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예술가

한스 하케와 정치

지하련 2009. 1. 6. 18:27

 
Hans Haacke at Paula Cooper, New York (Jan 2008)
(2008년 광주비엔날레에서도 이 작품이 전시되었다.)



예술은 반드시 정치적이어야 하는 것일까? 여기에 대한 내 생각은 '아니다'이다. 하지만 모든 예술은 정치적으로 해석되어야 하고 해석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어떤 작가가 '정치적 해석'을 거부한다면, 그 작가는 '정치'라는 단어가 가지는 함의과 그 광범위한 적용 범위나, 예술의 참된 의미를 모르는 작가일 것이다.

현실 정치에 대해 자주, 직접적으로 발언하는 예술가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예술가들도 있다. 그런데 이는 그들의 행동일 뿐, 그들의 예술은 그 태생에서부터 우리의 삶과 일상, 정치, 그리고 권력과 밀접한 연관관계를 맺어왔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도 정치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피렌체 공화정의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상징처럼 대접받았고 노천에서 전시되었다. 도시 국가 피렌체의 자부심은 젊은 미켈란젤로와 함께 하늘을 찌를 듯했다. 대체로 고전주의 시대에는 예술, 혹은 예술가는 정치 권력과 매우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이 점에서 현대 미술은 매우 복잡한 양상을 띤다. 마르셀 뒤샹이 '변기'에다 '샘'이라고 이름붙인 것은 보이지 않는 미술 권력(제도)에 대한 일종의 항의로 해석되어야겠지만, 상황은 전혀 그렇게 되질 못했다. 그의 시니컬한 유머의 작품은 흥미롭게도 현대 자본주의와 기묘한 결합을 만들어내고 만다. 그리고 1세기 후, 우리 주변의 대단한 명성을 가지고 부를 축적한 예술가들 대부분은 매우 탁월한 비즈니스 감각의 소유자이기도 하다(이는 장사 마인드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정치인들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맺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예술가들도 있다. 수 코우(Sue Coe) 같은 예술가가 있는가 하면, 한스 하케(Hans Haacke) 같은 예술가도 있다.

한스 하케는 독일 쾰른 출신으로, 1965년부터 줄곧 뉴욕에서 활동해고 있는 미국 국적의 예술가이다. 그의 초기 작품들 중 일부는 '개념미술(conceptual art)'로 이해되기도 하지만, 그의 주된 관심사는 정치적 예술(political art)이다. 그는 사회-정치적 구조나 예술의 정치학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아래 작품은 한스 하케를 유명 예술가로 만든 초기 대표작들 중 하나이다.

Shapolsky et al. Real Estate Holdings, a Real Time Social System as of May 1971

이 때 한스 하케는 구겐하임 미술관에 초대를 받은 상태였으나, 위 작품으로 인해 초대 자체가 취소되었기 때문이다. 샤폴스키 그룹의 부동산 거래에 대한 비밀스럽고 부도덕인 내용을 일련의 작품으로 제작, 전시할 예정이었으나, 구겐하임 미술관에 재정적 지원을 해왔던 샤폴스키 그룹의 압력으로 인해 초대가 취소된 것이었다. 이로 인해 구겐하임 미술관은 명성에 먹칠을 하게 되었으며, 한스 하케는 뉴욕 미술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그는 특히 기업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많이 만들었는데, 필립 모리스, 벤츠, 모빌, 카르티에 등에 대한 반-기업적 정서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MoMA Poll by Hans Haacke in the Museum of Modern Art


위 작품은 노골적으로 정치적 이슈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고, 정치 제도와 미술 제도 사이의 긴밀한 연관관계를 관람객 스스로 이해할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을 상업 화랑에서 만나기란 극히 드문 일이며, 미술관에서도 전시를 꺼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의 작품들 대부분은 이러한 미술 제도들과 반대의 입장에서 서 있다.

한스 하케의 퐁피두센터 전시 서문에서, 자클린 슈발리에와 크리스티앙 데루에(전시 주관 관계자들)는 이렇게 적고 있다.

한스 하케가 표현하는 개혁을 위한 예술적인 방법론들이 우리들에게는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었다. 그의 예술적인 방법론은 박애주의 정신에 입각해있고, 정치적인 상황에 대한 예술의 참여를 의미한다.
한스 하케는 치밀한 조사를 통해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이익만을 추구하면서, 한편으로는 오페라좌, 전시회 등 문화 예술을 지원한다는 허울을 쓰고 있는 국제적인 기업들의 모의들을 폭로한다. 그가 제안하는 것을 명확히 하기 위하여, 한스 하케는 대중적인 어휘를 바탕으로 정보들과 홍보수단들을 선별한다. 그는 그런 것들을 광고인쇄나 언어를 통해 나타낸다. 그는 작품 수집가, 일반대중들에게 미술 시장의 구조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한스 하케는 역사적인 의식을 확고하게 재구축함으로써 예술도 폭발적이고 살아있는 반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거기에서 우리는 아름다운 조형적 형식을 향유할 수 있다.
(유선태의 글에서 재인용함)


하지만 한스 하케의 작업을 보면서, 나는 한스 하케의 비즈니스 감각을 엿보게 된다. 그의 감각은 관람객을 끊임없이 유혹하며 민감한 이슈에 참여하도록 만든다. 또한 그의 작품들은 그들 자신에 대한 공격인 줄 알면서도 전시를 추진하게 만들게 하는 상품성을 가지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한스 하케 또한 이것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어쩌면, 일종의 타협인 셈이다. 반-비즈니스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도 비즈니스 감각이 있어야 한다는 건 정말 슬픈 일이다.


- 한스 하케의 다른 작품을 볼 수 있는 곳.
http://blog.naver.com/nurana?Redirect=Log&logNo=110018365098

- 참고문헌
유선태, 기업활동을 감시하는 참여예술가'
(대학 시절 복사해놓은 아티클이라, 어느 잡지에서 나온 것인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