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불안의 개념, 쇠렌 키에르케고르

지하련 2000. 1. 20. 22:24
불안의 개념 - 10점
쇠렌 키에르케고르 지음/한길사



쇠렌 키에르케고르, 『불안의 개념(Begrebet Angest)』, 임규정 옮김, 한길사, 1999.


비트겐슈타인이 키에르케고르를 두고 ‘진실로 종교적’이며, 자기에겐 ‘너무 심오하다’라고 말했을 때, 여기에서 우리는 키에르케고르의 철학 세계의 한 단면을 알아차릴 수 있다. 키에르케고르가 염두에 두고 있었던 건 언제나 ‘신앙’이었고 그 신앙으로 자신이 구원되리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난 그와 얼마나 멀리 떨어져있는가. 그가 ‘확신과 내면성은 사실상 주체성이다’(p. 365)라고 말했을 때 난 이미 확신과 내면성을 내 속에서 몰아내고 있었으며, 그가 ‘불안은 자유의 가능성이다’(p. 397)라고 말했을 때 난 불안을 앞에 두고 ‘고개 돌리기’와 ‘눈감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니 내가 이 책에 대해 뭐라고 떠드는 것은 사실상 주제넘은 짓이다(나에게 주제넘지 않은 것이 어디 있는가. 내 존재 자체부터가 이미 나에게 주제넘은 것이다).

한때 내가 ‘매혹당했고’ 그의 병적인 우울과 고독을 나의 그것과 동일시하던 시절, 키에르케고르의 책을 읽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어린 나의 그 동일시는 허위였으며 아직도 그는 나와 너무 멀리 있다. 그리고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할 것이다.


참고>
메를로 퐁티, 「헤겔에 있어서 실존주의」, 권혁면 옮김, 『의미와 무의미』(서광사, 1985)중에서.


‘현대적 의미로서의 실존주의란 말을 최초로 사용했던 키에르케고르는 의도적으로 헤겔과 대립했다. 그가 생각한 헤겔은 역사를 하나의 논리 체계의 가시적 전개 과정으로 간주하고, 개념의 관계 속에서 사건의 궁극적인 설명을 찾았으며, 개인적 삶의 체험은 마치 운명인 것처럼 개념들에 점유된 삶에 종속시켰던 후기 헤겔이었다. 1827년의 헤겔 철학에는, 키에르케고르의 표현을 빌리면, 모든 역사적 반명제가 극복되는, 그러나 단지 사유로써만 극복되는 하나의 “관념의 궁전”외에는 우리에게 제시해주는 바가 없다. 단지 사유만으로 개인이 그가 처한 모순을 극복하기엔 충분치 않으며, 한 개인은 어떠한 개념에 의해서도 만족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반박한 점은 키에르케고르가 옳다고 볼 수 있다. 후기 헤겔은 자신의 역사적 상황 외의 일체를 파악하였고, 자신의 존재 이외의 모든 것을 설명하였으나, 그의 명제는 바로 특정 개인과 특정 시간의 산물에 대해서는 무지를 가장하고 있기 때문에 결코 참 명제라고 할 수 없다. 키에르케고르의 반박-심층적으로 볼 때, 마르크스의 반박과 일치하는-은 철학자에게 그의 역사적 내속성에 대한 인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즉 당신이 세계의 발전 과정을 판단하고 그것이 프러시아 국가에서 완성을 이룬다고 선언할 때, 그 말을 하는 당신은 대체 어디에 있는가? 어떻게 당신이 일체의 상황 밖에 존재한다고 가정할 수 있는가? 여기서 주관성과 사유자 자신의 존재에 대한 반성은 역사에서 반성과 합류하게 된다.’(pp.96-97)

메를로 퐁티는 이 글에서 후기 헤겔(1827년)과 젊은 시절의 헤겔(1807년)을 나누고 있다. 그리고 이로부터 청년 헤겔(특히『정신현상학』)을 주목하기 시작한다.

짧은 글이지만 키에르케고르의 헤겔 비판이 의미하는 바를 잘 요약하고 있으며 실존주의자들이 바라보는 헤겔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