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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종이신문을 구독한 지 몇 달이 되었다. 그 전에는 모바일 포털사이트나  Social Media, 특히 페이스북을 통한 소비가 대부분이었다. 이럴 경우 미디어 편식이 발생한다. 또한 예전이라면 스포츠신문을 읽어야만 볼 수 있는 기사만 읽게 되는 경향이 있었다. 


지금처럼 디지털 매체가 발달하지 않았을 때, 나는 스포츠신문을 읽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디지털을 통해선 그냥 스포츠신문만 읽는 느낌이다. 그만큼 엉망이 되었다. 더구나 제대로 된 기사문을 읽을 일이 줄어든 셈이다. 


다시 종이신문을 읽기 시작하자 여러 모로 장점들이 많아졌다. 다소 느리지만, 깊이있는 칼럼들을 읽게 되었다고 할까. 하지만 디지털 세대의 여론과는 다소 무관해 보인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는 장기적으로 정치적 무관심을 지나 대중 일반의 정치적 이해와 판단능력을 마비시킬 것으로 보인다. 


아무래도 여기 블로그에 대학생들이 많이 들어오는 듯하여, 아래 칼럼 읽기를 권한다. 지금 20대 이하 세대는 정말 힘든 시기를 살아나가야 한다. 그런데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장기적 관점에서의 정치를 바라보고 적극적으로 정부 정책 방향에 대해 관여해야 하는데, ... 너무 걱정스럽다. 


송호근 칼럼 - 한국 청년 잔혹사 (중앙일보) 

http://news.joins.com/article/20419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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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학생 2016.08.31 22:59 신고

    종이신문에 관해서 과제를 쓰려하는 학생입니다만, 2026년에는 한국에서 종이신문을 보기 힘들꺼라는 통계도 있길래 여기에 질문드려봅니다.
    종이신문이 없어질꺼라고 보시나요? 안없어진다면 그 이유가 뭘까요?
    종이신문이 살아남는 방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궁금한게 워낙많은데 질문드려봅니다 ㅎㅎ;

    • 너무 어려운 질문입니다. 심지어 학자들이나 전문가들까지도 서로 논쟁을 벌이고 있는 주제예요. 그걸 덜컥, 저에게 물어보시면.. ㅜㅜ.

      아마 관련 자료를 찾으면 너무 많이 나올 겁니다. 하지만 어떤 주제는 너무 많은 자료 때문에 힘들고, 어떤 주제는 자료가 너무 적기 때문에 힘들죠. 그런데 이런 경우는 공부를 하던지, 직장 생활을 하던지, 반드시 겪게 되는 문제예요.

      몇 가지의 키워드를 가지고 검색해서 관련 자료를 찾아 읽어보세요. 그럼 나름대로의 해답을 구하실 수 있을 겁니다.

      riss.kr 이라는 웹사이트에서는 학위논문들을 검색할 수 있으니, 이와 관련된 석사나 박사학위 논문을 읽을 수 있을 겁니다. 해당 주제에 대한 논문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종이판을 내던 뉴스위크지는 아예 종이 주간지를 없애버렸습니다. 뉴욕타임즈의 경우, 디지털화에 대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가 인수한 위싱턴 포스트에 밀리는 인상을 주고 있죠. 영국의 가디언지도 디지털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한국의 중앙일보도 여기에 속한다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국 모노클 같은 잡지는 종이잡지로 수지타산을 맞추고 있어요. 국내에는 B 매거진이 대표적인 경우죠. 뭐, 신문은 아니지만요.

      너무 어려운 질문은 너무 쉽게 하셨습니다. 그런 질문은 마치 '왜 살아야 하나요?'와 비슷한 류입니다. 다만 '왜 살아야 하나요?'라는 질문에 무한한 답이 있어 우리를 곤혹스럽게 하지만, '종이신문에 대한 질문'의 답은 몇 가지로 정해져 있고 여기에 대한 답은 자료를 찾아 읽어보시면 쉽게 구하실 수 있을 겁니다. ~ 그럼.



이코노미인사이트(Economy Insight) 2015년 8월에 실린 윤희웅의 칼럼을 통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단어를 처음 알았다. 


'기울어진 운동장'은 대한민국 유권자의 정치지형이 어느 한 쪽에 구조적으로 치우쳐 있음을 얘기할 때 인용되는 표현이다. 높은 쪽은 보수세력이고, 낮은 쪽은 진보세력이다. 그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게 되면 낮은 쪽에서 높은 쪽으로 공을 몰고 가서 골을 넣기는 어렵고, 반대로 높은 쪽에서 낮은 쪽으로의 공격은 수월해서 승부는 경기 전에 이미 결정돼 있다는 것이다. 

- 윤희웅, <[선거와 경제] ‘기울어진 운동장’은 구조적인 것일까>중에서, Economy Insight, 2015년 8월호



메모해 둔 노트를 정리하면서 블로그에 옮겨놓는데, 일반적으로 최근의 한국 정치에서기울어진 운동장의 원인으로 보통 아래 3가지를 든다.

 


- 지역구도: 국회의원 의석 수 호남 30석, 영남 67석 

- 세대구도: 진보성향의 젊은 층보다 보수적인 노년층의 인구가 늘고 있다는 것. 

- 미디어환경: 종편의 영향이 크다. 



하지만 이 운동장의 기울기가 완만해지고 있다는 견해도 있고 일부에서는 야당의 경쟁력 약화에 대한 핑계거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기울어진 운동장'은 누구나 공감할 정도로 설득력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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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의 예술 사랑 - '현대자동차 Art & Culture Insight Tour' 후기




얼마 전 나는 무척 흥미로운 행사에 참석했다. '현대자동차 Art & Culture Insight Tour'. 지난 6월 21일 토요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이 행사에서, 나는 다시 한 번 예술(혹은 예술가)에 대한 고민, 열정, 그리고 그것들을 둘러싼 많은 활동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참석하게 된 계기는 그저 이 작은 블로그 하나를 운영한다는 이유뿐이고 여기에 덧붙이자면 네이버나 구글에서 검색이 잘 된다는 정도일 것이다. 그리고 자동차회사에서 예술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고 했을 때, 내 기대는 그리 높지 않았다. 이미 많은 기업들이 순수 예술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지만, 거기에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갖는 건 당연한 일. 많은 기업들이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으며(몇몇 기업들은 탈세 용도로), 문화재단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삼성은 문화재단과 리움을 통해, 금호는 미술관, 아트홀과 함께 클래식음악에 대한 지원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내가 현대자동차의 이번 행사에 참여하면서 느낀 것은 너무 특별했다. 다른 기업들이 직접적인 투자와 지원이라면, 현대자동차는 (어쩌면 기업 입장에서는 다소 위험도가 높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 순수 예술 전반의 생태계와 순수 예술에 대한 저변확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여기에 대한 솔직한 내 반응은 '와우'였다.



(이대형 큐레이터의 강연 장면) 


행사는 오전 10시부터 시작되어 오후까지 이어졌다. 나는 여기에서 이대형 큐레이터를 만날 수 있었다. 나도 많은 큐레이터를 만났고 그 비슷한 일을 했으며 예술에 대한 사랑은 누구 못지 않다고 자부하는 터였지만, 그 앞에서는 솔직히 주눅들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행복했다. 한국 미술은 이런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성장하고 있고 앞으로도 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 기업에서 이런 유형의 행사를 기획하고 운영한 것은 현대자동차가 처음이 아닐까 싶다. 나는, 우리들은 기업의 브랜드와 순수 예술과 결부시키는 방법을 일차원적으로(혹은 피상적으로) 접근한다. 그래서 아트콜라보레이션(art collaboration)을 하더라도 해당 기업의 상품이나 브랜드 이미지와 직접적인 연상이 일어나야 된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내 마음 한 곳에선 이건 산업디자인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차라리 디자이너와의 협업이라는 이해가 되지만, 순수 예술가와의 협업이 제품으로 나온다는 건 ... 하긴 디자인과 순수 미술의 경계는 이미 무너졌고, 이 정도라도 해주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대부분의 작가들은 스스로를 알리는 방법에 대해 잘 모르고 나서서 하는 것도 주저하는 마당에. 


그런데 현대자동차는 전혀 방식으로 아트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것도 무모할 정도로. 이미 현대자동차는 영국 테이트모던과 11년 장기 파트너십 계약을 맺었다!(세상에 한국 기업이 영국 최고의 미술관에다 이런 짓을!!). 테이트모던 역사상 최장의 파트너십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에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같다. 테이트 모던보다 더 지원했으면 했지, 덜 지원하진 않은 모양이니. 이미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관의 갤러리 아트존은 현대자동차가 지원하고 있었다. 또한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를 통해 국내 중견 작가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다.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의 첫 번째 작가로 이불(Lee Bul, 1964년) 작가가 선정되었습니다. ‘여전사’라는 수식어를 가진 이불은 작품 활동 초기부터 퍼포먼스, 설치, 조각 작업 등 행위예술과 설치 예술을 통해 아름다움, 파괴 등을 주제로 인습을 타파하는 작업을 펼쳐왔습니다. 1990년대 후반 사이보그 시리즈 작업으로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2000년대 이후 개인의 기억, 경험을 반영한 작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출처: http://brand.hyundai.com/ko/art/with-mmca/mmca-hyunda-series.do 





그렇다면 현대자동차의 아트 마케팅은 어떻게 다르길래, 내가 '와우'라는 반응을 보였던 걸까. 이대형 큐레이터의 설명과 관련 안내 자료들을 바탕으로 정리해보면 크게 3가지로 말할 수 있다. 



1. 우리들의 마음과 행동을 바꾸는 내재화. 


한때 서양미술사를 공부했고 미술계에 들어가 뭔가 해보려고 했던 내가 늘 고민하고 부딪혔던 문제는 전시를 한 두 번 본다고 해서 그 사람이 그 전까지 없었던 예술에 대한 사랑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내 꿈은 많은 사람들이 예술을 즐기고 사랑하게 만드는 것인데). 도리어 이 작품 돈 될꺼야 라고 말하는 편이 더 나았다. 적어도 그러면 이 작품은 왜 돈이 될까 하는 고민이라도 하니 말이다.


계량적 가치는 평가하긴 어려워도 설명하기 쉽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 가령 작품성이나 감동, 왜 이 작품은 위대한지 따위를 설명하자면 난감하기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대형 큐레이터는 자신이 외국의 명품 회사와 일을 할 때, 그 회사의 담당자들이 가진 미술사적 이해와 폭넓은 지식으로 참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고 보다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렇다. 전시 한 두 번 본다고 해서, 미술 서적 한 두 권 본다고 해서 어제까지 예술에 관심 없던 사람이 오늘 갑자기 예술에 관심을 가지는 건 아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현대자동차가 예술 마케팅을 한다고 해서 갑자기 예술 마케팅 회사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대형 큐레이터는 직접 자료를 만들어서 현대자동차 딜러들과 직원들을 대상으로 강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현대자동차가 예술 마케팅 회사가 되지 않겠지만, 적어도 현대자동차 직원들은 예술을 사랑하진 못하더라도 최소한의 이해를 가진 사람들이 변할 테니 말이다. 이렇게 현대자동차는 변하고 있었다. 


그는 이와 비슷한 변화를  '내재화'라는 단어로 설명했다. 이것이 진짜 변화라고. 그런데 누가 이런 변화를 지원할 것인가. 많은 갈등과 고민, 오랜 기간 동안 투자하고 지원해야 하는 일인데. 현대자동차의 예술 마케팅이 기대되는 것은 이 지점에서부터 시작된다. 



2. 콘텍스트를 움직이는 관계 미디어 


어쩌면 자동차도 미디어? 그럴 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행동경제학에선 자동차는 강력한 효과를 지닌 메시지를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자동차에 문화 예술을 씌운다면? 


문화는 마케터들의 판단과 방향성을 지배하는 힘을 갖고 있다. 그리하여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간파하고 있는 기업이 만든 청사진을 따라 나머지 기업들은 상품을 만들거나 마케팅 활동 등을 진행한다. 현대자가 문화예술 마케팅을 통해 문화 자산을 쌓는다면 주도적으로 청사진을 그려 타깃 시장을 지배하고 이끌어날 수 있게 된다. 

또한 고객은 문화라는 렌즈를 통해서 기업을 바라본다. 문화가 고객의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의미다. 고객은 자동차의 기본적인 가치를 넘어서 인간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는 문화예술에 대한 소양이 있고 이에 집중하는 현대차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갖게 되고 브랜드 가치를 높게 평가하게 된다. 

- '현대자동차 문화지원 사업 소개' 중에서 


이렇게 생각해보자. 현대자동차의 문화지원 사업, 즉 현대차의 아트 마케팅을 통해 우리는 순수 예술을 보다 쉽게, 바도 자연스럽게 접근할 순 있지 않을까? 현대자동차라는 브랜드가 일종의 관계 미디어가 되는 셈이다. 


아마 순수 예술의 입장에서는 다소 어색하고 부정적인 면이 없지 않아 보이지만,  현대자동차의 이 도전적인 문화 예술 마케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국내 기업들 뿐만 아니라 다른 글로벌 기업들까지 따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적어도 부정적인 면보다 긍정적인 면이 더 많지 않을까. 나는 희망적으로 이걸 기대해본다. 



3. 미술생태계 중심, 그리고 사람 


마지막으로 현대자동차의 문화 예술 마케팅은 한국의 미술 생태계의 경쟁력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많은 기업에서 일반적으로 하는 순수 예술 지원 할동은 갤러리 운영이나 작품 구입 정도다. 실은 이 정도 하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현대자동차은 여기에 집중하지 않는다. 


도리어 국립현대미술관을 지원하고(미술인프라 지원), 국립현대미술관과 함께 작가 전시 프로그램(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을 운영한다. 그리고 다양한 아트콜레보레이션과 이를 판매할 갤러리 아트샵을 지원하고 있다. 그리고 그 외 다양한 활동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는 경쟁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신진작가 지원 프로그램들 속에서 원숙한 예술미와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가야 할 한국의 중진 작가들을 겨냥한 지원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그리고 여기에 전 세계에 한국 미술을 알려온 이대형 큐레이터가 함께 한다는 점에서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가 더 주목할 만하지 않을까. 


(갤러리 아트샵에 판매되고 있는 초콜릿 고려청자) 



현대자동차의 아트 마케팅은 환경, 즉 콘텍스트(기업과 미술 생태계) 속에서 스토리를 만들고 그 스토리의 중심에 작가과 관객을 위치시킨다. 그리고 기업, 자동차, 미술, 사람이 하나가 된다. 실은 이런 시도를 꿈꿀 수는 있을 지 모르겠지만, 이를 실제로 행하는 전혀 다른 문제다. 더구나 수익 창출이 목표인 기업이 매우 무모해보이는 아트 마케팅을. 

 

어쩌면 이 표현이 현대자동차의 아트마케팅을  제대로 표현하는 문장일 듯 싶다. 


"최고의, 중장기에 의한, 진정성을 위한 현대자동차의 문화예술 마케팅" 



미술계를 떠나 시간 날 때 전시 보고 관련 잡지나 책을 보는, 이젠 미술 애호가일 뿐일 나에게 '현대자동차 Art & Culture Insight Tour' 기회를 준 많은 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특히 현대자동차에서 아트마케팅의 새로운 장을 펼쳐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이대형 큐레이터와 그 외 현대차 브랜드 마케팅 담당자들에게도 아낌없는 성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 현대자동차의 다양한 문화 예술 마케팅 및 지원활동에 대해서는 현대자동차 브랜드 웹사이트(http://brand.hyundai.com/ko/main.do)를 살펴보면 될 것이다. 


ACCESS - an interactive art installation by Marie Sester 

(이대형 큐레이터가 강연을 하는 동안 알게 된 작품이다. 우리가 무심코 보고도 지나치는 골목, 거리 위의 카메라들. 그것이 지닌 폭력성을 드러낸 예술 작품이라고 할까)



토요일 오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내부 전경. 역시 전시 관람의 최고 시간은 토요일 오전이다. 한창 미술 관련 공부를 할 때, 토요일 아침 일찍 나와 몇 시간 동안 인사동과 사간동 일대를 헤매던 기억이 난다. 그 땐 무슨 열정으로 그렇게 돌아다녔을까, 궁금하다. 누군가가 그렇게 하라고 시킨 적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문학 전공자였던 내가 그렇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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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샹과 벤야민 그리고 소셜 미디어





오늘날 나타나는 것이 프로그래밍된 체험들이다. 사회적 삶은 총체 예술이 된다.
- 노르베르트 볼츠, 『컨트롤된 카오스』 중에서


변화하는 기술 환경과 창작



노년의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가 아이폰의 브러쉬 기능을 통해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해외 토픽에 나오는 지금, ICT(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y)의 발달은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어, 매년 새로운 서비스와 기술이 쏟아져 나오고 이를 쫓아 배우고 소비하기도 바쁘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급변하지 않고 아주 천천히 느리게 변화할 뿐이다. 눈에 보이는 여러 문화와 기술 트렌드가 이전 시대와 다르게 빠른 속도로 우리를 스쳐 지나간다고 해서, 19세기 이래로 우리의 일상은 변한 것보다 변하지 않는 것이 더 많다. 이는 예술가의 일상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장르를 만들기도 하지만, 예술가의 창작 작업이 급변하는 것이 아니다. 젊은 데이비드 호크니도, 늙은 데이비드 호크니도 그림을 그리고 있을 뿐이다. 붓으로, 아이폰의 브러쉬로.


Three images by David Hockney - a self-portrait, a still life, and a summer dawn?made with the Brushes application on his iPhone, 2009
출처: http://www.nybooks.com/articles/archives/2009/oct/22/david-hockneys-iphone-passion/


새로운 기술에 대한 무분별한 열광은 종종 창작환경에 대한 불필요한 논의를 야기하기도 한다. 원고지로 글을 쓰고 종이책을 내던 작가들이 PC 키보드로 글을 쓰고, 온라인의 전자적 문서(하이퍼텍스트)로 펴내기 시작했을 때, 전 세계적으로 많은 연구들이 있었다. 작업 환경과 결과물의 변화로 문학의 본질까지 건드리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고, 새로운 문학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십수년이 지난 지금, 그런 연구는 철지난 유행이 되었고, 이제 어떤 기대나 우려도 하지 않는다. 마치 사진 때문에 미술이 죽고, 영화 때문에 소설이 죽을 거라는 호들갑스러움처럼. 그렇다면 최근의 소셜 미디어(Social Media) 열풍은 예술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소설가 박범신은 인터넷 블로그로 소설을 연재하여 출판하였고 이외수는 트위터(Twitter)에 올린 짧은 글들을 모아 책으로 냈다. 1차 출판이 온라인에서 이루어지고, 실시간으로 독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전통적인 방식의 출판은 마치 뒷북치듯 오프라인 서점에 깔리는 것이다.

2008년 뉴욕 브룩클린 미술관에서는 흥미로운 전시를 기획했다. 전시 이름은 「Click! A Crowd-Curated Exhibition」이었다. 전시의 목적은 제임스 서로워키(James Surowiecki)의 책 『대중의 지혜』에서 주장하듯, 일반 대중의 의사 결정이 전문가들의 그것보다 현명하다는 것이 미술에서 가능한가를 알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 전시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일반 대중의 의사 결정을 이끌어 내기 위한 과정에서 소셜 미디어가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먼저 예술가들에게 페이스북(facebook), 플리커(Flickr)와 같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연락하였으며, 전시할 사진 작품들도 온라인으로 받았다. 그리고 웹사이트에 사진 작품들을 전시하였고, 일반인들로 하여금 전시 작품들을 평가하도록 하였다. 모든 전시 활동들이 먼저 온라인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사진 작품들에 대해 일반 대중들이 평가하도록 하였으며, 그 평가를 바탕으로 실제 미술관 전시가 이루어졌다. 즉 ICT의 발달로 인해 예술 창작 환경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 창작 이후의 어떤 과정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뒤샹과 벤야민의 소망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이 변기를 「샘」이라 이름붙이고 미술관에 전시했을 때, 그 의도는 분명했다. 당신들, 미술계를 좌지우지하면서 ‘미술은 무엇이다’라고 정의하는 이들이 이야기하는 바, 미술이란 존재하지 않고, 누구나가 원하기만 한다면 미술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이라는 소논문을 통해, 기존 예술 작품이 가지던 종교적, 정치적 아우라가 기술 복제를 통해 사라질 것이고 예술은 대중의 것이 될 것이며, 예술의 정치화를 통해 파시즘에 싸울 수 있다고 믿었고 그것을 주도할 예술 장르로 사진과 영화를 주목했다. 그렇다면 마르셀 뒤샹의 의도는 성공하고 발터 벤야민의 소망은 이루어진 것일까?

뒤샹의 「샘」 원작(?)은 한 번 분실된 후, 새 변기에다 「샘」이라고 적는 해프닝이 있었다. 뒤샹의 의도와는 반대로 뒤샹만이 상점에서 파는 변기를 「샘」이라는 현대 미술 작품으로 만들 수 있게 되었고 뒤샹의 도발적인 ‘레디메이드’는 20세기 이후의 미술을 개념 미술의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말았다. 그리고 발터 벤야민의 소망, ‘아우라’는 사라지고 예술의 정치화를 통해 그가 바라던 어떤 사회는 결국 오지 않았다. 도리어 뛰어난 예술가가 되려면 먼저 시장과 정치를 알아야하고, 예술 권력은 더욱 강화되었으며, 전문가, 아마추어, 일반 대중의 거리를 더욱 멀어졌다. 20세기 중후반까지 현대 예술은 그렇게 움직이고 있었다.

소셜미디어가 만들어가는 예술적 일상

제롬(Jean-Leon Gerome)이나 부게로(William-Adolphe Bouguereau)같은 아카데미 화가들이 보기에 모네(Claude Monet), 피사로(Camille Pissarro)같은 인상주의 화가들은 마치 형편없는 아마추어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아마추어들은 현대 미술(Modern Art)을 만들었다. 브레히트(Bertolt Brecht)는 연극 무대가 닫힌 공간이 아니라 열린 공간이 되길 바랐다. 그의 서사극이론은 관객이 무대에 참여하기를 바라는, 개방된 무대를 지향하기 위한 기술이었다. 얼마 전 끝난 국립현대미술관의 「누가 미술관을 두려워하랴 - 박기원」전은 현대 미술이 어떻게 일반 대중의 참여를 바라는가를 드러내는 전시였다.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예술의 시대는 가고 평등과 개방을 지향하는 예술가들은 아직도 싸우고 있는 것이다. 마치 뒤샹과 벤야민이 그랬던 것처럼.

그런데 소셜미디어가 바라는 것도 이것이 아닐까. 모두에게 개방되고 모두가 참여하며 공유하는 어떤 것. 이미 많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운영하며 대중들과 대화하고 있다. 미술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블로그에 올려 공유하고, 온라인을 통해 판매까지 하고 있다. 미국시인아카데미에서는 ‘Poem Flow'라는 아이폰 어플리케이션을 만들어, 휴대폰에서 시를 읽고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이런 어플리케이션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이미 많은 갤러리와 미술관들은 웹사이트뿐만 아니라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로 자신들의 활동을 알리고 있으며, 미국의 인디아나폴리스 미술관은 아예 소셜미디어 기반의 웹사이트인 ’ArtBabble'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을 정도이다.

소셜미디어의 개방성으로 인해, 일반 개인도 이러한 활동이 가능해졌다. 자신이 찍은 사진이나 직접 그린 그림, 그리고 자작시나 소설을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개하고 공유하며, 다른 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가능해졌다. 즉 누구나 원하기만 한다면, 자신의 작품을 온라인으로 전시하고 평가받는 일이 가능해졌다. 19세기 인상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전시장을 가지기 위해 고분 분투했던 것과는 다르게, 이제 예술가가 되고 싶다면 소셜미디어를 활용하면 된다.

소셜미디어의 힘은 전문 예술가와 일반 대중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이는 예술 창작의 기반을 흔드는 일이 아니라, 예술 유통의 기반을 흔들어, 예술가의 존재를 새로 정의내리고 있는 셈이다. 전문 화가가 되기 위해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해야 된다든지, 소설가나 시인이 되기 위해 등단을 해야만 한다는 기존 공식이 무의미해지고 있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기존 예술 권력의 힘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 대중과 소통하며 대중과 호흡하는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 소셜미디어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려야하는 것이 현대 예술가의 중요한 활동이 된 셈이다.

2006년 타임지는 ‘세계의 역사는 위대한 인물들의 전기일 뿐’이라는 토마스 칼라일(Thomas Carlyle)의 사상이 현대에서는 더 이상의 호소력을 가지지 못한다고 말하며, 올해의 인물로 ‘당신(YOU)'으로 선정했다. 뒤샹이 원했고 벤야민이 의도했던 바, 모든 이들이 예술가가 되고 예술의 유통이 무한 복제와 공유가 가능한 공간이 소셜미디어로 가능하게 된 것이다.



http://www.artbabble.org/ 



* 이 글은 인천문화재단에서 발간하는 저널인 '플랫폼'에 실렸던 글입니다. 2010년 봄에 실렸던 글인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제 블로그에 올립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소셜미디어와 관련된 책 여러 권을 구입했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아 씁쓸했던 기억이 나네요. 뭔가 새로운 시각으로 쓰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제목은 저널에 실린 제목대로 올렸습니다. 원래 제가 적었던 제목이 있었으나, 편집자가 선택한 제목이 좋습니다. 책이든 저널이든 편집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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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좋은글이네요...호크니의 아이폰드로잉들은 모순적으로 오히려 공유되지못하게 철통보안하고있다고하더라구요 갤러리측에서..말그대로 원화라는개념이 없으니 판매를위한전략?이라더라구요...참 아이러니한거같아요^^

    • ㅎㅎ.. 그러니 벤야민의 예언은 잘못된 거죠. 아우라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아우라가 강화되고 어떻게 하면 아우라를 만들까 고민하고 있으니 말이죠. ㅜㅜ

트리플 미디어 전략 - 8점
요코야마 류지 지음, 제일기획 옮김/흐름출판



트리플 미디어 전략
요코야마 류지(지음), 제일기획(옮김), 흐름출판





내가 읽은 일본인 저자의 책들은 간략하면서 실용적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온드 미디어(자사가 소유한 미디어), 언드 미디어(비용 지불이 없이 획득될 수 있는 미디어, 가령 SNS같은), 페이드 미디어(비용을 지불하고 사용하는 미디어)를 기반으로 저자는 디지털 시대에 맞춘 매체 전략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특히 디지털 시대의 변화된 환경 속에서 각 매체 전략에 대한 이야기는 숙독할 만한다. 


다만 내용이 간략하고 어렵지 않으며, 경험이 있는 이에겐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지적들이기 때문에, 광고 - 미디어 세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는 이들에게 추천할 만 하다. 




* 이 책도 작년에 읽었는데, 오늘 간단하게 서평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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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많던 네이버의 '뉴스캐스트'가 바뀐다. 설마 뉴스캐스트가 뭔지 모르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몰라, 아래 이미지를 붙인다. 빨간 색 박스로 표시한 부분이 뉴스 캐스트 영역이다. 처음에는  언론사에게 편집권을 주어 언론사에서 알아서 하는 자율적인 영역이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충격'으로 얼룩진 '낚시성 기사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불만이 많아졌다. 지명도 있는 언론사에서도 불만이 많았고, 사용자들도 불만이 많기 매 한가지였다. 







그러자 이번에 네이버가 '뉴스캐스트'를 '뉴스스탠드'로 바꾼다(이건 지난 달 이야기고 내년 초부터 시범 서비스에 들어간다). 현재 뉴스캐스트 자리에 언론사 아이콘을 넣는다. 네이버에서는 나름대로 고민을 많이 한 흔적이 보이지만(트래픽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수익까지 챙길 수 있는 모델을 고민한), 글쎄다. 정답이라기 보다는 편법스러운 느낌이 드는 이유는 뭘까.  


아래 이미지는 뉴스스탠드 서비스를 하였을 때의 모습이다. 상단 배너 밑에 언론사 아이콘들이 뜨고 이를 클릭하면 해당 언론사의 뉴스스탠드가 뜨는 구조다. 그리고 사용자는 미리 자신의 뉴스스탠드를 설정할 수 있다. 즉 자기가 방문하고자 하는 언론사를 미리 선택하여 해당 언론사 사이트 아이콘들만 뜨게끔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서비스되는 네이버 뉴스 캐스트에서 '마이 뉴스 설정' 기능이 있지만, 이 기능을 사용하는 이는 전체 사용자의 10%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뉴스 스탠드로 변경되더라도 사용자가 자신의 뉴스 스탠드를 설정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긴 전체 사용자의 10%만 하더라도 몇 백만명은 될 터이니..) 설정하지 않으면 랜덤으로 노출된다. 



출처: 네이버 다이어리 



결국 이슈는 언론사 사이트로의 유입 대부분을 포털에 의존하고 있는 언론사의 문제(평균적으로 트래픽의 75.19%가 네이버에서 들어온다(미디어오늘 자료))다. 


종이 신문의 위기는 몇 해 전부터 나온 이야기라 식상하기까지 하지만, 그 사이 이렇다할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국 종이 신문 업계를 보면 답답하기까지 하다. 영미 쪽 종이 신문들은 적극적인 디지털화로 주목받고 있지만, 한국은 종이 신문은 그대로 놔두고 인터넷 사이트는 포털에만 의존하는 이상한 구조를 취하고 있으니 말이다. 


만일 네이버가 뉴스 콘텐츠를 포기하고, 언론사에서는 포털에 뉴스콘텐츠를 배포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아래의 시나리오로 진행될 듯 싶다. 


- 언론사들이 알아서 뉴스콘텐츠를 모아서 서비스하는 웹 서비스를 런칭할 것이다. 

- 네이버에서는 온라인 뉴스 사업부를 만들어(아니면 몇 개를 인수하든지) 자체적으로 뉴스를 생산할 것이다. (또는 알아서 포털 사이트에 몸을 낮추는 언론사들도 있을 듯) 

- 블로그나 SNS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뉴스 콘텐츠 생산 공간의 활성화(하지만 이는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


결국 네이버에서 뉴스 콘텐츠를 포기하고, 언론사에서 포털에 뉴스 콘텐츠를 배포하지 않는 일 따윈 생기지 않는다.


언론사의 입장에서 뉴스 스탠드를 보자. 네이버는 싫지만 무조건 같이 가야하는 파트너다. 언론사 사이트로의 트래픽 대다수를 네이버에 의존하고 있는 이상 어쩔 수 없다. 따라서 언론사에서 이렇게 할 가능성이 높다. 


- 사용자의 뉴스 스탠드에 올라갈 수 있도록 자체적인 이벤트를 지속적으로 수행

- 자사, 계열사, 관계사 임직원들을 동원한 뉴스 스탠드 설정.

(하지만 이렇게 해도 뉴스스탠드 설정율은 높지 않을 것이다.)

-  클릭 후 뉴스 스탠드의 콘텐츠의 변화가 없을 것이다 즉, 뉴스 캐스트에서 문제가 되었던 낚시성, 자극적인 기사 제목이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결국 사용자의 트래픽을 모아야 하니까.


따라서 뉴스스탠드도 일 년 지나서 다시 변경되지 않을까? (너무 시니컬한가) 


뉴스 콘텐츠의 본질적인 측면을 강화시켜야만 장기적인 경쟁력이 생길 텐데, 한국 언론 상황은 매우 열악해졌다. 


기자들 개인 경쟁력이 상당히 약해진 듯하고(나로선 읽을만한 기사를 보기 힘드니, 그마나 읽을 만한 건 인터뷰 기사 정도..ㅡ_ㅡ;;), 공부도 안 하는 것같고, 반대로 인터넷에는 전문 필자들이 운영하는 독립 매체나 블로그가 많아지고 있으니. 


언론사들은 포털에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자체적으로 트래픽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해답에는 언론의 본질적인 경쟁력 제고에 있지 않을까 싶다. 인터넷이라도 기사가 좋으면 돈 내고 읽을 이들은 상당할 텐데 말이다.


그나저나 뉴스스탠드는 사용자 입장에서도 보기 좋은 형태는 아니다. 사용자들이 나서서 반대할 수도 있다. (그럴 가능성도 충분하다. 나도 별로 보기 좋은 건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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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회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 Mediacity Seoul 2012 

너에게 주문을 건다. 

9.11. Tue - 11. 4. Sun

서울시립미술관, 디지털미디어시티 홍보관(DMC Gallery) 




2년에 한 번씩, 우리는 서울에서 세계 미디어아트 트렌드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는 놓치기 어려운 미술 전시임에 분명하다. 이번에도 많은 작가들의 작품들을 볼 수 있고, 무수한 작품들 속에 마음에 드는 작품 한 두 점 이상을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각각 작가와 작품들에 대해서 나열하자면, 끝도 없을 것이니, 내 눈에 들었던 작가와 작품 몇 점을 소개한다. 특히 틸 노박은 1980년 생으로 앞으로 작업들이 궁금해졌다. 


아래 원고는 서울시립미술관의 전시 웹사이트에서 가지고 온 것이며, 사진은 출처를 밝혔다. http://www.mediacityseoul.kr/ 







출처: http://www.mediacityseoul.kr/ 



제니 홀저 Jenny Holzer - 정치에 관하여

(텍스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 모래알이 있는 풍경> 중 ‘우리 시대의 아이들’에서 발췌)

2008

흑백 피그먼트 프린트, 152.4 x 190.5 cm / 60 x 75 inch



미국 오하이오 출신인 제니 홀저는 1970년대 후반 뉴욕으로 거취를 옮긴 시점부터 추상회화와 판화에서 텍스트를 사용한 개념 미술로 전향했다. 이후 그녀는 자신이 써낸 짧은 경구 모음인 < 트루이즘>, < 생존> 등과 같은 텍스트 시리즈뿐 아니라 다른 문인들로부터 인용한 텍스트를 LED나 라이트 프로젝션과 같은 가장 동시대적이면서도 상업적인 매체로 표시하면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언어는 작품의 형식적 요소이면서 동시에 의미의 전달을 통해 강력한 효과를 생산한다. 뉴욕 시내의 타임스퀘어 광고판에 자신의 작업을 선보이면서부터 홀저의 작업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광고, 뉴스와 예술작품과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였다. 심지어 LED 전광판을 조각적 매체로 변환시키는 작업은 건축적 공간의 경계를 해체하면서 장소와 관람자의 관계 역시 모호하게 한다.

 

프로젝션에 사용된 텍스트들을 대부분 작가가 만들어낸 13개의 텍스트 시리즈(1977-2001)에서 가져오기도 하지만 다른 문인들의 시나 작품에서 차용되기도 한다. 작가는 2004년 뉴욕에서의 프로젝션 작업을 기점으로 폴란드 출신 시인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작품을 텍스트에 적용하기 시작한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된 두 개의 프린트 가운데 하나는 런던 시청 위에 쉼보르스카의 < 우리 시대의 아이들>을 프로젝션 한 < 정치에 관하여>이고, 다른 하나는 이라크의 시인 파딜 알-앗자위의 < 야수의 계곡>과 미국 시인 제임스 쉴러의 < 프릭으로 돌아오다. 날씨>를 뉴욕의 건물들에 프로젝션 한 2006년 작 < 당신을 죽일 것이다/나는 막강한다>이다. 홀처의 이 작품들은 차용된 텍스트들이 도시의 공간 및 건축물에 개입하면서 어떻게 새로운 정치적, 미학적 맥락들을 파생시키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출처: http://www.transmediale.de/node/20704


틸 노박 Till Nowak - 원심력 체험

2011

필름/비디오 - 3분


틸 노박의 디지털 창조물들은 놀이공원의 기구들에 대한 어린 시절의 매혹들을 재생시킨다. < 원심력 체험>은 일곱 개의 비디오 클립 및 드로잉으로 이루어진 작업으로, 장난감처럼 장식된 거대 로봇 공학적 기계들이 중력에 반하는 경험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여준다. 디지털 매체로 다시 태어난 이 놀이 기구들은 현실로부터의 탈출, 그리고 행복과 자유의 탐색을 상징한다. 작품의 원제목이자 ‘원심력’을 뜻하는 독일어 단어 ‘Fliehkraft’는 탈출을 의미하는 ‘Flieh’와 힘을 의미하는 ‘Kraft’의 합성어이다. 한편 이 기계들은 재미와 즐거움을 주기도 하지만, 또한 시각 미디어의 아이러니컬한 입지를 재현한다. 노박은 단순한 아마추어용 카메라로 녹화한 영상을 디지털 기술로써 조작 및 증강한다. 마찬가지로 각각의 영상에 대응하는 일곱 개의 건축 도면들은 실제적인 기술 정보를 보여주지 않는다. 도리어 이 드로잉들은 현실이 무엇인지 반문하고, 나아가 우리 문명에 대한 패러디를 제공한다.



(* 아래 영상은 틸 노박의 다른 영상물임. 다소 스타일이 다르긴 하지만..) 




출처:http://www.mediacityseoul.kr/ 


정연두 -  식스 포인츠

 2010

 28분 44초,  싱글채널 HD 비디오, 사운드



정연두의 이미지들은 대부분 실사로 이루어진 연출사진들이다. 이 이미지들은 사람들의 판타지, 꿈, 희망이나 연극적인 상상들에 기반하고 있다. 사진이 지니고 있는 ‘증거’로서의 특성은 이러한 비현실적 생각들이 일단 사진으로 번역되었을 경우 마치 실제로 실현된 것처럼 느끼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현장치로서의 사진에 작가는 눈에 보이는 무대장치들을 삽입함으로써 ‘증거’ 대신 ‘드라마’에 훨씬 주목하도록 한다.

Six Points는 정연두의 사진들 가운데 처음으로 컴퓨터 합성을 시도한 작품이다. 일정한 간격으로 촬영한 뉴욕의 거리 사진을 길게 이어 붙여 천천히 패닝하는 동영상 카메라의 움직임을 재현해 낸 것이다. 이 동영상에는 이전의 < 수공기억>에서 인터뷰를 다루었던 것처럼 어떤 인물들의 목소리가 더빙되어 있다. 즉 뉴욕의 소수민들이 거주하는 6개의 구역들(잭슨 하이츠의 인도마을, 멀베리 & 켄모어의 리틀 이탤리, 모트 스트리트의 차이나 타운, 32번가 코리아 타운, 루즈벨트 에비뉴의 남미마을, 브라이튼 해변가의 러시아 공동체) 각각에 살고 있는 불특정한 인물들의 독백이 그것이다. 이 인물들은 자신들이 떠나온 고국과 타지에서의 삶이 주는 긴장감, 두려움, 희망 등에 대해 토로한다. 연극의 대사처럼 다루어진 이 독백들로 인해 영상의 흐름은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이 내재하고 있는 공간들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출처: 직접 찍음 


로미 아키투브 Romy Achituv - 크라프의 마지막 테이프

2012, 뉴미디어 설치 작품

크기 : 가변 크기

 


<크라프의 마지막 테이프>는 부조리한 희곡의 부조리한 제목이다. 상상해보라. 거의 장님에 잘 듣지도 못하는 쇠약한 노인이 반쯤 술에 취한 채 너저분한 방에 홀로 쭈그리고 앉아서 바나나로 끼니를 때우며 자신의 목소리가 녹음된 옛날 테이프들을 틀고 있는 모습을, 그것도 녹음의 상당부분이 그 이전의 테이프들에 대해 언급하는 테이프를. <로버트 해치>

 

베케트의 단막극 <크라프의 마지막 테이프>의 비디오 퍼포먼스를 한 줄기의 꿀로 ‘코드전환’을 한 이 설치작업에서 약 3미터 높이에서 흘러내리는 ‘꿀줄기’는 연극의 내러티브에 반응하며 지진계가 진동하듯 흔들린다. 그리고 바닥에 있는 꿀 웅덩이의 표면에 덧없는 흔적을 남긴다. 이 작품은 퍼포먼스의 모든 순간과 그에 동반하는 소리들뿐만 아니라 밀도 있게 채워진 침묵과 멈춤에도 촉감 가능한 형태를 부여한다. 이 물리적인 인코딩은 베케트가 현존을 통해서 “말하는” 것만큼이나 부재를 통해도 “말하는” 방식을 강조함으로써 연극의 구조적 역동성을 부각시킨다.

꿀이 흘러내려 투명한 통 안에서 서서히 뒤섞이는 과정에서 꿀을 담는 용기는 ‘데이터 옮겨 적기‘를 하듯 침전물의 층을 축적하면서 퍼포먼스를 구체화하게 된다. 그러나 꿀은 작품의 “지질학적 데이터 지도”를 만들기 보다는 용기 속에서 뒤섞이고 어우러지면서 분리 불가능한 덩어리라는 볼륨으로 재구성된다.

이 “해석된 데이터”는 꿀이 움직이지 않는 상태로 되돌아감에 따라 시각적인 동시에 상징적으로 그것의 물리적인 운반자인 꿀로 다시 환원된다. 그리고 모든 해석의 전략은 다시 열린 채로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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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en.wikipedia.org/wiki/Main_Page 

언젠가 내 글이 출처도 밝혀지지 않은 채, 어느 블로그에 올라가 있었다. 그리고 그 블로그 운영자에게 쪽지를 보내 출처를 밝히든지, 내려달라고 했다. 그 글은 내려졌지만, 그 운영자는 아무런 댓구도 없었다. 미안하다는 이야기도 없었다. 실은 그 블로그는 모두 어딘가에서 인용된, 퍼온, 스크랩된 내용들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그 예의없음에 욕지기를 느낄 정도였다. 결국 출처를 밝히고 글쓴이에 대한 예의없음이 문제였지, 퍼가는 것에 대한 반대가 아니었지만, 우리는 몇몇의(어쩌면 너무 많은) 몰지각한 사람들로 인해 강력한 저작권법의 필요성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어떤 지식들이나 정보들은 개방되거나 공유되어야 한다. 문제는 개방과 공유를 막는 저작권법이 저작권자의 노고를 인정하고 그들의 권리를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듯 처럼 포장하지만, 실은 그게 아니다. 장하준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선진국들은 자신들이 경제 발전을 도모하던 시기에는 보호 관세와 정부 보조금을 통해 산업을 발전시켜 놓고 정작 지금에 와서는 후진국들에게 자유 무역을 채택하고 보조금을 철폐하라고 강요한다. 과거 자신들은 여성, 빈민, 저학력자, 유색 인종에 대해서는 투표권조차 주지 않았으면서 지금은 후진국들에게 민주주의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면 경제발전도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자신들은 다른 나라의 특허권과 상표권을 밥 먹듯이 침해했으면서도 이제는 후진국들에게 지적 재산권을 선진국 수준으로 보호하라는 압력을 넣는다.
- 장하준, <<사다리 걷어차기>>,  형성백(옮김), 부키, 8쪽


즉 이미 기득권을 가진 자들의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저작권법이다. 얼마 전 머니투데이의 저작권 관련 기사는 저작권법이 얼마나 흥미로운 것인가를 잘 보여준다.

장동건·고소영 사진 스크랩했다 120만원 봉변 - 미디어오늘

미국에서 꽤나 강력한 저작권법이 통과되었다. 그리고 위키피디아 영문 사이트는 오늘 문을 닫았다.

저작권법 놓고 할리우드-실리콘밸리 '충돌'

장하준이 지적하듯 저작권이라는 건 원래 없었던 법률이었다. 한국이 7-80년대 빠른 경제성장을 했을 때 여러 기술들을 카피했듯, 중국도 그렇게 성장했다. 결과적으로 잘한 짓이다. 그렇게 19세기 유럽 열강들은 성장했고 20세기 초 미국이, 20세기 후반 한국이, 21세기 초 중국이 그랬다.

복제약이라는 게 있다. 값비싼 수입약 대신 국내 제약사가 그 약의 성분 그대로 약을 카피해서 만든 약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이게 한미FTA로 어려울 전망이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병원과 약국에서는 싼 복제약을 더이상 사용할 수 없고 값비싼 수입약을 사용해야만 한다. 2015년부터 발효될 예정이고 수조원의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 제약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모든 곳에 암초처럼 저작권법이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그 법으로 인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어야 하는 것일까. 나와 같은 이들이 바라는, '출처를 밝히는 것과 글쓴이에 대한 예의'마저도 없는 이들이 온라인 공간에 있는 한 저작권을 가진 기업체이나 저작권을 대행하는 협회에서는 끊임없이 이를 악용해 돈벌이에 골몰할 것이고, 그 사이 널리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사회 전체의 이익에 기여할 수 있는 어떤 지식들과 정보들도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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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ttp://bbs3.agora.media.daum.net/gaia/do/petition/read?bbsId=P001&articleId=120053

    아고라 청원 운동중 서명 해서 억울함을 풀자!!!

    고소남발 국민 삥뜯는 법무법인



사이방가르드 - 개입의 예술, 저항의 미디어
이광석 지음
안그라픽스


‘사이방가르드: 개입의 예술, 저항의 미디어’라는 책 제목과 부제에서도 드러나듯, 이 땅의 고민들을 반영하고 담아내려는 사이버 시대의 아방가르드적 행동주의의 흐름과 예술, 미디어 저항과 실천의 다양한 작업들에 주목한다. 책에서 소개되는 아방가르드 예술군의 사회 참여 방식을 보면서, 독자 여러분들은 현실의 야만에 반응하는 나름의 ‘싸움의 기술’을 터득하기 바란다. - 14쪽


작년 모 잡지의 원고 청탁으로 관련 자료를 찾다가 이 책을 알게 되었다. 미술 분야의 일을 간간히 하지만, 최신 정보와는 다소 동떨어진 일상을 살아가는 탓에 이런 류의 책을 소개받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책은 신선했다. 문장과 구성 방식, 그리고 소개되는 예술가들마저도. 이 책에서 설명하는 다수의 예술가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 책 속에서 마주하게 되었을 때는 더욱 흥미로웠다.

이 책은 저의 말대로 사이버 공간 속에서 현실적인 메시지와 실천을 하고 있는 예술과 그런 예술가, 예술그룹에 대한 소개서이다. 저자의 문장이 다소 직설적이지만, 이마저도 글쓰기 전략의 의도로 여겨질 정도이며, 이 책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그렇게 독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소개된 예술가들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리뷰를 작성하려고 몇 달 전부터 책 위에 이 책이 놓여있었지만, 그럴 시간적 여유를 가지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 이렇게 리뷰를 올린다. 미디어 아트와 예술적 실천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이 책은 무척 흥미진진할 것이다. 또한 사이버 공간에 대해 관심있는 독자에게도 이 책은 재미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대중서라기보다는 전문서적이며, 책의 목적이나 읽기를 원하는 독자도 분명하다. 이렇게 적고 보니, 반대로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이 책이 씌여지고 편집되고 구성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궁금함이 생기기도 한다. 그렇지 않다고 해서 책의 신선함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니, 관심있는 독자들은 한 번 정도 읽어봄직 하다. 단, 책을 고르기 전 목차는 확인해보도록~.


사이방가르드 - 8점
이광석 지음/안그라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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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드 - 우리가 알던 세상의 종말

켄 올레타(지음), 김우열(옮김)
타임비즈



4월 4일자로 래리 페이지가 구글의 새로운 CEO가 되었다. 에릭 슈미츠가 물러나고. 구글의 주가는 하락했고 래리 페이지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교차했다. 과연 그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야후의 제리 양이 될 것인가. 전 세계의 경제, 경영인들이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 '구글드'를 읽는다면 왜 내가 서두에서 구글의 CEO가 바뀐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구글의 시작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구글이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 기업 문화, 그리고 경영 전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뉴요커의 수석 칼럼리스트 켄 올레타는 3년 동안 구글을 따라다니며 자료를 모으고 인터뷰를 하여 이 책을 썼다.

이 책을 읽고 난 다음, ‘구글’이라는 기업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 IT 업계와 미디어 산업이 어떻게 변하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많은 것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만큼 구글이라는 기업이 가지는 위치(MS와 비슷한 형태의 새로운 ‘악의 제국’이 될 가능성만큼이나 그들의 모토 ‘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이 흥미롭게 대비되는)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폰의 대부분이 구글이 만든(실제로는 인수한 기업에서 나온) 안드로이드OS뿐만 아니라 유일하게 애플과 MS에 대항하면서 전 세계 모든 미디어 기업들이 경쟁 대상이라고 여기는 기업이 바로 구글이다. (이런 구글이 이제는 페이스북을 잠재적 경쟁자로 여기고 있다)

알고리즘만 있다면 모든 것의 통로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이 기업은 엔지니어에 의해 만들어졌고 그렇게 경영되고 있는 기업이다.


구글을 운영하는 사람은 엔지니어들이고, 엔지니어들은 늘 “왜?”라고 묻는 사람들이다.
- 509 쪽


 

구글의 지도자들은 냉정한 사업가가 아니라, 냉정한 엔지니어다. 그들은 과학자로서, 언제나 새로운 해답을 찾아다닌다. 행동을 도식으로 나타내고, 예측하게 해주는 구조나 공식이나 알고리즘을 찾는다. 그들은 순진하게도 대다수의 수수께끼를, 그것이 복잡미묘한 인간 행동에 관한 수수께라도, 데이터만 있으면 풀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월스트리트는 그런 수학적 파생상품 모형을 믿다가 미국 경제에 크나큰 타격을 입혔다.
‘순진함’과 ‘열정’은 강렬한 조합이다.
- 510쪽



이 책은 구글을 통해 그들 나름의 기업 경영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엔지니어 중심의 기업 문화는 다른 기업에서는 보기 드물 정도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엔지니어와 과학자들에게 권한이 주어지는 문화가 되어야 해요. 그리고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깊이 이해하는 사람들이 관리해야 하죠. 보통은 그렇지 않아요.”
- 371쪽


 

“권한을 위임받은 엔지니어는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혁신을 촉진하려면 엔지니어들이 상품-마케팅 파트에 주눅 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내 목표는 성장이고, 성장은 혁신에서 나온다. 혁신은 뛰어난 상품-마케팅 파트가 아니라 뛰어난 엔지니어들에게서 나온다. 똑똑한 경영자라면 하루 종일 프로젝트 검토만 해야 한다. 하루 종일 프로젝트를 정리해 잘 안 될 만한 프로젝트를 솎아내고, 일이 없어진 사람들을 다시 최고의 결과가 날 법한 프로젝트에 투입해야 한다.”
- 빌 캠벨Bill Campbell, 2007년 맥킨지와의 인터뷰 중에서 (136쪽)



그만큼 자기 주장이 강하며 고집이 있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그들에게 유튜브로 인한 저작권 분쟁은 재산권 다툼이 아닌 ‘세계관’의 충돌(211쪽)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기업 문화에서 아래와 같은 생각이 나왔을 것이다.

슈미트는 온라인 동영상 광고가 텔레비전 광고와는 달라야 한다는 점을 알았다. 동영상 시작 전에 광고가 나간다면 짜증스러울 터였다. 인터넷 사용자는 클릭하자마자 동영상을 보고 싶어 한다. 온라인에서 30초 광고는 너무 길었다. 광고는 방해물처럼 느껴져서는 안 되고, 긴 방해물이라면 더더욱 곤란하다.
- 339쪽



한국의 많은 동영상 스트리밍 기업에서는 동영상을 방해하는 광고를 서슴없이 보여주는 데 반해 유튜브는 아래 하단에 광고를 노출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뒤늦게.

‘소비자들이 시간을 보내는 곳이 바로 시장’(235쪽)이며, ‘소비자의 주의를 사로잡는 것이면 무엇이든 컨텐트다.’(495쪽)



그리고 그 소비자들은 이제 태어나 걸음마를 시작할 때부터 인터넷을 접하며 자란다. 그러니 저작권 분쟁에서 '세계관의 충돌'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것이다. 구글과 기존 다른 기업들과의 충돌은 이런 세계관의 충돌이다. 세계는 변화하고 있고 그 변화의 앞에 구글이라는 기업이 서있다.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이런 변화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 지에 대한 작지만 소중한 지침을 준다고 할까. 이 책 비즈니스 도서로 분류될 수 있겠지만, 세상이 변한다는 것에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누구에게도 한 번쯤 읽기를 권한다.


구글드 Googled - 10점
켄 올레타 지음, 김우열 옮김/타임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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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out books,
history is silent,
literature dumb,
science crippled,
thought and speculation
at a standstill.
Without books,
the development of civilization
would have been impossible.
They are engines of change,
windows on the world,
"lighthouses"
(as a poet said)
"erected in the sea of time".
They are companions,
teachers, magicians,
bankers of the treasures
of the mind.
Books are humanity in print.

-- Barbara Tuchman


책이 없이는
역사는 침묵하고
문학은 말을 잃고
과학은 절뚝거리고
사상과 사색은 정체된다.
책이 없이는
문명의 발달도 없었다.
책은 변화의 동력이며
세상을 내다보는 창문이며
(어느 시인이 말했듯)
"시간이라는 바다에 세워진
등대다."
책은 동반자고,
스승이고, 마술사며,
마음의 보고를 관리하는
은행가다.
인류를 인쇄한 것, 그게 책이다.

-- 바바라 터크먼
(1912-89, 미국 역사가 겸 저술가)
(출처: http://engweg.tistory.com/189)


CD가 나왔을 때, CD예찬론자들은 LP가 금방 사라질 것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몇 천장, 몇 만 장의 LP를 가지고 있던 음악 애호가들은 LP를 버리고 CD로 전향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십년 남짓 지나간 요즘, 영원하다던 CD 대신 LP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더구나 이십년전에 나온 CD들 중 몇 장은 에러가 나서 듣지 못하고 있다.

디지털이 영원하다고? 웃긴 소리다. 종이에 쓴 연애 편지은 백 년 넘게 보관할 수 있지만, 문서 파일로 쓴 연애 편지는 플로피 디스크든, 시디든, 하드 디스크든 백 년 가까이 보관할 수 있을까? 특정 문서 양식을 읽지 못하거나 바이러스나 물리적 한계로 인해 백 년을 채우지 못하고 사라지거나, 그것을 복원하기 위해선 별도의 장비와 절차가 필요할 것이다. 종이 편지에게 위험한 것은 우리 몸에도 위험한 것들이다. 깊은 호수나 끝없는 불길, 또는 마음의 화재 같은 것.

움베르토 에코에게 종이책의 미래에 대해서 누군가 물은 적이 있었다. 그 때 주머니 속에 들어가는 포켓북은 사막을 건너는 낙타 위에서 읽을 수 있으며, 연인와 긴 정사 뒤 침대 옆 스탠드 불빛 아래에서도 읽을 수 있으며, 필요할 땐 연필로 밑줄도 긋고 메모도 할 수 있다며, 종이책은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답했다.

아마 그 글을 읽은 한국의 경박스럽고 터무니없는 디지털 예찬론자들은 콧방귀를 뀌었을 것이고 새로운 것이라면 무조건 달려가보고 마는 철부지 학생들은 에코가 드디어 특유의 날카로움을 잃어버렸다고 여겼을 것이다. 

9월 르몽드 디플로마크에서, 프랑스 출판인인 세드릭 비아지니와 기욤 카르니노는 '물신주의에 맞서는 최후공간, 종이책의 미래를 지켜라'라는 칼럼을 썼다. 그들은 디지털화되어가는 책들의 암울한 미래를 향해, 경고장을 날린다. 그들은 '인터넷을 통한 독서는 더욱 분할되고, 조각나며, 분절된다. 디지털, 하이퍼텍스트 그리고 멀티미디어는 미국 심리학자들이 종이매체의 선형적인 독서에 반드시 요구되는 '깊은 주의력'에 대립된 개념으로 파악한 이른바 '하이퍼어텐션'(hyper-attention)을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최근의 황당한 사건들. 자기 자신의 마음을 참지 못하고 자살하거나, 누군가를 죽이거나, 누군가를 (성)폭행하는 일군의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하이퍼어텐션'을 떠올렸다. 결국 급격하게 변화된 미디어환경이 사람들에게 느리고 게으르고 무식하게 인내하는 법을 잊게 만든다고 나는 여기고 있다.

세드릭 비아지니, 기욤 카르니노와 같은 필자가 한국에 없음을 안타까워 하며, 그들의 칼럼 마지막 문단을 옮긴다.

종이책은 선형성과 유한성, 물질성과 현존성의 차원에서 속도의 숭배와 비판력의 상실을 저지하는 침묵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종이책은 닻을 내리는 지점이자 일관되고 분명한 사상을 예약하는 공간이다. 막대한 네트워크와 정보 홍수의 유혹에도 아랑곳 않고, 책은 저항의식이 숨쉬는 최후의 장소 중 하나로 남을 것이다.
- 르몽드 디플로마크 한국어판 9월호



* 하이퍼 어텐션hyper-attention: 젊은 세대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인지태도. 주의를 기울이는 시간이 짧고 강한 자극을 필요로 하는 특성. 멀티미디어 환경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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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종이책은 영원합니다 :)

  • 컴퓨터를 전공하면서도 아날로그가 좋은 1人입니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오히려 온라인서점으로 책 판매율이 엄청 상승했다는데
    전자책이 잘 발달되더라도 종이책은 사라지지 않을 듯..

    책은 넘기며 읽는게 제 맛 :O)

    • 아날로그와 디지털은 대립적인 개념이라기 보다는 상보적인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서로를 채워주면서 앞으로 가야 하는데, 대립적이거나 대결적인 구도로 몰고 가려는 건 아닌가 싶어요. ^^. ... 여튼 종이책만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새록새록 드는 요즘입니다.

  • noi 2009.11.09 17:34 신고

    아날로그와 디지털은 상보적이어야 한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전자책의 존재이유는 종이책을 멸종시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책에 대한 접근을 용이하게 만들어 잠재적 독자 수를 늘리는 데 있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저 또한 종이책 팬입니다만은 책 수백 수천 권을 손바닥만한 전자책에 넣어버리면 이 무거운 책들을 끌고다닐 필요가 없다는 매력... 이사하면서 절실히 느꼈습니다-_-;;;;

    • 아마 종이책 뒤에 전자책을 다운로드받을 수 있는 쿠폰 같은 게 따라 붙을 지도 모릅니다. ^^ 가방에 책 잔뜩 넣고 다니는 일이 없어지겠죠. ㅎㅎ

  • 홋홋홋 2009.11.10 00:00 신고

    책을 버리세요
    이미 활자화 되어 있는 정보는 죽은 정보 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알고 있는것은 최상급의 지식에 속하지 않는 것이 [창의] 입니다

  • 홋홋홋 2009.11.10 00:03 신고

    다만,
    자기 자신의 내면에서 [스스로의 책]을 이끌어 내세요
    인간 문명문화를 이루고 있는 그 모든 지식의 총체적인 것은
    바로 자기자신의 [인식]속에 들어 있다고 하더군요..
    자연이라는 거대한 책의 한페쥐 바로 자기 자신을 아주 조금만 읽을 수 있다면 ...
    그 삶은 충만한 삶일 수 있을 겁니다

  • 홋홋홋 2009.11.10 00:04 신고

    자기 자신을 읽을 수 있는 좋은 시간은
    숙면을 취하고 난 뒤 -
    그러나 나는 극빈으로 남의집 골방 살이를 하는지라
    늘 그 소중한 기회의 시간을 소음으로 매일매일 방해 받습니다...

  • 홋홋홋 2009.11.10 00:06 신고

    더구나 오늘은 왠놈이 스펨문자질을 보냈는데 그게 내 핸번으로
    번호도용하여 했는지라
    고발조치 하느라 경찰서까지 다녀오느라 하루를 소모햇습니다

  • 기존 활자책은 분명 커다란 장점에도 불구하고 상담부분의 시장을 전자책에 내줄것입니다. 디지로그적인 전자책은 분명 커다란 장점이 있습니다. 단점들은 계속 보완될 것이구요. 오히려 좁은 집에서
    기존책들을 보관하는것은 사치스러워 보입니다. 제가 부자라면 계속 활자책을 사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럴만한 여유가 없죠. 이미 되돌아갈수없는 강을 건너버린 씁씁한 느낌이랄까요

    • 보기에도 LP보다 제조단가가 적게 들어갈 것으로 보이는 CD의 소매가격은 LP의 소매가격보다 비싸게 나왔습니다. 책의 Digital File 버전은 책보다 싸게 나올 것이나, 누구에게 빌려줄 수 없으며, eBook 단말기가 없다면 그야말로 무용지물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보이지 않은 기회비용을 따진다면, 전자책의 소매가격이나 책의 소매가격과는 많은 차이가 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희망적인(?) 생각을 가져봅니다만, ... 어떻게 될 지는... 책읽기를 좋아하지만 저는 ebook 단말기에는 전혀 관심이 가질 않더군요. 일 때문에 자료 조사 같은 건 하지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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