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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미술사 책을 읽기는 하나, 그건 일 년에 한 권 될까 말까이다. 한때 책을 내기도 했고 강의도 하기도 했지만, 그건 십 수년 전 일이고, 마지막 잡지 기고를 한 것도 꽤 지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러다 우연히 강의 제의가 들어왔다. 요즘 아내의 일로 커뮤니티 자치 활동을 잠시 도와주고 있는데, 그 곳에 계신 분의 제안으로 한 차례 강의를 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아래는 간단한 강의 개요다. 막상 적기는 쉽게 적었으나, ... 도판 찾는 게 일일 듯 싶다. 요즘은 워낙 온라인 아카이브가 잘 되어 있어 쉽게 도판을 찾을 수 있으나, 정확하고 적절한 도판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한 일인지라, 꽤 시간이 걸릴 듯 싶다. 동네에서의 반응이 좋으면 나중에 공개적인 장소, 가령 북까페 같은 곳에서 한 번 더 하면 좋을 것같기도 하다. 이런 강의도 자주 해야 까먹지 않는데, ... 머리가 굳어져서 큰 일이다. 


*** 

 

미술의 역사를 통해 배우는 현대미술감상법 


우리의 마음과 예술의 경향 

‘예술은 없고 예술가만 있을 뿐이다’라고 에른스트 곰브리치는 <<서양미술사>>의 첫 문장으로 적고 있습니다. 예술 작품 뒤에 놓여진 예술가의 삶과 그 시대를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그 때의 예술작품을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중세 말의 고딕 성당을 알기 위해선 그 당시 사람들의 신앙에 대한 깊은 공감을 가져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13세기의 유럽인이 아닙니다. 그러니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의 마음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정직하고 솔직하게 바라볼 때 비로소 예술 작품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본적인 태도가 갖추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령 신앙의 문제에 있어서 현대의 어떤 사람은 조용히 교회당에 가서 기도를 올리고 아침저녁으로 묵상을 반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교회당 대신 거리로 나가 자신의 신앙을 과시하기도 합니다. 로마네스크 성당과 고딕 성당의 차이는 이와 비슷합니다. 신의 존재와 신앙의 문제 앞에서 사람들은 다양한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사람들의 각기 다른 마음과 태도도 그 시대의, 그 나라의 예술작품을 만듭니다. 





생-드니 성당. (1135 - 1144)



매너리즘과 현대 

예술사에서 매너리즘(마니에리즘)은 16세기 중후반의 지배적인 양식을 의미합니다. 일종의 퇴보로 이해되었던 탓에, 이 양식의 명칭은 경멸적입니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그 시대의 예술은 가장 현대적인 예술로 인정받기에 이릅니다. 우리는 예술 양식이 어떻게 경멸당하고 다시 받아들여지게 되는가 흥미로운 역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그 당시의 예술가들이 어떻게 싸웠는지 알게 됩니다. 


틴토레토, <최후의 만찬>, 1592-94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예술은 크게 고전주의(고전적 예술)과 낭만주의(낭만적 예술)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양식에서의 어떤 차이점을 가지고 있는가 설명합니다. 대표적인 시대와 예술가들, 그들의 작품에 대해 이해하며 현대 미술에 있어서의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도 함께 탐구합니다. 


라파엘로, <초원의 성모>, 1505 



자연주의와 기하학주의 

서로 대립되는 양식으로 여겨지지만, 이는 대립되는 양식이 아니라 우리가 외부 세계와 마주할 때 취하게 되는 양식적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주 드물게 자연주의와 기하학주의가 함께 드러낼 때도 있습니다. 자연주의 작품과 기하학주의 작품을 함께 비교해가며 예술가들이 외부 세계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는지 이해하도록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들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고민해봅니다. 


이집트, <사자의 서> 일부, BC.1275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소장품기획전>으로 보는 현대미술과 우리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소장품기획전>은 현대 미술의 정수를 볼 수 있는 보기 드문 전시입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현대 미술 작품 안에 그러한 것들이 어떻게 녹아 있는지 살피고, 현대 미술 작품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기본적인 내용에 대해 살펴보도록 합니다. 


론 뮤익, <침대에서>,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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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함의 배신 Your Survival Instinct Is Killing You
마크 쉔 & 크리스틴 로버그 (Schoen, Marc, Ph.D./ Loberg, Kristin) 지음, 김성훈 옮김, 위즈덤하우스 



올해 초 미친 듯이 읽은 책 한 권이 있다. 그리고 다 읽고 난 다음, '현대인이라면 아, 이 책은 반드시 읽어야 해'라는 생각을 했다. 그 책이 바로 <편안함의 배신>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당신의 생존 본능이 당신을 죽이고 있는 중이다 Your Survival Instinct Is Killing You>다. 
(1-2년 전부터 번역서적 시장에 '배신'시리즈가 유행하고 있는데, 여기에도 뭔가 사회학적인 함의가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두 제목 다 책 내용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만, 원제가 더 나아보인다.) 

저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환자가 그 어느 때보다 늘어난 것이 하나도 놀랍지 않다'

우리는 종종 왜 현대로 올수록 정신병 환자가 늘고 있을까 하는 의문을 던진다(ADHD의 경우, 최근 들어와서 언론 매체에 등장했다. 예전에도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거나 거의 없었던 건 아닐까?). 여기에 대해선 많은 가설이 있을 수 있다. 의학 산업이나 의료 관련 시장의 급팽창으로, 또는 정신과 의사가 늘어서, 정신병이나 정신병원 자체가 정치적 목적이 다분한 관계로, 자본주의의 심화와 매스미디어의 발달로? ... 하지만 이 책의 저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생명을 진짜로 위협하는 위험은 점점 줄어드는 반면, 생존 본능에 의해 강화되는 이 투쟁-도피 본능은 점점 더 활개를 치고 있다. 별 것 아닌 상황에도 생존 본능이 자극 받는 일이 점점 많아지다 보니, 우리 내면의 편안구역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45쪽) 


즉 생존 본능(survival instinct)에 의해 우리 내면이 망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책 서두에 사례로 등장하는 폭식증 환자 케이트는 배고픔 때문이 아니라 일상 속의 불안감으로 인한 폭식이었고, 무언가 먹고 난 후 그녀는 안전하고 온전한 상태가 되었다. 그녀의 생존 본능은 그녀의 의사(이성)와 관계없이 살고자 먹는 것이다. 실제로는 음식이 필요없는 상태였으나, 원시 고대로부터 우리 속에 숨겨져 있던 생존본능은 케이트로 하여금 살아남기 위해 먹으라고 강요하고 먹은 후 케이트는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에 편안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 생존본능과 관계하는 뇌의 부분이 바로 변연계다. '변연계는 두려움, 안전, 고통, 쾌락, 아픔, 분노 등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에 대해 원시적 감정과 신체 반응으로 즉각적인 반응'(47쪽)을 보인다. 

가령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PTSD) 환자는,

이들의 뇌가 논리, 이성, 지적인 측면에 의지해야 하는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상태에 빠졌음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이 오면 이들은 변연계의 지배를 받고, 변연계는 마치 아기가 자동차 운전대를 잡은 것처럼 통제권을 함부로 휘두르며 생존본능을 각성시킨다. (97쪽) 

이런 문제가 생기는 가장 큰 원인은 동요(aditance)하고 불편(discomfort)하는 상황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생존본능은 특정 증상- 가령, 폭식같은 - 을 만들며 이를 대처하고자 나쁜 부적응 습관을 만들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이를 '조건화된 무기력'이라 표현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조건화되는 예를 들어보인다. 심지어 계절성 우울증 환자의 상당수가 일조량이 많은 곳에 가더라도 계속 우울증이 걸린다는 것은 우리의 생존 본능이 얼마나 조건화에 취약한지를 여실히 드러내는 사례라 할 것이다. 


외재화(externalization)란 우리가 외부의 영향에 점점 더 크게 영향을 받게 되는 과정이자, 내면적 기준을 희생하고 그 대신 더욱 더 많은 힘과 가치를 이러한 외부적 기준에 내어주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내면적 기준이란 간단히 말해 우리의 정서적, 신체적 건강과 우리의 핵심 신념 등이다. 하지만 외재화가 일어나면 우리의 행동과 선택이 우리의 핵심 자아에 의해 결정되기 보다는 오히려 외부의 영향력과 기대에 휘둘리게 된다. 그 결과 우리는 자아의 진정한 뜻에 어긋나는 목표를 추구해서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고, 우리 내면의 자아는 더 크고 단호한 목소리로 '이게 아냐!'라고 비명을 질러댄다. 결국 외재화 때문에 동요와 불편의 수준이 올라가고, 생존 본능이 자극을 받는 역치(値)가 나아지는 것이다. (151쪽)

 
나는 생존 본능의 변화가 전자레인지의 발명, 그리고 패스트푸드와 가공음식의 인기 증가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믿는다. (...) 이런 변화로 엄청나게 편해지기 했지만, 그 덕에 우리는 조금만 배가 고파져도 견디지 못하게 되었다. (153쪽) 


현대 문명은 우리로 하여금 편안함에 길들이고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다. 그리고 보이지 않게 쌓이는 불편함의 경험들이 결국 얌전하게 있던 우리의 생존본능을 일깨우는 것이다. 책 후반부는 이렇게 변화된 환경 속에서 불편함과 더불어 살아가며, 불편함이 궁극적으로 우리 힘의 원천이 되는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자신감은 성공을 통해서도 오지만, 불편을 견디는 능력에서도 온다고 생각한다. (270쪽) 

정말로 중요한 것은 두려움과 불편에 어떻게 대처하느냐 하는 부분이다. 로빈씨의 경우 불편을 회피하기 보다는 오히려 두 팔 벌려 환영한다. 불편이야말로 성공에 이르는 궁극의 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271쪽) 


이 책을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손에서 놓을 수 없다. 사례들과 최근의 연구 성과나 이론들을 제시하며, 읽는 독자들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만큼 현대 문명 자체가 병적인 환경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편안함의 배신 - 10점
마크 쉔 & 크리스틴 로버그 지음, 김성훈 옮김/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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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한 번 운동을 한다. 이마저도 힘들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8시. 저녁을 먹고 아이와 놀다 보면 9시, 10시, ... 이러면 운동하러 가지 못한다. 그리고 잔다. 꿈을 꾼다. 꿈 속에서도 나는 쫓기고. 그러다보면 아침이 오고 곱게 잠들어 있는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힘을 내자고 다짐을 한다. 


이렇게 아빠,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 알게 된다. 종종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고 놀란다. 이렇게 늙었다니. 그러고 보면 늙는다는 걸 인식하며 세월을 보내지 않는다. 그냥 어느 순간, 늙었구나 하고 인식한다. 그리고 그 때 뿐이다. 


나는 아직 클럽에 갈 수 있다고 여기고(간 적도 없지만), 아직 옆을 지나는 여대생에게 말을 걸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말을 건 적도 없지만). 




회사 워크샵을 다녀왔지만, 뾰족한 솔루션을 찾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서로를 이해하고 같이 가자는 자리였다. 그 목적이 달성되었는지는 시간이 우리에게 알려줄 것이지만. 그러기엔 산적해 있는 문제가 너무 많고 비즈니스 세계의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이제서야 나는 조직이라든가 인적 시스템라는 것에 대해 조금 이해하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이를 본능적으로 알고 참 잘하는데, 나는 아직까지도 관련 책 읽고 사람들 신경 쓰고 마음을 어루만지면서 앞으로 나가려고 노력한다. 솔직히, 정말 쉽지 않다.




요즘 지나가는 말로, 대체로 무슨 일을 하려고 내가 이러는 걸까 하곤 중얼거리곤 한다. 회사를 옮기고 참 많은 일들을 겪고 있다. 그래서 시간은 흐르고 나는 나이를 먹겠지. 결혼을 하고 보니, 참, 아빠들 어렵게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아빠들 중 돈 많고 힘 있는 이들은 떼지어 이 사회를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거참. 그나저나 글은 언제 쓰나. 전시는 언제 보고 벗들과 술은 언제나 마시나. 할 이야기가 많아지니, 글을 쓸 시간이 없구나.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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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 Women Who Run With the Wolves 

클라리사 에스테스(지음), 손영미(옮김), 이루 















이 책을 꺼내 들었을 때, 나는 피아니스트 엘렌 그리모(Helene Grimaud)가 떠올랐다. 그녀는 현재 늑대 보호 운동을 하고 있다. 미모의 피아니스트와 늑대, 어울린다는 생각을 한 것은 우연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라는 책을 통해 나는 여성과 늑대 사이의 공통점, 그리고 여성의 잃어버린 야성, 숨겨진 본성을 알게 되었으니, 엘렌 그리모가 늑대에게 끌렸던 것은 사소한 동정심이 아닌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엘렌 그리모



시인이자 융 심리분석 전문가인 클라리사 에스테스의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은 내가 최근에 읽은 책들 중 가장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초판이 1992년이 나왔지만, 이미 여성 심리학에 있어 고전으로 자리 잡은 이 책은, 여성 심리에 대한 신화적 분석이면서, 여성의 마음을 자극하고 여걸이라고 이름 붙여진 숨겨진 야성을 찾게 도와주며 전 세계의 신화, 민담, 설화 등 오래된 이야기들에서 여성 마음의 원형을 읽어내면서,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의 잠재력을 깨우친다. 그리고 저자는 여성의 모습을 늑대와 비교하면서, 잃어버린 야성을 찾기를 호소한다.  



건강한 늑대와 여성은 심리적으로 많은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예민하고, 장난스럽고, 희생정신이 강하다. 천성적으로 남들과 가까워지기를 원하고, 호기심이 강하며, 엄청난 힘과 지구력이 있다. 또 매우 직관적이고, 자식과 배우자 등 가족이 끔찍이도 아낀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주변 환경에 잘 적응할 뿐 아니라, 매우 씩씩하고 용감하다. 

- 저자 서문 중에서, 10쪽 



하지만 저자는 ‘여성의 잠재의식이 파괴되었다’고 말한다. 그녀는 ‘우리는 모두 야성을 원하지만 우리 문화의 테두리 안에서 이 갈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길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지금껏 우리는 그런 욕망을 수치스럽게 생각하며 긴 머리카락으로 감추고 살아왔다. 그러나 여걸의 그림자는 밤낮으로 우리 뒤를 어슬렁거리고 있다. 우리가 무엇이든, 우리 뒤에 걸어오는 그림자는 분명 네 발 달린 짐승이다’라고 말한다. 


여걸(wild woman)에 대한 이해는 종교가 아니라 실천이고, 진정한 의미의 심리학이다. 여걸은 영혼 자체이고, 혹은 영혼에 대한 지식이다. 여걸이 없는 여성은 자신의 영혼에 대한 이야기나 내면의 리듬을 인식할 능력이 없고, 어떤 시커먼 손이 내면의 귀를 막아버린다. 그 결과 권태와 헛된 생각에 사로잡혀 반쯤 마비된 상태로 시간만 허비하게 된다. 

- 17쪽 


원형으로서의 여걸은 인간에 대한 무수한 개념과 이미지와 특징을 말해주는, 아무나 흉내 내지 못할 엄청난 힘이다. 

- 48쪽 



책은 각 챕터마다 각기 다른 설화, 민담, 전설 등의 이야기들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각기 다른 숨겨진 내용을 담고 있다. 가령 책 초반에 나오는, ‘여자를 밝히는 거인, 푸른 수염 이야기’는 순진한 여성이 자주 겪게 되는 성장의 모험을 담고 있는가 하면, 책 후반의 ‘손 없는 아가씨의 파란만장한 모험’은 여성의 인내가 가지는 가치, 한 번 하강할 때마다 상실과 희생과 깨달음의 과정을 거치면서 경험하는 야성의 재생을 보여준다. 이들 각각의 이야기들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는 듯하지만, 실은 현대 여성들이 스스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도와주며, 야성을 회복한 여성에 대한 은유이고 모자이크화인 셈이다. 그리고 독자 - 여성이라면 특히! - 는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삶을 반추하게 될 것이다.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심리적 열쇠에 있다. 그것은 자기 자신과 가족, 그리고 일과 삶 전반에 대해 다양한 질문을 제기할 수 있는 능력을 준다. 그런 질문을 던진 여성은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고 이리저리 둘러보며 진짜 정체를 알아내는 늑대처럼 가장 깊고 어두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을 괴롭혀온 힘을 반대로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여성이 바로 여걸이다. 

- 88쪽





‘미운 오리 새끼’는 지역의 문화적 배경이나 이야기꾼의 입담에 따라 내용이 조금씩 바뀌어 세계적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요점은 미운 오리 새끼가 야성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야성은 어떤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어도 본능적으로 그것을 견뎌내는 힘이다. 야성적인 여성이 지닌 최고의 장점 중 하나가 바로 이 지구력이다.

- 189쪽



가령 ‘미운 오리 새끼’는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이야기들 중의 하나이다.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이 이야기는, 하지만 여성에 대한 풍부한 상징과 은유로 가득차 있었다. 이렇듯 이 책을 가득채우고 있는 이 이야기들이 가진 힘은 대단한 것이어서, 어떤 이야기는 며칠이 지나도록 머리 속을 빙빙 맴돌며 나를 자극했다.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은유와 교훈은 우리의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심지어 요즘 사람들이 자주 읽게 되는 자기계발 서적들보다 도리어 더 현실적이며, 실천적이며, 감동적이었다.

(남성 독자인 나에게도 이 책은 충분한 독서의 의미를 가져다 주었는데, 여성 독자가 읽는다면 그 가치는 배가 될 것이다)



몸매로 사람을 판단하는 사회에서는 모든 여성이 자신을 숨기고 위장된 삶을 살게 된다. 

-213쪽 



저자는 자신 속에 숨겨진 여걸을 찾으라고 이야기하며, 그것은 이 사회가 여성에게 가르치는 것과는 다른 것임을 분명히 말한다. 어쩌면서 너무 교훈적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다소 식상해질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걸을 되찾고 싶거든 덫을 피하라. 균형 잡힌 삶을 살 수 있도록 본능을 단련하고, 마음껏 뛰고, 소리치고, 원하는 것을 차지하라. 또 그것에 대해 모든 걸 알아내고, 눈으로 마음을 표현하고, 모든 걸 들여다보고, 관찰하고, 빨간 신을 신고 춤을 추라. 단, 그 빨간 신은 반드시 직접 만든 신발이어야 한다. 

- 250쪽 



몇 주에 걸쳐 이 책을 다 읽은 결론을 말하자면, 남성 독자에게는 이 책은 여성의 심리를 알게 해주는 부분적인 안내자이며(그러나 너무 재미있는), 여성 독자에게는 반드시 읽어야 하는 필독서였다. 엄격하게 따지자면, 이 책은 인문학으로 분류될 수 있겠지만, 그 분류가 무색할 정도로 여성 독자들에게는 매우 실천적이며 호소력 있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그러니, 외국의 어느 여성 독자는 'Woman's Bible'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을 것이다. 


시간만 버리기 일쑤인 자기계발서들 - 특히 여성독자들을 타겟으로 하는 - 을 읽는 것보다 이 책을 읽기를 추천한다. 충분한 가치를 발휘할 것이다. 더구나 내용마저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

클라리사 P. 에스테스저 | 손영미역 | 이루 | 2013.09.28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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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강변 



                                           이병률 




나는 가을이 좋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길을 잃고 

청춘으로 돌아가자고 하려다 그만두었습니다 


한밤중의 이 나비 떼는

남쪽에서 온 무리겠지만 

서둘러 수면으로 내려앉은 모습을 보면서

무조건 이해하자 하였습니다


당신 마당에서 자꾸 감이 떨어진다고 했습니다.

팔월의 비를 맞느라 할 말이 많은 감이었을 겁니다.

할 수 있는 대로 감을 따서 한쪽에 쌓아두었더니

나무의 키가 훌쩍 높아졌다며 

팽팽하게 당신이 웃었습니다


길은 막히고 

당신을 사랑한 지 이틀째입니다. 



- <<눈사람 여관>> 중에서 

*** 



선릉역 지하 개찰구를 나와 지상으로 올라오는 계단 중간 즈음, 하얀 보푸라기가 날리듯 흩어지는 눈송이들을 보았다. 잠깐. 지하 전철역에서 인근한 빌딩 3층으로 가는 동안. 그리고 세 시간이 걸린 지리하고 불편하기만 했던 회의가 끝나자, 어둠이 왔고 눈은 사라졌다. 앞으로 눈은 계속 내릴테지만, 나에겐 시간은 없고, 없는 시간은 새로 만들어지는 법 없이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기만 한다. 


지난 주말, 스산한 마음과 안타까움에 책을 읽었다. 오래만에 든 시집이었다. 그리고 '시집을 좋아하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모든 일이 잘 돌아가지 않을 때는 가장 좋은 것은 누군가를 핑계거리 삼는 것이다. 그리고 핑계거리가 사라지면, 자기 자신이 핑계거리가 되거나 새로운 핑계를 찾기 위해서 방랑할 것이다. 스스로 핑계거리를 내세우지 않으려고, 그리고 스스로가 핑계거리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어느 늦가을, 불편한 눈송이들은 쌓이지 않고 거리 위로 물기로 스며들었다. 그렇게 내 마음도 스며들고 얼어붙는다. 


마음 막히는 밤이 왔고 술 생각이 간절해지는 추위가 사무실을 에워싼다. 피부는 건조해지고 손가락 끄트머리에 이름 모를 풀 한 포기 자라나다가 금방 마른다. 길을 잃고 청춘으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어느 11월, ... 길도 막히고 마음도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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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환, 사방에서(From the four direction), 1985 




다행이다. 이우환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가라앉고 차분해지니. 내가 조금 더 나이가 들었고, 내가 조금 더 일찍 돈을 벌기 시작했다면 이우환의 작품을 살 수 있을련지도 모르리라. 기회가 닿으면 포스터 액자라도 구해야 겠다. 


가을, 살찌는 계절이지만, 나는 지쳐가기만 한다. 아마 내 나이 또래의 다른 직장인들도 그럴까? 하긴 이런 때가 있으면 저런 때도 있는 법. 


오후 외부 회의를 끝내고 들어온 사무실, 잠시 멍하니 앉아있다가 아래 시를 읽는다. 




生의 쓸쓸한 오후를 



生의 쓸쓸한 오후를 걸어갈 적에
찬란하여라 
또 하루가 가는구나 

내 무덤에 풀이 
한 뼘쯤은 더 자랐겠구나 

- 최승자
(<포지션> 2013년 가을호 수록) 

(* 위 시는 http://blog.naver.com/lalalal22 에서 읽었습니다.) 




역시 최승자라고 중얼거린다. 이런 느낌, ... 하지만 이 느낌마저도 '소비의 사회' 속에서 희석되고 있었다. 어쩌지 못하는 쓸쓸함마저도 소비되는 시대. 끔찍하기만 하다. 그렇게 끔찍한 2013년의 가을. 



나는 내일 새벽, 내가 스무 해 넘게 살아온 도시로, 노트북과 서류와 책을 안고 내려간다. 아마 내려가서도 바쁘게 보낼 것이다. 그래도 시간은 가고, 그래도 나이는 먹는다. 어쩌면 시간 가는 것이 우리 인생 최대의 축복일 지도 모른다. 그렇게 내 무덤을 향해가고 언젠가 내 무덤에도 풀이 자랄 것이다. 사방을 둘러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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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사라진 자리에 마음의 불편함만이 자리 잡는다. 건너고 싶지 않은 저 다리의 이름은 시간. 혹은 계절. 내 허약한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확실히 존재하는, 느껴지는, 서늘한 공포. 


커피의 향이 사무실 책상 위를 가득 채우지만, 초여름 바람이 열린 창틈으로 들어와선 낚아 채어간다. 향기는 사라지고 어수선한 책상 위 서류더미는 내 마음 같다. 혹은 그대 마음. 


해소되지 않은 채 쌓여가는 정신적 모던의 유산들. 불편한 언어들. 그리고 공포. 


*  


“내 나이 열아홉 살, 그때 내가 가장 가지고 싶었던 것은 타자기와 뭉크화집과 카세트 라디오에 연결하여 레코드를 들을 수 있게 하는 턴테이블이었다. 단지, 그것들만이 열아홉 살 때 내가 이 세상으로부터 얻고자 원하는, 전부의 것이었다. 그러나 내 소망은 너무나 소박하여 내가 국립 서울대학교에 입학기를 원하는 어머니의 소망이나, 커서 삼성 라이온스에 입단하기를 꿈꾸는 어린 사촌동생의 소망보다 차라리 더, 어렵게만 느껴졌다.” - 장정일, ‘아담이 눈 뜰 때’ 중에서 




이번 원두는 멕시코 알투라다. 부드러운 고소함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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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책이 많아도, 계속 새 책에 손이 가는 건 예전부터 읽어온 습관 탓이다. 1주일에 1권 이상은 읽어왔는데, 올해 들어 한 달에 2권 이상 읽지 못하고 있으니. 하지만 손의 습관은 1주일에 1-2권씩 새로운 책 표지에 살갗이 닿아야만 손의 마음은 놓이는 것일까. 





바람은 무척 차고 일은 많고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스스로에게 다짐한 것들 중의 하나가, '비밀 없는 사람이 되자'였는데 그게 참 쉽지 않다. 


강상중의 신간 '살아야 하는 이유', 그리고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 ... ... 참, 일본은 대단하기도 하면서 신기하다. 나쓰메 소세키는 이미 백 년 전에 20세기 후반에 최초로 마주하게 되는 현대적 모더니즘(contemporary modernism)을 보여주고 있고, 그 옆에서 재일한국인 강상중은 현대인의 마음과 존재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 현대 일본을 지배하는 것은 그런 모더니즘이 아니라,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기 때문이다. (하긴 한국도 마찬가지리라) 


바람은 차고, 마음 속에 비밀만 늘어나는 것이 매우 싫어지는 화요일 오후 사각의 사무실 안 방황은 끝이 날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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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을 읽는 협상법 







‘모든 것이 협상’이다. 자녀와의 사소한 대화에서부터 회사에서의 중요한 거래나 비즈니스 미팅에 이르기까지. 솔직히 모든 것을 협상(적 구조)으로 돌리는, 일종의 환원론이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협상의 중요성이 약해지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사람의 마음을 읽어, 자신이 원하는 바의 목표를 순조롭게 달성할 수 있다면, 협상 능력은 우리가 반드시 익혀야 하는 능력들 중의 하나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것을 익힐 수 있을까. 이 짧은 글이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사람의 마음을 읽는 기본적인 협상 태도 정도는 알 수 있을 것이다. 



입은 닫고 눈과 귀를 열어라


사람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대화한다. 어떤 이들은 먼저 자신의 이야기를 쉴 새 없이 쏟아내고는 타인의 이야기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자신이 관심 가는 내용만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무시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어떤 이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고 시간의 대부분을 듣는데 할애한다. 혹자는 여기에서 ‘경청(傾聽)의 미덕’을 떠올릴 지도 모르겠지만, 실은 협상 과정 속의 한 단계인 ‘정보 수집’에 속하는 행위이다.


유능한 협상가는 자신의 정보를 먼저 노출하지 않는다. 도리어 자신의 정보를 노출하는 듯하면서도 노출하지 않고, 상대방의 정보를 수집한다. 우리는 종종 협상을 테이블 위, 회의실 안으로만 국한 지으려고 한다. 실은 협상의 범위란 무척 중요하다. 그래서 범위 밖에 있는 주제를 협상 테이블에 올리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유능한 협상가들은 그 범위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협상의 범위가 아니라 협상을 통해 얻으려는 목표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종종 감동받기 마련이다. 따라서 딱딱하고 건조한 협상이 오가기 전에 부드럽고 친근한 일상 이야기부터 하면 어떨까?


종종 어떤 이들은 협상 테이블을 대결 구도로 파악하기도 한다. 자신과 상대방의 입장을 복싱 경기장의 사각의 링으로 보고, 먼저 협상의 주도권을 얻으려고 경쟁적으로 상대편을 몰아붙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협상 태도는 종종 큰 실수로 이어지기도 한다.


협상의 범위를 사각의 링으로만 한정지을 경우, 협상의 결과는 사각의 링 안으로만 국한되고, 누군가 한 명은 패배를 인정해야만 그 협상은 끝이 난다. 종종 뛰어난 협상가들이 보여주는 창의적인 과정과 탁월한 협상 결과는 그들이 협상 테이블을 사각의 링 밖으로 확장시켰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사각의 링처럼 보이는 협상 테이블도 서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예상치 못한 금광을 발견한 친구 사이가 될 수도 있음을 명심하자. 그러니 먼저 서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전략적 배려가 필요하다. 성공적인 협상은 승자와 패자로 나누어져 승자가 되는 협상이 아니라, 승자도 패자도 없이 양 쪽 모두 승자가 되는 협상을 일컫는다.


“가장 훌륭한 협상가는 협상 테이블에서 솔직하고, 정직하며, 질문을 많이 하고, 주의 깊에 들으며, 자신이 원하는 것과 상대방이 원하는 것에 집중하는 사람이다.” (리처드 샐의 ‘협상의 전략’ 중에서)



Montmartre
Montmartre by John Althouse Cohen 저작자 표시



창조적인 대안은 숨겨진 마음 속에


1978년 캠프 데이비드 협상은 숨겨진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협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팽팽한 주장은 표면적으로는 시나이 반도의 소유권을 두고 서로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전개되지만, 실은 서로의 주장 밑에는 각기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1967년 6일 전쟁으로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를 차지한다. 그 이후 무려 6년 동안 이스라엘과 이집트, 그리고 아랍 국가들 간의 크고 작은 전투와 전쟁이 이어진다. 이집트는 시나이 반도의 반환을 요구하였고, 이스라엘은 그럴 수 없다고 완강하게 거부하였다. 1973년 10월 제 4차 중동 전쟁은 이스라엘과 이집트 간의 전쟁이 아니라, 미국과 소련의 전쟁으로 양상이 확대되자, 이때부터 평화적인 타결을 향한 본격적인 협상이 진행된다.


그리고 1978년 캠프 데이비드에서 지미 카터의 중재 아래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과 이스라엘의 베긴 총리 사이의 협상이 시작되었다. 양국 모두 원하는 것은 시나이 반도였고. 하지만 시나이 반도를 원하는 이유는 서로 달랐다. 즉 그들은 서로에게 시나이 반도를 왜 원하는지 밝히지 않은 것이다. 최근까지도 국제 분쟁 지역에 나타나 갈등을 해결하곤 하는 지미 카터 대통령의 역량이 여기에서 발휘되었다. 그는 ‘무엇을 원하는가’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왜 시나이 반도를 원하는가’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는 베긴 총리의 손자 손녀 사진까지 준비하며, ‘이 아이들에게 평화로운 미래를 물려주자’고 감정적인 호소까지 아끼지 않았다.


지미 카터는 ‘미래 세대를 위한 공동의 평화’라는 아젠다를 교묘하게 협상 테이블에 올려 놓았고, 그들로 하여금 마음 속 이야기를 유도하였다. 이스라엘 베긴 총리는 아랍 국가들 사이에서 언제나 안보의 불안을 느끼는 이스라엘의 처지를 이야기하였고, 이집트의 사다트 총리는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에 이집트라는 이름만 있을 뿐, 한 번도 자신의 땅을 스스로 통치하지 못한 이집트의 역사를 이야기하며, 조금의 땅도 빼앗길 수 없는 이집트의 마음을 이야기했다.


원하는 것은 시나이 반도로 동일한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이스라엘은 안전 보장을, 이집트는 땅을 원했던 것이다. 이제 협상은 간단해졌다. 이집트는 자신의 영토였던 시나이 반도를 되찾고, 이스라엘은 시나이 반도를 비무장지대로 하여 자신들의 안전을 보장받았다.


지미 카터가 능수능란한 협상가라는 사실은 협상테이블은 제 3의 장소 - 캠프 데이비드라는 미 대통령 별장 - 에서, 서로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감성적인 호소, 그리고 협상 목표를 향한 정확한 질문,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효과적인 해결책 제시 등을 통해 증명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종종 협상 테이블에서 서로의 입장만을 관철시키기 위해 팽팽한 구도를 이어나가는 경우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현명한 방법이 아니다. 협상이 깨지는 경우, 둘 다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때 필요한 것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자 하는 태도가 필요하고 이 태도를 서로에게 가지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들이 모색되어야 한다. 3자의 중재라든가, 협상 장소의 변경, 협상 주제를 이야기하기 전에 서로 흥미를 느낄 만한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한다든지 말이다.



I'll Give You All I Can...
I'll Give You All I Can... by Brandon Christopher Warren 저작자 표시비영리



협상도 결국 사람이 하는 것



낯선 장소, 가령 친구의 생일 파티나 처음 가는 동호회 모임에서 모르는 사람을 만나곤 한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대화를 하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거친다. 협상도 마찬가지다. 먼저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고 서로의 요구사항을 맞추어 나간다. 한 쪽의 일방적인 원칙에서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 다양한 협상 도구들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결국엔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결국 협상도 사람이 하는 것이고, 사람들 간의 대화이고 약속 과정인 셈이다. 하지만 모든 약속을 다 믿을 순 없는 법.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냉전 시대를 헤쳐 나가기 위해 이런 격언을 자주 했다고 한다. 


“믿어라. 하지만 검증하라”


먼저 믿어야 한다. 스스로 상대방에서 자신이 신뢰할 만한 협상 파트너임을 보여주기 위해 배려하여야 한다. 역지사지의 태도는 여기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상대방의 원하는 것, 마음 속을 읽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방이 스스로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협상 테이블에 마주앉은 경쟁자가 아니라 퇴근 후 오랜만에 만난 믿을 만한 친구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유능한 협상가들은 협상 테이블에 앉자마자 협상 주제로 곧바로 돌입하지 않는다. 도리어 시간이 다소 걸리고 돌아가는 듯하지만, 서로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형성하기 위해 이런저런 신변잡기적인 이야기, 즉 상대방과 공유할 수 있는 경험이나 공통의 관심사를 먼저 꺼내곤 한다. 그런 다음, 상대방으로 하여금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상대방을 배려해가며, 상대의 기분이나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 하며 정확하고 구체적인 질문을 하면서 인내심을 가지고 원하는 것, 그것을 왜 원하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이렇게 이야기를 들으면서 천천히 자신이 생각했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을 짜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협상 테이블을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하여 분석하고 상대방의 목표에 도달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을 짜야 할 것이다. 누군가 희망하는 서로를 만족시키는 해결책이 나오지 않을 경우, 서로에게 해가 되지 않는 양보의 방법, 그리고 협상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해결해주는 차선의, 창의적인 해결책을 찾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뛰어난 영업 사원이 고객 가족의 생일을 챙기고, 고객의 취미나 관심사에 열중하는 이유는 자신의 영업 실적이 고객의 마음에 달려 있고 자신이 영업하는 것과는 무관하지만 고객의 불편함을 해소해줌으로써 자신의 영업 실적이 올라갈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경험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 독심술 따위는 없다. 하지만 친한 친구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지 않는 외톨이는 드물다. 유능한 협상가는 협상 파트너를 친구로 만들 줄 알며, 그들로 하여금 마음을 열게 만든다. 그리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협상을 이끌고 나가 공통의 목표를 달성하고 예상되었던 결과물 이상의 성과를 달성하게 만든다. 왜냐면 협상은 서로의 이기심을 채우는 과정이 아니라 서로가 모두 승자가 되는 협력의 장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북릿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booklet-app.tistory.com/notice/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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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고 있는 폰으로 오늘 하늘을 찍은 사진임)


이 색깔은 ... 도시마다 다를까? 계절마다 다를까? 바람에 따라 달라지고,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달라질까? 그래서 이 색깔은 계속 달라져 형체도 없이 사라질까?

문득 올려다본 하늘은 내가 알지 못하는, 내가 닿지 못하는, 끝내 나를 향해 열어주지 않을 색으로 둘러쳐진 채, 말없이 흔들거렸다, 내 몸이. 

하루에 버스가 두 번 들어오던 1970년대 후반의 창원 어딘가에서 가을 바람과 대화하는 법을 잃어버린 나는 스산한 가을 바람이 불 때면, 까닭없이 그립고 안타깝다.

어느 새 나도 닫히는 법만 배웠다, 거대하고 거친 도시에서. 닫힌 사람들 속에서 스스로를 닫는 법만 배우는 우리는 이제 문을 여는 법, 마음을 여는 법, 대화를 여는 법을 잃어버렸고, 21세기에 들어서자, 마지막으로  닫힌 우리는 더 이상 낯설어하지 않게 되었다.

저 색깔은 ... 닫혀 있는, 너무 익숙한, 그래서 가치없는 색이다. 하늘색이다. 세계 최초로 소리 없이 활자를 읽었던 수도사에게서부터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를 지나, 우리는 그렇게 닫혀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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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어둠이 행인의 발 끝으로 스며드는 오후 6시 24분. 어느 SF소설 속 백발의 과학자가 만들었을 법한 '마음 읽는 기계장치'가 내 손에 있다면, 내 앞으로 길게 이어진 건조한 도로 위,를 지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으려고 할까? 그리고 읽는다면, 나는 무수한, 혹은 몇 개의 마음을 알고 이해하고 공감하게 될까?

21세기의 가을, 지구 위의 동물 중 유일하게 마음(mind)을 가졌다는 인간들은 지금 스스로의 마음도 알지 못한 채, 정해진 시간에 사무실을 나와 집으로, 술집으로, 혹은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요즘 내가 겪는 곤혹스러움은, 내 옆을 지나는 그, 또는 그녀를 어디선가 보았던 사람이며, 아주 오래 전에 알고 있었던, 하지만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라는 생각의 빈번함이다. 왜 나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걸까...

이 세상이 한 권의 책으로, 하나의 텍스트(text)로 돌아가기 위해 있듯이 우리들도 모두 한 인간으로 수렴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정해진 시점이 다가오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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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 1999, 2002, 2008, 2010, 1996년부터 2010년 사이에는 16년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그 사이 나는 대학생에서 서른 후반, 아니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 16년이라는 시간을 자주 잊어버린다. 나에게 1996년과 2008년은 동일한 시간이다. ‘5.18 광주가 벌써 30년이 지났음을 신문을 보고 알았다. 나이가 든다는 것, 시간이 흐른다는 것이 마치 거짓말처럼 여겨진다.

 

어느 역사학자의 장기 지속이라는 표현처럼, 우리의 마음과 일상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우리의 인생은 긴 시간대 위에서 아주 느리게 움직인다. ‘급변이란 잠시의 착각이거나 변하고 싶은 우리의 헛된 희망일 뿐이다.

 

그러니 우리의 경험 상 세상은 정지해 있는 것이며 끝내 변하지 않을(불변) 것이며, 운동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끝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운명도 우리의 힘으로 변화시키지 못할 것이다.

 

시간과 운동은 하나의 쌍이다. 공간과 정지가 하나의 쌍인 것처럼. 그렇다면 내 마음과 내 일상의 운동은 어디에 더 가까이 있을까. 결국 나는 이미 정해진 운동을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턴테이블에 오래된 LP를 올렸다. LP가 한국에서 나온 지도 벌써 20년이 지나있었다. 나에겐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한데. 그것이 들려주는 소리는 그대로인데, … 많은 생각을 하게 한 휴일이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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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에 일찍 들었지만,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늘 그렇듯이. 어렸을 때부터 마음이 가라 앉고 까닭 없이 끝 간 데 모를 슬픔으로 가득 찰 때면,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추거나 글을 읽거나 쓰거나 그림을 그렸다. 악기 하나 다루었으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을 해보지만, 지방 중소 도시에서 자란 터라 학원도 많지 않았고 여유도 되지 못했다. 그 흔한 기타 하나를 사놓긴 했지만, 몇 곡 연습하다 그만 두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그 기타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버린 적이 없는데.)

 

우울할 때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으면 마음이 가라앉았는데, 지난 연말부터 무너진 마음이 쉽게 회복되지 않고 있다. 쫓기듯 살아온 걸까. 아니면 게을러져서. 그것도 아니라면, 판도라의 상자 때문에.

 

새벽 4시에 일어나 인터넷 서점에서 슈베르트와 고흐, 아르보 페르트와 나쓰메 소세키를 주문했다.

 

오늘은 일정이 빠듯하다. 오전에는 여의도 근처, 오후에는 삼성동 코엑스, 청담동, 압구정동을 거쳐야 한다.

 

당분간 말을 줄이고 침묵을 즐겨야겠다.

 

1505년에 그린 조반니 벨리니의 피에타. 16세기 초반 베네치아. 막 세기말이 지났으므로 세기말의 어수선함이 아직도 남아있으나, 세기 초의 열광적인 기분은 느끼지 못하고 고작 불투명한 안도감 정도. 논리적으로는 신의 존재가 사라졌음을, 종교적 미덕과 가치가 세속화되는 세계 앞에서 무너지고 세속적 가치로 대체되던 시대. 마치 러시아의 시인 푸쉬킨이 사랑하는 아내에게 수작을 거는 남자에게, 아니면 이미 바람난 아내의 부도덕함에 격분하여 바람 피운 남자에게 결투를 신청하여, 자신의 도덕적 정당함은 증명하지 못한 채, 결국 죽어버리고 마는 생의 역설마냥, 벨리니의 피에타는 한없이 쓸쓸하고 슬프다. 과거는 이미 잊어버렸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시기. 자신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고 믿었으나, 마음이 낸 상처로 인해 모든 인지를 상실한 시대. 쓸쓸함과 슬픔이 지나치면 혁명이 도래하는 걸까. 아니면 광포한 현실정치가 도래하는 걸까. 아니면 다락방에서 내려오지 않은 채 쓸쓸히 죽어가는 걸까(폰토로모는 그렇게 죽었다). 오늘 종일 조반니 벨리니의 이 작품이 떠오를 것 같다. 하지만 내 생이 이토록 쓸쓸하고 슬프지 않기를 바란다.

 

조반니 벨리니, '피에타', 패널에 유채, 65*90, 1505, 이탈리아 아카데미아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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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저를 버렸지요?"
라고 말하고는 다시 손수건을 얼굴에 갖다 대고 또 울었다.
- 나쓰메 소세키, '그후', 민음사, 286쪽



일요일 심야의 퇴근길 지하철 9호선에서 나쓰메 소세키의 '그 후'를 다 읽었다. 왜. 저를. 버렸지.요.?... 소설은 아무런 사건 없이 이어지다가, 마치 거친 골짜기를 며칠 째 헤매다가 무지개 낀 폭포를 만나는 듯한 느낌을 읽는 이에게 선사한다.

하지만 그건 슬픈 비극일 뿐이다. 나쓰메 소세키는 19세기말의 시선으로 현대인의 비극을 드러내고 있었다. 사랑을 늦게 깨닫는 것 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그런데 다이스케는 어리석었다.

며칠 전에 만난 그녀는 '그 후'를 '소레카라'로 읽는다는 걸 알려주었다. 프랑스 남편과 두 아이가 있는 동경으로 갔지만, 일본은 그녀의 나라가 아니라는 점이 늘 그녀를 힘들게 한다고 했다. 그렇다고 한국이 그녀의 나라라고 하기에 그녀는 일본어가 한국어보다 편하고 일본 문화가 한국 문화보다 더 익숙했다. 몇 년간의 일본 생활이 끝나면 다시 파리로 돌아가겠지만.

뉴욕에 사는 친구에게 언제 한국 들어오느냐고 메일 보내고, 오래 전에 읽은 야콥 부르크하르트의 책을 뒤적였지만, 역시 서평 쓸 엄두가 나질 않는다. 이 천연덕스러운 보수주의자의 글은 요즘 읽기엔 너무 구식스럽다. 하지만 그 당시로는 보기 드문 르네상스적 지식인이었을 것이다.

내일 아침엔 일찍 광주에 내려가야 한다. 협상과 계약이 기다리는 미팅이 있기에.

광주의 지인들에게 연락해 볼까 하다가, 술 한 잔 걸쳐야 하는 부담 탓에 연락을 하지 못했다. 광주의 날씨가 어떤가에 따라 연락 여부가 결정될 듯 싶다.

집에 들어와, 마크 알몬드 밴드의 음악을 들었다. 사랑을 잃어버리게 될 다이스케와 미치요의 얼굴이 떠올라 슬펐다. 사랑하고 싶지만, 언제나 그렇듯 사랑은 두렵다. 이젠 그 두려운 마음을 들킬까 더 조심스러워졌다. 내 두려운 마음을 읽어주는,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



마크 알몬드 밴드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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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i 2009.12.10 00:28 신고

    두려운 마음을 읽어주는 사람이라.. 천생연분을 찾으시는군요 ㅎㅎ
    부부의 연을 맺은 사람들끼리도 꾸준히 노력하고 마음쓰지 않으면 그걸 잘 못하는데 말입니다..^^;

    근데 지하련님에게 날씨와 술자리는 어떤 상관관계를 지니는지요? ^^

    • 천생연분인가요~? ㅎㅎ..

      '비도 오는데, 술이나 한 잔 하자'라는 표현을 종종 쓰긴 하지만, 실은 술 마시기 좋은 날씨는 화창한 봄날 오후나 가을 오후가 아닐까 싶어요. 날씨 탓에 술 마시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에, 별 상관관계는 없는 듯.. 합니다. (실은 날씨 좋은 날 맛있는 요리와 술이 생각나긴 하죠. ㅎㅎ)

  • 윤민연우맘 2009.12.22 00:35 신고

    시즌이 시즌이니만큼 엄청 달리는 모냥이지?(부럽ㅠ)
    훼이보릿 시즌송이나 몇 올려봐바바.
    당신의 포스팅이 없으니깐 넘넘 심심해ㅠㅠ

    • 역시 예리하신~.. 두 아이의 엄마라는.. 별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포스팅이라도 올리도록 하지요.. ㅡ_ㅡ;;
      아, 최근 내가 술이 많이 약해졌는데, 약해진 틈을 타서 주위 사람들 너무 먹이네.. 아웅.

  • 나츠메 소세키 2010.08.02 22:48 신고

    아 소레카라 인가요..

    저는 3단 구성인

    산시로-소레카라-문

    을 다읽었죠,,,

    다이스케의 심리 묘사는 이 책의 특이한 묘미 ㅋ

    • 소세키는 19세기 동아시아에서 보기 드문 작가입니다. 1세기가 지난 지금 읽어도, 바로 옆에서 벌어지는 듯한 느낌을 주니 말이죠. 집집마다 꽂혀있는 하루키의 '1Q84' 대신 소세키 같은 소설가를 읽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터무니없는 바람이지만요)


목요일 저녁 7시, 도시의 가을, 차가운 바람 사이로 익숙한 어둠이 밀려들었다. 그 어둠 사이로 보이지도 않는 자그마한 동굴을 파고 숨어 들어간 내 마음을 찾을 길 없어, 잠시 거리를 걸었다. 삼성동에서 논현동까지.

마음이 지치기도 전에 육체가 먼저 지쳐버리는 10월의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나이 탓이라고 변명해보지만, 그러기엔 난 아직 너무 어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 너무 어린 마음이 늙은 육체를 가졌을 때의 그 비릿한 인생의 냄새를 가지고 있다. 그 냄새를 숨기기 위해 하루하루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요즘 어떻게 된 일인지, 어린 마음이 지치기도 전에 육체가 먼저 지쳐버렸다. 이 세상이 익숙해진 육체에겐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닐 텐데.

요 며칠 하늘은 정말 푸르고 높았지만, 그건 고개 돌린 외면의 색의 높이였다. 집에 들어와 오랜만에 김치찌게를 했다. 다진 마늘, 올리브유에 김치, 참치캔와 햄 몇 조각. 배가 고팠던 탓이었을까, 아니면 거대한 기업에서 수천명의 이름으로 만든 햇반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정말 불행한 일이지만, 내가 김치찌게를 제법 끓인 탓일까. 허겁지겁 숟가락을 들고 움직이면서, 15년이 넘은 대우 TV 속에서 아나운서들이 마치 남의 나라 이야기하듯 국내 뉴스를 전하는 소리를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어차피 그들은 나를 향해 하는 소리가 아니었고, 내가 TV 속 그들을 본다고 해서 그들이 나에게 관심을 표명한다거나, 내일 전화를 한다거나, 커피나 술을 사줄 것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19세기의 예술가들이 열광했던, 그 모더니티의 익명성은 이제 우리의 일상 모두를 지배하는 감옥이 되었지만, 그 누구 하나 나서서 모더니티가 감옥을 찬양했으며, 감옥을 낯선 것이며 열광했다는 일을 지금도 좋아하는 걸 보면 정말 웃긴 일이다. 내가 알기로 오직 막스 베버만이 그것을 새장이라고 표현했다.) 

새로 산 운동화를, 버리려고 내놓은 수 백 권의 책 옆에 밀어두고 벨앤세바스티안을 들었다. 미친 짓이다. 요즘 잘 듣지도 않는 팝 음악에 빠져있다는 건 권장할 만한 짓은 아니다. 연말엔 클래식 공연을 몇 개 챙겨서 볼 요량이었으나, 혼자 가는 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브람스 전집을 사려고 인터넷 서점 소망리스트에 올려놓았으나, 결정적으로 들을 시간이 없다. 프레드릭 제임슨의 '후기마르크스주의'(한길 그레이트북스)를 읽고 있다. 아마 이 책이 재미있다고 하면 욕 먹겠지. 보편과 특수, 개념과 총체성이라는 단어를 보면서 마르크스나 엥겔스, 혹은 루카치가 아니라,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아퀴나스와 오캄을 떠올린다고 하면 돌았다고 하겠지. 

오늘 점심 시간, 점심 대신 압구정 트리니티 빌딩 지하 2층, 3층에 자리잡은 PKM Trinity Gallery에 가서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 전시를 보았다. 몇 년 전 웹 기사를 통해 그의 The Weather Report를 보면서 경험해보고 있었는데, 막상 서울 전시는 그의 스케일을 느끼기엔 다소 약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퇴근 후, 올라퍼 엘리아슨의 기사 몇 개를 찾고 이미지와 동영상을 찾다고 보니, 금세 열 한 시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열 두 시가 넘었다. 

글쓰기도 잘 안 되고, 책읽기도 잘 안 되고, 연애도 잘 안 되는 느낌이다. 결국 내 어린 마음은 믿을 수가 없고, 내 늙은 육체는 이 가을, 너무 쉽게 지치기만 한다. 터무니없는 가을을 용케 잘 버티고 있는 중이다. 술을 조금 줄이든지, 아니면 도어스의 '인디안 섬머'를 들으면서 병맥주를 조만간 마셔야 겠다. 이번 가을을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중이라며 나에게 스스로 술 한 잔 권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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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체험 - 10점
오에 겐자부로 지음, 서은혜 옮김/을유문화사
(고려원에서 오에 겐자부로 전집이 나왔으나, 이제는 헌책방에서조차 구하기 어려운 귀한 전집이 되었다. 일본 문학사에서 보기 드문 문학적 업적을 이룬 오에 겐자부로에 대한 이해가 한국에서도 깊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다.)



새로 홈페이지를 단장하면서 이전에 쓴 글을 추스리고 있다.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한 글.

히미코를 따라 소리내어 있다가 보니, 나도 모르게 울컥인다. 내가 소설을 쓴다면 저런 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히미코에겐 내 사랑을 받아달라는 간절한 메시지로 기능하고, 버드에겐 장애를 가진 아이가 소중하다는 메시지로 기능하는, 그래서 세상은 평온 속에서 이어나가고 상처와 방황은 눈물로 스스로 아물어가는.

손가락으로 세어보니, 스물 여섯 쯤이었던 것같다. 오에 겐자부로의 <<개인적 체험>>을 읽은 게. 그 사이 서른 셋이 되었는데, 변한 게 별로 없다.

도리어 그 땐 세상이 무섭지 않았는데, 지금은 세상이 무섭다는 것.

그 땐 세상이 나의 편이 되어줄 거라 믿었는데, 지금은 세상이 적이라는 것.

그 땐 세상이 오에의 믿음대로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믿었는데, 지금은 세상에 개선의 여지란 전혀 없다는 것.

나이가 든다는 건 자신도 모르게 상처 입고 그 상처에 무디어져 스스로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 자신이 죽어있음을 깨닫곤 몸부림쳐보지만, 죽음의 상태가 너무 오래 지나 있음을 깨닫고 세상이 시키는 대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희망은 늘 언제나 멀리 있고 진실은 밝혀지지 않기 때문에 진실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희망이 가까이있어 잡을 수 있다면, 희망으로서의 존재 가치가 없으며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진실 또한 그 존재 가치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니, 세상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건 한 없이 멀리 있는 진실과 끝내 밝혀지지 않을 진실'들'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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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어느 날 적음.


        "그런데 너나 내가 전혀 다른 존재로서 포함되어 있는,
       여기와는 다른 그 수를 알 수 없는 다른 우주가 있다는 거
       야, 버드. 우리들은 과거의 여러 가지 때에 자신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가능성이 오십 대 오십인 추억을 가지고 있어.
       예를 들면 나는 어린아이 때에 발진티푸스로 까딱 잘못하면
       죽을 뻔했어. 나는 내가 죽음을 향하여 내려갈지, 아니면
       회복에의 언덕길을 올라갈지 교차로에 선 순간을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어. 그리고 지금, 이렇게 너와 같은 이 우주에
       있는 나는, 살아 남는 쪽을 선택했던 거지. 그런데 그 순간
       에 또 다른 내가 죽음을 선택한거야 그리고 그 빨간 발진투
       성이의 내 어린 시체 주위에는, 죽어 버린 나에 대해 약간
       의 추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우주가 진행되기 시작한
       거야. 있잖아, 버드? 죽음과 생의 분기점에 설 때마다 인간
       은 그들이 죽어버려 그와 관계없는 우주와, 그들이 계속 살
       아 남아 관계를 가지는 우주, 두 우주를 눈 앞에 두는 거
       야. 그리고 옷을 벗을 때처럼 그들은 자신이 사자(死者)로
       서밖에 존재하지 않는 우주를 뒤로 하고 그들이 계속 살아
       갈 쪽의 우주로 오는 거야. 그래서 하나의 인간을 둘러싸
       고, 마치 수목의 줄기로부터 가지나 잎이 갈라지듯이 여러
       가지 우주가 갈라지게 되는 거지. 나는 지금 남편이 죽어
       버린 쪽의 우주에 남아 버렸지만, 남편이 자살을 하지 않고
       계속 살아 남는 저쪽의 우주에는 또 하나의 내가 그와 함께
       살고 있는 거야. 하나의 인간이 젊어서 죽어 뒤에 남기는
       우주와, 그가 죽음을 면하고 계속 살아가는 우주, 하는 식
       으로 우리들을 둘러싼 세계는 항상 증식되어 가는 거야. 내
       가 다원적 우주라고 부르는 것은 그런 의미야. 너도 아기의
       죽음을 너무 슬퍼하지 않는 게 좋아. 아기를 축으로 하여
       분기된 또 하나의 우주에서는 살아 남은 아기를 둘러싼 세
       계가 전개되고 있으니까. 거기에서는 행복에 취한 젊은 아
       버지인 네가 기쁜 소식을 듣고 기분이 좋은 나와 축배를 들
       고 있는 거야. 됐어? 버드."
         - 『개인적 체험』. 85쪽에서 86쪽까지.
        
         히미코는 버드에게 자신이 말한 '다원적 우주'에 대해서
       말한다. 그건 버드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그녀 자신을 위해서, 그녀는 또박또박 버드에게 말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기를 죽이지 않고 키우기로 결심한 버드
       의 떠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히미코는 와락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자신의 처녀를 가지고간 첫번째 남자, 남편이 자살하
       고 난 이후 가장 행복한 시간들을 선사해준 남자, 몇 시간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신의 혀와 젖꼭지를 애무하며, 사타구
       니 속에 머리를 파묻고 있던 남자, 아기가 죽고 아내와 이
       혼한 다음 아프리카로 가자던 남자, 그 남자의 뒷모습을 보
       면서 히미코는 울음을 터뜨린다.
        
         『개인적 체험』이라는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은 분명 오
       에 겐자부로의 '개인적 체험'을 바탕으로 쓰여졌고, 그래서
       이전의 글에선 갓 태어난 장애아의 젊은 아버지의 고민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아직 미혼의 이십대를 벗어나지 못한
       탓인지를 몰라도, 아기를 다시 키우기 시작한 버드의 용기
       보다 떠나는 버드를 보며 울음을 터뜨리는 히미코의 모습이
       계속 떠오른다. 



        
         히미코의 '다원적 우주'. 그저 검증되지 못하는 가설에
       불과하지만, 가끔 히미코의 '다원적 우주'를 떠올려야 할만
       큼 우린 지치고 있다. 가끔 히미코같은 여자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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