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귀족의 은밀한 사생활, 이지은

지하련 2006. 9. 18. 10:44


귀족의 은밀한 사생활 - 10점
이지은 지음/지안


귀족의 은밀한 사생활
, 이지은(지음), 지안, 2006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요즘 책을 읽고 간단하게 서평 쓰는 게 매우 어렵다. 실은 책 읽기마저 예전만큼 되지 못한다. 이 책, ‘귀족의 은밀한 사생활’도 서점에서 산 지 몇 달이 되어가는데, 이제서야 겨우겨우 완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억지로 서평을 적어보지만, 만족스럽지 못하다. 총평하자면, 이 책은 근대 유럽 사회 속에서의 귀족의 일상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던 책이다. 또한 ‘궁정사회’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 이후 로베르트 엘리아스의 ‘궁정사회’나 좀바르트의 ‘사랑와 사치의 역사’ 같은 책을 읽어볼 생각이다.


고단한 왕의 일상

우리들은 가끔 조선 시대의 임금이나 프랑스의 국왕으로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하는 공상에 잠기곤 한다. 하지만 이는 공상으로 그치는 편이 낫겠다. 조선의 임금은 오전 5시에 일어나 밤 11시까지 정해진 일과가 있었으며 임금은 이를 어기지 못했다. 프랑스의 국왕은 어땠을까?

‘16세기 유럽은 정치적인 전란과 음모가 점철된 곳이었다. 몰래 책장에 독을 발라 왕을 죽인 뒤 권력을 차지하려는 자들이 넘쳐났으며, 왕위를 위해서라면 눈을 깜짝하지 않고 형제를 죽이는 것조차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때문에 왕들은 지방에서 일어나는 잦은 민란을 평정하기 위해서, 또는 반란군에 쫓겨서 자주 궁을 떠나 여행길에 올라야 했다.’ (27쪽)

중앙집권의 역사가 지속된 동양과 달리 서양에서의 중앙집권의 역사는 천 년 이상 단절되어있었다.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한 왕의 고분분투는 태양왕 루이14세에 이르러 그 결정에 이르지만, 이후 쇠락해가다가 프랑스대혁명으로 막을 내린다.

루이 14세의 생활도 조선의 임금처럼 고단한 업무의 연속이었다. 식사마저 공적인 업무에 할애되었다. ‘저녁식사는 작게는 왕족들이 모두 모이는 시간이었고, 크게는 외교적인 의전이기도 했다. 따라서 왕은 저녁 식사만큼은 식당 역할을 하던 넓은 홀에서 많은 사람들과 먹어야 했다. 같이 식사하는 왕족들을 제외하고도 시중 드는 인원이 대략 30명 정도가 됐다. 게다가 이를 구경하는 사람들이 보통 몇 백 명이나 되어 식당은 미어터질 듯했다. 사람들은 왕의 저녁 식사를 구경하는 것을 마치 왕의 테이블에 초대받은 것과 같은 영광으로 여겼다.’(89쪽)

베르사이유 궁전을 중심으로 하여 왕, 왕족, 귀족들이 만들어 내던 궁정 사회는 17-8세기 최첨단 문화의 집결지였다. 모든 문화 트렌드는 여기에서 시작하여 전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권력의 정점에 있던 왕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지방의 귀족에겐 대단한 영광이었으므로 지방 영지를 떠나 베르사이유 궁 근처로 이주해와, 베르사이유는 번잡스러운 도시로 형성되고 있었다. 권력과 자본이 한 곳으로 모이자, 예술가들과 장인들이 모여들었고 상인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아름다움을 향한 여성의 일상

서양에서 시작된 ‘페미니즘’이라는 단어 때문에, 조선은 남존여비의 나라로 서양은 그렇지 않은 나라로 여겨지지만, 어쩌면 19세기 이전의 서양은 조선보다 남존여비가 더 심했을 지도 모른다. 16세기 학문과 과학의 발달은 남성의 몫이었다. 지적으로 무장해가던 남성과 달리 여성은 아름다움으로 무장해갔다. 하지만 이 아름다움이란, 아래와 같았다.


세 가지 햐안 것, 피부, 피아, 손
세 가지 검은 것, 눈, 속눈썹, 눈썹
세 가지 빨간 것, 입술, 뺨, 손톱
세 가지 긴 것, 몸통, 머리카락, 손가락
세 가지 짧은 것, 치아, 귀, 발
세 가지 가는 것, 입, 허리, 발볼
세 가지 굵은 것, 팔뚝, 허벅지, 다리
세 가지 작은 것, 젖꼭지, 코, 머리
- 알랭 드코, ‘미의 기준’ 중에서

그리고 이러한 아름다움을 가지기 위한 비법으로 ‘백분을 탄 장미수에 계란 흰자 거품을 넣고 말린 오징어 가루와 장뇌 가루, 돼지 기름을 넣은 다음 이것을 얼굴에 바른다. 하얗고 건조한 피부를 원할 때는 수은과 재, 모래를 넣어 굳힌 고약을 얼굴에 문질러야 된다’(42쪽)고 하니, 이 시기 여성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은 현대 여성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 하지 않았다.

부셰의 유명한 작품은 ‘비너스의 투왈렛’은 18세기 여성의 일상을 잘 드러내어주는 작품이다. ‘투왈렛toilette이라는 말은 현대 프랑스어에서는 화장실을 가리키지만, 18세기에는 몸을 치장하는 모든 행동을 총칭하는 단어였다. 화장을 하고, 옷을 입는 것뿐 아니라 목욕을 하고, 이를 닦는 것까지 모두 투왈렛이라고 했다.’(212쪽) 특히 투왈렛은 단지 여성들의 화장 시간만이 아니라 사교 시간이기도 했다. 투왈렛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는데, 이 투왈렛은 보통 몇 시간을 넘겼다. 그리고 그 시간에서도 가장 중요한 시간은 애교점을 찍는 순간이었다. 원래는 얼굴의 뾰루지 같이 도드라져서 짙은 분칠로도 도저히 가릴 수 없는 골칫덩이를 가리려고 검은 비단을 동그랗게 오려 붙인 것에서 시작되었지만, 이것이 유행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여인이 애교점을 찍는 순간, 곁에서 지켜보는 남자는 가슴을 졸인다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애교점은 여성이 남성을 향해 은근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수단이 됐기 때문이다. 애교점을 눈 옆에 붙이면 정열적인 사랑을, 볼 가운데 붙이면 우아함을, 보조개에 붙이면 주저하는 마음을, 코에 붙이면 남자에게 별 관심이 없음을 나타낸다. 곁에서 오랫동안 여자의 변신을 지켜보던 남자들은 애교점을 붙이는 순간 그녀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225쪽)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마담 퐁파두르는 단연 돋보이는 여성이다. 루이 15세의 애첩이자 친구였으며 왕의 뒤에서 프랑스를 쥐락펴락했던 퐁파두르 후작 부인은 미모에, 지성까지 소유한 인물이었다. 그녀는 읽기와 쓰기에 능했으며 연극, 성악, 하프시코드 연주까지 배웠다. 또한 몽테스키외와 볼테르와도 친분이 있었으며 그녀가 루이 15세에게 연애편지를 쓸 때 이를 코치해 준 이가 볼테르였다고 한다.

라 투르가 그린 ‘마담 퐁파두르’에는 그녀가 막 악보를 넘기고 있으며 책상 위에 꽂힌 책들은 ‘법의 정신’, ‘자연의 역사’, 디드로의 ‘백과전서’ 등이다. 그녀는 18세기 계몽주의의 영향 속에 있었으며 그녀의 지성 또한 루이 15세를 위해 쓰여졌다. 하지만 그녀의 죽음은 쉽게 잊혀졌고 여론의 조롱과 살해 위협 속에서 43세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프랑스대혁명, 또는 반달리즘

프랑스대혁명을 정치적 관점에서 보지 않고 문화(사)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그 당시 최첨단을 자랑하던 많은 문화재들과 예술작품들을 잃어버린 순간으로 기억될 수 있다. 왕과 왕족들의 저택들이 약탈당했으며 이들의 소유물 자체를 끔찍하게 싫어했던 혁명정부는 의도적으로 이를 파괴하기도 하였다. 책을 찢어 경매 내놓기도 하였으며 장신구를 분리하였다. 또한 귀족들의 사치스러운 문화와는 거리가 있었던 부르주아지들의 손에 넘어간 보석과 장신구들은 대부분은 여기저기 팔리거나 녹아졌고 아무런 쓸모 없는 금석덩어리로 변해버렸다.

어쩌면 허위에 가득 찬 싸구려 취향을 뜻하는 ‘키치’라는 단어는 프랑스대혁명의 시기에 시작된 것은 아닐까? 프랑스대혁명을 끝으로 화려했던 귀족들의 일상은 조각났으며 이후의 세계는 부르주아지의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