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리뷰

루시와 그녀의 시간 Lucy and Her Time, 최재은, 로댕갤러리

지하련 2007. 11. 21. 22:15




Lucy and Her Time
최재은 - 루시의 시간
2007. 9. 21 ~ 11. 18
로댕갤러리


국내 대부분의 미술 잡지에서 이번 전시를 비중 있게 다루었다는 점에서만 보자면, 높은 평가와 호응을 얻은 전시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는 비평적 관점에서의 접근일 뿐, 일반 대중이 보고 공감하고 호응하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전시라고 할 수도 있다. 또한 모호하고 추상적인 작품들 속에서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메시지를 끌어내기란 다소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Lucy라는 이름은 1974년에 발견된 화석에서 나온 것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인류 화석 중에서 가장 완벽한 것으로, 25세 정도의 여성에, 키는 약 107cm, 몸무게는 28kg, 약 3백 20만년 전에 살았던 원시 인류의 화석이다. 특히 루시의 무릎뼈는 인류가 직립보행을 하였음을 알려주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으며, 인류의 기원보다 앞당기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Lucy는 2007년 서울의 어느 갤러리에까지 방문하게 된다. Lucy에서 영감을 얻은 최재은은 생명의 시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주 먼 옛날, 저 우주에서, 혹은 지구에서 시작한 한 생명이 어떻게 성장(진화, 변화)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는가를 신비롭고 매혹적인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시간’은 이번 전시 작품의 핵심적인 테마이지만, 작품은 시간을 탐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시간 속의 생명체’라고 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래서 시간은 각 작품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거대한 배경이 되면서, 작품들 속에 내재한 은유와 상징을 자극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희로애락’에서, 부토 춤의 대가 우시오 아마가추의 몸짓은 시간 속에서의 생명체가 어떤 변화를 겪어가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또한 ‘자신self’이라는 작품은 구체적인 상태로 있는 이전, 우주 속에서 순수한 물질 형태로만 존재하고 있었던, 원초적이며 본질적인 상태의 ‘자신Self’에 대한 표현과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리고 갤러리에 전시된 작품들은 일련의 인과관계에 의해 전시되어 있었으며, 그리고 맨 마지막에 마주하게 되는 것은 그 모습을 구체적으로 드러낸 ‘Lucy’였다.

이 전시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우주, 생명, 지구, 역사 이전의 시대와 역사 이후의 시대, 삶, 자신 등 그 소재와 주제가 광범하면서 이를 ‘생명’이라는 일관된 스토리 안으로 엮어내는 작가의 재능이었다.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한 전시였지만, 일상 생활에 쫓기며 살아가는 나에게 최재은의 작업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어느 새 평온한 일상이란 우리가 가지기 힘든 어떤 종류가 되어버렸고 태어남(탄생)이란 신비롭고 놀라운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태어났다는 사실을 저주하고 스스로를 부정하며 삶을 증오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대인 대부분은 전자에 속하기 보다는 후자에 더 가까워 보인다는 점에서, 최재은의 작품들은 현대인의 일상에서 너머 멀리 떨어져 있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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