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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나의 서양음악순례

서경식(지음), 한승동(옮김), 창비 



한국과 일본은 참 멀리 있구나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서경식 교수의 유년시절과 내 유년시절을 비교해 보며, 문화적 토양이 이토록 차이 났을까 싶었다, 일본과 한국이. 


내가 살았던 시골, 혹은 지방 소도시의 유년은, 쓸쓸한 오후의 먼지 묻은 햇살과 수평선이 보이지 않는 바다 풍경이 전부였다. 책 속에서 이야기되었던 윤이상 선생의 통영에서의 유년 시절은 내가 겪었던 유년 시절과도 달랐다. 그가 통영에서 살았던 당시(20세기 중반) 보고 들었을 전통 문화라는 것도 없었고 그렇다고 서양 신식 문화랄 것도 내 유년시절에는 없었다. 전통 문화와 신식 문화 사이에서 길게 획일화된 공교육과 책을 읽으면 안 되는 자율학습과 텔레비전, 라디오, 팝송이 있었다(이것들이 신식문화일지도 모르겠으나). 어쩌면 우리 세대는 진짜 팝 문화를 제대로 경험하고 자라났지만, 그게 과연 좋을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끔 학교 음악 시간에 클래식음악을 듣기도 한 것같으나, 그건 제대로 된 감상이라기보다는 꿈을 잃어가던 음악 선생님의 목소리 끝에 묻은 허전함과 마주하는 것이었다.


나에게 클래식 음악에 대해서 묻는다면, 내가 답할 수 있는 건 얼마 되지 않는다. 대학 시절 재즈 음악을 즐겨 듣다가, 클래식 음악을 듣기 시작한 건 서른 초반이었으니, 시간 상으로 불과 십년 남짓이고 이것도 그저 일년에 몇 장의 음반을 사는 것이 전부였으니, 믿을 수 없다. 지금은 몇몇 작곡가를 알고 그 중 몇몇은 아주 선호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클래식음악은 나와 꽤 멀리 있었던 존재였다. 그러니 뒤늦게 빠져든 이 취미를, 유년 시절부터 접해온 서경식 교수의 유년 시절은 너무 부러웠다. 그리고 지금도 유럽으로 연주회에 갈 수 있다는 여유는, 아마 그들 세대만이 가지는 어떤 것이 아닐까. '시간이 지날수록 나아진다'는 건 그저 과거의 통념일 뿐, 21세기 초에 어울리는 문구는 아니다. 문화의 빈곤과 그 격차는 더 심해지고 있다. 이제 원하는 음악을 유튜브와 같은 온라인 채널을 통해 들을 수 있지만, 접근의 편리함은 그 음악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책을 통해 나는, 무엇보다 윤이상 선생에 대해 알게 되었다. 서경식 교수의 개인적 삶 - 그는 한국 현대 정치로 인한 비극을 고스란히 안고 살아왔다 - 속에서 묻어나오는 고통과 회한, 그리고 그것을 이겨내기 위한 분투가 글 사이로 묻어나왔고 동시에 미래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으면서 세상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는 모습을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두 형, 서승서준식을 구하기 위해 그는 윤이상 선생을 여러 차례 만났지만, 윤이상 선생도 민주화된 고국으로 들어오지 못한 채 먼 타국에서 생을 마감했으니, ... 


<<나의 서양음악순례>>는 서양 음악을 통해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순례길일지도 모르겠다. 모차르트, 슈베르트, 말러를 지나 윤이상으로 이어지고 일본인 아내와 한국이 서로 만난다. 아픔은 음악이 되고 어느 새 아픔이 아문 자리만으로도 닥쳐올 불안에 대한 작은 위안이 된다. 책은 가볍지 않지만, 음악은 봄바람처럼 가볍게 날아와 우리 주위를 따뜻하게 비출 것이다. 


내년에는 루이제 린저가 쓴 <<상처입은 용>>을 구해 읽어야겠다. 윤이상 선생의 음악들도 챙겨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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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지 않아요?"라고 묻는다. 매서운 바람이 어두워진 거리를 배회하던 금요일 밤, 그림Grim에 가 앉았다. 그날 나는 여러 차례 글을 쓰지 않냐는 질문을 받았다. 가끔 내가 글을 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스스로에게 묻지만 대답할 수 없다. 적어도 그것이 해피엔딩은 아닐 것임을 나는, 어렴풋하게 안다. 마치 그 때의 사랑처럼. 


창백하게 지쳐가는 왼쪽 귀를 기울여 맥주병에서 투명한 유리잔으로, 그 유리잔이 맥주잔으로 변해가는 풍경을 듣는다. 


맥주와 함께 주문한 음악은 오래되고 낡은 까페 안 장식물에 가 닿아 부서지고, 추억은 언어가 되어 내 앞에 앉아, "그녀들은 무엇을 하나요?"라고 묻는다. 그러게. 그녀들은 무엇을 할까. 그리고 그들은 무엇을 할까. 콜드플레이가 왔다는데,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나이는 시간을 먹고 나는 청춘을 먹었다. 게걸스럽게 먹는 사이, 많은 것들을 잃고 얻었다. 노트 한 장을 찢어 길게 반으로 접어, 한 쪽에 내가 잃은 목록을, 한 쪽에 내가 얻은 목록을 적는 사이, 계절이 가고 계절이 오고, 너무 하얀, 그녀의 창백한 볼을 닮은 눈이 내린다. 반쯤 마신 맥주 잔 위로 하얀 눈이 내린다. 하얀 눈이 쌓인다. 쌓인 눈 위로 서로 손을 마주 잡은 그들이 잔 위로 걸어나와 대학로 거리 어둠 사이로 사라졌다. 그렇게 취해가던 금요일 밤, 다행히 나는 그녀들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 실은, 전화번호도 알지 못했다, ... 그리고 죽을 때까지 그녀들과 만나지도 못할 것이다. 


이 만날 수 없음은 얼마나 큰 행복인가. 적어도 나는 앞으로 그 찬란하던 고통을 받지 않아도, 그렇게 투명하던 눈물도, 끝없는 저주의 언어를 경험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다시 볼 수 없을, 하얀 잔 위로 그 발자국처럼, 그 쓸쓸하고 아름다웠던 청춘의 발자국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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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 때 대기가 제일 좋다, 나는. 적당한 차가움이 귀 끝을 스칠 때 따뜻한 술 한 잔이 떠오르고 무심한 거리 뒷골목에서 만나는 인생들에게서 정을 느낀다. 그대들과 함께 술 취해가던 그 해 겨울이 그리워지는 이 맘때, 초겨울, 나는 요즘 대기의 결이 좋다. 




아.. 그리고 술. 마시지 않은 지도 꽤 지났구나. 아름다운 술자리가 언제 였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그리고 아래 광고. 참, 술 생각, 옛날 생각, ... 휴식이 간절해진다. 요즘 너무 바쁘고 피곤하고 힘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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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의 녹색노트

구광렬 엮고 옮김, 문학동네 



음유시인 


             니콜라스 기옌 




알갱이가 빽빽한 옥수수

피델 카스트로와 그의 부하들이 

그란마에서 내릴 때,

격정의 바다는

그들이 난폭한 걸음으로 출발하는 걸 본다 

턱수염 없는 근엄한 얼굴,

이마엔 나비들을,

구두엔 수렁, 늪을,

죽음, 군인처럼 노란 유니폼에 미제 총을 한 

죽음은 그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몇몇은 상처를 입고 쓰러졌으며 

몇몇은 목숨을 잃었다 

손가락 수보다 조금 더 많은 수가 

희망과 피로로 다시 영광을 향해 출발했다 

깨어난 길에선 주먹을 움켜쥐고 

양귀비를 따 노래를 불렀다 

칼날은 빛났으며 총은 번쩍거렸다 

마침내 산속으로 먼저 들어간 

피델 카스트로는 병영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산맥에서 내려간다.

평원은 총들의 바다가 될 것이다." 



1967년 10월 9일, 체 게바라 사망 당시 그가 메고 다녔던 홀쭉한 배낭 속에는 색연필로 덧칠이 된 지도 외에 두 권의 비망록과 녹색 노트 한 권이 들어 있었다. 두 권의 비망록은 사후 '체 게바라의 일기'라는 제목으로 출간돼 호사가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었는데, 나머지 노트 한 권은 시가 빼곡히 적혀 있다는 소문만 무성했을 뿐 40년 간 베일에 싸여 있었다. 하지만 몇 년 전 노트 속의 시 69편이 밝혀졌다. 바로 체 게바라가 좋아했던 네 명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 세사르 바예호Cesar Vallejo, 니콜라스 기옌Nicolas Guillen, 레온 펠리페Leon Felipe의 시들이었다. - 6쪽 


번역자인 구광렬 교수는 체 게바라의 노트에 빠졌겠지만, 나는 세사르 바예호 때문에 이 책을 샀다. 


예전, 어느 프랑스 소설에서 '세자르 발레조'로 옮겨진 그를 읽었고 그 페루 시인의 시를 읽고 싶었다. 시간은 흘렀고 기억은 흐릿해지고 시집은 일상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시집을 읽기 시작한 건 몇 년 전부터다. 시의 아름다움을 다시 느끼기 시작했다고 할까. 특히 영미시의 아름다움에 빠졌다. 그리고 잊고 있던 세사르 바예호를 떠올렸다. 혹시 싶어 찾아보았으나, 한 권은 절판되었고 구할 수 있는 건 이 책이 유일했다. 



XV

-<<트릴세>>에서 



세사르 바예호 


그 많은 밤을 함께 보낸 저 모퉁이,

하지만 지금 나, 걷기 위해 앉아 있네.

죽은 연인들의 침대는 누가 빼버렸을까?

아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넌 조금 전 다른 일로 여기 도착했지.

지금은 없구나. 네 곁에서,

네 허벅지 사이에서 밤을 읽고 

알퐁스 도데의 이야기를 읽었건만.

혼동하지 마, 

이 사랑하는 모퉁에서였잖아.


지난 여름날을 생각해,

작고 창백한 얼굴로

이 방 저 방 드나들던 너를.


비 내리는 이 밤, 

우리 둘,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열렸다 닫히는 두 개의 문,

그 사이로 넘나드는 바람,

그리고 그림자 둘. 


혁명가 체 게바라의 안목으로 선택된 네 명의 시인을 우리는 새로, 다시 만난다. 쿠바를 떠나 다시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던 남미의 숲 속에서 노트를 꺼내 이 시들을 읽었을 체 게바라를 떠올리면, ... 어떤 시들은 가끔 어두운 하늘의 별빛 같다고 할까.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듯한 지금, 무참하게 내려누르는 일상의 공포, 책임, 무모함 속에서 시집은 작지만 강한 위로가 된다. 특히 파블로 네루다의 시는 너무 아름다워, 소리 내어 읽기도 한다. 


이 겨울의 아침, 언어가 가진 슬픈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쓸쓸한 마음을 잠시 스스로를 잊을 수 있지 않을까. 아무에게나 추천해도 좋을 시집이다. 


** 


2015/03/04 - [책들의 우주/문학] - 죽은 전원시, 세자르 바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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