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리뷰

에비대왕, 신주쿠양산박 2007 한국공연

지하련 2007. 6. 12. 18:04

에비대왕
신주쿠양산박 2007 한국공연
작. 홍원기, 번역. 마정희, 연출. 김수진
2007. 6. 10, 남산드라마센터


마지막으로 연극을 본 것이 언제였던가. 희미한 기억. 대학로에서 연극을 보고 연극을 전공하던 학생들과 앉아 맥주잔을 기울이던 90년대 중반. 십여 년이 지난 2007년 늦은 봄날. 4호선 명동 역에서 내려 한참을 망설였다, 따가운 봄 햇살과 허공 위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아스팔트 도로의 열기 속에서. 남산드라마센터를 향해 올라가는 길. 얇은 바람은 마주 잡은 두 손 위를 지나갔다.

연극 '에비대왕'은 한국의 복잡한 현대사를 은유하면서 흘러갔다. 일본어로 들리는 현대 한국의 은유들. 낯설었다. 청동기 시대에서 철기 시대로 넘어가는 고대 국가라는 설정, 바리데기 신화에서의 스토리 차용, 분단 현실에 대한 비유, 남아선호사상 등 스토리는 몇 개의 요소로 나누어 분석될 수 있었다. 이 점에서 희곡의 완성도는 꽤 높다고 할 수 있지만, 과연 2007년의 우리들에게 무엇을 던져주는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남겨졌다. 그러나 김수진의 연출은 매우 탁월했다. 복잡한 스토리를 선명하게 보여주면서, 한국의 스토리, 일본어를 하는 배우, 일본적인 색채를 넘어 보편적인 연극 언어로 만들고 있었다. 짜임새 있는 배우들의 동선과 열정적인 연기는 보는 사람들을 지루하게 만드는 법이 없었다.

전체적으로 고대적이며 제의적인 느낌을 풍기는 ‘에비대왕’에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현대인들에게 환기하고자 하는 바가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희곡이나 연출의 완성도는 높지만, 현대인들의 감수성을 자극하고 반성케 하는 어떤 것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