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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Strauss(지음), 강주헌(옮김), 아르테, 2015 




누구나 자신의 관습에 속하지 않은 것을 야만적인 것으로 부른다

- 몽테뉴, <<수상록>> 중에서 


문명과 야만의 경계는 어디일까? 몽테뉴의 말대로 우리의 관습에 속하지 않은 것들은 모두 야만일까? 그러나 레비-스토스의 생각은 다른 듯 싶다. 


"계몽시대의 철학이 인류 역사에 존재한 모든 사회를 비판하며 합리적 사회의 유토피아를 꿈꾸었다면, 상대주의는 하나의 문화가 권위를 앞세워 다른 문화를 재단하는 절대적인 기준을 거부했다. 몽테뉴 이후로, 그의 선례를 따라 많은 철학자가 이런 모순에서 탈출할 출구를 끊임없이 모색해왔다."

-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하지만 이 상대주의가 우리의 일상에선 쉽지 않은 일임을 잘 안다. 대체로 우리 주변 대부분은 레비-스트로스가 말하는 바 상대주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뿐더라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그러면서 스스로 (선택받은) 문명 세계에 살고 있으며 (우리들과 다른) 이방인들은 야만의 세계에 속한다고 여기고 있는 건 아닌가 반성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바 야만에 대해 이야기하며 우리 문명과 얼마나 가까운가를 보여준다. 가령 장신구 문화는 고대로부터 이어져온 야만의 형태다. 이제 내용은 사라지고 형식만 남아 우리의 문화를 형성하고 있으나, 애초에 주술적인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다이아몬드는 독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고, 루비는 유해한 기운을 물리치며, 사파이어는 진통효과를 지니고, 터키옥은 위험을 미리 알려주며, 자수정은 그리스어 '아메두스토스'의 의미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술기운을 쫓아낸다고 수 세기 전까지 믿었기 때문에 그런 보석들이 중요하게 여겨지고 비싸게 거래되었다는 것을 요즘에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 91쪽 


장신구는 우리 문화의 한 부분을 차지하며, 더구나 그 부분은 내가 '야생의 사고pense'e sauvage'라고 칭했던 것이 생생하게 지속되는 부분이다. 우리 시대의 여성도 귀걸이를 착용한다. 그런 여성이나, 그런 여성을 바라보는 남자도 불멸의 물질로 소멸하는 몸을 굳건히 해야 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는 셈이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장신구가 물렁물렁한 곳을 딱딱한 것으로 변화시키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 93쪽 


이와 반대로 우리 스스로 야만적 형태, 주술적 방식을 사용하기도 한다. 꽤 당혹스러운 방식이어서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최근의 일이라는 사실을 알곤 실제로 일어난 일인가 반문하기까지 했다. 


주일학교 아이들이 보는 가운데 산타클로스가 디종 성당 앞 광장에서 불태워졌다. - 디종, 1951년 12월 24일

- 12쪽 


일종의 화형식이었는데, 보수적인 가톨릭의 입장에서 산타클로스는 이교도의 문화였으며 천박한 자본주의로 보였을 지도 모른다. 


종교 당국은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를 왜곡하며 종교적 가치가 없는 신화를 대중의 머릿 속에 심어주며 그리스도의 탄생을 불순하게 '이교도화'하려는 시도를 신랄하게 규탄했다. 

-11쪽 


확실히 산타클로스는 이교도적이고 지독히 상업적이다. 그것에는 종교적인 것은 없다. 산타클로스를 두고 신앙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런 측면에서 종교당국(프랑스 가톨릭)의 입장은 이해되고 당연해보이긴 하지만 레비-스트로스는 이 행위가 얼마나 고대적이며 주술적인 것인가를 드러낸다. 


식인풍습에 대한 글도 흥미로웠다. 식인풍습이 일종의 약탈이나 살인 행위의 일종일 것이라 여겼던 나에게, 실은 '사랑과 존경의 표현'으로서의 식인 풍습은 매우 의외였다. 내 생각은 더 나아가 성경에서 언급된, 빵과 포도주를 나누며 이것이 내 살과 피라고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에까지 이어졌다(<<길가메시 서사시>>와 구약 성경의 일부 이야기들은 얼마나 닮아있는가).


민족학자들은 그 지역에 들어가 다른 가정 하에 구루병의 원인을 조사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지배를 받기 전에, 구루병이 만연한 부족사회의 식인 풍습이 있었다. 가까운 친척의 시신을 먹는 것이 고인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표현한 한 방법이었다. 그들은 고인의 살과 내장 및 뇌를 익혀 먹었고  빻은 뼈를 채소와 함께 조리해 먹었다. 여성이 시신을 잘라내서 조리하는 역할을 맡았던 까닭에, 시신으로 여성이 감염된 뇌를 다루는 과정에서 병원균에 감염되었을 것이고, 신체적 접촉으로 인해 어린 아이에게도 옮겼을 것이라고 가정할 수 있었다.

- 123쪽 

(* 구루병 - 우리에겐 광우병으로 잘 알려진 '크로이츠 펠트야코프 병'을 의미함. 양의 경우에는 '진정병scrapie'라고 함. 지연성 바이러스로 인한 퇴행성 질환이며, 식인 풍습과 밀접한 연관관계를 가짐)


구루병의 원인을 조사하던 과정에서 식인풍습에 대해 보다 더 깊이 알게 된 건 꽤 흥미로운 일이다. 또한 '먹다'와 '성교하다'라는 단어가 문명에 상관없이 거의 모든 언어에서 같은 단어로 사용된다는 것이나. 모권제 사회에 대한 추측은 잘못된 정보라는 언급은 기억해둘만 했다. 


민족학 연구가 발전하면서, 한때 확실하다고 생각했던 모권제의 환상에 종지부가 찍어졌다. 부권제 아래에서는 당연하지만 모권제 아래에서도 권력은 남성의 몫이었다는 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모권제에서는 어머니의 남자 형제들이 권력을 행사했고, 부권제에서는 남편이 권력을 생사한다는 게 유일한 차이였다.

- 154쪽 


이 책에 실린 레비-스트로스의 글은 대부분 저널에 실렸던 것이라 그 길이가 짧고 편하게 읽을 수 있다. 무척 시사적이면서도 그 소재나 주제가 흥미로워 추천할 만하다. 


내 경우엔 이 책을 다소 급하게 읽긴 했으나, 오귀스트 콩트에 대한 레비-스트로스의 언급이 기억에 남는다. 아직 콩트의 책을 읽지 않았고 그 위상에 대해서 생각해본 바가 없었으나, 콩트의 실증주의적 태도가 후대 학문에 꽤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콩트가 이야기했던 그 이론들이 지금도 유의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 


아래는 니콜라 푸생의 <에코와 나르시스>>에 대한 언급이 있어 메모해둔다. 


Echo and Narcissus

Nicolas Poussin(1594-1665), oil on canvas, 74 cm* 100 cm, 1630, Louvre Museum 

이미지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



무엇보다 그림의 구도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모든 선이 분산되며 서로 멀어진다. 나르키소스의 두 다리는 오른쪽을 향해 벌어졌고, 두 팔은 서로 반대방향을 향한다. 다른 두 인물, 즉 숲의 요정인 에코와 장례의 횃불을 쥐고 잇는 푸토의 몸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다. 이런 분산은 그림에서 윗부분을 차지한 나뭇가지에서도 반복된다. 이런 분산 방향은 메아리(숲의 요정 에코는 나르키소스를 사랑했지만 거절당하자 슬픔으로 몸은 없어지고 메아리가 되었다 - 옮긴이)의 청각적 현상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메아리는 소리의 원점에서 점점 멀어지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사라지지 않는가. 보들레르의 유명한 시가 그렇듯이, 감각적 자료들 간에 연상되는 이런 조응(correspondance)으로 푸생의 그림에서는 멜랑콜리, 즉 일정한 배색 효과로 강조된 회상에 젖은 서글픔이 느껴진다.

- 144 ~ 5쪽 



푸생의 그림에서 주조를 이룬듯한 분산이 온갖 모습으로 나타난다. 멍청한 듯 하면서도 기막히게 놀라운 일을 해내는 메아리의 물리적 현상에 내재된 분산이다. 따라서 메아리는 호기심을 자극하고, 산책자와 여행자를 유혹한다. 푸생의 그림이 요정 에코와 초자연적 세계의 작은 특사(푸토)가 취한 상반된 방향을 강조함으로써 명백하게 드러낸 분산이기도 하다. 에코는 일관된 단조로운 색조로 이미 자신과 하나가 되어버린 바위의 형상으로 땅을 향하고 있다. 이런 대비가 구도와 색이란 상보적인 수단을 이용해서 에코 요정의 헛된 회상과 나르키소스의 숙명적인 오해, 그리고 메아리의 무익함과 전능함을 하나의 그림에 담아내고 있다.

- 152쪽 








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 - 10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지음, 강주헌 옮김/arte(아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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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열대 - 10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지음, 박옥줄 옮김/한길사



슬픈 열대 Tristes Tropiques
끌로드 레비-스트로스 Claude Levi-Strauss
박옥줄 옮김, 한길사, 1998(원저: 1955)



여행이여, 이제 그대가 우리에게 맨 먼저 보여주는 것은 바로 인류의 면전에 내던져진 우리 자신의 오물이다. - 140쪽

1. 여행 문학으로서의 ‘슬픈 열대’

20세기 세계 문학사에서 여행문학의 대표적인 저서로 손꼽히는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 하지만 나는 대학을 다니는 4년 내내 한 번도 이 책을 교수나 강사에게서 권유 받았던 적이 없다. 이 책을 읽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어느 외국 신문의 기사에서 20세기 후반 프랑스 문학에서 가장 탁월한 여행기라는 평가를 읽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http://intempus.tistory.com/403)이라는 다소 어수선하며,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의 나열로 읽히는 산문집에 열광하는 독자에게 여행문학의 정수를 알려주고 싶었다.(1)


하지만 이 책은 일반 독자가 읽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것으로 밝혀졌다. 역자의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적 사유에 대한 비판’이라는 해설은 석사 과정 이상의 인문학 전공자들을 위한 것이었으며, 번역은 마치 수 십 년 전 번역한 것을 대강 다듬어 다시 펴낸 듯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 책에 대한 독서는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늘길 여행이 보편화된 요즘, 몇 달씩 걸리는 바다길 여행은 육체적 고단함과 피폐함, 지루함과 스트레스로 가득 차 있지만, 종종 아래와 같은 낭만적 표현을 선사해주기도 한다.

고대의 항해자들이 그토록 무서워하였던 적도 부근의 농무지대가 가까워짐에 따라서 양반구(兩半球)에 고유한 바람들이 모두 사라져버렸다. … 미풍 한 점 없는 하늘에 검은 구름들만이 해면으로 서서히 움직이면서 중력에 감응하고 있었다. 만약 이 구름들이 왕성한 활력을 지닌 것이었더라면, 그것들은 번쩍거리는 해면을 스치고 지나가면서, 그것을 깨끗이 청소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태양 광선을 간접적으로 받고 있는 해양에는 공기와 물 사이의 빛의 가치에 대한 통상적인 관계를 뒤집어놓는, 단조롭고 번들거리는 반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모든 생명체가 바다로부터 소멸되어버린 것 같았다. 우리들 앞에서 하얀 파도 사이를 우아하게 헤엄쳐 나가던 돌고래들도 보이지 않았고, 수평선에는 고래들이 뿜어 올리던 물기둥도 없었으며, 적자색(赤紫色)의 앵무조개과가 이루던 장관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 192쪽



또한 레비-스트로스의 여행에 대한 성찰은 누구나 흉내 내어 쓰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사람들은 보통 여행을 공간의 이동이라는 면에서 생각한다. 그러나 장기간의 여행은 공간 뿐만 아니라 시간, 사회적 서열에서의 변화도 수반한다. - 211쪽


그리고 그의 세심한 관찰력과 표현력은 독자들에게 딱딱한 인문학 서적에서 줄 수 없는 묘미를 선사하고 있었다.

비는 이 도시에 스며들고 있는 습기로부터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마치 보편적인 증기가 진주색의 물방울로 변하는 것같다. 마치 유럽에서처럼 비는 일직선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빗방울은 공기 속에서 습기와 뒤섞인 다수의 매우 작은 물방울처럼 창백하게 번쩍이는 것 같다. - 230쪽


1930년대 브라질에서의 레비-스트로스. '슬픈 열대'의 배경이 되었던 시절이다.
출처 - http://www.telegraph.co.uk/news/obituaries/science-obituaries/6496558/Claude-Levi-Strauss.html


2. 구조주의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

구조주의의 시작은 아마 레비-스트로스로 지칭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레비-스트로스는 이러한 평가에 대해 한 발 물러나 부정한다. “오늘 날 프랑스 지식인들이 이해하고 있는 의미에서라면, 나는 구조주의자가 아니다. … 나는 결코 어떤 지적 운동이나 주의를 주장하거나 이끌지 않았으며, 오직 민족학자의 집단에 둘러싸여 고립적 활동을 계속하였을 뿐이다”

그러나 레비-스트로스는 구조주의의 입장에서 그의 학문을 전개하였음에 분명하다. 그렇다면 구조주의란 무엇인가? 이 서평에서 구조주의에 대해서 설명하는 내 모습이 다소 무모해 보이지만, 짧게 언급해볼까 한다.

2-1. 언어에 대한 탐구

현대 인문학(철학)을 여는 인물로 우리는 페르디낭 드 소쉬르를 맨 앞에 위치시켜야만 한다(니체가 아니라!). 하지만 소쉬르는 순수한 언어학자라는 점에서, 그가 창안해 낸 개념들이 현대 인문학을 주름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읽히지 않는 학자가 되어버렸다.(2)


그의 ‘일반 언어학 강의’는 20세기 철학을 물들이게 될 허무주의와 반역사주의에 대한 이정표와도 같은 저서이다. 그는 먼저 언어를 기표(시니피앙)와 기의(시니피에)로 나눈다. 우리가 나무를 ‘나무’라고 할 때, ‘나무’라는 단어를 기표, 실제 땅에 심어져 자라는 나무를 기의라고 한다. 이는 ‘형식과 내용(의미)’에 대한 오래된 분류법에 대한 또 다른 변주라고 평가절하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 둘,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관계가 필연적이 아니라 자의적인 것이라고 할 때 시작된다. 즉 우리는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나무를 ‘술병’이라고 표기하여도 되고, ‘탁자’라고 표기하여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자의적인 관계를 극복하기 위해 소쉬르는 사회적 언어로서의 ‘랑그’와 개인적 언어로서의 ‘파롤’을 제시한다.(3)

우리가 쓰는 언어는 사회적 언어로서의 ‘랑그’이며, 개인적 언어로서의 ‘파롤’은 어린 아이 시절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거나 무의식의 차원에 머물러있을 뿐이다. 또한 그는 언어에 대한 연구는 공시적 차원(동일한 공간)과 통시적 차원(시간의 흐름, 또는 구분)으로 연구될 수 있으며 이를 공시태, 통시태라고 표기한다.

소쉬르의 언어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관계를 ‘자의적 관계’라고 파악했다는 점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다. 이는 토마스 쿤이 과학법칙이란 당대 과학자들의 사회적 합의이지, 실제의 자연 현상과는 무관한 것이다라고 한 것과 동일한 지평에 있는 것이다.(4) 또한 중세의 유명론(nominalism, 唯名論)과도 맞닿아 있는 해석이기도 한다.

다시 말해 형식과 내용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동일한 표기라고 하더라도, 그 내용은 다를 수 있다. 누군가 ‘나무’라고 말했을 때, 그것을 들은 사람들은 각기 다른 나무를 떠올린다는 점이다. 또한 누군가 ‘나무’라고 말했을 때, 그 나무가 우리가 떠올리는 바 나무가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다. 종국에는 랑그란 존재하지 않고 파롤만 존재하게 되는 어떤 세계가 도래한다.

소쉬르의 언어학은 이러한 허무주의를 밑바닥에 깔고 있다. 그리고 현대 철학은 소쉬르가 제시해놓은 언어학적 인식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2-2. 구조주의

구조주의는 소쉬르 이후의 언어학자들이 언어에 대한 연구 태도를 인문학 전반으로 확장시킨 학문 태도를 일컫는 단어이다. 인류학에서는 레비-스트로스, 문학 비평에서는 롤랑 바르트, 정신분석학에서는 자끄 라캉, 철학과 역사 연구에 있어서는 미셸 푸코, 마르크스 연구에 있어서는 루이 알튀세르 등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 각자는 연구 태도에서만 유사점을 드러낼 뿐, 각기 다른 영역에서 다른 학문 세계를 추구하였다는 점에서 이들을 구조주의자라는 한 단어로 묶는 것은 이들이 가지고 있는 독창성을 무시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구조주의자로 불리게 되는 이유를 레비-스트로스에게서 찾아보기로 하자.

레비-스트로스는 브라질의 원시 부족을 탐구하면서 다양한 삶의 형태들(기표)을 서술한다. 그리고 형태의 의미(기의)를 탐구한다. 하지만 그 의미는 부족들마다 각기 다른 형태로 표현된다. 심지어 그는 동아시아와 유럽을 넘나든다. 즉 소쉬르의 언어학에서 기표와 기의의 관계가 자의적이듯이, 삶의 보여지는 형태로 인해 그들 삶의 가치를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고 단정하는 것이다.

만약에 물고기가 명암에 의해서 냄새를 미학적으로 구분한다면, 또 벌들이 빛의 강도를 무게에 의해서 분류한다면 - 벌들에게 어둠은 무거운 것, 밝음은 가벼운 것이므로 - 화가, 시인 또는 음악가의 작품과 신화, 그리고 미개인들의 상징은, 우수한 형태로서는 아니더라도 가장 근본적이며 또 우리가 공통으로 지니고 있는 것으로는 유일한 지식으로서 우리 앞에 나타나야만 한다. - 266쪽


 

현재의 서양과 동양 간의 오해는 우선 의미론적인 것에서 비롯된다. 동양에서 우리(서양인)가 선전하는 개념의 형식은 그곳에서는 의미가 존재하지 않거나, 아니면 의미가 다른 것이다. - 309쪽



이렇듯 기표와 기의의 문제를 인류학 전반으로 확장시키는 레비-스트로스는 문명의 우열이나 시간에 따라 진보한다는 찰스 다윈식의 역사주의를 거부한다.

왜냐하면 레비-스트로스식의 역사 의식에 따른다면, 인류 역사의 전 과정은 하나의 동일선상에서 유지되어온 의미나 지식의 축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각 시대와 공간적 특성에 따라, 동일한 구조가 다양하게 변모하였을 뿐인 것이다. 물론 그는 진보의 개념을 비난하려는 의도는 결코 지니지 않았다. 단지 그는 진보란 인간 발달의 차원에 대한 범주로서, 어떤 사회가 자기 인식의 단계에 도달하게 되면, 언제든지 다른 차원으로 이전되어 버리는 동일한 구조 내의 불연속적 다양화일 뿐이라고 간주한다. - 역자 서문, 92쪽


출처- http://web.mac.com/ 


레비-스트로스는 루소를 다시 읽으며, ‘남비콰라족의 사회가 내가 그 사회에서 오직 인간만이 발견할 수 있었을 정도로 단순화된 상태’라고 평가하는 것이다.

구조주의는 소쉬르 언어학의 태도를 학문 연구 태도로 받아들여, 역사에 대한 부정을 기본 태도로 받아들여, 반역사주의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다. 내가 지금 이를 오명이라고 하는 이유는 지금 보여지는 것에 대한 진실한 탐구가 결국에는 변하지 않는 어떤 것을 상정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기존 역사주의가 가졌던 획일적 방식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구조주의가 가졌던 미덕을 ‘반역사주의’로 획일화시켜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3. '슬픈 열대'를 덮으며

이 책은 레비-스트로스의 여행기이다. 그가 브라질에 가게 되었던 이유, 그가 인류학자로서 첫 발을 내딛게 된 사연, 그리고 브라질에서 만났던 원시 부족에 대한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라져가는 미지의 풍경에 대한 안타까움까지 묻어난다.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번역 서적이 가지는 몇 가지 고질적인 문제 탓이며, 이런 종류의 책을 자주 접해보지 않는 탓일 것이다.

레비-스트로스의 학문 세계를 드러내려는 목적은 아니었으나, 책을 읽고 쓰는 감상문 치고는 다소 길게 적었다. 그의 다른 책들 - 가령, ‘야생적 사고’나 ‘신화학’은 레비-스트로스의 학문 세계를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학문 세계가 궁금하다면 이 책들을 읽기 바란다.

 

미주)
1. 이 책은 독서모임 ‘빡센’(http://cafe.naver.com/spacewine)의 다섯 번째 도서로 읽었다. 무려 700페이지가 넘는 책을 하루 종일 사무실에 매여 있는 직장인이 읽기엔 적당한 강제력이 필요한 책이었다.
2. 소쉬르에 대한 무관심은 다른 학자들에 대한 열광적인 호응과 대비되기 때문에 더 안타깝다. 그의 주저인 ‘일반언어학 강의’는 최근에 새로 번역되어 나왔다. 내가 읽은 책은 대우학술총서로 나온 낡은 것이었으나.
3. 랑그와 파롤은 자끄 라캉에게는 ‘상상계’와 ’상징계’에 대한 힌트를 제시해주었다.
4. 토마스 쿤의 주저인 ‘과학 혁명의 구조’에서 주장하는 내용이다.


 

Comment +2

  • 지나가는사람 2011.06.01 04:48 신고

    제가 소화하기엔 어려워서 이 글 읽으면서 헤롱거렸지만 뭔지 본능적으로 알 것 같아요!!
    이 책 꼭 읽어보고싶네여
    만약에 물고기가 명암에 의해서 냄새를 미학적으로 구분한다면, 또 벌들이 빛의 강도를 무게에 의해서 분류한다면 - 벌들에게 어둠은 무거운 것, 밝음은 가벼운 것이므로 - 화가, 시인 또는 음악가의 작품과 신화, 그리고 미개인들의 상징은, 우수한 형태로서는 아니더라도 가장 근본적이며 또 우리가 공통으로 지니고 있는 것으로는 유일한 지식으로서 우리 앞에 나타나야만 한다. - 266쪽
    ㄴ>제가 티비에서 원주민 다큐를 보았는데요 예를들면 원주민이 하늘과 잎사귀를 쳐다보는 순간이 내가 소설을 읽을때의 신비한 순간과 똑같다고 느꼈어요 엄마가 후지다ㅉ_ㅉ는 눈빛으로 미개하다는 말을 쓰는게 짜증났거든여!!후 제가 경험한 직감을 잘 말하고 싶은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요 슬프네요 암튼 이 책 완전 멋있네요...와웅.. 쩔어요 ㅠ_ㅠ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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