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아침

지하련 2002. 12. 5. 11:25
아침

 

   Anycall 핸드폰의 알람이 울리기 시작하는 8시부터 시작된다. 얼마 전까지는 7시에 커지는 TV로부터 시작되었으나, 그 TV는 아직도 어김없이 7시에 켜지고 있지만, 지친 어둠의 그림자, 한때 뮤즈들의 감미로운 목소리와 부드러운 살결이였던 그 그림자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서른 살의 힘없는 청년을 벗어나게 하기엔 TV는 이미 그 능력을 상실했다.

   실은 아침이라는 시간 위의 존재는 세상의 모든 알람들이 울릴 때부터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예전 닭이 울었던 일을 자명종 시계가, 인공지능 TV가, 삐삐, 핸드폰이 그 기능을 이어받았다. 종종 세상의 무능력함을 해결해주기 원하는 이들에 의해 창설된 보통교육 시스템, 이제는 세상의 무능력함에 의해 무능해진 보통교육 시스템, 그것이 선사하는 저주스런 폭언과 폭력의 노예가 되어버린 10대의 사람들을 깨우는 어머니들이 그 기능을 대신하기도 한다.

   하지만 종종 아침은 감미로울 때도 있다. 돈을 주고 산 여자가 아침이 싫다면서 낯선 남자의 품 속으로 계속 파고 들 때라든지 소심함으로 인해 떠나가는 남자에 대한 영화 OST가 검은 스피커를 통해 울린다거나 마흔 살의 사내를 사랑하는 16살의 소녀가 간밤 술에 취해 막무가내로 찾아들어간 그 사내의 집에서 먼저 일어나 식사를 준비할 때, 이럴 때만 종종 아침은 감미롭게 시작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