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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1.
오래 전에 번역되어 많이 읽히지도 못하고 사라진 소설 이야기부터 먼저 해보자. 아마 영화를 본 사람은 있을 것이다. 빠스깔 레네의 <레이스 뜨는 여자>. 소설의 내용은 이렇다. 하층 계급의 여자와 상류층의 남자가 만나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에 드러난 것이고 그 이면에는 하층 계급의 여자, 뽐므라는 이름을 가졌고 투명한 영혼을 지닌, 그녀가 거리를 걸어가면 주위의 사람들이 그녀를 쳐다볼 수 밖에 없는 어떤 매력을 지닌 여자와 파리 고문서 학교를 다니며 미래의 파리 박물관 관장이 될, 미래에 대한 야망과 꿈을 가진, 에므리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의 서로 메워줄 수 없는 어떤 거리를 꼬집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독자들이 에므리의 편이 아니라 뽐므의 편을 들 것이라는 점이다. 왜냐면 뽐므는 여자이기 때문에. 실제 그런 독자들이 에므리의 입장이 되었다면 에므리보다 나은 행동을 할 수 없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랑에 버림받는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보다 버림받는 여자들의 이야기에 더 감동받도록 교육받아 왔다. 그래서 무수한 사랑 이야기들의 대부분은 버림받는 여자들의 이야기로 채워진다. 이 말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여자란 과연 무엇일까?

에스테 빌라의 <어리숙한 척, 남자 부려먹기>(황금가지)라는 책을 읽어보면 남자들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알 수 있다. 책의 첫 구절만 인용해보자.

"레몬색 리무진이 비틀거린다. 운전석의 젊은 여자는 서둘러 차를 세우고 내려 왼쪽 타이어가 평크 났음을 발견한다. 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수리할 방도를 찾는다. 즉, 마치 누구를 기다리기라도 하듯이 지나가는 차들을 바라보는 것이다. <무력한 여성>이라는 이 국제적인 신호에 따라 곧 콤비 한 대가 멈춰 선다. 운전석에 앉아 있던 남자는 해야 할 일이 있다는 느낌을 받고 위로하듯 말을 건넨다. "곧 해결될 겁니다" 자신의 결심을 보여주듯 그는 수리 공구를 달라고 말한다. 그는 그녀가 타이어를 손수 갈아 끼울 수 있는지 묻지 않는다." (p.9)

이 책의 주제는 인용한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남자의 지성과 능력은 오직 여성을 위한 것이고 여성의 우둔함이 여성을 신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니 페미니즘은 이 책 앞에서 별 다른 호응을 얻지 못한다. 내가 보기에도 너무 흔하게 남자들은 여자들의 꾀에 넘어가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해서.

2.
예술사에서 여자는 바라봄의 대상이었다. 여자가 어떤 권력을 가지고 있을 때나 그렇지 못할 때나 여자는 시대의 투영이었고 모호한 매력의 대상이었으며 시대의 바닥에 깔린 우울을 말해주었다. 그래서 <슬픔의 아테나>는 그리스 시대가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그리스 시대가 어떤 정신적 태도 위에 기초해있는가를 알 수 있다. 그것은 어떤 멜랑콜리와 다문화주의의 우울, 흔들림, 그리스의 '고귀한 단순과 고요한 위대'를 말해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리스 문화는 남성적이라기 보다는 상대적으로 여성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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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455∼450 아테네 출토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미술관
(Acropolis Museum, Athens)
Grand Collection of World Art


중세를 지나면서 '성모 마리아'가 예술의 주요한 주제로 부각된다. 그러나 성모 마리아라는 종교적 의미보다 예술가 자신이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와 보다 더 연관되는 것처럼 보인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Pie'ta, 성모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상. 여러 예술가들에게 작품의 주제가 되었다)상은 미켈란젤로가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알 수 있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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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eta
1499
Marble, height 174 cm, width at the base 195 cm
Basilica di San Pietro, Vatican


르네상스 전성기때의 성모마리아는 편안하고 자상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은 미켈란젤로가 그 시대를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보여준다. 성모 마리아의 모습에서 미켈란젤로의 정신적 태도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말년의 미완성 작품인 론다니니의 피에타(Pieta Rondanini)에서는 그가 어떤 정신적 격동, 불안 속에 있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다른 마니에리즘 화가들이 여성을 표현함에 있어 비례의 파괴라든가, 창백하고 퀭한 얼굴을 보여주었던 것처럼. 어떤 대상으로 내려앉은 여성의 경우 여성의 특성이 부각되기보다는 심미적 대상으로 탈여성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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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eta Rondanini, (unfinished)
1552-64
Marble, height: 195 cm
Castello Sforzesco, Milan


3.
그러나 탈여성화는 대체로 작품의 소재가 되는 여성이 인간 이상의 능력을 지녔거나 어떤 신성을 대변하고 있을 때뿐이다. 그러므로 예술사에서 작품의 대상이 되는 여성이 여성의 어떤 이미지를 나타내는가에 따라 구분할 때에는 크게 두 가지-어머니의 여성과 섹스의 대상으로서 여성으로 나누어진다.

어머니로서의 여성이 작품의 전반적인 주제가 될 때 대체로 고전주의 시대일 경우가 많으며 섹스의 대상으로서 여성이 작품의 전반적인 주제가 될 때는 대체로 낭만주의 시대일 경우가 많다. 이 글에서 그 모든 이야기를 하기엔 이 지면이 짧고 요즘 유행되고 있는 두 화가의 그림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그치자.

빈 분리파의 대표적인 두 화가, 에곤 쉴레(EGON SCHIELE, 1890-1918)와 구스타브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의 작품 속에 나타난 여성상은 매우 비슷해보인다. 둘 다 놰쇠적이며 성적인 메타포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쉴레의 작품은 감정적이면서 자기 파괴적이지만, 클림트의 작품은 지성적이며 자기 보호적이다. 쉴레는 자신의 여동생의 누드를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생전에 주위의 조롱을 받았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여동생의 누드를 그렸다. 그의 그림은 선이 매우 두드러지는 쫙 마른 여성들을 주로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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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iele, Egon
Female Nude
1910
Gouache, watercolor and black chalk with white highlighting
44.3 x 30.6 cm
Graphische Sammlung Albertina, Vienna


한동안 '죽음과 소녀'라는 테마가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슈베르트의 작품이 있었고, 에드바르트 뭉크의 작품도 있다. 그 외 여러 작품들이 있는데, 여성의 음탕함과 죽음을 연결시킴으로서 여성의 부도덕성은 곧바로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전통적인 도덕적 명제를 품고 있다. 비록 후대에 와서 많이 퇴색되기는 했지만 말이다.

쉴레의 작품은 여성의 음탕함 속으로 스스로를 침몰시킨다. 여성의 음탕함은 바로 죽음이며 죽음 속으로 자신을 침몰시키는 것이다. 세기말 쉴레의 선택은 지극히 우울했고 절망적이었다.

그러나 클림트는 쉴레와는 반대되는 그 무엇을 선택한다. 클림트에게 있어 여성이란 '팜므 파탈'(숙명의 여인)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가 표현하는 여성들은 한결같이, 쉴레와 비슷하게 놰쇠적이며 성적으로 강조되어 있지만 그런 여성을 감싸고 있는 것은 기하학적 이미지들이다. 즉 기하학적 이미지로 여성들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은 클림트의 세계 속에서 팜프 파탈로서의 여성을 기하학적 이미지, 지극히 이성적이며 남성적인 기호로서 억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클림트에게 여성이란 피해가야할 무엇, 방어해야만 할 그 무엇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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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imt, Gustav
Danae
1907-08
Oil on canvas 77 x 83 cm
Private collection, Gra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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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일지(지음), <<새>>, 민음사, 1999.





과연 우리들은 우리들의 바램대로 행동하고 말하는가? 오늘날의 우리들은 고작 스스로 결정 내리고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고 있다고 믿고 싶어할 뿐이다. 그리고 이 욕망(믿고 싶어함)은 거대하고 천박하기 그지없는 현대의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왜냐면 진실을 숨길 수 있는 건 새로운 거짓말이기 때문에. 거짓된 사랑, 거짓된 행복을 진실이라고 믿음으로서 우리들은 우리들의 욕망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이것이 진실이라며 최면을 걸면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현대의 키치는 나름대로의 의미를 획득한다. 그 의미가 거짓이며 자기기만이더라도 우리들은 키치 속에 파묻혀 살아가는 것이 적어도 덜 고통스럽고 덜 외롭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새'는 A의 운명을 뜻한다. 그리고 그 운명 이란 소설의 시작부터 정해져 있었던 것. 그래서 이 소설 속의 그 누구도 운명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모두 이미 정해 진 자리에 서있을 뿐, 독자는 정해져 있는 소설을 읽을 뿐 이다. 이 소설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부분이란 A가 몇 몇의 여자들을 정해져 있는 순서대로 만나 몸을 껴앉고 키스를 하는 곳이며, 그 외의 부분이란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한 다. 왜냐면 그만큼 A의 인생이, 우리들의 삶이 아무런 의미 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아마 몇 명의 평론가들은 이 소설이 현실과 가상의 세계가 뒤엉켜있다고 하겠지만(그러면서 자신들의 현학적 취미를 뽐내겠지만), 과연 그 가상의 세계가 현실과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일까? 불행하게도 이러한 구분은 이 소설에서 아무런 쓸모도 지니지 못한다. 이미 A의 운명을 정해져 있었고 그것을 벗어나는 방법이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A의 모든 행동들이란 외부의 사건에 대한 반발작용임으로 해서 바깥의 세상은 더욱 철저하게 A를 정해진 게임의 규칙 속으로 밀어 넣을 뿐이다.

결국 우리들은 한 마리의 새들이다. 각각 정해져 있는 길 위에 서서 끊임없이 새와 부딪히며 결국 새가 되었거나 될 것이다. 돌아가야 할 가족이 있다거나 도망치고 싶은 현 실이 있다거나, 현실의 그 어떤 것이 자신의 행동을 규정하 는 순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검은 새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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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0년 서울, 그리고 우리

오늘날 전 세계 방방곡곡에서 시드니 올림픽을 볼 수 있다. 어느 순간 세계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고 그 속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없어 보인다. 라는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움직이는 곳마다 감시장치가 있고 주인공은 그 감시를 한 순간도 피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이것을 두고 '음모이론(Conspiracy Theory)'이라며 몇몇 사람들은 떠들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이런 끔찍한 세계는 시간적으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IMT2000(IMT2000 International Mobile Telecommunication 2000)이라고 해서 국가간 무선통신 서비스, 화상통신서비스 등을 위한 단일 주파수, 단일 기술 표준 인프라가 구축된다면, 그러면 핸드폰마다 디지털카메라가 부착될 것이고 웃지 못할 해프닝이 여기저기에서 벌어질 게 뻔하다. 가령 밤늦게 들어오지 않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아내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야, 핸드폰 돌려봐" 그러면 남편은 핸드폰을 들고 주위를 한 바퀴 돌릴 것이다. 아내는 남편이 누구와 술을 마시고 있는지 궁금해할 것이고 남편은 핸드폰을 가지고 있는 이상 함부로 술을 마시지 못할 것이다. 또는 핸드폰을 받지 않는다고 해도 지금도 위치추적이 가능한 마당에 그 때쯤 되면 가게 이름까지 정확하게 나올지도 모른다.

세계가 어떤 것들로 묶여질 때, 고대인들이라면 그것을 '운명(moria)'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현대인들은 그것을 '정보망'이라고 말할 것임에 분명해 보인다. 놀랍게도 이 둘은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다. 하나는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영역 바깥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디지털'이라고 불리는 세계다. 고대인들이 '운명'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신의 영역 속에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인간은 그 세계에 대한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만들어내었다. 즉 인간은 그 세계 속에서 자유롭게 상상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영역이기 때문에, 육체에 죽음이 깃들기 전에는 볼 수도 없는 세계이기 때문에 인간의 상상력은 그 세계를 구성하기 위해서 온갖 놀라운 생물들을 창조해내었고 무수한 신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세계의 끄트머리에 중세가 있다.

2. 1200년 유럽, 그리고 그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신앙은 인류가 동굴 속에서 천둥과 번개를 두려워할 때부터, 혹은 명확하게 죽음을 인식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즉 세계가 인류에 대해 적대적이라고 여기기 시작했을 때, 그래서 인류가 희미하게나마 '지성'이라는 것을 가지게 될 때 말이다.

인류 문명의 시작은 이러한 이유를 밑바탕에 깔고 있다. 하지만 지성으로 이 세계를 알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우리가 알아 가는 건 이 세상의 '이해가능성'이라기보다는 '이해불가능성'이다. 그리고 그 이해불가능성이 깊어가면 갈수록 절대자 신은 우리에게 매우 호소력있고 매력있는 대상으로 자리잡게 된다.

중세란 절대자 신이, 보이지 않고 우리의 지성으로는 알 수 없는 세계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 전체를 지배했던 시기이다. 그래서 중세 유럽인들은 눈에 보이는 세계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더 신뢰했으며 눈에 보이는 세계의 모든 것들은 보이지 않는 신을 위한 그 어떤 것이 되어야만 했다. 그래서 중세인들은 "신에게 있어서 의미 없는 것이란 아무 것도 없다nihil cavum neque sine signo apud Deum."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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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 대성당>, 서쪽 출입구

중세 고딕 성당들이 보여주는 장식에 대한 병적인 집착은 모든 것을 의미 있게 하려는 노력이다. 왜냐면 이 세계의 모든 것들은 신의 소유물이며 피조물이기 때문에.


3. 현대 예술

현대는 중세와는 정반대의 노선을 걷는다. 즉 "인간에게 있어 의미있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다"라는 신념의 표현인 것이다. 한 십년 전쯤에 포스트모던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하일지의 소설 <경마장 가는 길>은 의미 없는 일상을 지루하게 나열함으로서 이러한 신념을 표현했다. 그가 영향받은 누보로망의 작가들, 로브-그리예, 미셸 빅토르 등도 그러하다.

사무엘 베케트의 등장인물들은 한결같이 수다스럽지만, 그들의 대사들은 다 의미 없는 것들의 나열이다. 도대체 의미 있는 것이란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로만 오팔카는 숫자를 적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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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alka 1965/1-∞ Detail 1503485-1520431
(Roman Opalka, 1931- ) / 1965
Acrylic on canvas / 196×135cm

로만 오팔카는 1965년부터 일부터 숫자를 적기 시작했다. 위 작품은 1503485부터 1520431까지 적힌 작품이다. 로만 오팔카는 극단적 허무주의 속에서 숫자를 적는 작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인간에게 의미있는 것이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그리고 심지어는 이 세상이 존재하고 있는가 조차도 의심스럽기 때문에 로만 오팔카는 자신이 존재하고 있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숫자를 적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서 자신의 존재를 의미있게 하기 위해서, 자신의 존재를 어떤 물리적 대상 속으로 집어넣음으로서 이 세상 속에서의 자신의 존재를 어떤 가상의 세계(예술작품)을 통해서 의미부여를 하려는 것이다.

4. 새로운 공화국

모든 사람들이 인터넷에 열광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것이 새로운 경제를 주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의 심리적 배경에는 현실 세계를 대신할 새로운 가상 세계이기 때문이다. Activeworlds(www.activeworld.com)에 들어가 보라. 그러면 현실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가상 세계 속에서는 존재하는 새로운 도시를 만나게 된다. 중세인들이 보이지 않는 신에게 매달리면서까지 자신의 삶을 구원받기 원했다면 현대인들은 자발적으로 가상 세계 속으로 걸어들어가 새로운 삶을 꿈꾸는 것이다. 고대인들이 '운명'을 통해서 신을 향해 갔다면 우리들은 '정보망'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 접속하고 그 속에서 새 인생을 꿈꾸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매스미디어는 이러한 가상 세계를 끊임없이 복제해내는 장치들이다. 현실 속의 우리 인생은 덧없고 따분하고 재미없기 때문에 우리들은 자발적으로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가상 세계 속으로 자발적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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