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년의 양식에 관하여 - 에드워드 W. 사이드 지음, 장호연 옮김/마티 |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
에드워드 사이드(지음), 장호연(옮김), 마티, 2008년
이 도시가 항상 자네를 따라다닐 테니까.
자네는 같은 거리를 걷고 같은 동네에 살다가 나이를 먹고,
결국은 같은 집에서 늙어갈 테지.
자네는 이 도시에서 벗어나지 못하네.
그러니 다른 곳에서 새로운 삶을 펼칠 희망은 버리게.
자네를 실어다 줄 배는 없네, 자네에게 열린 길은 없어.
여기 이 좁은 모퉁이에서 이제까지 삶을 낭비했듯이,
세상 어디에 가든 마찬가지로 삶을 망칠 것이네.
- 그리스 시인 콘스탄티노스 카바피의 <도시> 중에서(205쪽 재인용)
이 시처럼, 어쩌면, 아마, 그렇게 될 것이다. 이제까지 내 삶을 망쳐왔으니(내가 의도하였든 의도하지 않았든), 앞으로도 망쳐갈 것이다. (참 무책임한 비유이긴 하지만) 이 지구가 망쳐져 가는 것처럼. 터무니없게도 나는 내가 ‘세속적이고, 기지가 넘치고, 귀족적인 우아함이 있’기를 바랬지만, 이 바람은 거친 세계 자본주의 속에서 ‘시대착오’적인 무산 계급의 실현 불가능한 대부분의 것들 중 하나에 속한다.
그런데 그 스스로 '시대착오적'이라고 말하지 않는 에드워드 사이드는 아도르노 옆에 서서 시대착오적인 말년의 양식을 보여주었던 예술가들에 대해 분석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저작이 그의 유작이 되었다는 것이며, 그도 죽음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태에서 예술가들의 말년 작품들을 연구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말년의 양식에는 부르주아의 노화를 두고 보지 않고 계속 거리두기와 망명과 시대착오의 감각 - 말년의 양식은 바로 이런 것들을 표현하고, 더 중요하게는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 이를 사용한다 - 을 고집하려는 긴장이 본질적으로 내재해 있다.
- 41쪽
- 141쪽
사이드가 주목하는 말년의 양식은 거리두기, 망명, 시대 착오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그는 루키노 비스콘티의 영화 <<표범>>과 원작소설인 람페두사의 <<표범>>을 교차시키면서 영화와 소설 사이에서, ‘귀족출신이면서 대단히 시대착오적인 두 인재가 이렇게 소설과 영화에서 모두 커다란 성공을 거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한다.
그런데 그가 이 책에서 분석하고 있는 대부분의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들은 그 당시 충분한 비평적 지지와 (커다란 성공은 아닐지라도)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시대의 흐름과 거리를 두었으며, 혹은 망명을 선택하거나 종종 과거의 양식 속에서 자신의 작품을 창조하였다. 도리어 그들이 받은 비평적 지지와 대중적 인기도 낯선 것에 가깝다.
- 194쪽
'옛 형식으로 돌아가려는 태도'은 한국의 비평가들이 종종 이야기하는 '조로(早老)'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도리어 늙어가는 예술에 대한 반기에 가깝다. 미술도, 음악도, 문학도 늙어가고 있다. 그것은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다는 자괴감이고 새로운 것이 있다고 한들, 우리 삶은 변하지 않는다는 절망에 비롯된 것이다. 이럴 때일 수록 사이드가 말하는 바의 '말년의 양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 110쪽
로코코 예술가 모차르트의 유쾌하고 발랄한 단음계 속에 숨겨진 음울하고 허무주의적인 세계를 알게 되는 순간, 모차르트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모차르트의 음악이야말로 '말년의 양식'에 속한다. 꼭 장 완트완 와토의 세계처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18세기로 돌아간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18세기 로코코 자체가 바로 '시대착오'적이었기 때문이다. 상승하는 부르조아 계급 앞에서 성직자와 귀족들은 계속 고개를 뒤로 돌리며서 거리를 두고 망명하고 옛 노래만, 옛 문화만 향유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름답지만 우울하고 유쾌하지만 슬픈 예술 양식이 탄생한 것이다.
나는 그동안 내 스스로도 '시대착오'이면서 '시대착오'라는 단어를 부정적으로만 사용해 왔다. '시대착오'라는 단어에 대한 새로운 의미 하나를 알게 되었고, 그것이 얼마나 매력적인 호소력을 가지고 있는가를 확인했다. 우리는 이 책에서 많은 예술가들을 만나고 그들의 말년성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문학비평가로서 에드워드 사이드의 역량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철학, 음악, 문학을 가로지르며 폭 넓고 깊이 있는 비평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