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La Vie

지하련 2006. 11. 6. 21:43

1.
존재의 여백을 드러낸 와인병 바닥의 침묵. 아무도 깃들지 못하는 빌라 4층 거실에 판을 펴고 달콤한 크래커 한 조각, 와인 세트와 함께 구한 유리 와인잔, 그리고 생테밀리옹 출신의 레드-와인. 생테밀리옹에서 나와 한국까지 건너온, 그리고 30중반의 총각에게까지 흘러들어온 사연 속에서 나는 술 취한 모나드가 되어간다. 이 와인, 처음 열었을 때의 숙성되지 못한 거친 향은 사라지고 개봉하고 며칠 지나니 놀라울 정도의 부드러움으로 사람을 매혹시켰다. 대기만성이라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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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오래 전, 혼자 아트선재센터에 가서 영화 '바스키아'를 보았다. 그 이후로 아트선재센터에 자주 갔다. 전시를 보러 간 횟수보다 사업 때문에 자주 갔다. 운이 좋았다면 뭔가 하고 있었을 텐데, 운도 없었고 인연도 없었다.

바스키아를 보며, 이미 죽은, 나와는 아무런 인연없는 브룩크린 태생의 흑인 예술가라기 보다는 오래 전부터 알던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익숙한 세계였고 그만큼 나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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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사간동에서 삼청동으로 올라가는 길 곳곳에 어지러이 노란 은행잎들이 흩어져있었다. 곱게 차려 입은 이들이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나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폰카메라로 사진 한 장을 찍었다. 하늘은 맑고 높고 해는 붉게 빛났으나, 나는 춥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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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나처럼, 사진 찍기를 싫어하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아예 사진집이라는 것이 없다. 대학을 들어나고 난 뒤, 내가 나온 사진은 채 스무장도 되지 않을 듯 싶다. 최근 삼청동에서 누군가가 나를 찍어주었다. 이 사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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