자 있는 걸 즐기긴 하지만, 그렇다고 외로움에 끔찍해지는 걸 원하진 않는다. 나에게 혼자 밥을 먹거나 혼자 전시를 보는 것 정도는 편한 일상이지만, 멀리 혼자 여행 떠난다거나 아는 사람이 없는 도시에 홀로 밤을 보낸다는 건 정말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 책은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기획, 집필되었다. 어느 작가는 그 당시 갑자기 세상을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혼자 있는 것에 대한 책이지만, 혼자 있는 것을 찬양하는 책도 아니다. 그냥 혼자 있다는 상태, 그런 조건, 그런 환경을 돌아보며 자신과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고 할까.

(그런데 왜 영어에서는 수평선과 지평선이 horizon일까. 이걸 어떻게 하나의 단어로 사용하지? 답답하지 않나 하고 생각했다. 그냥 강가 옆 지평선만 보이는 곳에서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고 그렇게 굳어진 horizon(지평선)이 바다의 수평선을 본 다음 '저기 horizon과 비슷한 것이 있다'라고 하여 그냥 'horizon'으로 사용하게 되지 않았을까 하고 그냥 생각하기로 했다. 외국어 공부는 이런 게 재미있다. 개인적으론 이런 재미를 너무 뒤늦게 알게 되어 슬픈 일이긴 하지만. 단어는 단어로 대응하지 않고 단어 꾸러미로 대응된다. 그래서 인공지능을 통한 번역/통역이 도리어 언어의 다채로움을 해치게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몇 백년이 지난 다음에는 전 세계 언어들이 비슷해져 있지 않을까.) 

 

여성으로서 혼자 살아간다는 것은 가족이나 사랑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에 대한 권리를 온전히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엄청난 의미가 있다. 우리 여성들은 종종 완벽하게 자기 자신만을 위해 내린 판단이 거부당하는 경험을 하기 때문엗 일단 그렇게 살 수 있는 길을 찾고 나면 포기하기가 어렵다. (헬레나 피츠제럴드Helena Fitzgerald, 130쪽)

 

하지만 여성으로서 혼자 살아간다는 건 좀 다른 의미일 것이다. 그래서 초반 내내 여성 작가들만 등장하길래 여성 작가들의 수필만 모은 책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가. 영국에서 행복에 대한 조사를 했는데, 1위는 이혼한 뒤 혼자 살아가는 여성이 가장 행복하고, 2위는 그냥 혼자 살아가는 여성, 3위는 결혼한 남성, 4위는 결혼한 여성, 5위는 혼자 살아가는 남성, 6위는 이혼한 뒤 혼자 살아가는 남성이었다고 한다. 내 기억이 정확한지 모르겠다. 1위와 5위 때문에 기억하고 있던 것이라...) 

 

나는 거실에 나와 하늘 높이 떠오른 뜨거운 사막의 햇살을 온 몸으로 받으며 기지개를 켰다. 그리곤 마침내 술을 끊겠다고 결심했다. 더 이상 그런 식으로는 혼자가 되지 않겠다는, 지구상에서 가장 슬픈 결심이었다. (클레어 데더러Claire Dederer, 156쪽)

 

요즘은 숙소와 식사,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주는 작가 프로그램도 잘 되어 있어서 한국 작가가 해외에 나가기도 하고 해외 작가가 한국에 오기도 한다. 그리고 술을 마시겠지. 술은 작가들의 반쪽이니까. 술을 끊겠다는 결심은 정말이지,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결심이긴 하다. 작가는 아니지만, 영어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하고 작가로 진출해서 작가 프로그램에 참가하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그 프로그램에 참가한 작가와 술마시기 위해서. 그리고 동시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저 세상으로 돌아가기 전에 자주 만나 술을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종종 글쓰기가 공허한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는 것도, 산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외로움이란 자신만의 사적인 언어로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 공허함은 공적인 언어나 감성적인 관계를 통해 채울 수 밖에 없다. (이윤 리Yiyun Li, 304쪽)

 

이 책이 나에게 선사한, 가장 좋은 것은 몇 명의 작가를 나에게 소개한 것이다. 마일 멜로이Maile Meloy, 진 곽Jean Kwok의 소설부터 찾아 읽기로 했다. 지금 읽고 있는 클래어 키건Claire Keegan의 <<Small Things Like These>>를 다 읽고 난 다음이겠지만(그런데, 영어는 왜 아침에 일어났을 때 잘 읽히는 걸까). 

 

오늘 오전에 도서관에 가서 새 책으로 반납할 예정이다. 새 책이라고 하긴 내가 읽긴 했지만. 나는 책을 읽을 때 상당히 깔끔하게 읽는 편이라 새 책이라고 무방할 정도인데, 이 책은 반납까지 해야 해서 구김없는 상태다. 연체가 상당해, 당분간 도서관에서 대출을 하긴 어려우니, 집에 있는 책들을 열심히 읽어야지.

 

이 표지도 괜찮은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