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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게으른 달력 





몇 번의 계절이 지나고

이제 우울한 벚꽃은 하얗게 썩어버렸다

마차는 덜컹덜컹 먼 곳을 달리고

바다도 시골도 고요한 공기 속에서 잠자고 있다

어쩌면 이다지도 게으른 날일까

운명은 연달아 어두워져 가고

쓸쓸한 우울증은 버드나무 잎 그늘에 흐려져 있다

이제 달력도 없다 기억도 없다

나는 제비처럼 홀로서기를 해, 그리하여 신기한 풍경 끝을 날아가겠다

옛날의 사랑이여 사랑하는 고양이여

나는 하나의 노래를 알고 있다

그리하여 먼 해초를 태우는 하늘에서 짓무르는 것 같은 키스를 던지겠다

아마 이 슬픈 정열 이외는 그 어떤 단어도 알지 못한다



- 하기와라 사쿠타로(지음), 서재곤(옮김), <우울한 고양이>, 지만지 

*   * 



하기와라 사쿠타로(萩原 朔太郎, 1886 ~ 1942)의 시를 읽는다. 사쿠타로도 오랜만이구나. '쓸쓸한 우울증'이라는 단어를 읽곤 아, 우울증은 쓸쓸했구나 라며 작은 소리로 되뇌었다. 젊은 시절의 사쿠타로도 꽤 쓸쓸했나 보다, 하는 생각도 잠시, 그의 말년은 일본주의자로 점철되어 있다. '일본 근대시의 아버지'라고 불리고 있으나, 한국에 소개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하기와라 사쿠타로의 1923년 시집, <우울한 고양이>



1924년의 하기와라 사쿠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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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고양이(靑猫)




이 아름다운 도시를 사랑하는 것은 좋은 것이다.

이 아름다운 도시의 건축을 사랑하는 것은 좋은 것이다. 

모든 상냥한 여성을 찾기 위해

모든 고귀한 생활을 찾기 위해

이 도시에 와서 번화한 거리를 지나가는 것은 좋은 것이다.

거리를 따라 서 있는 벚나무 가로수

거기에도 무수한 참새들이 지저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아 이 거대한 도시의 밤에 잠들 수 있는 것은

오직 한 마리의 우울한 고양이 그림자다

슬픈 인류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고양이 그림자다

우리가 찾기를 그치지 않는 행복의 우울한 그림자다.

어떤 그림자를 찾기에

진눈깨비 내리는 날에도 우리는 도쿄(東京)를 그립다고 생각해

그곳 뒷골목 벽에 차갑게 기대어 있는

이 사람과 같은 거지는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 하기와라 사쿠타로(1886 ~ 1942) (서재곤 역) 






점심 식사 대신 우울한 고양이를 만난다. 아, 어느 새 나는 술 취하고 싶은 한 마리 고양이 꿈을 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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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느와르의 초기 작품들은 정말 매력적이다. 그가 배워왔던 페인팅과 앞으로 나아갈 페인팅이 서로 섞이고, 작품을 통해 성취하고 하는 젊은 열망들이 색채로 뿜어져 나온다고 할까. 한 때 '젊음'에 대한 평문을 쓰고 싶었는데, ... 지금이라면 가능할까. 오랜만에 르느와르 작품들을 찾아 봐야겠다. 





-- 

2003년 11월 28일에 쓴 글. 






Young Boy with a Cat

1868-69

Oil on canvas

43 3/4 x 26 1/4 in (124 x 67 cm)

Musee d'Orsay, Paris 



이 그림을 보면서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를 떠올린 이유는 뭘까. 약간 신비스러워 보이는 이 작품은 르누와르의 초기 작품으로 고양이를 스다듬는 소년의 뒷모습을 담고 있다. 앞의 꽃무늬 천이나 고양이의 처리는 무척 마음에 든다. 그리고 소년의 누드는 무척 이국적이면서 애로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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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답네요..카프카라니,.. 공감입니다. 뭔가호밀밭의파수꾼이 되기전모습이랄까요?^^

    • 그 때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를 읽고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잡지에 글 하나를 썼고요. 그 이후로 하루키를 손에 든 적은 없네요. ㅋ. ~ 호밀밭의 파수꾼은 ... 뭔가 사고 치는 이미지가 떠올라요. 파수꾼 되기 전이라면 ... ㅎㅎ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작은 아파트 하나 얻어 혼자

고양이 키우면서 살고 싶다. 

고양이 먹이 주면서 아침 떠오르는 해를 쳐다보며 삶을 비관하고 싶다.

순환적 역사관을 굳게 믿으며 내 생 다시 꽃 필 날 있을 거라고 믿으며 그렇게 혼자 살고 싶다.

봄에는 이름 모를 꽃향기가 스며들고

가을이면 낙엽 지는 소리가 들리는 그런 아파트였으면 좋겠다.

여름에는 바람은 불되, 아무도 찾지 않는 아파트이면 좋겠고

겨울에는 눈이 쌓이고 

밤의 하늘이 낮게 드리우고 

사랑하는 여자만 찾아오는 그런 아파트였으면 좋겠다.


그런 작은 아파트에서, 오래된 오디오 시스템에서 

흘러나오는 말러나 슈베르트의 음악을 들으며 살고 싶다.

낮고 긴 서가에 빼곡히 꽂힌 책들 중 한 권을 꺼내 

오후의 햇살이 들어오는 거실에 앉아 책을 읽으며 살고 싶다.


그렇게 나, 그렇게 혼자 고양이 키우며 

세상을 증오하고 삶을 비관하며 사랑을 믿지 않으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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