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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창 밖으로 공항이 보였고 공항 너머로 지는 붉은 태양을 보았다. 나는 런닝머신 위에서 달리고 있었다. 전화 한 통도 오지 않는 토요일이었다. 누군가에게 전화하기도 다소 무서운 날이었다. 문득문득 세상이, 사람들이 무서워지는 봄이었고 번번이 다치는 마음이 싫은 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2시간 정도 운동을 했고 도어즈의 인디안썸머를 들으며 이미 어두워진 봄밤과 싸우고 있었다. 1996년이니, 내가 대학교 3학년 때였다. 소설을 쓰지 못하는 마음을 가진 터라, 내가 한 때 글을 썼다는 게 신기하게 여겨질 정도다. 단편영화 소재를 찾는 이가 있어, 블로그에 올린다. 좋아할지 모르겠다.

 

 

 

 

 

샌드위치 가게의 봄

 

 

 

늘 반듯하게 포장된 아스팔트 도로 한 켠으로, 어디에선가 날아왔을 법한, 잔 모래가 쌓이는 법이다. 그 모래를 발로 이리저리 헤집으며, 그 계절을 보냈다. . 내가 살던 C시에 그렇게 봄은 존재했다.

 

거리 양 쪽으로 고급스럽게 보이는 의상실과 귀금속방, 향수 전문점 들이 있었고, 봄과 가을, 한껏 물오른 처녀들은 그 거리에서 젊음의 반을 보내고 돌아다녔다. 그리고 난 학교를 가기 위해선 그 거리의 한 구석에, 고대의 유물 같이, 외로이 서있는 정류소 표지판 아래 서서, 버스를 기다려야만 했다.

 

가끔,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을 때가 있기 마련이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바로 옆에 있는 편의점에 들어가 캔음료라도 하나 마시고 있을 때면, 어떻게 때를 잘 맞춰 지나가는지, 허공 위로 하얗게 먼지가 날아오른다.

 

그 봄, 그렇게 몇 대의 버스를 지나쳤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요기라도 하자는 생각으로 자그마한 샌드위치 가게로 들어갔다.

 

커다란 유리창으로, 맞은 편 거리가 한 눈에 들어오고, 요리조리 옷을 차려 입은 처녀들의 모습이 비쳤고, 그들 중 몇 명은 내가 자주 가던 바의 단골이기도 했다.

대체로 사치스러워 보이는 거리 한 켠의 샌드위치 전문점에서는 햄 굽는 고소한 냄새 대신에, 지친 인생의 노을같은 향기가 나기 마련이다. 두꺼운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면, 대체로 젊은 처녀 대신, 중년의 여자가, 혼자 네댓 평 되는 샌드위치 전문점을 지키고 있다.

 

싸구려 인생 같은 가방을 테이블 위에 던져놓고....... 주문을 한다...... 요거 하나하고......요거 하나 주세요......얼마죠?......잠시만 기다리세요......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른다......투명한 유리창으로 비친 거리는 한없이 평온해 보였다.....햇살은 절대 유리창을 깨는 법 없이 통과했고, 그렇게 젊음도 지나치리라 생각했다......가끔, 투명한 유리창이 피로 얼룩지는 상상을 한다......주윤발이 나오는 홍콩영화의 장면 마냥....그러면, 싸구려 인생 같은 가방에서......묵직한 권총 하나가 나오고......커다란 유리창을......의자를 집어 던져.......깨고는......테이블 하나를 방패 삼아......거리가 자욱하게 화약 냄새가 퍼지게 한다......여기 나왔어요.....그녀의 목소리는 커다란 유리창에 부딪혀 메아리가 되었다.

 

다섯 평 남짓 되는 좁은 공간에서도 메아리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거리를 바라다 보았다. 그리고, 날 실어갈 버스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고, 그 지나간 자리 위로 날아오르는 먼지와, 그 먼지에 부딪혀 깨지는 소리를 보았다.

“ 학생인가 봐요? ”

......”

정적을 깨며, 그녀의 입에서 나를 향해, 나의 신분을 묻는 소리가 들렸다. 

“ 여기 장사 잘 안 되죠? ”

“ 안되더군요. 번화한 거리라, 샌드위치 가게가 될 줄 알았는데. ”

“ 이런, 또 지나가는군. ”

“ 호호호.... ”

 

커다란 유리창 속으로 샌드위치를 먹는 20대중반의 청년과, 미소를 지으며, 그 청년을 바라보는 중년의 여자. 이름 모를 행인들은 분명 불륜을 연상을 했으리라. 1996. 불륜 같은 해였으니까.

“ 그래도, 여기 가게세 장난이 아니겠는데요? ”

“ 그렇죠. 이 정도 가게를 하려고 해도, 몇 억이 필요하니. ”

...... ”

“ 요즘 애들은 웃기더군요. 3짜리 딸년이 있는데, 독서실에서 공부를 한다고 온다고, 매일 늦게 들어오더라고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편의점 같은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더라고요. ”

...... ”

“ 대학 안 들어갈 거냐고? 그랬더니, 대학이 인생의 전부냐고 댓구를 하더군요. ”

“ 뭐, 원래, 그 나이 때가 그렇죠. ”

“ 가끔 친구들을 만나죠. 고등학교 때나, 중학교 때 친구들. 그런데, 그때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 들어간 친구들은 한결같이 못 살아요. 어떤 친구는 요번 남편 회사 감원바람 때문에, 아예 시골로 내려갔어요. ”

...... ”

“ 학교 다닐 때, 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고, 매일 놀 궁리만 하고, 그렇게 살았던 아이들은 다들 외제차 몰고 다니고, 근사한 가게 몇 개 있고, 빌딩 몇 개 있고 그래요. 한때 공부 잘 하는 아이들한테 주눅이 들었던 아이들이었는데. ”

...... ”

 

침묵은 버겁다. 삶에 지친, 중년의 여자의 고단한 인생살이를 들어주는, 내 혀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침묵의 발자국. 그녀는 친구이야기에서 시작해, 그녀의 남편이야기까지 했다. 대학에서 일한다는 그녀의 남편을 통해, 대학의 비리를 하나 둘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대학원에 가겠다는 날 보더니, 그래도 대학원까지는 나와야 된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는 동안, 날 실어갈 버스는 아예 날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쳤고, 테이블 위에, 싸구려 인생 같은 가방과, 불륜 같은 커피가 담긴 하얀 머그잔이 있었다.

 

커피를 마실 때, 언제나 두려워 하는 한 가지 : 고등학교 시절 짝사랑하던 소녀의 머리 색깔 같은, 진한 갈색 커피가 내 속으로 사라지고, 머그잔이 주검처럼 하얀 바닥을 들러내는 그 순간. 난 그 순간이 두려웠다. 그래서, 대체로 바닥까지 마시지 않았다. 하지만, 그 여자의 목소리가 다섯 평 남짓 되는, 사각의 공간을 메아리로 울리고 있을 때, 난 주검 같은 하얀 바닥을 만들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버스 기다리다가, 안 오면, 들어와요. 그냥 커피 한 잔 줄 테니까. ”

“ 아........... ”

 

장사가 안 되는, 그 샌드위치 가게의, 커피를 그냥 주겠다며, 그렇게, 너무 순진하게, 손님을 끌어모으는 중년의 여자에게, 커피를 잘 마셨다 라는 말 한 마디를 하고 일어나야 했다.

 

불륜 같은 96년을, 그렇게 보내고, 난 그 이후 사치스런 그 거리에 나가지 않았고, 얼마 후, C시를 떠났다.

그러다가, 올 봄 용무가 있어, 그 거리에 다시 갔을 때, 그 샌드위치 가게의 커다란 유리창에는점포 매매라는 종이가 적혀 있었고, 가게 내부는 하얗게 뜯기고 있었다. 샌드위치 가게가 있었던 자리 바로 옆, 편의점으로 들어가 투명한 플라스틱 포장이 된 샌드위치 하나를 사며, 옆 샌드위치가게 어떻게 된 거냐 물었다.

“ 그 아주머니요? 뭐라더라. 바람을 피웠대나 봐요. 20대 중반 밖에 안 되는 놈하고 눈이 맞았대나. 그 집안 콩가루 된 거죠. 재수하는 딸 까지 있다던데...”

 

순간, 비가 내렸다. 내가 그 중년의 얼굴을 기억해 내는 순간, 행인들은 비를 피해, 건물 속으로, 가게 처마 밑으로 달려가고 있을 때, 난 그냥, 그렇게, 혼자, 플라스틱 포장된 샌드위치를 뜯다 말고, 편의점 밖으로 나가, 하얗게 뜯기고 있는 가게 앞, 비 내리는 97년 봄 한 가운데에 서서, 중년 여자의 절망같이 사라지는, 샌드위치 가게의 흔적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내 봄은 사라지고 있었다.   



Comment +2

  • noi 2010.05.17 02:50 신고

    안그래도 얼마전 지하철역 구내서점 같은 데를 쓸데없이 서성거리다 지하철 세 대를 연속으로 놓치는 꿈을 꿨던 까닭에 지하련님의 귀한 글을 읽으며 미소가 일었습니다. 쓸쓸함이 느껴지는 글이네요. 읽으면서 그 중년여인의 삶이 궁금해졌습니다.

    • 나이가 들수록 보이지 않는 쓸쓸함이 늘어나는 것같아요. 마치 20대 후반처럼 살고 있지만, 저도 얼마 지나지 않아 중년의 나이가 되네요. 크~. 새로운 책 오늘 주문할 예정입니다. 아. 리뷰를 못 올리고 있네요. ㅋ



지난 주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가만히 있어도 목 둘레와 어깨가 아프다. 해야 일은 많고 내 마음은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 80년대 후반, 성음레코드에서 나온 팻 매쓰니의 레코드를 낡은 파이오니아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작고 네모난 창으로 밀려드는 6월의 축축하고 선선한 바람이 내 피부에 와 닿는 느낌에 아파한다. 잠시 감기에 걸릴 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느꼈다.

혼자 있으면서 아픈 것 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 아주 가끔, 이 방 안에서 내가 죽으면, 나는 분명 며칠이 지난 후에 발견될 것이다. 그래서 더 무서운 것일까.

르 끌레지오의 젊은 날에 발표한 소설 '침묵'은 자신이 죽은 후의 독백으로 이루어져 있다. 김현의 번역을 좋아했는데, 복사해놓은 종이는 잃어버렸고 김화영의 번역본은 어디에 있는지 서재 안에서 사라져버렸다.

하긴 죽음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만큼 삶에 대한 열망도 비례하는 것일 테다. 일요일 오후, 이리저리 서성거리는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고작 육체의 고통에만 예민해져 있었다.

대학 다닐 때, 한창 문학을 공부할 때, 기형도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이 들고 보니, 기형도만이 내 위안으로 남아있었다. 죽은 자의 힘인가. 마치 소설가 유미리가 그녀의 사춘기를 견디게 한 힘처럼.



대학 시절

                                      기형도
   

나무의자 밑에는 버려진 책들이 가득하였다. 
은백양의 숲은 깊고 아름다웠지만 
그곳에는 나뭇잎조차 무기로 사용되었다. 
그 아름다운 숲에 이르면 청년들은 각오한 듯 
눈을 감고 지나갔다, 돌층계 위에서 
나는 플라톤을 읽었다, 그 때마다 총성이 울렸다. 
목련철이 오면 친구들은 감옥과 군대로 흩어졌고 
시를 쓰던 후배는 자신이 기관원이라고 털어놓았다. 
존경하는 교수가 있었으나 그분은 원체 말이 없었다. 
몇 번의 겨울이 지나자 나는 외토리가 되었다. 
그리고 졸업이었다,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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