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김연수

지하련 2006. 7. 1.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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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김연수(지음), 문학동네, 2002


손에 잡으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 소설 읽기. 하지만 언제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 소설 읽기. 얼마 만인가. 국내 소설가가 쓴 소설을 읽은 게. 매일 아침, 사무실 앞에 누군가 읽어주길 기다리며, 던져져 있는 중앙일보. 가끔 그 신문 모퉁이에 소설가 김연수의 칼럼이 실리곤 한다. 70년대산 소설가의 칼럼. 그 곳에 칼럼을 싣는 이들 중 가장 가난하리라 예상되는 이의 칼럼. 2006년에 익숙하지 않는 풍경이다. 번역 소설이 인기를 얻고 있는 시절, 젊은 국내 소설가의 작품집은 늘 멀리 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성공이니, 재테크니, 웰빙이니 하는 것들 중에서 젊은 소설가의 작품집은 황당한 것에 가깝다. 내 인생만큼이나.

어깨를 돌려 그의 데뷔작이 실린 계간 <작가세계>를 찾아본다. 그의 데뷔작을 읽었을 때의 느낌이 선한데, 이미 그도 중견소설가가 된 셈인가. 그가 등단하고 중견소설가가 되는 사이, 나는 여러 군데의 직장을 옮겨 다녔고 모아놓은 돈을 다 사업으로 날려버렸으며 결혼하자던 여자들과 잘 되지 못하는 불운마저 겪었다. 여기에는 어떤 사연이 숨어있는 걸까.

소설들은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하지만 분명한 주제 의식이 숨어있기 보다는 ‘보여주기’에 주력하고 있었다. 영화적이 아닌 분명 소설적인 양식이었지만, 대체로 모호하였으며 불분명했고, 한편으로는 답답했다. 가끔 인물의 특징이 터무니없이 과장되기도 했으며 스토리는 흡인력을 가질 만큼 뚜렷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 인생도, 내 얼굴도, 내 손바닥도, 내 발가락도, 내 영혼도 그렇지 않은가. 틀린 점이 있다면 이 작품집으로 소설가 김연수는 동인문학상을 받았고 나는 끝나지 않을 듯이 보이는 마이너스 통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