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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 2004년에 작성된 글입니다. 지금 읽어보니, 내용이 다소 빈약하네요.


로마네스크 예술 양식 시기의 도시

Romanesque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고대 로마의 세계에 대한 염원을 밑바탕에 깔고 진행된 것이 로마네스크 예술이다. 카롤링조 르네상스의 기운이 지속되어 꽃을 피운 양식인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양식 상의 변화는 중세 장원 경제가 원숙해졌으며 중세 도시들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한 것과도 무관치 않다. 생 세르냉 교회는 그 이전 시기에 서로마 지역에 건설된 어떤 중세 교회보다 크고 웅장하다. 그만큼 많은 건설자재에 대한 교역이 가능해졌으며 많은 인부들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는 점을 뜻한다.


이러한 물질적인 기반의 확충, 또는 세속적 삶의 윤택함은 중세 도시들의 발달을 가져온다. 이제 세속세계에 그 뿌리를 내린 세력이 등장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고딕 예술 양식의 배경


양식 상 로마네스크와 고딕은 그 유사함으로 인해 같은 기반에서 진행된 것이라고 설명하고 그렇게 이해하지만 이는 그릇된 이해이다. 즉 우리는 로마네스크 예술을 현대적(modern) 양식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고딕 예술은 최초의 현대적 양식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현대 예술 속에서도 고딕 예술적인 분위기를 발견할 수 있다. 문제는 이를 이해하기 위한 다른 이야기를 해야 된다는 점에 있다.


확실히 플라톤의 철학은 종교적인 분위기가 풍긴다. 인간은 이데아 세계에서 추방된 존재이며 이데아 세계를 염원하지만 닿을 수 없다는 것만큼 기독교적인 테마가 어디에 있었을까. 아우구스티누스의 교부철학은 중세 예술 전반을 물들이는 정신적 기반임에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12세기에 들어서면 달라지기 시작한다. 플라톤의 철학이 그 호소력을 잃어버리기 시작하며 아리스토텔레스가 호소력 있게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바탕으로 스콜라철학을, 그의 <<신학대전>>을 완성하지만, 상대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반종교적이며 심지어 세속적이고 이교도적이었다. 그리고 이때 유명론이 종교적이며 지적인 세계를 흔든다. 즉 보편적인 개념은 실상은 텅 빈 것이고 개별만이 있을 뿐이라는 생각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배격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제 경험적 세계가 중요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는 고딕 예술 양식을 설명하기 위해 생 드니 성당이나 사르트르 성당, 또는 밀라노의 두오모 성당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아벨라르두스라는 종교적 삶을 실천하려는 수도사이면서 동시에 엘로이즈를 사랑하는, 그래서 밤에 혼자 앉아 그녀를 향해 연애편지를 쓰는 유명론 학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즉 종교적 삶과 세속적 삶이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러한 갈등은 스콜라 철학에서 나타나는 이중적 진리관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하나는 신적인 진리관이며 하나는 세속적이며 경험적인 진리관이다. 하나는 계시된 것이며 하나는 하나하나 경험을 통해 터득해나가는 것이다. 하나는 무한자의 세계이며 하나는 유한자의 세계이다. 그리고 고딕 예술 양식은 이러한 두 개의 진리 위에서 하나의 양식으로 통합하려는 열망 속에서 꽃피는 예술 양식인 셈이다.


고딕 예술 양식의 성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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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ilique Saint-Denis(생 드니 성당)
West facade. Added by Abbot Suger. About 1136-40.
(Photo by Yasuhiko Nishiga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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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terior: North view. (Photo by Taji Takahiro)


예술 양식들 중에서 분명하게 그 시작 년도를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양식이 고딕 예술 양식인데, 최초의 고딕 성당이 바로 생 드니 성당이었다. 이후 샤르트르 성당에서 화려한 고딕 양식의 전형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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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
샤르트르 성당


늑골궁륭과 공중 부벽은 고딕 성당의 수직성을 가능케 한 건축기술이었다. 그러나 건축기술이 있었기 때문에 고딕 성당의 첨탑이 이루진 것이 아니라 높이 세우려는 고딕 시대 사람들의 열망, 즉 예술 의욕(Kunstwollen)이 그 기술을 선택한 것이다.


로마네스크 양식에서는 하나의 세계관이 지배하고 있었다면 고딕 양식에서는 두 개의 세계관이 서로 만나고 있다. 하지만 이 만남은 조화로운 만남이 아니라 어딘가 이상하고 분열적이며 서로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이러한 갈등 때문이었을까. 고딕 성당의 부조는 천천히 밖으로 튀어나와 건물에 분리된 듯하고 조각처럼 보인다. 즉 경험적 세계를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성당을 구성하고 있는 하나하나의 것들에 기울이는 관심이 확연히 높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관심의 증대는 예술 양식에 있어서 자연주의와 개인주의의 심화와 그 궤를 같이 한다.


그러나 고딕 성당은 어딘가 경련적이며 표현주의적이다. 로마네스크 양식과 비교해 확실하게 세련되어졌고 자연스러워졌지만, 어딘가 이상하다. 두오모 성당은 최근까지 건설이 진행된 성당이다. 아니 계속 건설을 진행시킬 수 있는 성당이다. 실제 대부분의 고딕 성당은 계속 확장시킬 수 있는 양식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즉 하나하나 모든 것이 중요해지고 가치 있게 변하게 되었다.


회화 양식에서도 풍경이 등장하게 된다. 경험적 세계의 중요성은 이런 식으로 천천히 예술 양식 속에 반영되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곧장 15세기의 얀 반 아이크의 치밀한 관찰주의로 연결된다. 즉 하나하나 모든 것들이 중요하기 때문에 하나하나 세밀하게 표현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고딕과 르네상스를 급격한 단절로 이해하기 쉬우나, 실제로는 고딕과 르네상스는 하나의 흐름 속에 놓이는 예술 양식인 셈이다.



분열적 세계의 도래


아벨라르두스가 종교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세속의 사랑을 소중하게 여겼듯이 이제 신은 멀리 있게 되고 세속의 세계가, 경험적 세계가 사람들 앞에 놓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경험적 세계관의 등장은 도리어 사람들은 혼란에 빠뜨리고 삶에 대한 공포를 느끼게 만들었던 건 아니었을까.


가령 어제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신의 뜻이었는데, 오늘 문득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 중에서는 신의 뜻이 아닌 것들도 있다고 깨닫게 될 때, 그러나 그 뜻이 무슨 의미인지, 어떤 논리를 기반하고 있는지 알지 못할 때, 어제 세상은 신의 이름으로 모든 것이 해명되었지만 오늘 신의 이름으로도 해명되지 않는 그 어떤 것이 나타나게 될 때,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하루 아침에 신이 사라지는 것을 목격하게 될 때, 거의 천 년 가까이 바로 옆에 있었던 어떤 세계가 사라지려고 할 때, 도리어 그 세계에 대한 염원을 더욱 강화하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단테의 <신곡>은 확실히 고딕 예술 양식이다.


멀어져 가는 신의 세계를 애타게 부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경험적 세계를 신적 질서 속으로 포섭하기 위한 열망은 세상에 대한 신비주의적 태도로 나타난다. 즉 모든 것 하나하나에 신의 흔적이 남아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철학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에 기반해 있는 것이지만, 사랑에 빠진 남녀가 사랑의 흔적들 - 편지, 사진, 극장티켓 등 - 을 모아 그들의 사랑을 기록하여 사랑을 증명해내듯이 고딕 예술 양식 또한 하나하나 장식에 집착하면서 신을 향한 그들의 신앙을 증명해내는 듯하다. 우리는 이 때 신이 사라지는 시대, 어쩌면 그들은 신이 없음을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신을 부르짖을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고딕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적이며 경련적인 태도는 현대에까지 지속적으로 반복되어 나타난다.


이렇게 신이 사라지자, 경험적 세계의 중요성이 부각되자, 세계는 급격하게 세속화된다. 그리고 이러한 세속화는 바로 르네상스의 기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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