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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미술사 책을 읽기는 하나, 그건 일 년에 한 권 될까 말까이다. 한때 책을 내기도 했고 강의도 하기도 했지만, 그건 십 수년 전 일이고, 마지막 잡지 기고를 한 것도 꽤 지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러다 우연히 강의 제의가 들어왔다. 요즘 아내의 일로 커뮤니티 자치 활동을 잠시 도와주고 있는데, 그 곳에 계신 분의 제안으로 한 차례 강의를 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아래는 간단한 강의 개요다. 막상 적기는 쉽게 적었으나, ... 도판 찾는 게 일일 듯 싶다. 요즘은 워낙 온라인 아카이브가 잘 되어 있어 쉽게 도판을 찾을 수 있으나, 정확하고 적절한 도판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한 일인지라, 꽤 시간이 걸릴 듯 싶다. 동네에서의 반응이 좋으면 나중에 공개적인 장소, 가령 북까페 같은 곳에서 한 번 더 하면 좋을 것같기도 하다. 이런 강의도 자주 해야 까먹지 않는데, ... 머리가 굳어져서 큰 일이다. 


*** 

 

미술의 역사를 통해 배우는 현대미술감상법 


우리의 마음과 예술의 경향 

‘예술은 없고 예술가만 있을 뿐이다’라고 에른스트 곰브리치는 <<서양미술사>>의 첫 문장으로 적고 있습니다. 예술 작품 뒤에 놓여진 예술가의 삶과 그 시대를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그 때의 예술작품을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중세 말의 고딕 성당을 알기 위해선 그 당시 사람들의 신앙에 대한 깊은 공감을 가져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13세기의 유럽인이 아닙니다. 그러니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의 마음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정직하고 솔직하게 바라볼 때 비로소 예술 작품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본적인 태도가 갖추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령 신앙의 문제에 있어서 현대의 어떤 사람은 조용히 교회당에 가서 기도를 올리고 아침저녁으로 묵상을 반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교회당 대신 거리로 나가 자신의 신앙을 과시하기도 합니다. 로마네스크 성당과 고딕 성당의 차이는 이와 비슷합니다. 신의 존재와 신앙의 문제 앞에서 사람들은 다양한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사람들의 각기 다른 마음과 태도도 그 시대의, 그 나라의 예술작품을 만듭니다. 





생-드니 성당. (1135 - 1144)



매너리즘과 현대 

예술사에서 매너리즘(마니에리즘)은 16세기 중후반의 지배적인 양식을 의미합니다. 일종의 퇴보로 이해되었던 탓에, 이 양식의 명칭은 경멸적입니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그 시대의 예술은 가장 현대적인 예술로 인정받기에 이릅니다. 우리는 예술 양식이 어떻게 경멸당하고 다시 받아들여지게 되는가 흥미로운 역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그 당시의 예술가들이 어떻게 싸웠는지 알게 됩니다. 


틴토레토, <최후의 만찬>, 1592-94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예술은 크게 고전주의(고전적 예술)과 낭만주의(낭만적 예술)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양식에서의 어떤 차이점을 가지고 있는가 설명합니다. 대표적인 시대와 예술가들, 그들의 작품에 대해 이해하며 현대 미술에 있어서의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도 함께 탐구합니다. 


라파엘로, <초원의 성모>, 1505 



자연주의와 기하학주의 

서로 대립되는 양식으로 여겨지지만, 이는 대립되는 양식이 아니라 우리가 외부 세계와 마주할 때 취하게 되는 양식적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주 드물게 자연주의와 기하학주의가 함께 드러낼 때도 있습니다. 자연주의 작품과 기하학주의 작품을 함께 비교해가며 예술가들이 외부 세계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는지 이해하도록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들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고민해봅니다. 


이집트, <사자의 서> 일부, BC.1275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소장품기획전>으로 보는 현대미술과 우리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소장품기획전>은 현대 미술의 정수를 볼 수 있는 보기 드문 전시입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현대 미술 작품 안에 그러한 것들이 어떻게 녹아 있는지 살피고, 현대 미술 작품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기본적인 내용에 대해 살펴보도록 합니다. 


론 뮤익, <침대에서>,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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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부를 위해 방송통신대 영어영문학과를 편입했다. 그러나 영어 공부 대신 나는 영미시의 아름다움과 셰익스피어를 알게 되었다. 문학 전공자로서, 시 창작까지 공부했지만, 영미시의 아름다움을 중년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는 건, 내가 다닌 학부 과정이 형편없었거나, 내 지적 역량이 떨어졌던 탓일 게다. 


셰익스피어는 매너리즘 후반과 바로크 전반기에 속한다. 근대에서 속하면서도 근대가 시작되던 시기의 혼란스러움이 셰익스피어 극작품 속에 숨겨져 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처럼, 극중 인물들의 운명을 가로지르며 절정을 지나 결말에 이르게 한다. 맥베스는 셰익스피어의 다른 극작품들과 비교해 그 분량은 짧으며, 극적 완성도나 속도감은 최고다. 하나의 사건은 곧장 다른 사건으로 이어지며 인물들의 감정도 마치 폭풍이 치는 해안가의 파도처럼 격정적이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것들이 매너리즘적 속성이라 파악하고 이를 매너리즘 양식 속에서 해석하는 것을 방송통신대 영문학과 졸업 논문 주제로 정했다. 아래는 졸업논문계획서다. 바쁜 프로젝트 중에 겨우 시간을 내어 급하게 적어 제출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방송통신대 다니는 것은, 그냥 졸업했다는 것만으로도 박수 칠만한 일임을 휴학을 밥 먹듯 한 뒤에서야 알게 되었다. 작년에 졸업할 수 있었으나, 결국 하지 못하고 올 1학기에 졸업한다. 얼마 남지 않았으니, 최선을 다해보기로 하자. 


*     *  

<<맥베스>>의 매너리즘적 성격에 대하여



셰익스피어가 활동했던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초반은 문학과 예술의 역사에 있어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시기였다. 중세가 끝났지만, 중세의 여운이 남아 있었으며(<<맥베스>>에서는 세 명의 마녀들로 표현된다), 동시에 운명의 손(또는 기독교의 질서)을 벗어나 개인의 능력, 이성과 과학을 믿는 시대로 나아가려고 몸부림친다. 그래서 한 손에는 종교를, 한 손에서는 이성을 들고 서로 갈등하면서 혼란스러워 하고 그 사이에서 고통스러워한다. 


셰익스피어는 세르반테스와 함께 매너리즘의 가장 위대한 작가들 중의 한 명이다. 하지만 매너리즘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모호함은, 양식적인 측면에서의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분석하고 적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한다. 이에 필자는 1)문학에서의 매너리즘 양식의 특성을 먼저 정의하며, 2)세익스피어가 살았던 시대의 영국과 유럽 상황에 대한 이해를 구하고 난 다음, 3)세익스피어의 <<맥베스>>가 가지는 매너리즘적 특성을 분석하고자 한다. 


매너리즘은 일반적으로 르네상스 고전주의와 바로크 사이의 반동적 양식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속하는 이들로는 말년의 미켈란젤로, 세르반테스, 마키아벨리, 엘 그레코 등이 있다. 이들은 다가오는 미래-이성의 시대인 근대-를 예감하면서도 동시에 종교적 질서에 대한 믿음(혹은 의심) 속에서 끊임없이 번민하고 갈등하는 세계를 공유한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군주론>>를 통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비도덕적 수단까지도 용인할 수 있으며, 실제로 그러하다고 말하면서 노골적인 폭로주의적 태도를 취한다. 즉 잘못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서 전도된 이상주의자의 면모를 보여준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몽상(꿈)에 빠진 인물을 통해 시대착오적 현실-근대이지만 중세인-을 비아냥거리며 비판하고 절망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도 현실의 세계가 비현실적 요소(꿈, 유령, 마녀 등)로 영향 받고 흔들리며 결말에 이르게 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비극적 현실 속에 숨겨진 인간 군상의 진실을 보며, 그 앞에서 신의 세계에서 벗어난 인간의 개별성에 주목하게 된다. 매너리즘은 신의 세계를 떠나 인간의 세계로 가는 도정 상에 위치하면서 그 길 위에서 흔들리는 시대상을 대변하는 양식인 셈이다. 


필자는 이러한 매너리즘적 세계가 어떻게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구성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구성이 그 당시 영국과 유럽의 상황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가를 분석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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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본다는 것 Looking at pictures 

케네스 클라크Kenneth Clark(지음), 엄미정(옮김), 엑스오북스, 2012년 (원저는 1972년에 출판)






나는 그림이 주는 기쁨을 더 많이 더 오랫동안 느낄 수 있으려면 그림에 관해 배워야 한다고 믿는다. - 7쪽 



그림을 즐기기 위해선 배워야 한다고 케네스 클라크는 말한다. 우리가 뭔가 배울 땐, 성적 때문이 아니라 즐기기 위해서이다. 배움을 통해 우리는 세상의 비밀을 조금 더 알게 될 것이고, 과장해서 말하자면 세상은 빛으로 가득 찰 지도 모른다. 아마 중세를 지나 근대를 향해 가던 서유럽인들이 느꼈던 감정이 바로 이랬을 것이다. 배우고 알아가는 과정은 어두운 세계를 환하게 밝히는 것과 같다. 



우선 나는 그림을 하나의 전체로 바라본다. 그림을 보기 시작한 뒤 한참 후에야 나는 비로소 내가 의식하는 대상이 지닌 일반적 인상을 알아차리게 된다. 일반적 인상이란 색조와 부분, 형태와 색채의 관계에 좌우된다. 일반적 인상이 주는 충격은 즉각적이다. (...) 그러므로 최초의 충격 다음에는 그림의 부분 부분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색채는 조화로운지, 소묘는 대상을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렸는지, 세부를 살펴보고 즐기라는 말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화가가 의도했던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 8쪽 




하지만 즐기기 위해 배운다는 것이 우리들에게 낯선 건, 그만큼 배운다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아온 탓일 게다. 의외로 미술에 대한 책은 잘 읽히지 않고, 잘 팔리지도 않는다. 갤러리가 많긴 하지만, 일반인들의 방문은 뜸하고, 전시를 열지만, 작품이 팔리지 않고 팔리지 않으니, 작품 가격은 비싸진다. 거기다 위작 논란까지. 그만큼 미술에 대한 진입 장벽은 높기만 하다. 그리고 현대 미술이든 고전 미술이든 다 어렵다고 여긴다. 심지어 현대 미술은 '난해한'이라는 수식어가 그냥 자연스럽게 붙어다닌다.


실은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도 어렵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이 책은 서구에선 중고등학생들이 읽는 책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국에선 대학생들도 어렵다고 하니, 한국 사람들의 책 읽기 수준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밖에.


이런 면에서 이 책도 어려울 지 모르겠다. 하지만 케네스 클라크는 읽는 이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그림을 보는 것의 의미를 새삼 물으며 서양미술의 역사에서 알아두어야만 할 예술가들과 대표작품을 다룬다. 초심자에겐 그림 보는 재미를, 이미 서양미술의 역사에 대해 이해를 갖진 사람들에겐 케네스 클라크만이 알려줄 수 있는 통찰이 흥미로울 것이다. 


책에선 더 많은 예술가들을 다루고 있으나, 여기서는 3명의 작가들에 대한 케네스 클라크의 생각을 옮겨본다. 



엘 그레코El Greco 



16세기 후반 최고의 작가는 단연코 엘 그레코다. 하지만 그는 수 백년 동안 잊혀져 있던 작가였다. 근대 시대의 매너리즘(마니에리스모) 양식에 대한 경멸은 16세기 후반 작가들의 무시와 천대로 이어졌다. 그리고 20세기 초 엘 그레코는 극적으로 부활한다. 


그럼에도 엘 그레코를 근대 회화의 선구자로 간주했던 1920년대의 비평가들은 옳았다. 첫번째는 엘 그레코가 비사실적인 두 양식, 곧 비잔틴과 마니에리스모 양식을 거치며 화가로서 입지를 다졌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형이상학적 사고 방식을 타고난 덕분에 고전주의적 전통의 주된 전제를 거부한 최초의 유럽화가였기 때문이다. 엘 그레코는 화면의 깊이보다 표면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 151쪽 



엘 그레코, 그리스도의 옷을 벗김(The Disrobing of Christ)

Oil on canvas, Height: 285 cm (112.2 in). Width: 173 cm (68.1 in). 

1577 ~ 1579, 톨레도 대성당 



표면을 중시했다는 표현과 함께 엘 그레코가 "미켈란젤로는 훌륭하지만 그림 그리는 법을 모른다"라고 말했다는 건 참 흥미롭다. 깊이 대신 표면을 중시할 때, 고전적 원근법적 세계는 흔들린다. 중심은 사라지고 모든 것이 균등해진다. 확고한 질서 대신 흔들리는 마음이 전면에 부상한다. 그래서 엘 그레코의 성상화들이 우리 마음을 울리는 것이다. 십자가 앞에서 흔들리는 마음을 엘 그레코는 알고 있었다. 



장 앙트완 와토Jean-Antoine Watteau





장 앙트완 와토(Jean-Antoine Watteau), 제르생의 간판(The Shop Sign of Gersaint)

Oil on canvas, 163 cm × 308 cm (64 in × 121 in)

1720-1, Charlottenburg Palace, Berlin

이미지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L%27Enseigne_de_Gersaint 



신고전주의가 자크 루이 다비드라는 걸출한 천재가 만든 양식이라고 한다면, 회화에서의 로코코 양식은 장 앙트완 와토의 것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와토의 이미저리는 그가 처음으로 전시했던 그림부터 유행하기 시작해 향후 100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심지어 와토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 후에 태어난 후배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1732 - 1806)는 여전히 와토의 정원, 말하자면 그의 이미저리를 활용했다. - 127쪽 



와토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우울해진다. 절반은 포기하고, 절반은 포기한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노는 것같다고 할까. 그 애상은 로코코 시대 전반을 물들였다. 한 시대(토지 귀족의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부르조아지의 시대)가 오고 있었다. 계몽주의와 로코코는 같은 시대의 양식이다. '제르생의 간판'은 와토가 얼마나 대단했는가를 새삼 느끼게 해줄 것이다. 위키피디아 링크를 타고 들어가면 작품의 디테일을 확인할 수 있다. 




들라크루아 Eugène Delacroix




Eugène Delacroix, The Entry of the Crusaders into Constantinople 

oil on canvas, 81 × 99 cm (31.9 × 39 in)

루브르 박물관 

이미지출처: https://fr.wikipedia.org/wiki/Entr%C3%A9e_des_Crois%C3%A9s_%C3%A0_Constantinople 




오히려 그는 예술은 상상력을 비추어 사건을 재창조하므로 시의 특질을 띤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들라크루아는 아마도 매우 많은 이류화가들을 미혹했던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BC 65 ~ BC 8)의 조언, '시 같은 그림 ut pictura poesis'으로 성공을 거두었던 마지막 유럽 화가였을 것이다. - 93쪽 



H.W. 잰슨(서양미술사가)이었던가, 낭만적 고전주의와 고전적 낭만주의라고. 다비드가 낭만적이고 들라크루아가 고전적이라고. 어쩌면 케네스 클라크의 견해에 힘입어, 들라크루아는 전통적 의미에서의 마지막 고전주의자일 지도 모르겠다. 낭만주의였으나, 그의 마음은 확고하게 고전적이었다. 그는 작품을 통해 스토리를 전달하였으며, 의미를 담아냈다. 그런 양식으로 그림을 그렸던 위대한 예술의 마지막 장을 장식한다. 그 이후 나온 아카데미 화가들, 제롬이나 부게로 같은 이들은 무식하게(성실하게) 그림만 그린 이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시대가 어떻게 변하는지 몰랐으며, 그 변화를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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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는 도중, 베로니카는 피와 땀으로 얼룩진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닦아 준다. 그리고 그 수건 위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이 새겨진다. 아래 작품은 그 기적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전형적인 이콘화처럼 보이는 이 작품은 엘 그레코가 비잔틴의 이콘화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음을 알게 해준다. 그리스 태생의 엘 그레코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르네상스 후기(매너리즘)의 화풍을 배웠고 이후 스페인 톨레도로 가서 화가로서의 명성을 쌓는다. 




엘 그레코, <<수건을 든 베로니카>>, 캔버스에 유채, 84 cm * 91 cm, 1580년경, 톨레도, 산타쿠루즈 성당



슬픔에 젖은 베로니카가 수건을 펼쳐 보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여줄 때, 어떤 비장미까지 느끼게 하는 이 작품은 수건과 뒤 배경 사이의 묘한 대비가 인상적이다. 



실제로 보면 아래와 같은 느낌이지 않을까 싶어, 사진 한 장을 더 올린다. 무표정해보이는 예수 그리스도와 슬픔을 억누르는 듯한 베로니카, 두 손 사이의 수건, 주름진 천 위로 드러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16세기 후반 최고의 예술가로 추앙받는 엘 그레코. 이 작품은 보면 볼 수록 빨려든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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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로의 소생'(The Raising of Lazarus)

세바스티아노 델 피옴보(Selbastiano del Piombo, 1485 - 1547)

Oil on canvas, 1517-1519

381cm * 299cm, National Gallery, London




시기적으로 르네상스 고전주의와 매너리즘에 속하는 세바스티아노 델 피옴보는 그의 고향 베네치아의 색채와 그가 화가로의 삶을 살았던 로마의 선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나사로의 소생'은 저명한 미술사가인 케네스 클라크로 하여금 '로마적인 형태와 베니치아적인 색채의 조합을 보면, 피옴보가 17세기 고전적 풍경의 진정한 창시자였음을 알 수 있다'는 언급을 하게 하였다. 특히 인물들 뒤로 펼쳐지는 풍경은 마치 니콜라스 푸생의 바로크적 풍경을 보는 듯하다. 


후일 친구가 되는 미켈란젤로의 드로잉이 이 작품에 사용되기도 했는데, 아래가 바로 그 드로잉이다. 부활한 나자로와 그를 부축하는 이들을 그린 작품이다. 



Lazarus and attendant

Michelangelo, 1516 



나자로의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다른 치유들과 달리 이미 죽어 육체가 부패하기 시작하는, 죽은 후 나흘이 되던 때 다시 일으켜 세웠다는 데에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사건은 많은 예술가들에 의해 작품화되었고 쉽게 작품들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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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ntormo (Jacopo Carrucci)
Visitation, 1528-29
Oil on wood, 202 x 156 cm
San Michele, Carmignano (Florence)


야코포 폰토르모의 작품이다. 슬프고 우울하면서 왠지 몽환적인 느낌을 풍긴다. 매너리즘의 대표적인 화가인 폰토르모는 부드럽고 화려한 색채 속에서 마치 비현실적이거나 이 세상이 아닌 저 세상처럼, 달콤하고 유려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의 슬픔을 우회적으로 드러내는 듯하다. 실제로 보았던 폰토르모의 작품은 너무 연약해서 불쾌할 지경이었다.  

바야흐로 시대는 본격적으로 현대를 향해 간다. 16세기 후반 일군의 예술가들이 불러들인 세계는 바로 '꿈'이다. 세익스피어의 '햄릿'이 유령을 불러들이듯,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도 그랬다. 현실과는 무관한 자족적인 세계를 구성하고자 한다.

눈에 보이는 현실과 대치하면서, 현실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하려던 르네상스 사람들 사이로, 현실이 아닌 이론에, 규칙에 안주하려는 일군의 예술가들을 우리는 매너리스트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고전주의 다음에는 언제나 낭만주의가 오듯, 르네상스가 물러나자 한동안 비난을 면치 못하는 매너리즘 세계가 펼쳐진다. 이 시대는 예술의 역사 속에서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퇴행의 시기였다. 밝고 활기차며 규범적인 세계가 낯설고 화려하면서 우울한 세계로 이행하는 것이다.

폰트로모는 다락방 작업실에서 내려오는 법이 없었고 결국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미켈란젤로와 경쟁하려고 부단히도 노력했던 그는 반듯하게 보이는 질서들(고전주의) 사이에 숨은 우울한 개인주의를 드러낸 최초의 예술가들 중의 한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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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7시가 되기 전에 일어나, 신문을 잠시 보다가, 9시가 되기 전에 집을 나서 근처 분식집에서 아침 식사를 했다. 실은 오후 늦게 약속이 있는데, 과연 내 몸 상태가 그 약속을 소화시킬 정도인가 테스트해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걷는 모습은 꾸부정하고 움직일 때마다 적당한 수준의 통증을 느꼈다. 결국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기 곤란한 상황이라, 나중에 전화를 다시 하기로 했는데, 아직까지 전화가 없다.

집에 들어와, 장 필립 라모(Jean-Philippe Rameau, 1683 - 1764)의 '피그말리온 Pygmalion'을 들었다. 감미롭고도 슬픈 선율을 날 잠시 위로했다.

쓸쓸함이라든가 외로움이라든가 하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만큼 슬픈 일도 없다. 아플 땐 특히 더 그렇다.

원래는 운동을 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는데, 도리어 몸을 움직이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다. 약국에 갔더니, 이상한 진통제들만 잔뜩 준다. 하루 이틀 먹어보고, 그래도 계속 아프면 병원 가라고 한다. 어제 운동을 하러 갔다가 샤워를 하기 전 거울을 보니, 얼마나 아팠던 건지 상체가 갸우뚱해져 있음을 발견하고 놀랬다. 옷을 입은 상태에선 보이지 않던 것이 옷을 벗고 나니, 내가 예상하던 것보다 내 육체는 그 통증에 매우 김각하게 반응하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피그말리온은 고대 그리스의 조각가로, 자신이 만든 여인상과 사랑에 빠진다. 이렇고 저렇고 해서, 여인상이 실제 여인으로 변해 피그말리온 옆으로 온다는 기이한 이야기의 주인공인데, 이 로맨틴한 스토리는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준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보게 되는 작품의 갈라테(Galatea, 피그말리온이 사랑에 빠진 여인상의 이름)은 대부분 아름답다. 그런데 아래 작품은?

  

브론지노(Angelo Bronzino)의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은 너무 흥미롭다. 1529년에서 1530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작품 속에서, 두 인물은 마치 자신들이 그림 속에 위치한 가상의 인물임을 아는 듯, 다소 작위적이고 가식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다. 색채도 공중에 붕 뜬 듯, 단단한 느낌을 주지 못하고, 그렇다고 환영적이라든가 자연주의적이지도 않다. 마치 결과를 알 수 없는 슬픈 꿈처럼, 그렇게 표현되고 있다.

요즘 우리 시대도 이런 모습은 아닐까. 아니면 내 모습은? 하지만 바로크 시대의 오페라 작곡가였던 라모의 음악은 충분한 위로가 될 수 있으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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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다 사진을 찍었다. 며칠 날이 흐리다가 화창하게 해가 났다. 걸어 루브르에 갔다.
 

예술의 다리 위에서 세느강 동쪽으로 보면서 찍었다.

잠볼노랴의 '헤르메스'다. 날아갈 듯한 가벼움. 매너리즘 조각의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조각작품이다.

폰토르모의 작품이다. 화사한 색감의 무너지는 듯한 라인들은 16세기 후반의 심리적 경향을 보여주었다.

성 제롬이 종교적 황홀경에 빠진 내용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종교적 황홀경을 표현한 작품들은 많다. 이들 작품들이 어떻게 변하는가를 보아도 무척 재미있는 스토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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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주의와 낭만주의


고전주의란 나와 세계, 이상과 현실이 서로 어긋나지 않으며 내가 원하는 바, 내가 행동하는 바 모든 것이 인과율적 결과로 나타난다고 믿는 세계관이다. 이에 반해 낭만주의란 나와 세계, 이상과 현실이 서로 어긋나 분열되기 시작하고 내가 원하는 바, 내가 행동하는 바와 무관하게, 심지어 반대의 결과가 나타나게 되었을 때, 그 앞에 서서 절망하는 세계관이다. 그러므로 낭만주의 세계관을 이해하기 위해선 고전주의가 우리에게 무엇이며 어떤 것을 가져다 주었는가를 먼저 알아야만 한다.


고전주의적 세계관이 개인에게, 예술가에게 무엇을 던져주었는가를 알지 못한다면 낭만주의의 세계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분열적 세계 인식, 절망과 슬픔으로 뒤범벅이 된 표현, 종종 병적으로 보이는 도피적 양식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얼치기 낭만주의자들은 아름다운 사랑의 낭만 따위나 읊어대는 것이다. 낭만주의자들에게 있어 사랑이란 잡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사랑의 환상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즉 현실에서 자신이 원하는 바, 그 어떤 사랑을 구할 수 없다는 상황 인식을 기반하고 있는 것이다.


고전주의가 생에 대한 확신을 기반하고 있다면 낭만주의는 그 확신이 무너지는 시기의 양식이다. 그러고 보면 고전주의 시기는 언제나 선행하는 무질서를 전제로 하고 있으며 동시에 고전주의가 끝나면 곧바로 무질서가 오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르네상스 고전주의가 아주 짧은 시기, 그 절정기의 작품들을 보여주고 난 다음 매너리즘 양식이라고 하는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운 작품들이 나타난다. 우습게도 이러한 작품들을 그린 화가들 중에 절정기 르네상스의 위대한 예술가인 미켈란젤로와 티치아노도 포함된다.


매너리즘(Mannerism, Mnierismo)의 시대


우리가 이탈리아 르네상스라고 이야기할 때 대체로 종교개혁 이전의 이탈리아를 뜻한다. 그러므로 이탈리아 르네상스라고 이야기했을 때, 13세기의 초기 르네상스부터 16세기 매너리즘까지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16세기 중반 이후부터 이탈리아는 그 당시까지 누려오던 어떤 주도권을 잃어버리기 시작한다. 예술 작품들의 성격, 또는 양식의 변화가 정치경제적 환경의 변화에 전적인 영향을 받아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하기에는 예외적인 경우가 예술의 역사 속에서 빈번하기 때문에 함부로 주장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


매너리즘 시기의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선 이 당시 유럽의 격변을 이해해야만 한다. 초기 르네상스와 르네상스 고전주의가 눈에 보이는 세계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면 매너리즘은 이 확신과 자신감에서 후퇴하고 도피하는 양식이며 이는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전 유럽적인 상황이었다. 그래서 매너리즘 속에는 마키아벨리(Machiavelli, 1469~1527), 에라스무스(Erasmus, 1469~1536), 세르반테스(Cervantes, 1547~1616), 라블레(Rabelais, 1483~1553), 셰익스피어(Shakespeare, 1564~1616)가 포함된다. 어쩌면 폰토르모(Pontormo, 1494~1557), 파르미지아노(Parmigianino, 1503~1540), 엘 그레코(El Greco, 1541~1614), 틴토레토(Tintoretto, 1518~1594), 브론지노(Bronzino, 1503~1572), 첼리니(Cellini, 1500~1571) 등과 같은 매너리즘 예술가들을 이해하기 위해 최초의 근대 소설이라고 일컫어지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Don Quixote)나 셰익스피어의 햄릿(Hamlet)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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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eus
Benvenuto Cellini
Bronze, 1545-54
Loggia dei Lanzi, Florence



매너리즘 양식의 정신적 배경



아마 역사 속에서 매너리즘적 태도를 드러낸 시기가 있다면 로마 말기와 20세기 이후의 현대일 것이다. 아마 로마의 위대한 황제들 중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121~180)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학문을 좋아했으며 플라톤을 존경하였던 이 황제는 황제가 되고 난 다음의 인생 대부분을 전쟁터에서 보였다. 그에게는 분명 어떤 정치 철학이나 로마 제국의 미래에 대한 구상이 있었을 지 모르지만, 불행하게도 그가 살았던 세계는 그의 그런 이상을 받아줄 수 없었다. 즉 이상과 현실의 분열이 극명하게 드러났던 시기였던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16세기, 진지하고 성실하며 때로 그 현명함으로 명성을 떨쳤던 이들은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절망하고 슬퍼하였다. 에라스무스는 이 시기의 대표적인 학자이면서 그가 남긴 <우신예찬>(愚神禮讚, Encomium Moriae)은 전형적인 매너리즘 작품에 속한다. 그는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의 종교 개혁 속에서 그 개혁이 가지고 있는 어떤 광신적 태도와 그것이 가져올 비극에 대해서 예리하게 지적하고 이에 대해 응수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기의 현실은 너무 거대해서 현자의 명성을 가지고 있었던 에라스무스마저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명성을 가지고 있지도 못했던 예술가들은 어떠했을까.


가끔 자기 환상을 가지게 된다. 가령 '지금은 보잘 것 없는 월급을 받는 회사원이지만, 나중에 사업을 해서 성공할 수 있을 꺼야. 그래서 지금의 나는 미래의 성공한 나를 만드는 계단이야'라고 말이다. 하지만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고전주의자들의 세계 속에서 이러한 생각은 어떤 자신감과 확신에 근거하였고 이를 밀어 부쳤다. 하지만 매너리즘의 세계 속에서 이러한 생각은 보기 싫은 현실을 잊기 위해 미래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즉 감당하기 힘든 현실 속에서 하루하루의 생을 지탱하기 위해 자기 환상을 만들어낸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그래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슬픈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것이다.


십대나 이십대, 또는 더 나이든 이들이 대중 스타에 대해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이들을 따라다니는 것은 이러한 자기 환상, 내지 자기 기만적 의식에 근거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에게 있어 미남 영화배우나 미녀 가수와 찍은 한 장의 사진만으로도 한동안 자기 인생의 의미를 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고전주의자들이라면 확고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자신의 진지한 사고, 성실한 행동이 자기 인생의 의미를 구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었다면 현대에서는 대중 스타와 찍은 한 장의 사진만으로도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즉 내일이 오늘보다 못할 수도 있다는 인식은 매너리즘 시대마다 공통적으로 상황인식이었다.


고딕 시대에 신과 인간의 분열이 시작되었다면 르네상스 시대에는 인간 속에서 신적인 것을 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르네상스 고전주의에서 그 믿음을 실현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매너리즘에서는 '인간 속에서 신적인 것을 구할 수 없구나'는 인식이 시작된다. 눈 앞에 보이는 현실 세계는 너무 혼란스럽고 불투명하기 때문이었다.


'분열'이 낭만주의의 핵심 단어라면 '자기 기만'은 매너리즘 시기의 핵심단어이다. 그리고 이것은 곧바로 자기 분열, 내지 자아 분열로 연결된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현실 세계 속에서는 '마키아벨리즘'으로 보여진다.



현실 정치(Realpolitik)의 시대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세상을 저렇게도 아름답게 볼 수 있구나'라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이 있다. 동시에 '아냐, 조금만 눈을 더 크게 뜨고 바라봐. 그럼 세상이 아름답다는 걸 알 수 있을 꺼야'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은 똑같은 시대의 사람들이고 똑같은 정신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즉 불투명하고 혼란스러운 현실을 보기 위해 어떤 이데올로기, 즉 관념적 허상을 끊임없이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현실에 대한 비극적 인식이 비극적 인식으로만 귀결된다면 그 속에는 죽음만 있을 뿐, 그 이상의 것은 없다. 그 속에서는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비극적 인식이 있으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눈에 보이는, 또는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 있으며 끊임없이 갈등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 때 우리가 바라보고 읽어내는 이 세계가 관념적 허상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한 부류를 만나게 되고 이 세계의 관념적 허상을 공고히 하고 세계는 아름다워 라고 말하고 행동하는 한 부류를 만나게 된다. 전자가 매너리즘 시기의 예술가들이라면 후자는 매너리즘 시기의 현실 정치가들과 이들을 옹호했던 지지자들이었다. 그리고 전자의 부류들은 끊임없이 후자의 부류들이 가진 허위와 기만을 폭로하려 한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君主論, II Principe)은 16세기 현실정치의 세계를 그대로 반영한 작품이다. 이제 고귀한 이상 같은 것은 없다. 신은 이미 사라졌고 눈 앞에는 현실만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현실 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그 방법을 자연과학적 태도로 기술해 나가기 시작한다. 이제 악덕도 탐구의 대상이 되었다. 더러운 모략과 비열한 술수도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되었다. 마키아벨리의 세계가 매너리즘적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는 자신이 속한 세계를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그 세계가 가진 부도덕성과 허위를 폭로하는 것이다. 그래서 후대의 몇몇 학자들은 '전도(顚倒)된 이상주의자'라고 말하는 것이다.



매너리즘 예술가들과 양식적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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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eta Rondanini
Michelangelo
Marble, height: 195 cm, 1552-64
Castello Sforzesco, Milan



우리는 과연 원근법적으로 세계를 파악할 수 있을까. 그래서 멀리 있는 것이나 가까이 있는 것이나, 또는 중앙에 있는 것이나 가에 있는 것이나 상관없이 모든 것에 대해 존재 의의를 부여할 수 있고 이를 일관된 어떤 원리로 담아낼 수 있을까.


르네상스 고전주의 시기의 위대한 예술가였던 미켈란젤로는 말년에는 의문스러운 일련의 작품들을 만든다. <최후의 심판>이라는 벽화가 그러했고 저 <론다니니의 피에타>도 그러했다. 그래서 저 작품을 미완성된 작품이라고 추정하기도 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이들 중에서도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완성이라기 보다는 미켈란젤로의 생각대로 만든 것이며 도리어 이제서야 그 자신만의 정직한 시각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의심 많고 소문에 휩싸인 신비로운 천재이면서 끊임없이 내적 불안과 신을 향한 정열으로 고통스러워 했던 미켈란젤로는, 현대의 우리들이 가지는 천재에 대한 이미지를 그대로 그러낸 예술가였다. 아마 이러한 미켈란젤로에 버금가는 이가 있다면 유일하게 모차르트(Mozart, 1756~1791)일 것이다. 그래서 미켈란젤로는 생애 내내 매너리즘적 세계 속에서 살아가면서 젊었을 때는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확고한 신념과 열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세계에 대 경험이 쌓여갈수록 그냥 그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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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Judgment
Michelangelo
Fresco, 1370 x 1220 cm, 1537-41
Cappella Sistina, Vatican



'진실'이라는 단어만큼 이 시기의 예술가들에게 호소력 있는 것도 없었을 것이다. 이제 아름다움은 진부한 주제가 되었다. 아름답지 않더라도 모양새가 기괴하더라도 색채가 이상하더라도 그것이 바라보는 바 진실한 것이라면 그것은 감동적이고 호소력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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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onna dal Collo Lungo (Madonna with Long Neck)
Parmigianino (1503~1540)
Oil on panel, 216 x 132 cm, 1534-40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바로크(Baroque) 시기 이후의 화가들과 학자들이 경멸했던 양식이 바로 매너리즘이었고 이 같은 작품들이었다. 이제 세계는 이상해졌다. 신체의 비례는 이상해졌고 표정은 공허하며 색채는 몽환적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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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itation
Jacopo Pontormo
Oil on wood, 202 x 156 cm, 1528-29
San Michele, Carmignano (Florence)



폰토르모의 저 그림 속에서의 표정만큼 공허한 표정도 드물 것이다. 저들이 응시하는 곳은 과연 어디일까. 자 이제 자연 세계에 구하는 기하학적인 원리는 무너지고 우리의 관념, 또는 정신 속에서 어떤 원리, 어떤 이상을 구하는 시기로 들어선 것이다. '자의적 양식'이란 이럴 때 사용될 수 있다. 경험적이고 객관적 세계에 대한 바램이 어긋나자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세계를 우리들의 정신 속에서 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만은 도리어 슬프고 우울하며 끝없이 비극적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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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ast Supper
Tintoretto
Oil on canvas, 365 x 568 cm, 1592-94
S. Giorgio Maggiore, Venice



틴토레토의 의도는 다분히 '자연과학'적이다. 그가 생각하게 최후의 만찬은 이러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 자리는 우아하지도 고귀하지도 않을 것이다. 실내는 좀 어두웠을 것이고 사람들의 옷차림새는 남루했을 것이며 음식들은 여기저기 나뒹굴고 심지어 불결하기까지 했을 것이라고. 현실을 현실 그대로 파악한다는 자연과학적 태도가 도리어 매너리즘적 세계를 그러내는 것이다. 즉 매너리즘의 예술가들은 르네상스 고전주의의 태도가 진실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말년의 티치아노도 매너리즘적 양식을 보여준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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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laying of Marsyas
Tiziano
Oil on canvas, 212 x 207 cm, 1575-76
State Museum, Kromeriz


아마 매너리즘 예술가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이가 있다면 바로 엘 그레코일 것이다. 엘 그레코에게도 오면 매너리즘의 양식이 그 절정기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귀족 양식으로서 매너리즘은 그 세계를 극복하고 현실에 기반하고 있으면서 그것을 넘어서 다분히 감정적이면서도 끊임없이 상상력을 자극하는 양식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그래서 엘 그레코의 작품에서의 이상한 공간감이나 불균형, 비현실적인 분위기는 도리어 실제 현실을 극복하게 하는 어떤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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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ieta (The Lamentation of Christ)
El Greco
Tempera on panel. 29 x 20 cm, 1571-76
Philadelphia Museum of Art, Philadelph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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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isrobing of Christ
El Greco
Oil on canvas, 165 x 99 cm, 1583-84
Alte Pinakothek, Munich



대중문화적 매너리즘 예술



자기 기만과 허위만큼 매너리즘 예술가를 괴롭혔던 것도 없다. 이 속에서 몇 매너리즘 예술가들은 매우 불행했다. 미켈란젤로의 말년이 그러했던 것처럼 빠르미지아노나 폰토르모가 그러했다. 그리고 몇몇은 귀족의 후원을 받지 않으면서도 위대한 작품들을 남겼으며, 예술의 자율성은 고스란히 예술가 개인 속으로 수렴되었다.


하지만 이 시기는 현실정치의 시기였으며 고귀한 정신이나 선한 마음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던 시기였다. 루터의 종교 개혁이 뭔가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권력에 눈이 먼 루터는 독일의 평민들을 거부하였고 권력을 가진 실세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던 시기였다. 그래서 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예술가들이 있었고 이제 예술은 오직 유흥을 위해서만 제작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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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nus, Cupide and the Time (Allegory of Lust)
Agnolo Bronzino
Oil on wood, 147 x 117 cm, 1540-45
National Gallery, London



많은 책에서 이 작품의 속 뜻이 무엇인가 분석하고 있다. 중앙의 비너스와 그 옆의 큐피드는 근친상간적 소재라는 것에 시작하는 이런 분석에 대해 흥미를 느끼는 사람들이 무척 많을 것이다. 실은 파르미지아노의 <긴 목의 마리아>도 그런 분석이 가능하다. 파르미지아노는 심각할 정도로 연금술에 미쳐있었고 그것을 배경으로 그 작품을 분석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이들 화가들은 이런 분석이 가능할 정도로 작품 속에서 이러한 소재나 주제를 공공연히 사용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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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er
Giuseppe Arcimboldo (1527~1593)
Oil on canvas, 76 x 63,5 cm, 1573
Musee du Louvre, Paris



아킴볼도의 작품으로 오면 그 도를 지나쳐 매너리즘적 허위 속에서 뒹굴뒹굴거리는 양식과 마주하게 된다. 즉 이제 예술은 고귀한 이상이나 감동, 한 시대에 대한 통찰과는 무관하게 속된 재미나 자신이 봉사하고 있는 귀족이 좋아하는 것만으로 그려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꼭 하이틴로맨스 소설이 세계에서 가장 감동적인 문학작품이 되는 어떤 이들이 있는 것처럼 이 시기에도 그런 예술작품들이 존재했던 것이다.


현실에 안주한다는 것은 이런 뜻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 세계를 하나의 원리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비극적 상황 인식은 도리어 하루하루의 변명을 만들어내고 하루하루의 변명 속에서 사소한 재미나 쾌락에 가치를 부여하게 만드는 것이다.


아마 대중문화, 또는 키치(kitsch)라고 하는 것의 기원을 구한다면 매너리즘 시기의 예술 작품에서 구해야만 할 것이다. 매너리즘을 도피적 양식이라고 했을 때 이 속에는 이러한 의미까지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바라보기 싫은 현실을 잊기 위해 환상을 만들어내는 양식 말이다. 정직한 매너리즘 예술가들은 그 환상과 싸우기도 했지만, 종종 그 환상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예술가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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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0.02 01:44

    비밀댓글입니다

    • 특별하게 참고한 책은 없습니다. 한창 책을 쓰고 공부하던 때라 수업 노트, 스터디 노트 등이 전부입니다.(참고문헌을 적는다면 엄청 많을 지도 모르겠네요) ^^;; 다만 한글로 구할 수 있는 책 중, 매너리즘에 대한 연구서로는 아놀드 하우저의 <<예술과 소외>>라는 책이 있습니다만, 지금은 헌책으로도 구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 외 16세기 지성사나 문화사 책이 도움이 될 것같네요. (또는 지성사나 문화사의 16세기 부분) .. : )

  • 2014.10.13 17:47

    비밀댓글입니다

  • 2014.10.13 18:36

    비밀댓글입니다

 

퀜틴 스키너(지음), 신현승(옮김), <마키아벨리>, 시공사, 2001
니콜로 마키아벨리(지음), 강정인(옮김), <군주론>, 까치, 1994(1판), 2000(9쇄)


최근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대해서 공부를 하면서 르네상스에 대한 찬사가 19세기의 유산임을 알았다. 그간 공부를 하면서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그 정도로 높이 평가할 만한 것인가에 대해 매우 많은 의구심을 가져왔기 때문에,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르네상스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19세기의 지식인들이 만들어낸 편견일 수도 있다는 점을 확실하게 알게 된 셈이다.

이런 문예 부흥의 시기에 니콜로 마키아벨리 같은 인물은 다분히 이해하기 힘들고 받아들여지기도, 높게 평가하기에도 애매하다. 그는 공공연하게 '비열한 권모술수'가 필요하다고 역설하며 한 발 더 나아가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퀜틴 스키너는 여기에 대해, '마키아벨리는 450여 년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났는데도, 교활함과 이중성 그리고 정치 문제에 대한 오도된 신봉의 전형으로 지금껏 생존해 있다. 윌리엄 세익스피어의 말마따나 소위 '잔인한 마키아벨리'는 각 종파의 도덕주의자와 보수주의자들 및 혁명론자들의 눈에 줄곧 눈엣가시 같은 존재로 비쳐졌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환경 속에서 마키아벨리가 어떤 점에서 틀리며 <군주론> 이후의 저작들을 통해 그가 '고전적 공화주의자'로서 자신의 사상을 어떻게 피력했는가를 서술하고 있다. 스키너는 마키아벨리의 문제성 보다는 그의 사상이 가지는 고전적 인문론자로서의 측면을 부각시키는데, 이는 정치학 연구자로서의 입장일 뿐, 다른 맥락을 고려한 것은 아니다.

마키아벨리가 가지는 중요성은 그의 정치학적 측면이 아니라, 그가 16세기의 현실을 그대로 옮겼다는 '심리학적 폭로주의'의 입장에 서있으며 그래서 읽는 이로 하여금 부정할 수도 긍정할 수도 없는 묘한 심리 상태를 유발시킨다는 데에 있다. 그래서 크레인 브린튼 같은 학자는 '마키아벨리는 전도된 이상주의자요, 그 자신 과도한 완전성을 원했기 때문에 냉소적인 사람이 되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심각한 심리적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 이 문제들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연구로는 해결하기 어렵고, 과거의 인물들로서는 거의 해결 불가능한 과제이다. 마키아벨리는 정말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지식인'(<서양사상의 역사>, 371쪽, 을유문화사)이라고 평가하는 것이다.

그래서 퀜틴 스키너의 책보다는 강정인 교수가 번역한 <군주론>를 읽는 것이 니콜로 마키아벨리를 이해하는데 더욱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다분히 예술사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나로선 마키아벨리는 전형적인 매너리즘 사상가 이며 현실과 이상 간의 괴리 속에서 분열적 세계 인식을 드러내는 저자로 볼 수 밖에 없는데, 이러한 입장에서 서술된 책을 발견하지 못했다. 크레인 브린턴의 책이나 아놀드 하우저의 <예술과 소외>(종로서적, 절판)이 좋기는 한데, 안타깝게도 이 두 권의 책은 시중에서 구하기가 어렵다.

15세기 후반부터 이탈리아 반도는 유럽의 경제적 주도권을 상실하기 시작하는데, 이는 지리상의 발견과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등장 때문이다. 그리고 교황과 세속 권력과의 대결은 종교 개혁이라는 가면을 쓰고 한 바탕 전쟁을 벌인다. 이 때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느꼈던 감정이란 인간이란 거짓말하기를 일삼고 폭력적이며 하찮은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자 현실 앞에서는 무력하며 자신의 이상은 지켜야만 하는 분열적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이 때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선 현실 정치의 논리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한다. 그래서 스키너와 같은 현대의 정치학 연구자들은 그를 고전적 공화주의자로 평가하고 싶어하지만, 그 평가는 도리어 보는 이로 하여금 씁쓸함을 자아내게 한다. 왜냐면 마키아벨리는 그리스나 로마의 학자들이 주장했던 견해와는 다른 의견을 밝히고 이를 무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키케로의 '덕(virtu')'와 마키아벨리의 '덕'은 틀린 개념이 된다.

거대하고 혼란스러운 현실 속에서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마키아벨리는 <군주론>과 같은 분열적이며 자기 기만적인 이론을 전개하는 것이다. 네가 하면 살인이지만, 내가 하면 군주가 되기 위한 뛰어난 전술이 되는 것이다.



군주론 - 10점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강정인.김경희 옮김/까치글방
마키아벨리의 네 얼굴 - 10점
퀜틴 스키너 지음, 강정인.김현아 옮김/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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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useppe Arcimboldo
Fire.
1566. Oil on wood.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Austria


쥬세페 아킴볼도의 작품이다. 매우 특이한 그림들로 유명한 이 매너리즘 화가는 초현실주의적 원조격으로 추앙받기도 하지만, 천재적이거나 위대한 통찰력을 가진 예술가는 아니다.(* 르네 마그리트가 그렇듯이)

불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초상화는 그려진 모든 것들이 불타고 있거나 불에 잘 타는 것들로만, 즉 우리가 불을 붙일 때 사용하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다른 초상화에서는 과일과 꽃들로만 그리기도 한다.

16세기 매너리즘의 주요 경향들 중의 하나가 '알레고리화의 유행'이다. 위 초상화의 도상학적 의미는 연구서적을 봐야 정확하게 알 수 있겠지만, 추측컨대 불의 알레고리, 혹은 불이 관련된 어떤 알레고리를 응용한 작품이다. 중세, 특히 고딕 무렵에 활성화되기 시작한 알레고리의 경향은 매너리즘에 와서 그 절정기를 맞이하며 바로크까지 이어진다. 낭만주의 시대에서 알레고리화가 그려지기도 하지만, 일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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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pid
PARMIGIANINO, 1523-24
Oil on wood, 135 x 65,3 cm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

 
 

날개 너무 작은가.
하긴 날면 되는 거지.
몸에 비해 날개가 작은 것처럼 보여도, 난 잘 날 거든.
활을 좀 다듬고 있어.
요즘같이 사랑이 희박한 시기엔 내 활이 무리를 하기 마련이야.
그래도 어쩌겠어.
나의 운명인 걸.
하지만 내 운명도 그렇게 오래 가지 못할 것같아.
천사에게만 희귀하게 걸리는 날개가 짧아지는 병에 걸렸거든.
실은 내가 사랑을 받지 못한 탓이라더군.
하긴 날 사랑하는 이는 없으니 말이야.
나도 사랑을 하고 싶은데 말이야.
인간들의 사랑을 위해 내 화살을 사용하지 않고
내 사랑을 위해 내 화살이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은데 말이야.
실은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가버렸어.
이 세상에 사랑이 사라지기 전에 부단히 움직여야지.
그러다 날개가 없어지면 나도 그만 두는 거지.
그리고 나르시스를 만나러 가야겠군.
요즘은 종종 그가 부러워.
그는 호수에 빠져 죽고 난 다음에도 그만 찾으니 말이야.
환상이라는 것도 때로 좋은 것같아.
원하는 대상이라도 있으니 말이야.

자, 힘차게 움직여라. 나의 날개야. 이제 아침이 밝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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