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6 12

어떤 수요일

몇 달 간의 흔적이 숨겨져 있는 책상 바로 위로, 지치지도 않고 차가운 에어콘 바람은 평평한 사각형으로 떨어져 내린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나이가 들면서, 어떤 구조 속에 스스로 자신을 내몰기 마련이다. 그리고 자신을 내몰지 않으면 안 된다. 자의든 타의든 자신의 삶 전체를 내몰지 않은 사람들에겐 철없고 사회성이 떨어지며 무책임하고 제멋대로 인간임을 인정하라며 세상은 강요한다. 하지만 세상은 나를, 우리를, 어떤 시스템 속으로 자신을 내몬 이들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 책임질 생각도 없다. 강요하면서도 그 강요로 인한 결정로 생긴 좌절, 절망, 슬픔에 대해선, 네 잘못이라며 개인의 탓으로 돌린다. 결국 세계는 피해자들로만 넘쳐난다. 승자는 없고 패자만 있다. 모든 이들은 각자 다른 이유로 떠밀려 지금 이..

그림을 본다는 것, 케네스 클라크

그림을 본다는 것 Looking at pictures 케네스 클라크Kenneth Clark(지음), 엄미정(옮김), 엑스오북스, 2012년 (원저는 1972년에 출판) 나는 그림이 주는 기쁨을 더 많이 더 오랫동안 느낄 수 있으려면 그림에 관해 배워야 한다고 믿는다. - 7쪽 그림을 즐기기 위해선 배워야 한다고 케네스 클라크는 말한다. 우리가 뭔가 배울 땐, 성적 때문이 아니라 즐기기 위해서이다. 배움을 통해 우리는 세상의 비밀을 조금 더 알게 될 것이고, 과장해서 말하자면 세상은 빛으로 가득 찰 지도 모른다. 아마 중세를 지나 근대를 향해 가던 서유럽인들이 느꼈던 감정이 바로 이랬을 것이다. 배우고 알아가는 과정은 어두운 세계를 환하게 밝히는 것과 같다. 우선 나는 그림을 하나의 전체로 바라본다. 그림..

귀향, 자끄 프레베르

귀향자끄 프레베르 Jacques Prevert 안민재 역편, 태학당 헌책방에서 구한 시집. 예전엔 외국 번역 시집들이 꽤 많았는데, 지금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하긴 시집 읽는 이도 드문 마당에... 번역이 다소 형편없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오늘 다시 보니 어느 것은 좋고 어느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형편없는 것이 아니라... 1994년에 출판되었고 인터넷서점에선 검색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래 소개한 시를 읽는 것만으로도 닫혀있는 마음은 밖으로 무너지고 저녁 바람을 새삼 느끼고 저 하늘 달빛이 이 버릇없는 작은 도시의 사람들 위를 비추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될 것이다. 대학시절 불어로 시 읽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젠 불어 단어들이 머리 속에서 흔적으로 남았다. 시를 읽으며 술을 마시던 그 시절..

아무 것도 공유하지 않은 자들의 공동체, 알폰소 링기스

아무 것도 공유하지 않은 자들의 공동체 (The Community of Those who Have Nothing In Common) 알폰소 링기스Alphonso Lingis(지음), 김성균(옮김), 바다출판사 우리가 속한 환경의 외계外界를 향해 우리가 전진하는 과정은 우리의 죽음을 향해 전진하는 과정이다. 죽음은 세계의 모든 틈새에 존재하고, 심연은 세계를 연결하는 모든 회로의 이면에도 존재하며, 세계를 연결하는 길들의 저변에도 존재한다. (252쪽) 철학서답지 않은, 부드럽고 다소 낯선 문장들은 독자에게 느리게 읽을 것을 요구한다. 이 강제된 느림은 현대스럽지 않다. 책 표지는 알폰소 링기의 글과 어울리고, 타자와 공동체에 대한 철학적 논의를 담은 책이지만, 산문처럼 읽히는 건 그만큼 문학적인 탓이리라..

<<세계의 문학>> 발행 중단 혹은 폐간

민음사에서 내던 이 지난 겨울호로 '발행을 중단'했다, 혹은 폐간했다. 문학 잡지의 사소한 발행 중단이라고 하기엔 이라는 잡지가 가졌던 위상이나 내가 즐겨보던 잡지엿던 터라,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내가 대학을 입학하고 난 다음, 처음 샀던 문학잡지이기도 했던 . 그 해 박일문이 '하루키 패러디'라는 지적을 받으면서 을 받았고, 나는 에 실린 을 읽었다. 이나 와 달리, 좀 더 문학주의적이라고 할까, 이론주의적이라고 할까. 그 때 내가 받았던 인상은 그랬다. 그동안 많은 여러 문학 잡지들이 발행을 중단했다. , , 등등. 세상이 변하면 문학도 변하고, 문학잡지도 변해야 한다. 가끔 들리는 공공 도서관에 비치된 문학잡지들을 보며, 누가 저 잡지들을 읽을까 언제나 궁금하다. 결국 학생이나 관계자, ..

모바일 커머스의 중요성

아침에 뉴스레터를 챙기다가 아래 차트를 보았다. 미국 리테일 사업자들이 모바일 쇼핑 진출로부터 중요하게 여긴 기회를 조사한 것이다. Winners는 전년도 대비 매출액 증가율이 4.5% 이상인 기업들이다. 그만큼 장사 잘 하는 기업들이 유망한 기회라고 답한 것들이다. 여기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Deeper customer engagement to drive sales through personalized offers'다. 무려 68%가 이를 지지했다. 두 번째로 높게 나온 것은 'Deeper insights into shopper behavior through mobile site/app insights'인데, 이건 쉽지 않다. 기본적으로 쇼핑몰 내 분석을 위한 기술이 적용되어야 한다. 가령 로그분석을..

쇼핑몰에서의 실시간 문의(라이브챗)의 효과

출처: https://global.frankandoak.com/styling Frank+Oak가 Presonal Styling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페이지 하단에 사람 얼굴과 함께 실시간으로 문의를 할 수 있다는 것도 흥미롭다. 이제 많은 쇼핑몰에서 카톡 아이디나 라인 아이디를 제공하고 상품이나 서비스 관련 문의를 받고 있다. 네이버는 아예 '네이버톡톡'이라는 별도의 서비스를 출시했다. 그렇다면 쇼핑몰 매출과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일반적으로 실시간 문의에 대응했을 때와 대응하지 않았을 때의 매출 차이는 상당히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몇몇 기사에서는 매출이 상당히 올라간 사례를 전하기도 한다. 하지만 쇼핑몰 운영자의 입장에서는 투자 대비 이익을 따지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사례..

비현실적인

점심을 간단하게 햄버거로 처리하고 도로를 걸었다. 작은 분수와 가로등에 달라붙은 채 갓 핀 꽃을 보여주고 있는 화분들을 보면서 참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점심 시간 길가로 쏟아져 나왔다가 다시 사무실로 향하는 사람들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지만, 그 웃음도 참 비현실적이었다. 모두, 우리들의 비극적 상황을 알고 있지만, 모른 척하고 있었다. 그리고 계속 모른 척할 것이고, 모른 척 하던 사람들이 다 죽고 도시는 폐허가 될 것이다.이런 도시는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실크로드를 따라가다 보면 많이 만날 수 있다. 이젠 성채만 남아 부서지는... 과거가 미래의 발목을 잡고 있지만, 과거는 과거의 기준으로만 세상을 바라본다. 변화를 거부한다. 세상은 변하지 않고 정지해있다. 그들은 마치 파르메니데스의 후예들 ..

창원 성산도서관

낮고 두터운 바람이 어깨를 스치고 지났다. 비가 올 듯 구름들이 몰려들었지만, 더위는 여전했다. 병원 바로 옆에 도서관이 있었다. 서울에서 가지고 온 자료들을 가지고 도서관 안으로 들어갔다. 낯설었다. 서울에선 나이와 상관없이 도서관 열람실을 오고갔는데, 여긴 학생들만 보일 뿐이다. 오전 10시. 서울이라면 자리가 없었을 시간인데, 여긴 여유롭다. 하긴 도서관이 걸어다닐 수 있는 거리마다 있으니까. 책들도 제법 있고 실내도 깔끔하다. 대도시 생활이 익숙해지니, 견디기 어렵다. 떠나보니, 이 곳이 살기 좋은 곳임을 알겠다. 주말 내내 창원에 있다가 서울로 올라왔다. 올 한 해 자주 이 생활을 반복할 것같다. 한 때 이 도시에서 내가 알던 이들도 이젠 중년이 되었겠구나. 그도, 그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