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랙업 캐피털리즘 - 시장급진주의자가 꿈꾸는 민주주의 없는 세계
퀸 슬로보디언(지음), 김승우(옮김), 아르테
2024년 읽은 최고의 책이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관계를 흥미롭게 탐구하며 앞으로의 다소 어두운 전망을 쏟아낸다.
우리가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이야기할 때, 나는 민주주의 자체가 가지고 있는 허약함 같은 것이라 여겼다. 가령 대중의 지혜가 아닌 대중의 무능력함이 표현될 때라든가(대표적으로 지난 대선 때 2번을 찍어 한국을 퇴보시켰던),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계엄을 선포해 나라 전체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힌 것이나 국민의 힘이라는 정당명을 내란의 힘이나 국민의 짐으로 변경해도 모자랄 지경인, 어리석한 행동을 아직도 보여주는 정당을 보면서 민주주의란 유지하기 어려운 정치 시스템이라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민주주의가 가진 허약함이 아니라 자본가들로부터 버림 받고 자유지상적 자본주의로 극단화될 미래를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것이 옳든 그르든 적어도 그렇게 여기는 자본가들이 늘고 그런 지역들이 생겨난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나는 더 이상 자유와 민주주의가 양립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유지상주의자들libertarians에게 남은 중요한 과제는 모든 형태의 국가로부터 벗어날 탈출구를 찾는 것이다."
"더 많은 자유를 누리고 싶다면 국가 수를 늘려야 한다." - 피터 틸(17쪽)
"동유럽 공산주의 붕괴에 비춰볼 때, 누군가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관계는 명백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고, 자유시장에 관한 논쟁에서 지적 최전선에 있었던 우리 중 일부는 이제 시장과 민주주의의 관계를 걱정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에 따르면, 서구 사회에서 성장한 민주주의는 시장의 성장과 유지에 해로울 수도 있다. " - 레이먼드 플랜트Raymond Plant (정치철학자) (26쪽-27쪽)
피터 틸의 <<제로 투 원Zero to One>>을 읽고 그가 바람직한 기업가나 투자자라고 생각하지 말자. 그는 확실히 자유지상주의자이며, 반-민주주의자에 가깝다. 그는 현재의 민주주의 국가 시스템에 부정적이며, 기업 친화적인, 자본 중심적인 소규모 국가들나 지역이 늘어나야 된다고 믿는다. 가령 싱가포르나 두바이같은 나라, 혹은 리히텐슈타인과 같은 조세회피지역.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것엔 관심 없겠지만, 너무 사소하면서 복잡한 인과관계로 인해 선후를 파악하기 어려운 어떤 결정으로 인해 먼 미래에 파국을 맞이하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레이먼드 플랜트의 의견대로 민주주의는 시장의 성장과 유지와 별 관련없거나 부정적일 수 있다. 아마 이것은 서유럽적 상황에 해당될 것이다. 높은 세금과 기업 활동에 대한 다양한 규제는 기업가들에게는 확실히 부담일 것이다. 그렇다고 기후 위기에 대응하지 않을 텐가.
하지만 한국의 경우, 민주주의 시스템이 위기에 봉착하자, 환율도 오르고 주가는 빠졌다. 한국이 가진 고유의 지정학적 리스크는 정치적 리스크까지 더해져, 일이년 안에 회복되기 어려운 상처를 입었다. 이것을 회복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해야 할 지 뻔히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보수 우파라고 하는 이들은 그런 것 따윈 관심없어 보인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일부는 서구 선진국의 위치까지 갔지만, 아직 일부는 70년대 수준에 머물러있음을 드러냈다. 시장의 성장과 유지에 한국의 경우는 특수하게도 아직까지 민주주의 시스템이 도움을 주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관계는 국가별로 다른 영향을 받는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민주주의 시스템을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국가가 얼마나 될까 생각했다. 아마 대부분 국가들이 서구 선진국, 가령 OECD 국가들에 해당되지 않을까. 어쩌면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국가는 극히 소수일 지도 모른다. 그리고 한국은 어느 순간 그렇게 민주주의 시스템이 작동하는 국가들의 한 곳이 되었음을 이번 사태를 보고도 알 수 있었다.
민주주의 시스템 안에서 기업들은 성장해왔고 자본은 축적되었다. 그러나 이 정치체제가 어느 정도 안정화되자, 기업과 자본에 대한 규제와 감시가 이어졌다. 이 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구역(zone)이란 국경을 넘나드는 투자 계급의 요구에 따라 기존 국가를 분절하고 구획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이 책에서 "크랙업 캐피탈리즘"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종류의 탈영토화된 지구적 자본주의의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전위공간이었다. (11쪽)
구역이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는 국가에서 도려된, 전반적인 규제로부터 자유로운 장소를 의미한다. 국경 내 일반적인 조세권한이 종종 유예되는 경계 안에서 투자자들은 사실상 자기들만의 규칙을 만들 수 있다. (18쪽)
'숨은 국부hidden wealth of nation'라고 부르는, 초국가 기업들이 이윤을 은닉하는 조세회피처 구역이 존재. (19쪽)
나는 어떻게 자본주의가 민족국가의 영토에 구멍을 뚫어 상이한 법률이 적용되고 종종 민주적 감독을 받지 않는 예외적인 구역을 만들어 내는지 설명하고자 구멍perforation이라는 은유적 표현을 사용한다. (20쪽)
이러한 구역이 하나의 국가일 수도 있고 하나의 지역일 수도 있다. 두바이나 싱가포르같은 도시 국가의 형태를 띨 수도 있고 인천의 송도국제도시 모양이 될 수도 있다. 규제 자유화 지역인 셈이다. 세금 혜택도 있으며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한 지역을 일부러 설정하여 자본, 사람, 재화의 이동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피터 틸이 국가가 많을 수록 좋다는 의견도 여기에 해당된다.
구역은 자본주의적 권리 행사에 필요한 여러 기능을 수행한다. 구역이라는 망령과 그에 따른 자본도피라는 위협은 서유럽과 북미에 남아있는 사회적 국가 모델들을 협벽하는 데 유용한 역할을 한다. 또한 구역은 현대의 정치적 우파가 공유하는 상상의 중심이 되는 두 번째 신념, 즉 민주주의 없이는 자본주의가 존재할 수 있다는 신념을 보여준다. (26쪽)
그런데 최근 '도시'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는 것이 흥미롭지 않은가. 모든 사람들이 시골을 버리고 도시로 모여든다. 학자들은 앞다투어 도시의 역사, 도시의 의미와 성과를 연구하며 현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거대도시들이 가지는 가치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것이 우연한 일치라고 보지 않는다.
오랫동안 도시는 주변 영토의 바다에 있는 법적인 섬이었다. 중세에는 도신의 안으로 들어오면 상이한 법을 적용받았다. 농노들이 한동안 주인을 떠나 도시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기에 어느 독일인은 "도시의 공기는 자유롭다"라는 말을 남겼다. 중세 및 근세 유럽은 수만 개가 넘는 상이한 법률 구역으로 가득 차 있었다. 18세기와 19세기 신성로마제국만 보더라도 1000개가 넘는 독립체가 존재했다.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은 근세 유럽 도시를 실제 및 "법률적 성곽"으로 둘러싸인 "자율적 세계"로 묘사했다. (67쪽)
문명의 몰락은 기후 위기 같은 걸로도 올 수 있지만, 우리들의 자발적 선택들이 모여서 생길 수도 있다. 가령 무분별하게 AI를 도입한다거나 도시에서 자신의 영혼을 팔아가며 다들 그렇게 하니 따라서 그냥 살아남기 위해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비트겐슈타인이 '가치란 없다'고 했을 때, 이미 그것은 시작된 것이다. 우리는 한 치 앞으로 알아볼 수 없다. 현대의 이론 물리학이 제시하는 알 수 없고 일반인은 이해하기 어려운 방향들이 실제 현실 속의 우리들에게 방향을 제시하기에는 너무 멀리 있다. 이 점에서 움베르토 에코가 <<포스트모던인가 새로운 중세인가>>라는 질문은 아직도 유효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하듯 외부인 출입 제한 거주지gated community에 살며 작은 민간 정부를 일으켜 스스로를 분리할 수 있다. (22쪽)
우리는 이미 구역화하고 있다. 한국은 그 특유의 아파트단지가 이런 특성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은 자본주의 본질을 집약하여 구체화되었다. 크랙업 캐피털리즘의 작은 측면이 이미 구현된 것이다.
크랙업 캐피탈리즘의 옹호자들은 좀더 평등한 오늘과 미래를 추구하는 대중의 손아귀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기민하고 가차 없이 이동할 수 있는 자본의 요새라는 새로운 유토피아를 상상했다. (29쪽)
"감독이 불가능하고 오직 상대방에게만 보이는 블랙박스를 통해 궁극적으로 모든 공공 정치를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 거래의 기술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체제", "그곳에는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도, 거래자들의 결정에 항소할 권한도 없으며, 무엇이든 '권리right'가 없고, 단지 권력power의 행사만이 존재" - 민주주의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 있는 급진적 형태의 자본주의 (29쪽)
그리고 그 공간을 보다 자본주의화시킨다면,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이지 않을까. 그 곳에 들어가기 위해선 신분을 증명해야 하며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일종의 치외법권 지역처럼 기능한다. 그 곳만의 규칙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이 지속되어 성장하면 그 곳은 작은 국가가 될 것이다.
더욱 더 급진적인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지적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칭송받으면서 동시에 독재자들에게 조언을 해 준 부업으로 비난받던, 아마도 지난 세기 가장 악명 높은 경제학자일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34쪽)의 손자인 패트리 프리드먼 Patri Friedman은 대놓고 "민주주의는 해결책이 아니"라 단지 "오늘날 산업의 기준일 뿐"(34쪽)라고 말하다. "경제적 자유는 시민적, 정치적 자유의 필요조건이지만 정치적 자유는, 비록 바람직할 지라도 경제적, 시민적 자유의 필요조건이라 할 수 없다."(34쪽)
'민주주의 없는 자본주의'가 가능하며, 그래야 된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런 세상이 온다면?
(한국의 보수 우파들, 혹은 그들을 지지하는 이들을 보면서 자발적으로 노비가 되겠다고 발악하는 이들로 보인다. 이미 토마 피게티가 증명했듯 돈이 돈을 버는 시대로 들어섰다. 경제적 불평등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되었고 이로 인해 우리가 마주하는 문제는 너무 심각하다. 하지만 밀턴 프리드먼이 그랬고 패트리 프리드먼이 주장하듯 민주주의 없는 자본주의를 불러들이는 순간, 새로운 형태의 신분 사회가 될 것이며 우리 대부분은 노예, 혹은 노비가 될 것이다. 지금 당장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고? 하지만 이미 이야기하지 않았는가. 선거에 나가면 다시 찍어준다고 말이다. 이것을 어느 정신 나간 정치인의 돌발적인 발언이라고 여기지 마라.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정말 많다.)
2012년,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모든 고급 거주용 부동산 중 런던의 85퍼센트 뉴욕의 50퍼센트를 해외 구매자들이 사들였다." (83쪽)
이러한 상황에 불만을 갖게 된 뉴욕 시의원은 "억만장자들이 하늘을 구매하고 나머지 도심을 그리자로 뒤덮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89쪽)
95층 펜트하우스에서 도시는 배경으로 줄어들 뿐이다.(92쪽) 그래서 배경 속에 사람들이 살아가는지도 알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미 계층화되었으며 우리는 경제적 수준에 맞추어 사람들이 가려가며 만나고 교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은 불과 채 50년도 되지 않은 일이다.
사람들은 어떤 정책이 나왔을 때, 그것이 가져다 주는 혜택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나 이 정책의 결론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대처의 '구매권' 프로그램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대처의 가장 위대한 정책적 성과 중 하나는 '구매권Right to Buy' 프로그램으로, 대처 정부에서는 공동 주택을 큰 할인가에 세입자에게 판매했다. 대처가 총리직에 취임했을 때, 영국 내 거주자 중 3분의 1은 공공주택에 거주하고 있었다. 21세기에서 몇 년 지난 후, 약 270만 가구에 달하는 공공 주택 중 절반 정도가 팔려나갔다. 공공 재산을 사유재산으로 엄청나게 변환한 목적은 자가 주택 소유를 확대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가 주택 보유율은 2003년 정점을 찍은 후 실제로 하락하기 시작했다. 국가가 보유하던 것에서 시장으로 공급의 중심을 변경하자 주택은 투기 자산으로 변해 버렸다. 소주주 민주주의의 우화는 민간이 공적 재산을 포획하는 현실로 드러났다. (93쪽)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마거릿 대처는 영국은 유럽을 벗어나 "자유무역과 비개입주의 '싱가포르'와 같은 장소"가 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25년 후, 대처의 신봉자들은 그 말을 따랐고, 브렉시트 국민투표에 성공하여 영국의 유럽 연합 탈퇴를 이끌었다. 그 중 누군가는 "싱가포르를 우리의 모델로 삼자"라고 밝혔다. 동시에 중국 또한 "싱가포르에서 배울 것"을 고민하고 있었다. (97쪽)
하지만 아직도 마거릿 대처를 철의 여인이라고 칭송하며 그녀가 주도했던 정책들이 다 성공했다고 믿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그녀는 영국에 본격적인 경제적 불평등을 불러들인 장본인이며, 영국은 이제 공립 학교 선생님들마저 시위를 하는 나라가 되었다. 공립 학교 선생님의 급여로 생계 유지가 어려운 나라가 되었다. 영국을 보며 한국의 정치, 경제 리더들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지만,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을 것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영국과 한국은 다르다고 여길 것이다.
1974년 리콴유는 "분배 이전에 성장이 먼저다"라고 말했다. 몇 년 후 덩샤오핑은 "우선 일부만 부자가 되게 만들자"라고 표현했다. 두 나라 모두 장기 성장을 대가로 중기 불평등을 받아들였다. (109쪽)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 따위는 없다. 대기업은 성장하고 대기업 재직자의 급여는 올라가지만, 중소기업들은 아직도 어렵고 중소기업 재직자의 급여는 이십년 전이나 십년 전이나 변함이 없다. 나는 가끔 자본으로 수익을 내는 금융권 종사자들의 급여들을 반으로 줄이고 이를 중소기업들에게 분배해야 된다고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기도 하는데, 자본소득 불평등은 이미 사회문제화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크랙업 캐피털리즘 신전의 영웅으로서 싱가포르는 충분한 규율, 결단력, 세계화의 힘에 종속된다면 어떤 것이든 가능하다는 교훈을 가르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동시에 자본주의의 처치곤란한 모순의 진열장이기도 하다. 한계를 거부하는 끊임없는 성장, 더 많은 배제에 기초한 사회보장, 경제성과가 더욱 더 불균등하게 나눠지는 탓에 대통치자들의 동의를 얻기가 어려운 문제 등등, 싱가포르의 불평등 수준은 부유한 지역 중에서 홍콩에만 뒤질 뿐이다. 싱가포르에서 불티나게 팔린 책 <<이것이 불평등의 모습이다. This is What Inequality Looks Likes>>의 제목은 이 도시국가에 대한 퉁명스러운 평가를 보여주었다. (120쪽)
하지만 불평등에 대한 논의는 찻잔 속의 태풍일 뿐이다.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이 관심 가지는 주제다. 비만 문제나 청소년들의 이탈이나 우울증 문제를 살펴보았더니,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적 문제이며 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해 생긴 문제임은 이미 십 수년 전에 증명되었지만, 내 주위에서 이를 이야기하는 사람을 만난 적 없다.
1990년대에 시장급진주의자들은 스티븐슨의 디스토피아처럼 픽셀화된 지리학을 추구했다. (148쪽)
분리독립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머리 로스바드Murray Rothsbard였다. 학자로서 그는 무정부 자본주의라고 알려진 급진적 자유지상주의를 정립했다. (154쪽)
무정부 자본주의자인 그는 정부가 부과하는 모든 형태의 조세, 벌금 및 과태료는 절도라고 믿었다. (183쪽)
브루스 벤스Bruce Benson라는 무정부 자본주의 경제학자는 <<법이라는 산업 - 국가 없는 정의 The Enterprise of the Law : Justice without the state>>(1982)을 쓰기도 했다. 민주주의는 필요없고 국가라는 체계도 필요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사례가 나오기도 했다.
우선 1990년대 소말리아에서는 "국가 없는 상업"의 조짐이 보였다. 정부 붕괴 후 국내 총생산이 상승했고 수출 및 투자가 늘었다. 심지어 기대 수명도 향상되었다. 자유지상주의 학자들에게 소말리아는 국가 부재의 적절한 상태를 가늠할 수 있는 "독특한 시험지"가 되었다. (238쪽)
두바이는 민주주의 없는 자본주의 연구사례였다. 2000년대초, 이 곳은 보통 선거, 표현의 자유 및 비시민의 권리보호가 없었고, 더불어 강제 노동과 경찰력의 자의적 사용 때문에 전 세계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덜 자유로운 장소 중 하나였다. (246쪽)
이 책이 중요한 이유는 자유지상주의자들, 무정부 자본주의자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를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전근대적 봉건제도의 잔재라는 지위로 활용한 리히텐슈타인은 믿을 수 있는 비밀 문지기로 신뢰를 얻었다. (200쪽)
중부유럽의 작은 부국 리히텐슈타인이 어떻게 자본주의에 기생하는가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스위스은행가들은 입술을 꾹 다물고 있지만, 리히텐슈타인 은행가들은 혀가 없다." (202쪽)
한스 아담의 리히텐슈타인은 세습적 남성 전제 정치와 자본의 초이동, 그리고 비밀보장에 종속된 직접 민주주의를 결합했다. (210쪽)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서로 갈라져있던 과거 유럽 대륙을 낭만적으로 그려내어 유럽 연합에 대한 비판에 활용했다. (210쪽)
그러니 이들에겐 민주주의 시스템을 가진 국가는 필요없고 중세풍의 자본주의에 집중된 도시 국가가 새로운 대안인 셈이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함께 발전한다는 1990년대의 그토록 수많은 논의에도 불구하고, 국가 브랜딩 컨설팅 업계가 초기부터 깨달은 것은 민주주의가 일국의 평판에 어떤 가치로 더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두바이와 싱가포르처럼 비민주적인 국가들이 투자자들과 관광객들에게 더 큰 인기를 끌었다. (264쪽)
거시경제학자인 폴 로모Paul Romer는 "부활하고 있는 식민주의"라는 2009년 스탠포드 특강에서 아래와 같이 제시한다.
왜 몇몇 나라는 계속 가난한 반면, 다른 나라는 부유한가? 그는 적절한 위치에 있거나 천연자원을 보유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무형의 직절한 일련의 규칙이 중요했다. 규칙이란 세율을 결정하고 노동을 규제하며, 사유 재산을 보호라는 법률을 의미했다. 더불어 전반적인 정부 형태를 의미했다. 좀 더 깊은 차원에서 규칙은 문화적 규범, 가치와 믿음으로 우리의 특정한 행동 방식을 구성하며 특별한 생각없이 행동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역사는 규칙을 둘러싼 투쟁의 역사였다. 최선의 규칙을 가진 나라들이 승리했다. (269쪽)
그리고 로머는 홍콩으로 가는 지름길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로머가 제시한, 홍콩으로 가는 지름길은 인가도시Charter City였다. 공식은 다음과 같다. 빈국을 설득하여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에 자본주의가 작동할 수 있는 규칙들을 이식하고 부유한 국가 출신 사람들에게 맡기는 것이다. 텅빈 공간에 자본주의의 작동을 도운 것으로 알려진 규칙들을 수분하여 그것이 자라나는 것을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스타트업 정치 관할권"이라 불렀다. (270쪽)
책은 전체적으로 어수선하지만, 분명한 것은 민주주의 위기는 시작되었으며, 자본주의는 더욱 더 위세를 떨칠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자본주의, 즉 민주주의와 함께 보조를 맞추던 그 자본주의도 사라지고 무정부 자유지상주의적 자본주의가 새로운 모습을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라는 점은 명백해 보인다. 그리고 경제적 불평등도 더 심해질 것이고. 이런 상황이 눈에 보이는 듯 뻔한데도 사람들은 너무 태평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건 나 혼자 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