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비즈

리콴유가 말하다, 그래엄 앨리슨, 로버트 블랙윌

지하련 2025. 1. 28. 14:45

 

 

리콴유가 말하다 

그래엄 앨리슨, 로버트 블랙윌(지음), 석동연(옮김), 행복에너지 

 

 

많은 사람들이 싱가폴을 관광 목적으로, 사업 목적으로 방문하지만, 그 곳이 민주주의 국가인가에 대해선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이와 비슷한 곳으로 두바이가 있다. 한국인들에게 '민주주의'는 뭔가 짠한 구석이 있다. 지켜야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유튜브를 통해 유언비언과 터무니없이 경도된 사상을 전파하는 유튜버들도 미디어로 관리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리콴유는 민주주의자가 아니다. 최근 민주주의 위기론도 자본주의의 관점에서 민주주의로 성공한 경우보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은 아닐까 고민 중이다. 최근에 번역 출간된 마틴 울프의 <<민주주의적 자본주의의 위기>>는 자본주의의 위기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위기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래저래 이 세상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미국의 정치 평론가들의 주장과는 달리 나는 민주주의가 반드시 발전을 가져다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한 나라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보다 기강을 세우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가 지나치면 그로 인해 기강이 무너지고 무질서한 상태가 초래되어 국가 발전을 저해한다. (69쪽) 

 

리콴유는 자신만의 스타일로 싱가폴의 현재를 만들었다. 여러 부정적 평가가 있기는 하지만, 그런 평가는 무시해도 될 정도로 싱가폴은 선망받는 도시 국가가 되었다. 그는 나라가 부강해지는 방법을 찾고자 하였으며, 능력있는 자들에게 모든 걸 쏟아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1세기 안정과 성장의 가장 중요한 화두는 '민주'가 아니라 '인구'다. (151쪽) 

 

인구의 수가 절대적으로 작은 싱가폴에서는 상위 10%를 우선시하는 교육 정책을 시행했다. 그리고 영어를 국가 언어로 채택했다. 1세대는 힘들겠지만, 2세대, 3세대로 가면 영어를 사용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되진 않았다.) 한국에서도 영어 공용화론이 대두되기도 했다. 

 

21세기를 살아갈 세대에게 영어는 이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능력이다. 영어는 비즈니스, 과학, 외교, 학문의 언어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성공을 위해서는 능숙한 영어 구사력을 갖춰야 한다. (161쪽) 

 

또한 리콴유가 바라보는 중국은 꽤 인상적이다. 그는 중국이 민주주의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리고 현재까지 그의 의견이 옳다. 심지어 일부 서양 학자들은 중국과 러시아, 민주주의가 아닌 새로운 형태의 정치적 권위주의를 높게 평가까지 했으니. 

 

따라서 5천년 역사를 통해 오로지 황제라는 권위를 내세워 통치하면서 자신의 뜻을 거스르는 자의 머리를 무수히 베었지만 민의를 알기 위해 머릿수를 센 적이 없는 중국을 보고 민주주의 국가가 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54쪽)

 

반면 민주주의는 선거라는 제도로 인해 치명적인 헛점이 있다. 문재인 정부의 좋은 정책도 있었고 나쁜 정책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나쁜 정책과 결과로 사람들은 투표하면 안 되는 정당과 인물에게 표를 주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후회나 하고 있을 지 모르겠다. 이토록 민주주의는 허약하다.  

 

국민들에게 쓴 약을 처방하는 대통령은 재선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선거에서 승리를 거두기 위해 인기 없는 정책은 미적거리거나 보류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재정적자, 부채, 높은 실업률 같은 문제는 다음 행정부로 계속 떠넘겨졌다. (...) 미국은 지도자로서 무엇이 미국을 위하는 길인지를 파악하여 설사 재선에 실패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 일을 실행에 옮기는 지도자가 꼭 필요하다. (68쪽)

 

민주사회는 저절로 굴러가지 않는다. 민주 사회의 성공에는 두 가지가 요구된다. 첫째, 국정을 운영할 정치인들은 선출하고 여론의 힘으로 통제해야 할 유권자가 깨어 있어야 한다. 둘째, 민주사회에는 정권 교체가 가능하도록 정직하고 유능한 복수의 정당이 있어야 한다. (193쪽)  

 

리콴유는 이런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며, 그에게 맞는, 그리고 싱가폴을 주위 나라(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의 침공으로부터 막기 위해 최대한 빨리 부국강병을 이루어야만 했고 성공했다. 그는 인도는 중국의 수준까지 올라가기 어렵다고 파악했으며, 무슬림에 대해서도 비관적인 전망을 했다. (실은 리콴유가 이슬람에 대해선 매우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인도는 사실 하나의 나라라기보다는 마침 영국이 부설한 철로를 따라 한데 모여 있을 뿐인 서로 다른 32개의 나라라고 봐야 한다. (108쪽)

 

결국 이 싸움은 11세기 이슬람교(당시 이슬람교는 바깥 세상을 차단하고 새로운 사상과 담을 쌓았다)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무슬림과 21세기에 걸맞는 현대식 이슬람교를 바라는 무슬림간의 다툼으로 요약될 것이다. (141쪽) 

 

 

이 책은 리콴유가 다양한 언론 매체 인터뷰나 기고문을 통해 제시했던 의견들을 모아 책으로 펴낸 것이다. 편집이 좋다. 나도 책을 적게 읽는 편이 아니고 이런저런 것들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데, 통찰력 있는 사람들을 보면 종종 내가 한심해지곤 한다. 리콴유도 그랬다. 민주주의에 대한 혹독한 평가에 대해선 기분이 좋진 않았으나, 말레이시아 연방으로부터 축출당한, 아무 것도 없던 싱가폴의 입장이라면 민주주의보다는 권위주의를 택했을 것이다. 민주주의란 투표하는 개개인의 역량에 의지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안타깝게도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를 어둡게 보는 사람들 중의 한 명이 되고 있다. 누군가가 윤석열 옆에 붙어서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왜 그런가 하고 물었다. 다 대학을 나오고 어려운 고시나 시험을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하고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까지 오른 사람들이 왜 그런가하고. 그의 답변은 '모두 교회를 다닌다'였다. 충격적이었다. 한국은 무속화된 교회가 망가뜨릴 것이다. 저게 마르틴 루터가 이야기했던 그 교회인지 ... 참 안타깝다. 도대체 저들은 신앙이 어떤 이유로 무속화시키는 것인지, 그리고 그것을 정녕 모르는 것인지, 참 한심하다. 그러니 한국의 민주주의는 답이 없는 것이다.

 

이 책은 읽어볼만하다. 나는 여러 책에서 리콴유를 인용한 것을 읽었고, 그의 통찰이 궁금해 이 책을 어렵게 구해 읽었다. 헨리 키신저가 찬탄할 만했다. 

 

그리고 11세기 이슬람에 대해서는 자료를 찾아 올리겠다. 이 때 과연 폐쇄적이었는가는 확인해봐야 된다. 십자군 원정도 이때 이루어졌으니, 이슬람은 상당히 피곤한 시절을 보내고 있긴 했다. 수피즘이 본격화되었다. 그렇지만 문화예술적으로 상당히 높은 수준에 이른 상태였으니, 폐쇄적이었는지는 확인해볼 사항이다. 덧붙이자면, 이 당시 서유럽과 이슬람 간의 격차는 너무 커서, 십자군은 그냥 약탈꾼에 지나지 않았다고 봐야 된다. 그리고 역사의 슬픈 이야기이지만, 이 전쟁으로 인해 서방과 동방의 교류가 활발해진 경향도 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 교황청이 교회 건축에 돈을 쏟아부은 것은 콘스탄티노플에 지기 싫어서 였다. 

 

 

미주)

* "내 책의 핵심주장은 민주주의와 시장 자본주의는 '상호 보완적인 대립물'이라는 것이다. 이 둘의 결합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국가를 조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점이 입증되었다. 하지만 이 결합은 또한 매우 무너지기 쉽다." - 마틴 울프, <<민주주의적 자본주의의 위기>>, 5쪽 

나는 이미 <<크랙업 캐피탈리즘>>을 이야기하면서 시장 자본주의자들이 민주주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트럼프의 재선도 여기에 해당되는 움직임이다. 과격하게 말해 민주주의는 그 위상을 잃어버리고 있다. 한국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심각하게 이 현상을 받아들이고 개선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