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파아란 영혼

미술사 +24


세계의 박물관 미술관 예술기행 - 유럽편 - 

차문성(지음), 책문(성안당), 2013년 초판/2015년 장정개정판 


좋은 책이다. 비전문가인 저자가 전문가가 되어간 과정이 녹아있다. 성실한 내용과 애정이 담긴 글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박물관학 석사 과정을 마쳤으나,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 특히 유럽 주요 도시에서 가기 쉬운 미술관/박물관을 선정해 보여주었다는 점도 이 책이 꽤 실용적임을 증명한다. 


내가 이 책을 읽은 목적은 유럽의 여러 도시에 흩어진 미술관, 박물관에 대한 체계적인 정보를 얻기 위해서 였다. 그러나 이 책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대한 체계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책 제목 그대로 예술기행이다. 런던, 파리, 암스테르담, 프랑크푸르트, 생페테르부르그 등의 도시에 있는 미술관/박물관에 대한 소개와 그 곳에 대한 간단한 느낌이나 감상, 그리고 소장 전시되고 있는 주요 작품들에 대한 짧은 안내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니 내 목적은 달성하지 못한 셈이다. 


하지만 매우 부러웠다. 한 달 이상 파리에 체류하면서, 일 드 프랑스와 생-제르맹 거리를 오가며, 갤러리에만 있었던 건 아닌가 후회를 한다. 누구나 다 가는 루브르와 오르세만 간 걸 이제서야 후회하다니. 다시 가게 되면 꽤 오래 머무르며 작품들을 보고 와야 겠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작품들 대부분은 이미 여러 미술 관련 서적에서 본 내용들인 탓에, 빠르게 읽었다. 서양미술의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꽤 도움이 될 내용이었다. 


대부분의 유럽 여행객들이 미술관 관람이 목적이 아닌 만큼, 이 책에서 언급된 도시에 가게 될 경우, 이 책은 꽤 유용할 수 있겠다. 



렘브란트, <예루살렘의 멸망을 탄식하는 예레미야>, 1630,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Rijksmuseum)


구약의 선지자 예레미야를 그렸다. 렘브란트가 24세라는 젊은 나이에 이런 깊이를 가진 작품을 그렸다는 건 놀랍기만 하다. 아마 그만큼 신앙심이 깊었을 것이다. 예레미야의, 고통을 지긋이 누르며 곤혹스러워하는 얼굴 옆으로 불타는 예루살렘이 보인다. 바로크 특유의 명암법은 화면 전체를 감싼다. 한 쪽은 밝고 한 쪽은 어둡다. 하지만 밝은 쪽은 슬픔으로 가득하고 어둠 속으로는 절망감이 감돈다. 그리고 팔을 괴고 있는 모습 아래로 성경이 보이고 그 밑으로는 바빌론의 왕 느부갓네살로부터 받은 금은보화로 보이는 것들이 놓여져 있다. 전체적으로 사선으로 비스듬하게 기대고 있는 예레미야의 모습을 통해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바로크의 고민이 보인다. 확실하 바로크는 과거를 향하지 않는다. 미래로 열린 양식이다. 한 쪽은 밝고 한 쪽은 어둡다. 그러나 우리 시선은 어두운 쪽에 오래 머물지 못한다. 그래서 저 반짝이는 금속물질의 물건은 참 흥미롭기만 하다. 


이 책에선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을 소개하면서 이 작품을 언급했다. 위 설명은 내가 별도로 작성한 것이라 책 내용과는 다소 다를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두 작품이 눈에 들어왔는데, 마네의 베르트 모리조 초상화와 렘브란트의 위 작품이었다. 마네와 베르트 모리조의 관계에 대해선 다음에 한 번 언급하기로 하자. 혹자는 19세기 미술사 가장 아찔한 로맨스라고도 하니 말이다. 대체로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긴 하지만.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미술사 책을 읽기는 하나, 그건 일 년에 한 권 될까 말까이다. 한때 책을 내기도 했고 강의도 하기도 했지만, 그건 십 수년 전 일이고, 마지막 잡지 기고를 한 것도 꽤 지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러다 우연히 강의 제의가 들어왔다. 요즘 아내의 일로 커뮤니티 자치 활동을 잠시 도와주고 있는데, 그 곳에 계신 분의 제안으로 한 차례 강의를 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아래는 간단한 강의 개요다. 막상 적기는 쉽게 적었으나, ... 도판 찾는 게 일일 듯 싶다. 요즘은 워낙 온라인 아카이브가 잘 되어 있어 쉽게 도판을 찾을 수 있으나, 정확하고 적절한 도판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한 일인지라, 꽤 시간이 걸릴 듯 싶다. 동네에서의 반응이 좋으면 나중에 공개적인 장소, 가령 북까페 같은 곳에서 한 번 더 하면 좋을 것같기도 하다. 이런 강의도 자주 해야 까먹지 않는데, ... 머리가 굳어져서 큰 일이다. 


*** 

 

미술의 역사를 통해 배우는 현대미술감상법 


우리의 마음과 예술의 경향 

‘예술은 없고 예술가만 있을 뿐이다’라고 에른스트 곰브리치는 <<서양미술사>>의 첫 문장으로 적고 있습니다. 예술 작품 뒤에 놓여진 예술가의 삶과 그 시대를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그 때의 예술작품을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중세 말의 고딕 성당을 알기 위해선 그 당시 사람들의 신앙에 대한 깊은 공감을 가져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13세기의 유럽인이 아닙니다. 그러니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의 마음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정직하고 솔직하게 바라볼 때 비로소 예술 작품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본적인 태도가 갖추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령 신앙의 문제에 있어서 현대의 어떤 사람은 조용히 교회당에 가서 기도를 올리고 아침저녁으로 묵상을 반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교회당 대신 거리로 나가 자신의 신앙을 과시하기도 합니다. 로마네스크 성당과 고딕 성당의 차이는 이와 비슷합니다. 신의 존재와 신앙의 문제 앞에서 사람들은 다양한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사람들의 각기 다른 마음과 태도도 그 시대의, 그 나라의 예술작품을 만듭니다. 





생-드니 성당. (1135 - 1144)



매너리즘과 현대 

예술사에서 매너리즘(마니에리즘)은 16세기 중후반의 지배적인 양식을 의미합니다. 일종의 퇴보로 이해되었던 탓에, 이 양식의 명칭은 경멸적입니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그 시대의 예술은 가장 현대적인 예술로 인정받기에 이릅니다. 우리는 예술 양식이 어떻게 경멸당하고 다시 받아들여지게 되는가 흥미로운 역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그 당시의 예술가들이 어떻게 싸웠는지 알게 됩니다. 


틴토레토, <최후의 만찬>, 1592-94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예술은 크게 고전주의(고전적 예술)과 낭만주의(낭만적 예술)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양식에서의 어떤 차이점을 가지고 있는가 설명합니다. 대표적인 시대와 예술가들, 그들의 작품에 대해 이해하며 현대 미술에 있어서의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도 함께 탐구합니다. 


라파엘로, <초원의 성모>, 1505 



자연주의와 기하학주의 

서로 대립되는 양식으로 여겨지지만, 이는 대립되는 양식이 아니라 우리가 외부 세계와 마주할 때 취하게 되는 양식적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주 드물게 자연주의와 기하학주의가 함께 드러낼 때도 있습니다. 자연주의 작품과 기하학주의 작품을 함께 비교해가며 예술가들이 외부 세계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는지 이해하도록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들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고민해봅니다. 


이집트, <사자의 서> 일부, BC.1275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소장품기획전>으로 보는 현대미술과 우리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소장품기획전>은 현대 미술의 정수를 볼 수 있는 보기 드문 전시입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현대 미술 작품 안에 그러한 것들이 어떻게 녹아 있는지 살피고, 현대 미술 작품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기본적인 내용에 대해 살펴보도록 합니다. 


론 뮤익, <침대에서>, 2005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The Death of Young Bara, Joseph Bara or The Death of Bara is an incomplete 1794 painting by the French artist Jacques-Louis David, now in the musee Calvet.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The_Death_of_Young_Bara




1793년 12월 7일 대서양 연안의 Vendee에서 왕당파 당원들에 의해 살해당한 13살의 소년 'Bara'. 


고전주의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서정적이며 슬프고 애처로운 느낌을 자아낸다. 어쩌면 자끄 루이 다비드만이 그릴 수 있는 작품일 지도. 신고전주의는 의도된 고전주의다. 자끄 루이 다비드는 '혁명 정신'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이 작품을 그렸으며 이 작품을 보는 이들에게 혁명의 적들인 '왕당파'들에 대한 반감과 증오심을 가지게 만들게 한다. 정치적 예술의 대가로서의 다비드는 이러한 심리적인 효과까지 염두에 두고 이러한 작품을 그린 것이다. 


어린 소년 바라는, 죽은 후 영웅이 되었으며, 프랑스 혁명의 순교자로 여겨졌다.  작품 속 Bara는 모래 해변에 알몸으로 쓰러져 있다.  Vendee이라는 곳이 해변 지방으로, 해변에 쓰러져 있는 것으로 그린 것이다. 





신고

Comment +0





그림을 본다는 것 Looking at pictures 

케네스 클라크Kenneth Clark(지음), 엄미정(옮김), 엑스오북스, 2012년 (원저는 1972년에 출판)






나는 그림이 주는 기쁨을 더 많이 더 오랫동안 느낄 수 있으려면 그림에 관해 배워야 한다고 믿는다. - 7쪽 



그림을 즐기기 위해선 배워야 한다고 케네스 클라크는 말한다. 우리가 뭔가 배울 땐, 성적 때문이 아니라 즐기기 위해서이다. 배움을 통해 우리는 세상의 비밀을 조금 더 알게 될 것이고, 과장해서 말하자면 세상은 빛으로 가득 찰 지도 모른다. 아마 중세를 지나 근대를 향해 가던 서유럽인들이 느꼈던 감정이 바로 이랬을 것이다. 배우고 알아가는 과정은 어두운 세계를 환하게 밝히는 것과 같다. 



우선 나는 그림을 하나의 전체로 바라본다. 그림을 보기 시작한 뒤 한참 후에야 나는 비로소 내가 의식하는 대상이 지닌 일반적 인상을 알아차리게 된다. 일반적 인상이란 색조와 부분, 형태와 색채의 관계에 좌우된다. 일반적 인상이 주는 충격은 즉각적이다. (...) 그러므로 최초의 충격 다음에는 그림의 부분 부분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색채는 조화로운지, 소묘는 대상을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렸는지, 세부를 살펴보고 즐기라는 말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화가가 의도했던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 8쪽 




하지만 즐기기 위해 배운다는 것이 우리들에게 낯선 건, 그만큼 배운다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아온 탓일 게다. 의외로 미술에 대한 책은 잘 읽히지 않고, 잘 팔리지도 않는다. 갤러리가 많긴 하지만, 일반인들의 방문은 뜸하고, 전시를 열지만, 작품이 팔리지 않고 팔리지 않으니, 작품 가격은 비싸진다. 거기다 위작 논란까지. 그만큼 미술에 대한 진입 장벽은 높기만 하다. 그리고 현대 미술이든 고전 미술이든 다 어렵다고 여긴다. 심지어 현대 미술은 '난해한'이라는 수식어가 그냥 자연스럽게 붙어다닌다.


실은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도 어렵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이 책은 서구에선 중고등학생들이 읽는 책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국에선 대학생들도 어렵다고 하니, 한국 사람들의 책 읽기 수준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밖에.


이런 면에서 이 책도 어려울 지 모르겠다. 하지만 케네스 클라크는 읽는 이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그림을 보는 것의 의미를 새삼 물으며 서양미술의 역사에서 알아두어야만 할 예술가들과 대표작품을 다룬다. 초심자에겐 그림 보는 재미를, 이미 서양미술의 역사에 대해 이해를 갖진 사람들에겐 케네스 클라크만이 알려줄 수 있는 통찰이 흥미로울 것이다. 


책에선 더 많은 예술가들을 다루고 있으나, 여기서는 3명의 작가들에 대한 케네스 클라크의 생각을 옮겨본다. 



엘 그레코El Greco 



16세기 후반 최고의 작가는 단연코 엘 그레코다. 하지만 그는 수 백년 동안 잊혀져 있던 작가였다. 근대 시대의 매너리즘(마니에리스모) 양식에 대한 경멸은 16세기 후반 작가들의 무시와 천대로 이어졌다. 그리고 20세기 초 엘 그레코는 극적으로 부활한다. 


그럼에도 엘 그레코를 근대 회화의 선구자로 간주했던 1920년대의 비평가들은 옳았다. 첫번째는 엘 그레코가 비사실적인 두 양식, 곧 비잔틴과 마니에리스모 양식을 거치며 화가로서 입지를 다졌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형이상학적 사고 방식을 타고난 덕분에 고전주의적 전통의 주된 전제를 거부한 최초의 유럽화가였기 때문이다. 엘 그레코는 화면의 깊이보다 표면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 151쪽 



엘 그레코, 그리스도의 옷을 벗김(The Disrobing of Christ)

Oil on canvas, Height: 285 cm (112.2 in). Width: 173 cm (68.1 in). 

1577 ~ 1579, 톨레도 대성당 



표면을 중시했다는 표현과 함께 엘 그레코가 "미켈란젤로는 훌륭하지만 그림 그리는 법을 모른다"라고 말했다는 건 참 흥미롭다. 깊이 대신 표면을 중시할 때, 고전적 원근법적 세계는 흔들린다. 중심은 사라지고 모든 것이 균등해진다. 확고한 질서 대신 흔들리는 마음이 전면에 부상한다. 그래서 엘 그레코의 성상화들이 우리 마음을 울리는 것이다. 십자가 앞에서 흔들리는 마음을 엘 그레코는 알고 있었다. 



장 앙트완 와토Jean-Antoine Watteau





장 앙트완 와토(Jean-Antoine Watteau), 제르생의 간판(The Shop Sign of Gersaint)

Oil on canvas, 163 cm × 308 cm (64 in × 121 in)

1720-1, Charlottenburg Palace, Berlin

이미지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L%27Enseigne_de_Gersaint 



신고전주의가 자크 루이 다비드라는 걸출한 천재가 만든 양식이라고 한다면, 회화에서의 로코코 양식은 장 앙트완 와토의 것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와토의 이미저리는 그가 처음으로 전시했던 그림부터 유행하기 시작해 향후 100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심지어 와토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 후에 태어난 후배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1732 - 1806)는 여전히 와토의 정원, 말하자면 그의 이미저리를 활용했다. - 127쪽 



와토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우울해진다. 절반은 포기하고, 절반은 포기한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노는 것같다고 할까. 그 애상은 로코코 시대 전반을 물들였다. 한 시대(토지 귀족의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부르조아지의 시대)가 오고 있었다. 계몽주의와 로코코는 같은 시대의 양식이다. '제르생의 간판'은 와토가 얼마나 대단했는가를 새삼 느끼게 해줄 것이다. 위키피디아 링크를 타고 들어가면 작품의 디테일을 확인할 수 있다. 




들라크루아 Eugène Delacroix




Eugène Delacroix, The Entry of the Crusaders into Constantinople 

oil on canvas, 81 × 99 cm (31.9 × 39 in)

루브르 박물관 

이미지출처: https://fr.wikipedia.org/wiki/Entr%C3%A9e_des_Crois%C3%A9s_%C3%A0_Constantinople 




오히려 그는 예술은 상상력을 비추어 사건을 재창조하므로 시의 특질을 띤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들라크루아는 아마도 매우 많은 이류화가들을 미혹했던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BC 65 ~ BC 8)의 조언, '시 같은 그림 ut pictura poesis'으로 성공을 거두었던 마지막 유럽 화가였을 것이다. - 93쪽 



H.W. 잰슨(서양미술사가)이었던가, 낭만적 고전주의와 고전적 낭만주의라고. 다비드가 낭만적이고 들라크루아가 고전적이라고. 어쩌면 케네스 클라크의 견해에 힘입어, 들라크루아는 전통적 의미에서의 마지막 고전주의자일 지도 모르겠다. 낭만주의였으나, 그의 마음은 확고하게 고전적이었다. 그는 작품을 통해 스토리를 전달하였으며, 의미를 담아냈다. 그런 양식으로 그림을 그렸던 위대한 예술의 마지막 장을 장식한다. 그 이후 나온 아카데미 화가들, 제롬이나 부게로 같은 이들은 무식하게(성실하게) 그림만 그린 이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시대가 어떻게 변하는지 몰랐으며, 그 변화를 거부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평전

다나카 준(지음), 김정복(옮김), 휴머니스트 






일본인 저자가 쓴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평전이라니! 놀랍기만 했다. 더구나 꼼꼼한 연구서의 면모까지 지닌 이 책은 아비 부르부르크 생애 뿐만 아니라 주요 연구 성과, 그것에 대한 평가, 그리고 '미술사 연구'의 시작이 어떠했는가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 두서없는 리뷰를 양해해주길 바란다. 다나카 준의 꼼꼼한 서술을 따라 읽기에 시간적 여유가 없었고 겨우 다 읽은 후 쓰는 이 리뷰는 바르부르크의 주된 테마를 언급하는 데 그칠 것이고, 이 소개가 비전공자에겐 다소 재미없고 전문적이라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이 책은 전문 서적이다. 


인문학의 꽃은 철학이 아니라 역사학이며, 역사학 중에서도 미술사학이 가지는 흥미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감히 말하고 싶지만, 책읽기 좋아하는 직장인이 하기엔 주제 넘는 짓이다. 다만 신화나 종교에 대한 편협한 도상학적 이해만을 바탕으로 미술 작품을 평하는 국내 필자들에게 하나의 도상을 둘러싼 다양한 역사적 배경과 흐름, 그 속에서 벌어지는 정신들의 결투 같은 것에도 관심을 기울였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사유공간을 만들어내는 분리 운동과 마술적인 결합 강박은 언어와 도상의 한가운데 양극적인 긴장 상태를 유발한다. 아테네와 알렉산드리아 사이에 펼쳐진 세계를 '유럽'이라고 부른다면, 양극성을 유발하는 언어와 이미지 속에 응결되는 것은 유럽 정신의 무시간적 심층이다. 다시 말하면 유럽이란 이 무시간적인 구조가 강요하는 마신들의 회귀라는 반복운동에 의해 지배받는 시공간이다. (67쪽) 



바르부르크는 '무시간적 심층'이라고 표현한다. 즉 도상들은 시대와 지역을 넘나들며 이동하고 번역되면서 끊임없이 되돌아오고 잔존한다. 그리고 그는 이를 두고 '무시간적'이라고 평한다. 그래서 그에게 르네상스란 고대, 특히 마신적 고대의 부활이었다. 


기들란다요의 초상화를 봉납 밀랍인형과 똑같은 수준에 놓는다는 것은 그것을 이른바 역사인류학적인 시선 아래에서 물신숭배의 측면을 지닌 종교의례의 일부로 파악하려는 것이다. (209쪽) 



Domenico Ghirlandaio (1449-1494) 

Adoration of the Shepherds

1485

Cappella Sassetti(Santa Trinita, Florence)  


그 당시 교회에는 실제 인물과 동일한 밀랍인형이 가득했으며, 일종의 풍습이었으며, '도상마술(圖像魔術)'이 된다. 


"이교적인 미신을 믿는 에트루리아인의 자손인 피렌체인들은 극단적인 형식의 이러한 도상 마술을 발전시켜 17세기에 이르기까지 세련되게 다듬었다. (...) 여기서 논의하고 있는 '도상 마술'은 자신과 비슷한 밀랍제 인형, 은제 인형을 성스러운 화상의 봉납품으로 바치는 풍습이다. 피렌체의 산티시마 아눈치아타 성당은 권력자나 신분이 높은 이국인에게 실물크기로 자신의 형상을 밀랍인형(봉납물, voti 피렌체 방언으로는 boti)을 생전부터 성당 안에 전시하는 특권을 부여했다."(206쪽 - 207쪽)



기를란다요의 작품이 지니는 과도한 사실성은 이런 밀랍 인형과 같은 역할을 회화가 수행했음을 뜻하기도 한다. '봉납물의 신비한 힘을 믿고 있었던 피렌체인들은 여전히 '원시적'이었으며, 봉납물은 반드시 본인과 확실히 비슷해야 했다'(213쪽) 



Cappella Sassetti(Santa Trinita, Florence)   



바르부르크가 보는 르네상스의 모습이었다. 그는 기독교의 세계로부터 고대가 어떻게 부활하는가를 도상에 대한 연구로 시작한 셈이다. 


바르부르크의 관심은 어디까지나 고대의 부흥과 함께 '훌륭한 유럽인'이 열어놓은 점성술을 비롯한 마술적 행위 속에서 고대 그리스적인 '인간성Humanitat'을 재발견하려는 계몽을 위한 싸움에 있었다' (46쪽) 




Achilles at the court of King Lycomedes. 

Early 3rd century AD. marble

H. 1.08 m (42 ½ in.), W. 2.3 m (90 ½ in.), D. 0.8 m (31 ¼ in.)

출처: commons.wikimedia.org


책에서는 스킬로스 섬의 아킬레스 도판이 실려있으나, 이를 구하지 못한 관계로 다른 아킬레스 도판을 실는다. 위 로마 후기의 부조 작품의 유려한 표현을 감상해보자. 


문제는 어디까지나 시나 부조, 회화에서 조형적으로 처리된 운동의 표현이다. 그들은 그 표현을 위해 종종 고대의 시나 미술 작품을 모방했다. 그들은 고대적인 것으로서 발견하고 강한 관심을 가진 것은 고대 예술에 나타난 격렬하게 움직이는 부속물의 세부적인 형태이다. 고대 예술에 대한 관심 자체가 부속물의 운동에 대한 흥미로 인해서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 움직임을 나타내는 부속물이야말로 고대적인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고대의 부조를 모방한 소묘에는 원작에는 없는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이 그려진 것이다. (161쪽-162쪽)


그리고 아래 보티첼리의 '봄'을 보자. 보티첼레 작품에서 옷의 주름이나 머리 장식이나 스타일 등 부속물에 주목해 보면, ... 


보티첼리가 위치하고 있던 곳은 '고대'를 둘러싼 판타즘과 각성 사이, 15세기 피렌체의 현실에 대한 '개입'과 고대 예술이라는 꿈에 사로잡힌 '방심'의 틈새였다. 그것은 합리적인 '사려 깊은 생각'과 '상상력'에 의한 감정이입이 서로 부대끼는 공존 상태다. 이 '너무나 유약한' 화가에게 현저하게 나타난 '고대'라는 판타즘에 관심이 없었다면, 바르부르크가 박사학위 논문을 보티첼리론으로 썼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175쪽)  



Sandro Botticelli (1445-1510) 

Primavera 

1482, tempera

203 × 314 cm (79.9 × 123.6 in)

출처: commons.wikimedia.org


베버가 바르부르크의 논문에서 읽어낸 것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상업자본주의에 있어서 '경제 형식과 윤리적 생활양식'의 어긋남이었다. 이 모순은 프로테스탄티즘의 '직업윤리'에 의해 통합된다. 베버는 모순을 극복한 후, 자본주의적 에토스가 성립하는 메커니즘에 관심을 가진다. 이에 비해서 바르부르크는 상업자본주의라는 경제형식과 기독교적 생활양식의 긴장 관계를 고전 고대와 기독교의 대립 관계로 상징한 다음에, 이것을 조정할 수 있는 방법을 통합불가능한 이 양자의 분열 상태의 한복판에서 찾으려고 한다. (238쪽) 


도상 연구자로서의 바르부르크의 연구 방향은 분명했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몇몇 선배들 - 뵐플린, 부르크하르트 등 - 이 존재했지만, 바르부르크의 연구 방식은 거의 최초였다.  그는 서양미술 뿐만 아니라 사진이나 일상 생활에서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무시간적 심층에 속해 있는 '고대 도상들의 이동과 흐름'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리고 이 연구의 최종판은 '도상 아틀라스 - 므네모시네' 기획으로 이어졌다. 


마신적 고대의 부활은 그동안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감정이입적인 이미지 기억이 지닌 어떤 양극적인 기능에 의해 생긴다. 우리는 파우스트 시대에 살고 있다. 거기서 근대의 과학자들은 - 마술적 실천과 우주론적 수학 사이에서 - 자기와 대상과의 사이에 '진지한 생각'의 '사유 공간'을 획득하려고 노력했다. 아테네는 확실히 다시 알렉산드리아에서 재탈환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 아비 바르부르크, 1920년 (65쪽) 




- 일본 원서.  



- 아비 바르부르크 




Aby Warburg, Mnemosyne Atlas, Panel 79 (“The Eucharist”), 1929



"시간의 거울에 비친 '고대'를 재현한 이미지의 다양함은 각 시대의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인 선택경향을 보여주며, 그것에 의해서 소망이 형성되고 이상을 설정하는 집합적인 영혼이 세상에 명백하게 드러난 것입니다. 그러한 영혼은 구체화로부터 추상화로, 또는 그 반대로 향하는 주기적 왕복운동으로 인간이 절제Sophrosyne를 추구하며 벌여야 하는 싸움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309쪽) 



"고대풍의 역동적인 형태는 최대의 긴장상태에서 전승되는 것인데, 그것을 모방하고 흉내(상기)내는 자의 수동적 또는 능동적 에너지와의 관계에서 무극화된다. 시대와 접촉하고 나서야 비로소 양극화가 형성된다. 이것은 본래의, 고대에 있어 의미의 근본적인 역전(전도)에 이르는 것일 수도 있다." (309쪽) 


1929년 1월 19일 로마에서 므네모시네의 일부를 이루는 도상들로 바르부르크는 '기를란다요 공방에 있어서 고대 로마'를 테마로 강연을 했다. 아마 그의 논문이나 글보다 그의 강연은 수 배는 더 흥미진진하고 놀라웠을 것이다. 실제 도상을 앞에 두고 이루어지는 강의는 다양한 이미지들이 서로 얽히고 교차되면서 몇 가지의 주제나 이야기로 순식간에 수렴되기 때문이다. '맨 앞자리에 앉아서 바르부르크에게 개인 지도를 받듯이 강연을 들었던 케네스 클라크는 그 체험이 자신의 인생을 바꿨다고 회상한다.'(314쪽) 



점성술 그림과 정념정형은 고대의 재생을 경유한 변화의 기록이며, 바르부르크는 평생동안 탐구한 이 두 가지 테마를 도상 아틀라스의 계획으로 집대성하고자 한 것이다. (310쪽) 


*  *


한 때 미술사학자가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진 바 있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보자면, 아비 바르부르크는 평생 아마추어(*) 연구자였다. 다만 그의 집안이, 그의 형제들이 세계적인 은행을 가진 유대인 가문이었고, 그는 형제들에게 재정적으로 의존했다는 점에서 그의 연구는 어려움이 없이 이루어졌고, 한동안 정신병으로 고생했지만. 한국에서의 아마추어 연구자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하긴 요즘 같은 시기에, 국내든 해외든 석사나 박사로 미술사학을 전공하는 것은 스스로 백수가 되겠어요 라고 선언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어버렸으니. 


바르부르크가 연구하고 수집했던 책들이 있었던 도서관은 현재 바르부르크 연구소가 되었다.  


이 책은 전문 연구서이며 평전이다. 다만 르네상스 미술이나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흥미로울 수 있다. 일반 독자가 읽기에는 꽤 난이도 있을 지 모르는 책이니, 선뜻 추천하기 어렵다. 다만 이 정도의 평전이 일본 연구자에 의해, 일본어로 씌여졌다는 점에서 일본 인문학의 수준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새삼 부러움을 금할 수 없다. 



* 혹시 '아마추어'라는 단어에 대해 오해가 있을까 덧붙인다. 여기에서 아마추어라는 단어를 쓴 것은 그가 학교에 적을 두지 않고 자유로운 연구활동을 했다는 데에 강조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다시 읽어보니, 아마추어가 자칫 바르부르크의 학문 세계를 낮게 평가하는 듯 하기도 하다. 하지만 바르부르크는 서양미술사에 있어 도상학적 연구의 시초를 닦았으며 이후 그의 영향을 받은 일군의 미술사학자들을 바르부르크 학파라고도 한다. 여기에는 파노프스키(Erwin Panofsky), 작슬(Fritz Saxl), 빈트(E.Wind) 등이 있다.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바르부르크 연구소의 네 번째 소장을 지냈던 이는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에른스트 곰브리치였다. 다소 비약하자면, 20세기 거의 대부분의 미술사학자들이 아비 바르부르크의 직, 간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학교에 적을 두지 않고 자유로운 연구 활동을 할 수 있었던 아비 바르부르크와 달리 한국에서의 상황은 여의치 않아 보인다. 실은 이를 드러내고 싶어서 나는 의도적으로 '아마추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 지도 모르겠다. 특히 인문학의 경우는 그 상황이 더 열악해지는 듯 싶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프로라는 의식으로 인한 지적 불성실함보다는 아마추어적인 지적 열망이 더 필요한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뭐, 해답없는 것이기도 하지만. ... ㅡ_ㅡ;; 





- 곰브리치가 쓴 아비 바르부르크 평전. 


* 바르부르크 연구소 : http://warburg.sas.ac.uk/home/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4

  • 제가 요새.... 지하련님 추천 서적 읽다가 그지가 될판이긴한데 ㅋㅋㅋ 이 책도 땡기네여

  • 라보엠 2015.07.29 20:39 신고

    일본인 학자의 시각으로 본 바르부르크의 생애도 궁금하군요. 제가 지내는 곳에선 이 책을 구하기가 쉽지 않으니 먼저 곰브리치가 쓴 책을 찾아봐야겠습니다.

    • 저자는 곰브리치가 쓴 평전이 지니는 약점을 이야기하며 그 부분부터 서술해 내갑니다. 그래서 두 권 다 읽으면 좋을 듯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난 다음 므네모시네 관련 책들을 찾아보았습니다. 일본에선 므네모시네 전시를 했더라고요. 이런 걸 보면 일본이라는 나라의 저력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곰브리치의 평전을 위시리스트에 올려놓았으나, 언제 읽게 될지.. ㅎㅎ






http://www.metmuseum.org/collection/metcollects/feature 

http://www.metmuseum.org/collection/objects?pkgids=279&feature=nineteenth-century-exhibition-pistols 



사진 이미지를 확대해서 보면, 그 장식의 정교함에 놀라게 된다. 그런데 이는 장식품이 아니라 실제 권총이다.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서 전시 중인데, ~ 왜 요즘에는 이런 물건이 나오지 않는 걸까? 인건비 때문일까. 


하긴 이 권총을 주문하여 가지고 있었던 사람의 재력이 어마어마했을 것이라는 건 상상하고도 남을 일이긴 하지만. 





Roses

Vincent van Gogh (Dutch, 1853–1890)

1890



반 고흐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내 가슴을 후벼파는 듯하다(했다). 그의 정신적 고통, 혼란이 고스란히 페인팅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종종, 반 고흐를 좋아하세요? 얼마나 좋아하세요?라고 묻곤, 아, 반 고흐 시대였다면 '당신은 정신병자예요'라고 말한다. 너무 잔인한가. 하지만 알 건 알아야 하니까.


이것도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있는 작품이다. 


두 사진 이미지 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옮겨왔다. 

https://www.facebook.com/metmuseum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큐비즘에 대한 세잔의 영향에 대해 자세히 알아본 바가 없었다. 현대미술에 대한 세잔의 영향은 너무 거대하기 때문에, 큐비즘 뿐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현대 미술가들은 세잔의 후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아마 내가 현대 미술에 대한 긴 글을 쓴다면, 뒤샹과 세잔만으로 글의 초반을 장식할 것이다. 뒤샹은 현대 미술을 난장판으로 만든 이라면, 세잔은 현대 미술을 견고하게 만든 이다. 과거와 단절하고 현대 미술이 끊임없는 혁신을 감행하게 된 계기는 뒤샹이고, 현대 미술이 과거의 역사와 단절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지며 현대 미술 또한 서양 미술사의 한 챕터임을 끊임없이 환기시키에 한 이가 있다면 그가 바로 세잔이 될 것이다. 


그는 현대 문화의 내향성을 최초로 들어내 보이며, 우리 마음 속의 기하학에 주목했다. 고전적 현대, 혹은 모더니즘을 새로운 고전주의라고 불리게 만든 예술가이다. 그리스 고전주의, 르네상스 고전주의가 외부에 존재하는 기하학을 찾았다면, 세잔은 우리가 본질적으로 기하학적임을 드러냈다. 


큐비즘은 세잔의 직접적 영향 속에서 기하학주의를 전면에 드러낸다. 세잔 이후 모더니즘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기하학주의로 예술을 지배한다. 아마 연구자들은 프랑스의 누보 로망이라든가, 전후 실존주의 문학이라 이후의 문학들 속에서도 기하학주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아래 피카소와 세잔의 작품을 한 번 비교해보라. 얼마나 닮아 있는지. 

(나에게 여유가 된다면, 이와 비슷한 음악과 문학 작품을 찾아 나열해볼 수 있을 텐데.. 아직 그럴 여유가 없구나.) 



Pablo Picasso, Bread and dish with fruits on the table, 1909, oil on canvas, 164 x 132.5cm, Kunstmuseum, Basel 





Paul Cezanne, Still Life, oil on canvas, 60*73cm, 1890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서양미술사 철학으로 읽기

조중걸저 | 한권의책 | 2013.03.04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몬드리안의 <구성>은 이러한 이념의 회화적 대응물이다. 거기에는 어떠한 종류의 재현적 요소도 없다. 그것은 서로 단지 네모들의 집합일 뿐이다. 세계는 결국 그와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우리의 추상적 창조물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이렇게 되어 모방으로써의 예술은 완전히 종말을 고한다. 이제 창조로써의 예술만이 남게 되었다.(307쪽) 



이렇게, 묵시록적으로 끝나는 이 책은 단순히 서양미술사에 대한 소개나 이해로만 머물지 않는다. 하나의 양식, 하나의 작품 속에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많은 것들이 숨겨져 있다. 그리고 그것은 도상학적 해석으로만 이해되지 않는다. 예술(혹은 예술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온전히 그 시대로 돌아갈 필요가 있고, 그 시대의 생각, 사고, 감정, 웃음과 눈물을 편견없이 받아들여야만 한다. 이 책이 때로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가 그 시대로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기 때문이고, 그 시대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대부분이 스스로의 마음을 어루만지지도 못하는데, 어찌 과거로 돌아가 그 시대 사람의 마음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예술은 그렇게, 옛날이나 지금이나 우리와는 다소 떨어진 어느 자리 쯤에 위치해 있고 지금의 예술가들이 변방에 있듯이(혹은 소수의 지지 속에서) 옛날에도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예술은 나와는, 우리와는 참 멀리 있는 듯 느끼기도 한다.


이런 측면에서 이 책은 서양 미술의 역사에 대한 폭넓고 깊이 있는 이해를 줄 수 있는 몇 되지 않는 책들 중의 한 권이 될 것이다. 그것도 한국을 떠나, 세계적으로.


이 책에 대한 서평은 굳이 필요없다. 그냥 사서 읽으면 된다. 비단 예술에 관심있는 이뿐만 아니라 인문학에 관심있는 이들 모두에게 추천한다.



함수의 도입과 바로크baroque 예술의 발생은 필연적인 관계를 맺는다. 함수는 이제 근대 세계에 있어서 중시되기 시작한 운동법칙, 곧 인과율의 수학적 표현이었다. 바로크 예술가들은 이러한 함수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고자 노력한 것이다. 따라서 바로크 예술의 역동성과 X축의 독립변수의 연속적 변화에 따른 종속변수의 운동법칙은 같은 것이다. 이것은 카라바조Caravaggio의 그림 몇 점만 보아도 금방 확인되는 사실이다. 

형이상학적 해명이 없는 예술사는 도상학이나 도상학적 연대기밖에는 되지 않는다. 필자는 인간의 정신이 그 이상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형이상학적 해명은 필자의 신념이다. 고딕은 단지 건축적 기법의 문제가 아니며, 다위니즘Dawinism은 하나의 생물학적 가설의 문제만은 아니다. 어떤 심미적이거나 학구적인 업적도 동시대의 세계관에서 자유롭지 않다. 오히려 그것들은 동시대 이념의 선구이거나 반영이다. (서문에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새벽에 잠을 깼다. 메일을 확인하고 앞날에 대한 걱정을 잠시 했다. 나이가 들수록 걱정만 늘어난다. 이 시대 탓인가, 아니면 나이가 들면 원래 그런 건가, 내가 유독 그런 건가, 이런 잡념들이 머리를 떠나지 않아, 잡은 책이 조중걸의 <<서양미술사 철학으로 읽기>>다. 나에겐 일종의 복습이고 반복이 되겠지만, 돌이켜보니, 서양미술의 역사에 빠져 공부하던 시절이 행복했음을 깨닫는다. 



서양미술사 철학으로 읽기

조중걸저 | 한권의책 | 2013.03.04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아리스토텔레스가 군사전문가 테미스토클레스Themistocles를 '불구'라고 조롱하면서 전인적 인간을 이상으로 삼고, 신학자들과 과학자들이 다윈Charles Robert Darwin과 헉슬리Thomas Henry Huxley에게 야유와 경멸을 퍼부어대고, 현대의 강단 철학자들이 감상적이고 우아한 어구를 인용하며 학생들을 헛된 이념 속에 가둬두려 하는 것은 모두 그들이 기득권자이기 때문이고 또 자신들의 기득권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256쪽) 




몬드리안의 <구성>은 이러한 이념의 회화적 대응물이다. 거기에는 어떠한 종류의 재현적 요소도 없다. 그것은 단지 서로 다른 네모들의 집합일 뿐이다. 세계는 결국 그와 같은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추상적 창조물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이렇게 되어 모방으로써의 예술은 완전히 종말을 고한다. 이제 창조로써의 예술만이 남게 되었다. (307쪽) 




결국 '언어는 존재의 집'(하이데거)이고, '언어는 세계를 비추는 거울'(비트겐슈타인)이니, 추상적 기호 이외에 남는 건 없었다. 사랑도 그랬고, 그녀도 그랬던 셈이다. 그래서 보드리야르는 '시뮬라크르'가 실재를 압도할 것이라고 여겼던 것일까. 


어쩌면 내가 지금 진짜라고 믿는 것들은 다 시뮬라크르인지도 모르겠다. 실은 내가 나비였고, 인간이 된 꿈을 꾸는 것일게다. 정말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오늘의 미술

브랜든 테일러 지음, 송기매 옮김, 예경, 2002

 


 

1970년대 이후의 현대 미술에 대한 책이다. 하지만 너무 많은 화가가 나오고 너무 많은 용어가 나온다. 당연, 이 책의 결론은 "혼란스러움"이다. 그러나 이를 '혼란'으로 볼 수도, '모색'으로 볼 수도 있다. 

 

모더니즘의 대안, 회화와 정치, 형식의 도난, 미술관 속의 미술, 정체성 이야기 등으로 구성된 이 책은 현대 예술가들의 다양한 실험과 고민들을 설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편견없는 시각에서 서술하고자 하는 저자의 이러한 노력은 이 책이 다소 밋밋하게 읽히는 데에 일조를 하고 있다.

 

2004년 문학동네 겨울호에서 가라타니 고진이 '문학'에 대해 다소 고전적인 발언을 한 강연 원고가 실려 지식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의 말, 문학은 실천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지만, 그것이 이상하고 낯선 말처럼 느껴지는 데에는 환상을 자극하고 현실을 뒤로 숨기려는 대중 매체의 영향이 큰 듯 보인다. 그런 점에서 문학은 현대 미술에 비해 한참 뒤쳐져 있다. (가라타니 고진의 언급은 별도의 책으로 번역, 출판되었다.)

 

다니엘 뷔렝은 1971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중앙에 두 조각으로 이루어진 줄 무늬 그림(아크릴,천)을 걸어놓았다. 그리고 전시 도중 미술관 측에 의해 철거당했다. 뷔렝은 '미술관 중앙에 걸려 있는 작품은 자기 도취적인 건축물 속에 모든 것을 종속시키려는, 건물 속에 감춰진 은밀한 기능을 여지없이 폭로한다'라고 말했다.



다니엘 뷔렌, <내부(구겐하임 미술관 중앙)>, 1971, 천에 아크릴


 

미술관이라는 공간이 억압적인 기구로서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1970년대는 시작한다. 후기산업사회라는 시대 속에서. 그리고 이 책은 정체성의 문제를 마지막 챕터로 소개한다. 1992년 에이즈로 죽은 데이비드 보냐로비치는 동성애에 일련의 작품들을 제작한다. 

 



Fuck You Faggot Fucker

David Wojnarowicz, 1984.

Black-and-white photographs, acrylic, and collage on masonite

48” x 48”.

Collection of Barry Blinderman, Normal, Illinois.



Untitled

David Wojnarowicz, 1992

실버 프린트에 실크스크린

4개의 에디션, 96.5*66cm 



책에 실려 있는 <무제>(1992년도 작)라는 작품은 실버 프린트에 실크스크린으로 제작되었으며 작품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때로 나는 사람들이 내가 어디에 있는지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미워하게 된다. 나는 텅 비어서, 완전하게 비어버렸다. 그래서 사람들이 보는 것은 모두 시각적 형태, 나의 팔과 다리, 내 얼굴, 내 키와 내 자세, 그리고 내 목구멍에서 올라오는 목소리이다. 그러나 나는 너무 심하게 비어 있다. 정확히 1년 전의 나의 모습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 작품을 발표한 그 해 그는 에이즈로 죽는다.

 

이 책에 실린 대부분의 작품들은 '정치적'이다. 어딘가 뒤틀려있고 불만이 많으며 호소할 대상이 사라진 시대의 호소의 몸짓들을 보여준다. 실린 작품들을 보기 위해서라도 이 책을 구입할 필요가 있겠지만, 책을 읽고 얼마나 공감하게 될 것인가는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다. 


* * 


2014년에 이 책을 다시 꺼내 살펴본다는 것은 참 흥미롭다. 가령 이런 작품. 



Boyd Webb

<Nourish>, 1984

1.5 * 1.2m, 단색사진, 사우스 햄프턴 미술관 


보이드 웹의 이 사진은 고래의 젖꼭지를 빨고 있는 남자를 보여주고 있다. 책의 설명에는 '고래의 피부는 낡은 고무로 된 모형이고 젖꼭지는 인디언 채소(?)이다'라고 서술되어 있다. 



* * 


그리고 에이즈가 지금도 사회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언론에서, 지면에서 사라지자 마치 그 문제가 사라진 것처럼 여겨진다는 점은 흥미롭기만 하다. 


데이비드 보냐로비치의 작품은 아래 주소에서 볼 수 있다. 

https://www.visualaids.org/artists/detail/david-wojnarowicz



* 본 리뷰는 2004년 이 책을 읽고 쓴 글에다, 2014년에 덧붙였다. 그 때 당시에는 도판들을 인터넷으로 구할 수 없었는데, 이번에 찾아보니 상당히 많이 나온다. 이럴 때 격세지감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되는가 싶다. 




오늘의미술

브랜든테일러저 | 송기매역 | 예경 | 2002.01.30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2

  • 흥미로운책이네요!^^

    • 1990년대까지만 나와 약간 아쉽긴 하지만, 그리고 모르는 작가들 이름이 수두룩한 탓에 다소 진도가 느리긴 하지만, 옆에 태블릿 PC나 노트북 놔두고 검색해가면서 흥미로운 작가들이 나왔을 때, 구글에서 관련 작품들 보며 읽으면 좋습니다. ~

바티칸 박물관 전 Musei Vaticani - 르네상스의 천재화가들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2012. 12. 08 - 2013. 03. 31 




대체로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기획 전시는 실망스럽다. 일반에게 잘 알려진 대중적인 소재- 인상주의나 바로크, 르네상스 등과 같은 단어가 들어가는 - 로 진행되는 기획 전시의 대부분은 복제화임을 밝히지 않는 작품들과 해외 미술관에서 대여하기 쉬운 유명 작가의 평범한 작품들로만 구성되고, 떠들썩한 매스미디어 홍보와 강남이라는 지리적 장점을 살린다. 


그러나 이는 미술 전문가의 입장일 뿐, 일반 대중의 입장은 아닐 것이다.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모든 전시를 본 것이 아니기에 전시를 보러가지 말라는 의미는 더더욱 아니다. 다만 좀 더 좋은 전시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상업적인 전시로만 흐르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하는 말이다. (혼잣말: 그런데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몇몇 전시들은 너무 형편없어!!) 


2012년의 한국 사람이 15세기 경 이탈리아 르네상스 작품을 보고 감동받는다면, 그건 한 마디로 오버다. 우리의 마음은 몇 세기를 횡단하며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을, 감정을 이해할 수 없다. 심지어 예술가의 마음을. 실은 현대 예술가의 마음도 잘 알지 못하면서 15세기 이탈리아 예술가와 그들의 작품을 보고 감동받았다고 한다면, 참으로 난감하다. 


다만 감동받기 위해 적절한 자기 기만 - ‘나는 15세기 르네상스 사람이야’ - 과 15세기 이탈리아 사람들의 일상생활, 그리고 그 당시의 철학이나 문학 등 시대상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런 전시를 보러 가는 목적은 예술 작품을 보고 즐기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전반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활동의 일환으로 수행되어야만 한다. 이렇게 적긴 하나,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이 전시는 전체적으로 실망스러웠으나,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 위안이 되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역시 오래된 대리석 건물 안에서 봐야 제 맛이다. 실제로는 우리 눈 높이가 아니라 보다 높은 곳에서 우러러 보게끔 구성되어야 한다.


프라 안젤리코의 작품은 르네상스 세밀화가 어떤 작품인가를 알게 해준다. 그의 화사한 색채와 정교한 표현은 르네상스 시대의 건강한 신앙심이 만드는 위대한 작품이 어떤 것인가를 느끼게 한다.  




Fra Angelico, 

The Annunciation, the interior reproduces that of the cell in which it is located.

1437-1446, fresco, Museo San Marco

출처: http://commons.wikimedia.org/



복자(Beato) 안젤리코라는 별명도 지니고 있는 구이도 디 피에트로는 예술과 도덕 자질이 빼어났고, 도미니크 수도원에 들어가 조반니 수사라는 이름을 받았으며, 수도원에서 세밀화나 그림을 그리는 데 헌신했다. "그리스도의 작품을 만드는 사람은 언제나 그리스도와 함께 머물러야 한다"는 신념으로 한평생 성화를 그린 천사 같은 수도자를 사람들은 '프라 안젤리코'(천사와 같은 수사)라고 불렀고 교황 요한 바오르 2세는 그를 시복하고, 1984년 카톨리 예술가들의 수호자로 선포했다. 하얀 장미를 들고 있는 인자한 성모와 천진하기 그지 없는 아기 예술의 모습. 성인들과 천사들의 선한 표정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성모와 아기 예수>는 프라 안젤리코의 혼과 영성이 깃든 걸작 가운데 하나다. (전시 설명 중에서) 




Fra Angelico, Madonna With Angels And The Saints Dominic And Catherine, C 1437 Tempera On Panel, 23 X 18 Cm Pinacoteca Vaticana, Vaticano, Rome (전시 작품)

출처: http://www.flickr.com/photos/fabien-moulin/4152765254/ 




젠틸레 다 파브리아노의 이 목판에는 바람에 잔뜩 부풀어 오른 하얀 돛단배가 폭풍에 휩싸인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어떤 선원들은 배를 가볍게 하려고 물을 퍼내고 있고, 한 사람은 돛대에 매달려 있으며, 또 한 사람은 기도하듯 손을 모아 하늘을 우러르며 도움을 청하고 있다. 위에서는 성 니콜라스가 구해주려고 나타난다. 성 니콜라스는 3세기와 4세기 사이에 소아시아에서 살았고 리키라 지방 미라(오늘날의 터키)의 주교였다. 수많은 기적을 행했다는 이 성인은 어린이들과 가난한 이들과 선원들의 수호자로 여겨져 왔다. 성인의 무덤이 있었던 곳에서 시작된 성인 공경 신심은 비잔틴 세계에 퍼져나갔고, 그 후 서방에 이르기까지 큰 공경을 받았다.이탈리아, 독일, 북아메리카 민간 전통에 등장하는 산타클로스라는 착한 인물은 성 니콜라스에게 영감을 받은 것으로, 이제는 그리스도교 세상 밖에도 알려져 성탄절이면 어린이들이 선물과 과자를 기다리며 양말을 걸어 두기도 한다. (전시 설명 중에서) 



난파하는 배를 구하는 성 니콜라스_젠틸레 다 파브리아노, 1425 (전시작품)

출처: http://www.font.co.kr/typostory/typonews_view.asp?search_idx=29


15세기 초에 활동하던 젠텔레 다 파브리아노(Gentile da Fabriano,1370/80-1437)는  중기 르네상스 작가로 구분할 수 있겠지만, 그러기엔 너무 딱딱하다. 아마 그의 작품들 중 가장 동적이며 유려한 '난파하는 배를 구하는 성 니콜라스'를 제외한다면, 나머지 작품들의 일부분은 고딕적인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보인다. 하나의 작품으로만 보자면, 젠틸레 다 파브리아노는 전성기 르네상스를 예감하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Gentile da Fabriano. The Presentation at the Temple. From the predella of the alterpiece in the Strozzi Chapel at the Church of Santa Trinita in Florence. Tempera on wood. Louvre, Paris, France.



그리고 채 100년도 지나기 전에 라파엘로의 작품들을 본다면, 예술에 있어서의 혁신이 어떤 것인가를 알게 된다. 미술사에 매혹되는 건 이런 비약적 발전의 원동력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될 때이다. 갑자기 고딕에서 르네상스로 갈 수 없다. 다만 둑이 무너지듯이 어떤 물결이 모든 것들을 집어삼키며 눈에 띄는 변화를 만들 순 있었을 것이다. 젠틸레 다 파브리아노에서 라파엘로 사이에는 이러한 광폭한 물결이 숨겨져 있다.  그리고 후대사가들은 작은 범선의 부풀어 오른 하얀 돛의 자연스러움에서 앞으로 전개될 예술 양식 상의 변화를 짐작할 수 있었다고 추정할 뿐이다. 




Raffaello Sanzio, Theological Virtues1507

oil on panel, Height: 16 cm (6.3 in). Width: 44 cm (17.3 in). (each) (일부 전시)

출처: http://commons.wikimedia.org/




오래 전에 본 전시 리뷰를 새삼스럽게 올리다 보니, 르네상스 작품들을 보지 않은 지도 꽤 되었음을 깨닫는다. 저녁에는 몇 년만에 르네상스 화집을 봐야겠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미의 기준은 바뀌고 미의 대상도 바뀐다. 미소년에 대한 염모는, 어쩌면 현재 진행형일지도 모른다. 18세기 후반, 시대는 로코코로 향하고 티에폴로는 바로크적 몸짓 속에 로코코적 염원을 담아낸다. 동성애적 갈망이 화폭에 담긴다. 칼로카가티아(Kalokagathia), 즉 선미의식은 이런 것이 아닐까. 선한 것이 아름다운 것. 그래서 고대에는 여성의 아름다움보다 남성의 아름다움이 더 추앙받았으며, 이는 근대에까지 이어진다.  



(요즘은 미술에 대해 관심을 가질 시간이 없는데, 예전 싸이월드에 올린 글들을 이렇게 옮긴다. 업무용으로 네이트온을 사용하다 보니, 쪽지로 예전에 올린 글들을 알려주고, 이를 다시 블로그에 올린다.) 





2003년 12월 3일에 쓰다.






The Death of Hyacinth

1752-53

Oil on canvas, 287 x 235 cm

Thyssen-Bornemisza Collection, Madrid



18세기 중엽의 지오바니 바티스타 티에폴로의 작품이다. 시기적으로 로코코 시대에 속해 있으나, 프랑스 지역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후기 바로크로 분류될 수 있겠다. 뭐, 후기 바로크가 로코코이기도 하니. 이 구분은 좀 애매한 감이 없지 않다. 


여하튼 이 작품은 아폴로와 히야신스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아폴로와 아름다운 소년인 히야신스가 원반 놀이를 하다가 히야신스가 그만 원반에 맞아 그 생명을 잃어버리는 장면을 그려내고 있는데, 저 누워있는 히야신스의 몸짓이 예사롭지 않다. 


'에로틱'이라는 표현보다 '농염하다'라는 표현이 더 와닿는 듯하다. 얼마 전에 르누와르의 <Young Boy with a Cat>을 올렸는데, 다들 미소년에 대한 관심들이 있는 듯해, 미소년 시리즈로 작품을 하나 더 올린다. 


요즘에도 미소년에 대한 관심은 여전하다. 일명 '동성애' 그러니 과거의 일은 아닌 셈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르느와르의 초기 작품들은 정말 매력적이다. 그가 배워왔던 페인팅과 앞으로 나아갈 페인팅이 서로 섞이고, 작품을 통해 성취하고 하는 젊은 열망들이 색채로 뿜어져 나온다고 할까. 한 때 '젊음'에 대한 평문을 쓰고 싶었는데, ... 지금이라면 가능할까. 오랜만에 르느와르 작품들을 찾아 봐야겠다. 





-- 

2003년 11월 28일에 쓴 글. 






Young Boy with a Cat

1868-69

Oil on canvas

43 3/4 x 26 1/4 in (124 x 67 cm)

Musee d'Orsay, Paris 



이 그림을 보면서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를 떠올린 이유는 뭘까. 약간 신비스러워 보이는 이 작품은 르누와르의 초기 작품으로 고양이를 스다듬는 소년의 뒷모습을 담고 있다. 앞의 꽃무늬 천이나 고양이의 처리는 무척 마음에 든다. 그리고 소년의 누드는 무척 이국적이면서 애로틱하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2

  • 아름답네요..카프카라니,.. 공감입니다. 뭔가호밀밭의파수꾼이 되기전모습이랄까요?^^

    • 그 때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를 읽고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잡지에 글 하나를 썼고요. 그 이후로 하루키를 손에 든 적은 없네요. ㅋ. ~ 호밀밭의 파수꾼은 ... 뭔가 사고 치는 이미지가 떠올라요. 파수꾼 되기 전이라면 ... ㅎㅎ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현대예술 : 형이상학적 해명 - 10점
조중걸 지음/지혜정원




현대예술 : 형이상학적 해명 

조중걸(지음), 지혜정원 




읽고 난 다음 서평을 쓰지 못하는 책들이 있다. 쓰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책에 대한 소개 대신 무조건 '읽어라'라고 하는 편이 낫고, 몇 문장의 인용은 도리오 책에 대한 누(累)가 되어 인용하지 않는 것보다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서평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에 대한 시도이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글이란 서문 일부의 인용 정도가 되지 않을까? 



언어학, 인류학, 기호학 등의 연구에 매달렸던 많은 사람들이 나름의 통찰에 준해 현대의 형성에 공헌했다. 그러나 이것들이 현대라는 전적으로 새로운 세계를 형이상학적으로 설명하지는 못한다. 그것들 역시도 현대의 한 현상일 따름이다. 이 책은 이러한 성취의 이면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형이상학적 세계관을 포착하려는 시도이다. 따라서 이 연구는 탐구의 탐구이며, 설명의 설명이다. 독특하고 때때로 도발적으로 느껴지는 낯선 현대 예술은 이러한 토대 위에서만 포괄적으로 설명된다. 궁극적인 도전에 의해서만 현대예술과 그 예술가들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다. 20세기의 새로운 언어학이나 분석철학이 현대를 설명하기보다는 현대가 오히려 새로운 학문들을 해명한다. 현대의 저변을 형성하는 형이상학에 대한 고찰만이 언어학이나 기호학의 본질적 의미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현대예술은 언어학이나 기호학과 병존한다. 모두가 현대의 형이상학 위에 기초한다. 모든 것은 물결 위의 포말이다. 하상엔 굴곡진 형이상학이 있다. 

현대에 시도된 다채로운 예술적 성취들은 당혹과 분노, 경멸과 외면의 대상이기도 했다. 현대예술은 감상자들을 소외시키며 발생했다. 사람들은 새로움이 가져다주는 이익에보다는 손해와 결여와 책임에 훨씬 민감하다. 과거는 금의 시대이고 현대는 타락한 시대이다. 현대는 그러나 모든 시대가 그렇듯이 가치중립적이다. 다른 어떤 시대, 다른 어떤 생활 양식이 현대에 비해 더 많은 가치와 미덕을 지닌 것도 아니었다. 현대에 이르러 더 많은 자율성과 독립성에 대한 요구가 증가한 만큼 증가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한 공평한 인식이 현대에 대한 이해를 높일 것이다. 혐오는 때때로 몰이해와 무지가 동기이다. 파라켈수스가 말한 바 "지식이 사랑을 부른다"

현대예술은 야유와 냉소를 동반한다. 진정한 예술은 감상적 위안을 거부한다. 깊이와 진실은 언제나 자기 부정을 전제하듯이 현대의 유의미한 성취는 전통과의 완전한 단절에서 출발한다. 전현대성에 젖은 시대착오적 센티멘탈리스트들이 현대에 대해 느끼는 거부감은 그러므로 이들의 자기부정의 부정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자기만족과 자기위안보다 더 역겨운 것도 없다. (8쪽 - 10쪽) 



아마 이 책을 읽을 독자들은 경험하게 되는 바, 어렵고 난해하게 여겨지는 문장들을 읽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고 심지어 감동까지 받을 수 있다는 것에 놀라게 될 것이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현대예술을 알게 되고, 철학 전반에 대해서, 나 자신과 우리 시대에 대한 깊이있는 공감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독서의 놀라움을 전해준다. 고작 책 한 권인데... 하지만 어떤 책 한 권은 어떤 이에게는 그동안 알고 있었던 모든 것들을 송두리째 뒤흔들어놓기도 한다. 바로 이 책, <<현대예술 - 형이상학적 해명>>처럼. 


그리고 이 책은 내가 아는 한에 있어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가장 정확하고 깊은 이해를 도울 수 있다. 실제 포스트모더니즘 작품, 특히 서사문학에서의 사례들 - 리처드 브라우티건, 움베르토 에코, 존 파울즈,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도널드 바셀미, 저지 코진스키, 마르케스 등에 이르는 문학작품들에 대한 이해와 분석은 한국어로 씌여진 바 최고의 책이다. 


강력하게 추천하는 바, 일독을 권한다. 아마 책을 펼치는 순간, 덮지 못할 것이며, 자연스럽게 두 세 번 읽게 되겠지만. 



책의 속 표지에 적힌 문구. '불안 속의 영혼들에게'. ... 어쩌면 이 책만큼 절망에 빠진 현대의 우리들에게 위안이 될만한 책이 또 어디 있을까.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2



미시간에 있는 로렌스 공과대학의 컴퓨터 과학자인 Lior Shamir와 Jane Tarakhovsky는 최근 흥미로운 연구를 진행했다. 컴퓨터는 예술을 이해할 수 있는가?(can machines understand art?) 그리고 연구 결과, 가능하다는 것. 


마치 예술사가들이 예술 작품의 연관 관계를 찾고 분석하고 평가하듯이 컴퓨터도 특정 작품의 연결 고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For instance, the computer automatically placed the High Renaissance artists Raphael, Leonardo Da Vinci, and Michelangelo very close to each other. The Baroque painters Vermeer, Rubens and Rembrandt were also clustered together by the algorithm, showing that the computer automatically identified that these painters share similar artistic styles.(예를 들어, 컴퓨터는 전성기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인 라파엘, 레오나르도 다빈치 및 미켈란젤로를 자동으로 서로 매우 가깝게 위치시켰다. 바로크 시대의 화가인 베르메르, 루벤스 및 렘브란트도 알고리즘에 의해서 함께 묶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화가들이 유사한 예술적 스타일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컴퓨터가 자동으로 감지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관련 내용은 

http://www.sciencedaily.com/releases/2012/09/120926094546.htm 

- (국문번역기사http://mirian.kisti.re.kr/global/global_v.jsp?cn=GTB2012090501&service_code=03&left_num=2&goobun=C 



그런데 내가 이 기사를 주목하게 된 것은 표현 양식 간의 연관성을 분석하고 카테고라이징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예술적 감동'에 대해서도 이런 식의 분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데 있다. 즉 특정 유형의 사람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작품들을 모을 수 있을 것이며, 어떤 표현 양식은 특정 지역, 특정 연대의 사람들이 감동을 받지 않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감동받지 않는다거나, 아니면 부르디외 식으로 문화자본이나 아비튀스를 바탕으로 사람들을 나누어 이들이 공유한 예술 양식의 특징을 보다 면밀하게 분석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술적 감동마저도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만들어진 작품에 의해 유발되는 시기까지 진전된다면? 그러면 예술가들은 사라지고 예술가 컴퓨터만 남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될 것같지 않은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푸생과 바흐만큼 어울리는 짝도 없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한 명은 고전적 바로크 예술가이고 다른 한 명은 바로크 음악의 대가이다. 연주되는 음악 밑으로 깔리는 엄격한 작법은 마치 푸생의 고전적 태도를 엿보게 한다고 할까. 라이프니츠의 기하학 - 바흐의 변주 - 푸생의 고전주의를 연결지어 공부하면 참 재미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럴 기회는 없었다. 


책이나 잡지를 읽으면서 메모하는 습관을 가졌으나, 정리할 시간을 가지지 못한 채, 메모가 여기저기 쌓여 있었다. 그래서 당분간 그 메모들을 정리할까 하는데, 오늘 발견한 것은 칸딘스키와 파울 클레의 이야기다. 


추상표현주의 대가 칸딘스키. 그는 현대적 의미에서의 '회화성'를 극한까지 밀고 나가 색채의 율동(리듬과 운동)으로만 구성된 일련의 작품들을 완성했다. 특히 음악에서 영감을 얻는 그의 작품들은 20세기 초 추상 미술의 아름다움을 화려하게 그려내고 있다. 




Composition IV 

1913년도 작



"색은 영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힘이다. 색은 건반이고, 눈은 망치이며, 영혼은 끈이 달린 피아노다. 예술가는 연주하는 손으로, 하나의 키 또는 다른 키를 두들겨서 영혼을 떨리게 만든다."

- 칸딘스키 





파울 클레, 또한 음악에서 깊은 영감을 얻었고 공공연히 음악과 미술의 연관성, 그리고 회화가 가지는 음악성, 리듬, 선율을 이야기했지만, 사람들이 얼마나 그의 말에 귀 기울였는지는 모르겠다. 도리어 그의 의도와는 관련없이 파울 클레는 종종 색채, 색채 구성이 가지는 기하학적 형태가 더 많이 언급되곤 한다. 


실은 음악만큼 기하학적인 구조물도 없을 텐데 말이다. 중세 시대 내내 미술은 천대 받았지만, 음악은 천상의 구조를 그대로 현실 세계로 옮겨놓은 기하학적 유비로서 인정받았다는 걸 떠올린다면, 우리는 쉽게 파울 클레를 통해 현대 음악을 발견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Red Balloon, 1922, Oil on muslin primed with chalk, 31.8 x 31.1 cm. The Sol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



"나는 이 세상에서 이해될 수 없는 존재다. 내가 편안하게 머무는 곳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 사이에 있다. 대개의 경우 창조의 핵심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있지만, 아직 충분하다고 할 만큼은 아니다." 

- 파울 클레 




* 도판 출처: 위키피디아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노트를 정리하다가 메모 해놓은 것을 옮긴다. 수지 개블릭의 당연한, 하지만 종종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표현에 대한 지적이다. 보스와 초현실주의를 연결짓는 것은 설명의 용이성 탓이지, 실제로 보스가 초현실주의와 관련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오해하기에 이른 것이다. 보스의 작품은 지극히 후기-중세적이고 고딕적이다. 


신의 세계가 가졌던 호소력이 이른 아침의 안개처럼 정오를 향해가면서 사라져갈 때, 그 안개를 못내 아쉬워하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보스의 작품은 먼저 중세말, 근대초의 심리적 방어를 위한 공포적 상상력이 숨겨져 있다. 


우리는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을 경우, 자신의 의지를 강제할 외부의 제어 수단을 바라기 마련이다. 중세 사람들에게 신의 세계란 이 세상의 시작과 끝이었고, 보스는 그 세계가 존재함을 시각적으로 그려냈다. 이 점에서 수지 개블릭의 '종교적 사실주의자'라는 표현은 매우 타당하다.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와 초현실주의를 같이 연결시키는 것이 너무 당연하게 간주되어 와서 그러한 비교를 하는 것은 매우 단순하고 그릇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보스는 동시대 사람들이 괴물에 대하여 갖고 있던 관념을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그의 그림이 없었다면 이 관념은 중세의 '불가사의'로 전해졌을 수도 있다. 오늘날 정의, 원자력, 산업 등과 같은 가장 '최신'이거나 혹은 전통적인 개념과 느낌을 '표현하는' 사회적 사실주의자(social realist)'가 존재하듯이 보스도 '종교적 사실주의자(religious realist)'였다. 
- 수지 개블릭, <<르네 마그리트>>, 14쪽 (천수원 옮김, 시공사) 



The Garden of Earthly Delights, Bosch's most widely known triptych, El Prado Museum 

(출처: 위키피디아)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바로크의 꿈 - 1600 ~ 1750년 사이의 건축
프레데릭 다사스(지음), 시공디스커버리총서



“형태(형식)는 그것이 재료 속에 살아 숨쉬지 않는다면, 정신의 관점(추상)에 불과하거나 이해하기 쉽게 기하학으로 표현된 영역에 대한 사변에 지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퍼져 있는 잘못된 생각처럼, 예술은 결코 환상적인 기하학이나 그보다 더 복잡한 위상지리학이 아니다. 예술은 무게와 밀도와 빛과 색채와 연결된 그 무엇이다.”
- 앙리 포시옹, ‘형태들의 삶’, 1939년
 ('앙리 포시용의 형태의 삶'으로 학고재에서 번역 출판되었음)





이 책은 시공디스커버리총서 시리즈들 중에서 제법 어려운, 하지만 바로크에 대해서 그 어느 책보다 충실한 내용을 가진 책이다. 프레데릭 다사스의 ‘바로크의 꿈’은 건축을 중심으로 바로크 양식이 가지는 특성과 지향했던 세계를 풍부한 도판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종종 책의 서술은 딱딱하지만 흥미롭고, 전문적이면서 아름답고 운동감으로 넘쳐 흐르는 바로크 건축에 대해 깊은 이해를 도울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일반 독자가 읽기에는 다소 전문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읽기 쉬운 책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것으로 여겨지는 바로크 양식에 대한 이해가 실은 대부분 피상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음을 안다면, 이 작은 책은 매우 귀중한 역서가 될 것이다.

바로크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여러 오해와 짧은 식견으로 인해, 바로크 양식이 가지는 역동성, 충돌과 열정, 극적인 자연주의가 근대성(modernity)를 기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현대인)과는 너무 멀리 떨어진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아래 인용된 설명처럼 바로크 양식은 먼저 고대와 중세의 본격적인 단절과 극복이라고 할 수 있다. 르네상스가 그 시작이라면.


고대의 유산인 건축의 오더는 무엇보다도 비례 체계라 할 수 있다. (중략) 오더의 비율은 인간 신체의 비율을 반영한다. 오더의 인간 형체는 오더의 미가 지닌 신성하고 절대적인 성격과 특히 오더가 구성하고 있는 건물의 조화를 보증한다. 또한 오더는 장식 체계이기도 하다. 그래서 무한하고 미묘한 변화가 가능하며, 건축가에 따라 그 질이 좌우되는 조각 부분 - 쇠시리 장식 - 에 큰 중요성이 부여되기도 한다. 오더는 운율론에서 보면 12음절 시행의 구조에, 그리고 고전음악의 협화음에서 나타나는 음계법의 체계와 비교할 수 있는 위치를 차지하는 조화와 표현의 체계인 것이다.
- 46쪽 ~ 47쪽



 

17세기 후반부터 오더는 비틀림, 중단된 회전, 늘임, 병렬 등 지나친 변용의 대상이 되었다. 또한 오더에 대한 조작 범위가 체계적으로 연구되면서 오더의 완전성 자체가 의문시되기 시작했다.
- 48쪽




고대 건축의 오더 양식
출처 http://blog.naver.com/archmys/30106190006



출처
http://www.romasegreta.it/scarlo_alle_quattro_fontane.html 
보로미니의 산카를로알레콰트로폰타네 파사드.

[작품설명] 고대 건축에서 오더는 기하학적이며 규범적이었지만, 바로크에서의 오더는 건축의 일부로 들어가며, 도리어 건축 외형에 있어 방해가 되는 것이 되었다. 보로미니의 위 건축물은 바로크 건축의 시작을 알린 건축물들 중의 하나로, 건축물 외벽에 운동성을 표현한 최초의 건축물이기도 하다.




예술 양식의 역사에서 르네상스 - 매너리즘 - 바로크로 이어지지만, 르네상스의 정신을 이은 것은 바로크이다 (마치 르네상스 미술의 철학적 반영이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이듯이). 르네상스와 바로크 사이의 매너리즘은 반-르네상스 운동이며, 후기 중세(고딕)적이며, 종종 반-근대적으로, 후기 근대적(postmodern)으로 해석된다. 이를 다시 이야기하자면, 고대와 중세를 벗어나기 위한 근대인의 운동은 비로소 17세기 바로크 시대에 와서야 그 꽃을 피운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정확하기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 뉴턴의 시대와 일치한다.

바로크 예술가들과 건축가들은 고대의 영향 속에서도 고대와 다른 이상을 열망하였으며, 신의 세계(중세)에서 벗어나 인간의 세계를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건축을 하나의 감각적인 체험으로 만들고자 열망했던 건축가들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원천들인 빛과 공간에 대한 탐구에 지대한 관심을 나타냈다. 그들은 시각적 효과에 중요성을 부여함으로써 다른 수단들을 그에 집중시켰으며, 채색되거나 조각된 장식을 건축과 융합하는 놀랄 만한 대담성을 보여 주었다.
- 75쪽




바이에른의 비스(Wies) 교회
[작품설명] '연극성'은 바로크 전반을 물들이는 하나의 기조였다. 이는 건축 내부에서도 반영되는데, 비스 교회도 여기에 포함된다.



인간의 세계에 충실했던 그들은 감각적 체험을 우위에 둔 시각 세계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바야흐로 경험론 우위의 자연관이 시작된다. 합리론과 경험론의 대립이 바로크 양식의 다양성을 표현한다면, 바로크 이후의 양식들은 경험론의 우위를 공공연히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로코코는 바로크 후기 양식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극적인 효과를 드러내기 위해 인간적 범속함을 채용하기도 하였다. 가령 성적인 표현들.) 

이 책에 담긴 바로크 양식에 대한 충실한 설명은 건축뿐만 아니라 다양한 예술 양식에 대해서도 깊은 이해를 도모할 수 있다는 점에서, 건축에 관심 있는 독자 뿐만 아니라 17세기 서양 예술 전반에 대해 알고 싶은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할 만한 책이다.


마지막으로 책에서 흥미로운 한 부분을 옮긴다. 이는 정원 양식에 대한 것이다. 요리가 예술이듯이 정원도 예술 장르 중의 하나다. 이 점에서 예술의 역사에서 정원도 한 부분을 차지해야겠지만, 시간에 종속된 정원은 오직 현재성만을 드러내는 까닭에 역사적 서술이 어렵다. 아래는 르네상스 이후 정원 양식의 변화를 간단하게 서술하고 있는 부분이다. 특히 프랑스식 정원과 영국식 정원(Picturesque Garden이라고도 한다)의 대비은 언제나 흥미롭다.


르네상스식 정원은 테라스, 동굴, 폭포를 설치할 수 있는 경사진 땅을 선호하며 풍부한 물놀이가 구성되어 있고 녹음이 중요시된다는 특성을 지닌다. 녹음의 아래로는 기하학적으로 정돈된 화단 옆에 놀라움을 선사하는 설치물과 태양을 피할 수 있도록 동굴이 있는 길이 나 있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프랑스 정원은 기복이 별로 없는 토지에 적응해야 한다는 조건과, 그늘이나 시원한 동굴에 관심을 두지 않는 탁 트인 성격으로 인해, 건물을 ‘안뜰과 정원’ 사이에 영지 입구를 설치했다는 점에서 다른 양식과 구별되었다.

풍경화식 정원을 형성하는 근원으로의 회귀는 1720년대에 영국에서 등장하는데, 이러한 흐름은 프랑스식 궁전의 공간과 대립된다. 이것은 지식인의 인본주의적 성찰의 근원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움직임이자 전통적인 정원 양식을 거부하는 정원 형식 상 혁명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새로운 정원의 건축가들은 전세기에 푸생, 로렌 또는 네덜란드의 풍경주의 화가들이 그린 이상적인 풍경 속에서 영감을 얻었다.
- 28쪽 ~ 29쪽







르네상스식 정원
The Villa Lante di Bagnaia

출처: http://www.gardenaesthetics.com/italian.html



프랑스식 정원
출처: http://blog.aladin.co.kr/stella09/501079 (베르사이유 궁 정원)

영국식 정원
출처: http://www.telegraph.co.uk/gardening/4389731/Britains-gardens-A-private-passion-and-a-public-disgrace.html


* 참조할만한 링크: 정원의 역사
http://en.wikipedia.org/wiki/History_of_gardening 
* 시공디스커버리 시리즈들 중 예술 양식이나 예술가에 대한 책은 적극 추천할 만하다. 나머지 시리즈들도 풍부한 도판과 알찬 설명으로 명성이 있지만.
 



[그 외 바로크에 대한 글들]
화려한 바로크 양식, 멜크 베네틱트 수도원 Melk Abbey   http://intempus.tistory.com/1389
귀도 레니(Guido Reni)의 성 세바스찬(St. Sebastian) http://intempus.tistory.com/716
바로크 예술 http://intempus.tistory.com/186
(* 검색에서 '바로크'로 검색하면 그 외 많은 글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로크의 꿈 : 1600-1750년 사이의 건축 - 10점
프레데릭 다사스 지음/시공사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Titian. The Young Englishman. c.1540-1545. Oil on canvas. Palazzo Pitti, Galleria Palatina, Florence, Italy


이 오래된 초상화는 16세기에 제작된 초상화들 중에 가장 뛰어난 것들 중의 하나에 속하리라. 16세기 베네치아 최고의 예술가였던 티치아노는 눈에 보이는 세계 너머 보이지 않는 영혼의 숨결까지 담아내는 듯 보인다. 르네상스 시기, 일군의 화가들의 붓에서 시작된 위대한 초상화 양식들은 새로운 시대의 한 획을 그으며, 20세기까지 이어진다. 양식의 변용과 혁신을 거듭하면서.

초상화 양식의 역사와 변화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고, 아래 초상화를 보자. 이 흥미로운 초상화는 티치아노가 교황 파울루스 3세(재위 1534 - 49)의 손자를 그린 작품이다.



Titian. Portrait of Ranuccio Farnese. 1542. Oil on canvas. The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USA



권세가의 자제라서 그런 걸까. 고종희의 <르네상스의 초상화 또는 인간의 빛과 그늘>에서 한 문장을 인용해본다. "아이의 경력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다. 12세에 기사가 되었고, 베네치아에 거주하면서 어린 나이에 산조반니푸르라리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는가 하면 14세에는 나폴리의 대주교가 되었고, 1년 후인 15세에 추기경에 임명되었다."

황당하기 짝이 없긴 하다. 이 때 교황은 결혼까지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종교 권력이 세속 권력과 한 판 전쟁을 벌이는 시기였던 16세기의 그리스도교는 현대와는 많이 달랐다. (종교, 또는 신앙이라고 하는 것도 일종의 문화적인 양식이므로, 다양한 변화를 겪어 왔다. 따라서 변하지 않는 종교와 신앙이 없다. 무한자의 세계를 유한자가 알 수 없으므로 무한자의 세계란 결국 철부지 같은 유한자들의 입맛에 맞게 편성된 세계에 지나지 않는다. 윌리엄 오캄의 세계가 아직도 호소력을 가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어리석은 신앙인들은 윌리엄 오캄의 극적인 신앙에 대해 그 어떤 감동이나 전율을 느끼지 못하겠지만)

결국 초상화라는 양식은 권력을 가진 자들의 양식으로 시작되었다. 작품의 완성도 후대 사람들은 깊은 감동을 받지만, 정치적인 의도를 가진 프로퍼갠더로서의 기능도 수행하였음을 알게 되었을 때는, 예술 양식의 자율성에 대한 추구라는 것이 지극히 현대적인 태도라는 점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책은 쉽게 읽힌다. 문화일보에 연재하던 글을 책으로 묶어낸 듯하다. 무수한 예술가와 사상가들을 배출한 나라 이탈리아. 책의 서두에서 아래의 문단을 인용해본다.


이탈리아의 문화적 저력은 오랫동안 지속돼온 지방분권의 정치체제에서도 기인한다. 이탈리아가 통일이 된 시점은 1860년대에 불과하다. 로마제국 이후 이탈리아는 독립적인 도시국가로 형성되었다. 이를테면 로마와 그 주변 지역은 교황청에 속해 있었으며, 밀라노는 공작이 지배하던 롬바르디아의 수도였고, 베네치아는 그 자체가 베니치아 공화국이었다. 피렌체는 공화국으로, 때로는 토스카나 공국으로 정치적 옷을 갈아입으며 발전해나갔다. 한편 만토바, 파도바, 우르비노, 시에나, 라벤나와 같은 중소도시들은 각기 독립된 국가로서 혹은 주변국가의 지배를 받으며 성장, 발전, 쇠퇴의 길을 걸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이러한 정치적 상황에서 씌어진 것이다. 도시국가를 통치하던 군주(principe)들은 자신의 궁전을 최고 걸작으로 장식해야 한다는 개념과 안목을 일찍부터 지니고 있어서 당대 최고의 거장들을 초대하여 예술적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해주곤 했다. 정치적 목적으로 시작된 예술 후원이었지만 결국 정치도 사람도 다 가고 지금은 작품만 남아 있으니 인생은 짧고 예술은 영원하다는 말이 틀리지 않다. (9쪽)



이 책은 기행산문집이라기 보다는 이탈리아 여러 도시들에 가면 볼 수 있는 미술 작품에 대한 안내서라고 이해하는 편이 적당할 것이다. 나같은 이에게 이 책은 너무 쉽게 읽히는데, 다른 독자에겐 어떨지 모르겠다. 딱딱한 역사책만 읽다가 가끔 이런 책은 여유를 가질 수 있게 해주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보지 못한 작품의 도판이라도 나오면 매우 흥미로워진다.

학술적인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또한 고종희 교수의 글은 과욕을 부리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잘 이야기해준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몇 개의 도판을 덧붙인다. 책을 읽으면서 기억에 남는 작품들이다. 더 있으나, 이미지를 구하지 못했다.


 http://www.lib-art.com/paints/pilate.html 
틴토레토의 작품이다. '빌라도 앞의 그리스도'인데, 위의 url로 들어가면 이 테마로 그려진 많은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요즘 들어 16세기 이탈리아 회화를 보면, 어딘가 외롭고 쓸쓸해보인다. 위의 그리스도도 그렇다.

 

http://en.wikipedia.org/wiki/Siena_Cathedral

이탈리아에서 고딕 성당을 보기 어렵다. 고딕은 확실히 프랑스로 가야 된다.하지만 이탈리아에서도 볼 만한 고딕 성당이 있다면 시에나 대성당을 들 수 있다. (밀라노 대성당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지) 

 

 

Cristo deriso di Beato Angelico.

Ce ne parla: Gregorio Botta, giornalista

http://www.radio.rai.it/radio3/arcimboldo/quadri/cristo_deriso.htm


베아토 안젤리코(프라 안젤리코)의 작품이다. 눈을 가린 그리스도의 모습이 흥미로웠다. '조롱당하는 그리스도'로 옮기고 있는데, 이 작품이 가지는 도상학적 설명은 나오지 않았다. (찾아보고 다시 언급할 예정임)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우리는 종종 최근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 경향의 작품을 보면서 경탄해 하는 이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이들은 정교하게 제작된 Painting을 곧잘 사진과 비교해가며 대단하다는 표현을 금하지 못합니다. 아직까지도 Painting에 ‘발전’이라는 것이 존재하며 그것은 사진에서 보여지는 바의 ‘사실적(realistic)’인, 그 어떤 것을 향해가는 것이라고 믿는 이들이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인상주의의 등장이 사진술의 등장과 발달 때문이라고 이해하는 이들이 많은 모양입니다. 그리고 이 때 리글이 말하는 바의 ‘예술의욕’을 다시 한 번 되새길 필요성이 생기게 됩니다.


예술의 역사 속에서 ‘진보와 퇴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피카소가 비슷하게 말한 바 있듯이 ‘그 시대는 그 시대에 맞는 표현양식을 찾기 마련’입니다. 리글이 미술사 저술에 있어서 현대적인 기틀이 마련하였고 이후 대부분의 미술사가들이 리글의 영향권 안에 놓이게 되는 이유는 ‘사건의 주체를 인간으로 보지만 더 이상 역사의 흘러가는 목표를 파악하지 않으며 단 그 흐름의 법칙성만을 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즉, 인류의 역사가 어떤 목적점을 향해간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며 단지 역사의 흐름에 대한 법칙을 발견하려고 노력하였으며, 동시에 의미에 대한 문제가 오직 미술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오늘날까지 미술사 저술의 모범으로 인정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리글이 말하는 바 ‘예술의욕’은 무엇일까요? 실은 리글은 그의 여러 저서 속에서 ‘예술의욕’을 확실하게 정의 내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의 <>(* 영어번역본 제목)에서 인용해보겠습니다.(* 참고했던 미술사 서적(<<미술사학의 이해>>(헤르만 바우어 지음, 홍진경 옮김, 시공사)의 번역이 리글이 쓴 저서의 내용과 차이가 있어 제가 다시 번역해보았습니다만 엉망이군요. 그래도 참고한 서적에서 파악할 수 있는 것보다는 많이 이해할 수 있는 듯하여 옮깁니다.)


“그러한 모든 인간의 의욕(Wollen)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자기 만족을 향해 있다(말에 대한 가장 폭넓은 감각 속에서 인간 존재가 외적으로, 내적으로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관계를 맺는 것처럼). 창조적인 예술의욕(Kunstwollen)은 인간과 인간의 감각을 통해 인지하게 되는 대상 사이의 관계를 정리한다(regulate).; 이것은 우리가 항상 사물로부터 형태와 색채를 받아들이는 방식이다(꼭 우리가 시작품 속에서 예술의욕(Kunstwollen)을 통해 그것을 시각화시키듯이). 그럼에도 인간은 (수동적으로) 그의 감각을 통해 한정적으로 인지하는 존재일 뿐만 아니라 (능동적으로) 욕구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인간은 인간의 내적 추동력(국가, 장소, 시대에 의해 변해질 수 있는)에 따라 쉽게 인지되어진 세계를 해석하기를 원한다. 이러한 의욕(Wollen)의 성격은 (용어에 대한 폭넓은 감각 속에서) 주어진 시대(Weltanschauung)에서의 세계에 대한 개념(conception)이 무엇이라고 불려지는가에 따라, 즉 종교, 철학, 과학 뿐만 아니라 보통 지배하는 것이라고 말해지는 하나 이상의 어떤 형태들, 정부, 법률 등에 의해 항상 결정되어진다.”

- Alois Riegl, 중에서(<* The Art of Art History : A Critical Anthology> ed. Donald Preziosi, Oxford University Press, p.174)


이러한 예술 의욕으로부터 한 시대를 특징짓는 양식이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양식의 변화에는 ‘진보와 퇴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즉 이집트의 예술 양식에서 그들이 자연주의적 표현 방식을 몰랐던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또는 비의도적으로’ 사용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리글 이후 뛰어난 미술사가들 한 명으로 인정 받고 있는 한스 제들마이어의 경우에는 리글을 부정적으로 해석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정신사로서의 미술사(Kunstgeschichte als Geistesgeschichte)’라는 개념은 알로이 리글에게 해당되는 것이라기 보다는 막스 드보르작과 한스 제들마이어에게 해당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신사로서의 미술사’라는 개념을 사용한 제들마이어는 알로이 리글의 ‘예술의욕’의 한계를 아래와 같이 정리합니다. 그리고 아래의 주장은 대체로 긍정적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1. 미술은 다른 것으로부터 파생될 수도 또 대체될 수도 없는 인간의 자율적인 표현수단이라는 이론. 실제 리글은 미술을 일종의 ‘수반현상(Epiphanomen)’이라 파악하고 있다.


2. 천부적인 재능, 어느 개인, 혹은 예술가가 제1차적인 주체라고 하는 관찰. 이와 같은 관찰로 리글은 자신의 집단적 의욕이라는 것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3. 인간의 본성과 이성이 통일성과 불변성을 지니고 있다는 가정. 왜냐하면 인간정신은 사실 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4. 미술가는 항상 그대로 남아있는 자연을 꾸며진 것으로 모방하거나 양식화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제들마이어에게 현대미술(Modern Art)는 ‘타락한 예술 작품’이었습니다. 여기에 대해 움베르토 에코는 ‘코키토 인터룹투스(Cogito interruptus)’라는 표현을 써가며 조목조목 따집니다만.


제가 보기에는 제들마이어가 그렇게 주장했던 이유는 미술사에 대한 생각이 남달랐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그는 ‘정신사로서의 미술사’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특정 시대의 미술을 유전학적으로 해석함에 있어서 신과의 관계에서 출발한다고 본다. 따라서 정신사로서의 미술사는 구체적으로 보자면 종교사로서의 미술사로 이해될 수 있다. 정신사로서의 미술사에 놓인 핵심은 ‘숭배사로서의 미술사(Kunstgeschichte als Kultgeschichte)’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신에 대한 관계가 진지해질 때 숭배의 표현이 생기기 때문이다. … ‘정신사로서의 미술사’의 초기 과정에 놓인 특성은 그 방법론이 바로 완성되고 있는 단계에서 멈춘 것이다. ‘정신사로서의 미술사’가 내놓으려 했던 것은 ‘세계관(Weltanshauung)’의 역사로 본 미술사였다. 세계관의 개념은 학문사의 과정에서 일종의 유행어가 되어버렸는데, 이는 그 개념이 매우 포괄적인 의미를 지녔기 때문에 아무 것에나 쉽게 적용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교사로서의 미술사에서 세계관이라는 개념의 비중이 확대되자 그 개념은 곧 종교적 특성 혹은 ‘종교적 사상’의 역사에 주로 적용되기 시작했다.”

- H. Sedlmayr, “Kunstgeschichte als Geistesgeschichte”(1949) (* 헤르만 바우어, <<미술사학의 이해 Kunst-Historik>>, p.125에서 재인용)


이런 식으로 제들마이어는 ‘정신’이 놓였던 자리에 ‘신’을 대체시키기 시작하면서 그의 미술사는 미술신학의 자리로 옮겨가게 됩니다. 이러한 제들마이어가 보기에 현대미술이 제대로 평가 받았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원래 그의 스승 막스 드보르작에게 있어서의 미술사는 절대성을 향한 인간의 정신적 발전이라기 보다는 부르크하르트의 문화사적인 관념론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신고

Comment +0

클라시커50-회화

롤프H.요한젠저 | 황현숙역 | 해냄 | 2002.03.11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롤프 H. 요한젠, <클라시커 50 회화>, 황현숙 옮김, 해냄



1.
서평이란 책을 평가하고 읽는 이, 또는 읽을 이를 위해 씌어진 글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글 쓰는 이의 사정에 따라 그 글의 모양새가 달라지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책에 있다기 보다는 책의 외부에 있다. 즉 책을 온전하게 평가하기 못하고 책이 놓여있는 Context에 너무 얽매이게 되는 것이다. 이는 미술사(학)라는 한국에 아직 낯선 학문분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예술을 포함한) 전반에 해당된다는 점에서 서평을 쓰는 이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요컨대 한국의 학문 연구 풍토가 어떠하며 대학 교육이 어떻고 독자의 수준이나 태도가 어떠하다는 말은 되도록 하지 말아야 된다는 것이다. 원래 시대가 혼탁할수록 책에 대한 글에 정확한 시선과 정갈함이 요구되며 가치 있는 책들이 일반 독자에게 읽혀져야만 한다.

2.
미술 작품을 소개하거나 해설하는 책들은 예상 밖으로 많다. 하지만 그 책의 내용이나 질이 의심스러운 책들 또한 많다. 모든 책들이 정확하고 전문적인 지식을 전달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정적인 제목과 허술한 내용과 논증으로 독자를 기만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위험한 그림의 미술사'는 선정적인 제목의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가? 독자의 주머니가 넉넉하다면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나 잰슨의 '서양미술사' 같은 책이 좋다. 혹자는 이러한 '미술의 역사'에 대한 책보다 개별 화가나 개별 작품들에 대한 책으로도 미술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지 않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전체 미술사를 이해하고 있어야만 개별 미술 작품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가능하다.

한 예를 들어보자. 장 프랑수와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1857년)이라는 유명한 작품이 있다. 너무나도 유명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지경이고 곧잘 광고 소재로 이용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작품을 보고 감동을 받는 이는 몇 명쯤 있을까? 아마 고등학교는 말할 것도 없이 대학에서 미술을 가르치는 교수들 중에서도 많지 않을 듯 싶다. 그리고 감동 받지 않았으면서도 너무 유명한 작품이라 자세하게 설명하거나 감동적인 작품이라고 가르친다면 자기 기만적인 행동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이와 가장 유사한 예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가 될 수 있겠다).

Millet, Jean-Francois,
Les Glaneuses, 1857


2002년을 살아가고 있는 나를 포함한 미술작품을 보는 모든 이들이 1857년에 완성된 이 작품을 온전히 감상하기 위해서는 19세기 중반 유럽 사람이 될 필요가 있다(19세기 중반의 사람에게 백남준이나 요제프 보이스의 작품이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하듯이 우리가 19세기 중반에 완성된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 19세기 중반의 사람이 되어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오래된 미술 작품을 보고 이해하고 감동 받기 어려운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이 가지는 의미 내지는 당시 미술계에 던진 충격은 이 작품이 완성되고 난 다음 6년 후의 작품인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터키 목욕탕'을 옆에 두고 보면 쉽게 알 수 있다(눈을 감고 한 화랑에 밀레의 작품과 앵그르의 작품이 나란히 걸려있다고 상상해보라). 자끄 루이 다비드의 제자인 앵그르는 그 당시 프랑스 미술계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었고 그 당시 미술계에서는 앵그르류의 작품들을 최고로 평가하고 있었다. 이 때 공개된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은 한 마디로 충격적인 작품이었다. 롤프 H. 요한젠의 표현을 빌면, '그것은 얼굴에 주먹 한 방을 날리는 것 같은 충격을 주었음에 틀림 없다'.(p. 184)



Ingres, Jean-Auguste-Dominique,
The Turkish Bath, 1862
;Oil on canvas on wood, Diameter 108 cm (42 1/2"); Musee du Louvre, Paris


3.

한 예를 더 들어보자. 주위에 클림트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특히 젊은 여성들이 좋아하는데, 여기에 대해 무척 흥미로운 추측을 해보자. 나에게 클림트의 작품은 뛰어나거나 감동적이지 않은데, 그 이유는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욕심많은 한 화가의 집요함이 너무 눈에 거슬리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고유한 역할을 상실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여성을 비방하고 그녀에게 무한한 애로틱한 힘을 부여하여 그녀 앞에 다가온 남자를 살해하는 요부로 그린다'.(p.214) 이처럼 클림트는 여성에 대해 적대적이었다. 적어도 그의 작품들은 이러한 혐의를 벗기 어렵다. 그런데 이토록 여성을 비하하고 있는 그의 작품들이 도리어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것은 여성들 스스로 이러한 요부를 선호하고 이러한 요부가 되길 꿈꾸는 것은 아닐까? (이것은 추측이기 때문에 자신이 클림트를 좋아한다고 해서 화를 내거나 흥분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러한 추측도 작품에 대한 미술사적 이해를 바탕으로 할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가령 '유디트 I'을 보면 유디트로 표현된 여성의 볼이 붉게 상기되어 있는데, 이는 여성을 성적 대상(또는 노리개)로 파악할 때의 여러 미술 작품들에게 주로 보여진다. 이러한 여성이 빼곡히 그려진 기하학적인 문양들 속에 갇혀있으니, … …


Klimt, Gustav
Judith I ,1901
; Oil on canvas 60 1/4 x 52 3/8 in. (153 x 133 cm) Osterreichische Galerie, Vienna



4.
그러나 이러한 흥미진진한 미술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책은 드물다. 서점에 많은 책들이 나와있기는 하지만, 그 책들을 다 읽을 사람도 없겠거니와 다 좋은 책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내가 대학 일이학년 때 읽은 진중권의 '미학오딧세이'를 지금 읽어보면 무척 식상하고 재미없게 읽혀지지만, 그래도 일반 독자에게는 진중권의 그 책처럼 친절하게 하나하나씩 설명해주는 책들이 더욱 많이 필요하다(대학의 교양 교육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니). 하지만 국내 연구자에 의해 씌어진 우수한 책은 찾아보기 힘들고 그나마 있는 책들은 번역서적들인데 대부분 전문연구서들 일색이다. 지금 내가 소개하고자 하는 책은 일반독자를 위해 씌어진 책이라 할 수 있지만 어느 부분에 있어서는 전문서적 못지 않은 지식과 성찰을 보여주고 있어 일반 독자가 부담을 가지지 않고 읽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이 책 '클라시커 50 회화'는 해냄에서 나오는 시리즈물로서 원래 독일에서 출판된 시리즈이다. 여러 분야들에게 대한 책들이 나와있는데, 미술에 대해서 디자인에 대한 책이 한 권 더 있다. 책은 총 50개의 미술 작품(전적으로 회화에만 국한된)과 이에 대한 상세한 해설, 화가에 대한 간략한 요약으로 구성되어있다. 르네상스 초기, 흔히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의 시작이라고 평가되는 지오토의 '그리스도에 대한 애도'부터 시작해 앤디 워홀의 '마를린'까지 미술사에서 중요하게 평가되는 웬만한 작품들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독을 권해볼 만한 하다. 또한 작품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 그 화가의 다른 작품들이나 다른 화가의 작품들까지 곁들이고 있어 독자로 하여금 작품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도와주고 있다.

그렇다면 이 책의 일부분을 예로 들어 독자에게 이 책이 읽어볼 만한 책이면서도 만만치 않은 책임을 보여주기로 하자.


DURER, Albrecht
Selbstbildnis im Pelzrock (Self-Portrait in Furcoat, Self-Portrait at 28), 1500
Oil on panel, 67 x 49 cm Alte Pinakothek, Munich


작품의 창작을 수학적인 질서로 파악하고자 했던 뒤러는 휴머니즘(인본주의)를 바탕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의 양식화된 자화상 속에서 인간은 기하학과 미(美)를 통해 그 가치가 상승된다. 그것은 인간과 신이 동일화된 근원을 갖기 때문이다.(p.49)

'자화상'은 뒤러와 르네상스 시대 사람들의 새로운 자의식을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자의식은 바로 신이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했다는 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화가는 신의 뒤를 잇는 제 2의 창조자이다.(p.53)


Millais, John
Ophelia 1851-52
Oil on canvas 76.2 x 111.8 cm (30 x 44 in) Tate Gallery, London


라파엘 전파의 기본 원칙은 자연에 대해 최대한 충실하자는 것이다. 그들은 이상화된 라파엘로의 방식을 거부했다. 초기 르네상스회화, 특히 보티첼리와 초기 르네상스 화가들에서 그들의 전형을 찾았다. 밀레이는 모든 식물과 꽃들을 식물학적 특성으로 파악했다. 그것은 파엘 전파가 추진했던 하나의 '세부적인 사실주의'였지, 결코 포괄적인 사실주의는 아니었다. 밀레나 쿠르베의 동시대적 사실주의와 그들은 전혀 공통점이 없었다. 라파엘 전파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기는 하지만 그 사물과의 직접적인 논쟁을 피한다. 그들의 그림은 비현실적이며 풍경은 상상에서 비롯된다. 지속적으로 영향을 남긴 그들만의 특징이라면 젊은 신부나 죽은 애인으로 또는 남자의 자기 파괴적인 성적 호기심의 대상으로 - 성모이거나 '팜므 파탈'로 - 나뉘어지는 여성상의 분열이었다(p.180)



신고

Comment +0

바로크(Baroque)와 로코코(Rococo)를 분리된 예술사조로 보기는 힘들다. 왜냐면 로코코는 자신감 넘치던 바로크의 숨겨진 이면을 예술가 스스로가 깨닫게 된 것에 불과하니깐. 그리고 예술사에서도 흔히 로코코를 바로크 예술의 후기 경향으로 분류한다.



바로크 예술가로는 바흐, 베르니니, 카라바지오, 렘브란트, 푸생, 루벤스, 베르미르 등등이 속한다. 음악에서는 통저음과 변주의 형식이 등장하고 미술에서는 인간적인 면모의 강조와 빛에 대한 집착으로 나타난다. 형식에 있어서의 고전주의적 화풍은 확고한 질서 속에 대상들을 위치시키길 원하지만 바로크는 끊임없이 변하고 운동하는 이 세상의 우연 속에다 대상들을 위치시킨다. 그래서 인간이 태어나 병들어 죽는 풍경을 자신만만하게 묘사하기도 하고, 종교적 황홀경에 빠진 수녀의 표정이 꼭 오르가즘에 빠진 여인네의 표정과 별반 다르지 않고, 칼로 목을 베는 장면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기도 한다. 요즘 말로 하자면 ‘하드보일드’하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인간으로 태어난 것을 자랑스러워했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세상 속에서 같이 움직였다. 그리고 그 움직임은 이 세상의 진리를 포착하겠다는 예술가적 본능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정점에 이른 바로크를 ‘바로크적 고전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적인 면모’를 강조하다보면 어떻게 되는가를 로코코의 예술가들은 보여주고 있다. 즉 뜨거운 사랑이 지나가고 난 다음 남는 것이 섹스에 대한 공허한 갈망이듯이 로코코 예술가들은 그것을 진실하게 보여준다. 


Fragonard의 <그네>라는 작품을 보면 바로크가 어떻게 로코코로 향해갔는가를 알 수 있다. 운동과 빛에 대한 배려가 이 작품에서 나타나고 있지만 관능성이 지나쳐 지극히 퇴폐적이다. 그리고 그네를 타고 있는 여인의 치마 속을 상상해 본다면 로코코의 퇴폐성이 어느 정도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관음증환자 처럼 그네 바로 아래 한 남자가 올려다 보고 있다. 바로크의 빛과 운동은 그네를 타는 한 여인의 치마 속을 향해버리고 말았다. 이러한 로코코는 와또와 모짜르트에게 와서 끝도 없는 유미주의로 빠져버리고 만다. 와또가 화려한 색채로 그의 그림을 꾸미는 이유는 여인의 치마 속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즉 바로크적이고 매우 건강했던 사랑이 희미해지자 사랑을 지탱시키기 위한 도구로서의 관능이 등장하고 그 관능이 생의 거짓된 안락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예술가들은 자신들이 꾸며놓은 작품 속에 자신의 꿈을 새겨넣는다. 즉 로코코는 바로크의 숨겨진 이면인 셈이다.



현대는 매너리즘의 시대이면서 군데군데 로코코적 장식을 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강수지나 나스타샤 킨스키같은 여자들이 인기를 독차지 했던 시대가 로코코 시대였다. 바로크에서는 건강한 여자들이 인기가 많았지만 그 건강성도 로코코에 와서 그 실체를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현대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넌 사랑을 믿니? 훗, 난 섹스를 믿어. 한 번 하자’라고 공공연하게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섹스를 하나의 정치적 도구로 사용하자는 말 속에는(* 지극히 예술사적으로 파악하는 것이지만) 자신의 퇴폐를 숨기기 위한 거짓된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차라리 그냥 ‘프리섹스’를 주장하는 편이 훨씬 진실된 모습이다.


* 요즘 읽고 있는 책들 중 하나가 프랭클린 보머의 『유럽 근현대 지성사』(현대사상사)인데, 위의 글과 관련된 언급을 하려고 한다.


푸생은 1642년에 친구에게 “나는 기질상 혼잡함을 피하고 잘 정돈된 사물을 찾고 사랑할 수 밖에 없다. ...”고 썼다. 또한 프랑스의 모든 화가 중에서 가장 ‘고전주의적’이고 가장 지적인 이 화가는 특히 생애 중반에 그린 풍경화에서 - 케네스 클라크의 말에 따르면 - 자연에게다 “질서와 영속성이라는 풍채”를 부여하고자 시도하였다. <포키온의 장례식>(1648)과 같은 그림에서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다. 자연은 기하학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수평선적 요소와 수직선적 요소가 조화로운 균형을 이루고 있다. 푸생은 이런 균형을 얻기 위하여, 주로 고대양식에 따른 건축물과 신전 등을 도입하였는데, 이는 의심할 바 없이 이상(理想)과 영원함에 대한 감정을 부각시키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63쪽)


-- 보머의 시각은 프랑스의 고전주의를 푸생과 브왈로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이 말은 그 당시 유럽 대륙의 예술적 경향들 속에서 상대적으로 프랑스는 ‘고전적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는 말이다. 17세기는 바로크의 시대였지만, 프랑스 문학에서는 라신느, 꼬르네이유, 몰리에르로 대표되는 고전주의 문학이 휩쓸고 지나간다. 이 불일치에 그렇게 당황할 필요는 없다. 보머가 지적하고 있듯이 17세기의 사람들은 “새로운 항구적인 사물체계”를 원하고 있었으며 그 속에서 이 시기의 고전주의자들은 말 그대로 ‘고전’을 통해서 질서를 파악하려고 했을 뿐이다. 그리고 “파악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 믿음을 변화무쌍한 세계 속에서 하나의 질서를 포착할 수 있다는 예술적 자신감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 자신감이야말로 ‘근대인’을 특징짓는 성격들 중의 하나이다.


* 제르맹 바쟁의 『바로크와 로코코』(시공사)은 꼭 자료집같다는 느낌 때문에 재미있게 읽히지 않는다. 그리고 이 책만 읽고서는 바로크가 무엇이며 로코코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서문에 뵐플린을 빌어 고전적 미술과 바로크적 미술을 설명한 문장은 깔끔하다. : 


“고전적인 미술은 자연에 등을 돌리지 않으므로 관찰의 미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목적은 현상의 무질서함을 넘어서 세상의 질서 이면에 놓여있는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다. 고전적인 구성은 단순하고 명료하며 구성의 각 부분들은 제각기 독립적이다. 또한 정적이며 틀 안에서 폐쇄된 형태를 하고 있다. 반대로 바로크 미술가들은 다채로운 현상에 참여하고자 하며 끊임없이 생성 소멸하는 사물의 유동성에 관심을 가진다. 그들의 구성은 역동적이며 개방되어 있고 틀을 깨고 외부로 확장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구성을 이루는 형태들은 하나의 유기적인 행위 안에 서로 연관되어서 따로 따로 분리될 수 없다. 바로크 미술가들은 확장하고자 하는 기질로 인해 정적이며 육중한 형태보다도 ‘유동하는 형태’를 선호하였으며, 고전주의자들이 강인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 주고자 하였던 것과는 달리 그들은 파토스를 선호하여 고통과 감정, 삶과 죽음의 모습을 가장 격렬한 형태로 묘사하였다.”(6쪽에서 7쪽)




신고

Comment +0

* 이 글은 1998년 예술사 수업 과제물로 제출한 리포트이다. 참고용으로 활용하기 바라며, 인용 시 출처를 밝혀야만 할 것이다.


1.
지금 당장 밖에 나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그린다면 그것도 하나의 풍경화(landscape painting)가 될 수 있을까? 가령 건조한 표정으로 서있는 건물들이나 건물 앞 둔탁하게 생긴 구조물과 초췌한 빛깔의 나무들, 혹은 건물들 사이로 보이는 하늘을 그린다면 말이다. 그렇게 해서 풀밭이나 산이나 강을 그린 화가에게 깊은 겨울의 우울함으로 물들어있는 도시의 풍경을 그린 그림을 들이밀면서 '이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화인가요'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나 먼저 우리가 여기에 대해 말하기 위해선 우리가 '풍경화'라고 할 때의 그 '풍경'과 철학이나 미학에서 말하는 '자연'-풍경화의 대상이라고 여겨지는-이라는 단어에 대한 정의부터 내려야할 것이다. 철학에서 '자연nature'은 인간에 의해 변형된 세계 바깥의 그 무언가를 의미한다. 그래서 주로 문명이나 문화의 반대를 뜻하며 특히 루소에게는 시원이자 어머니였으며 개인과 사회의 인습을 대체할 수 있는 모델이었다. 하지만 예술에서의 '풍경'은 우리가 어떻게 자연을 바라보는가에 대한 한 양식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그래서 원근법적으로 구성된 자연의 대상도 '풍경'이며 추상적으로 구성된 자연의 대상도 '풍경'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19세기의 보들레르는 지금 우리에게 삭막하게 보이는 도시를 그린 그림도 '풍경화'라고 말했을 것이다. 아니 19세기의 모더니스트라면 모두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2.
중세적 의미에서의 '자연'은 신적인 것과 대비되어 나타난다. 장원이나 성채, 혹은 도시 주변에 펼쳐진 자연, 정확히 말해 '숲'은 이교적 정신의 소유자들의 도피처였으며, 은둔자들, 연인들, 방랑 기사들, 산적들, 무법자들이 도피했던 곳이다. 자크 르 고프의 말을 빌면, "동방에서는 나무가 문명을 의미했지만 서양에서는 그것이 야만을 의미했다. (... ...) 서양 중세에 있어서 모든 진보는 가시덤불과 소관목, 또는 만일 불가피하거나 기술과 장비가 허용된다면, 거목과 처녀림, 페르스발의 '황량한 숲', 단체의 작품에 등장하는 '침침한 숲'에 대한 개간과 투쟁과 승리의 결과이다."(『서양중세문명』, 문학과 지성사) 즉 후세 사람들 눈에 중세가 어느 정도의 어둠으로 뒤덮여 있다고 믿어지듯이, 중세인들에게 숲은 신의 찬란한 빛이 닿지 않는 않는 곳이었다(낭만주의시대 부활되는 중세란 이러한 숲의 중세였다).

하지만 이러한 중세인들의 일반적인 생각과 조형예술의 영역에서 이루어졌던 풍경의 묘사와는 약간의 거리가 있음을 인정해야할 것이다. 왜냐면 중세의 모든 학예활동이 신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듯이 예술에 있어서의 중세 '풍경'은 중세의 '유비론(doctrine of analogy)'으로 인해 '상징의 풍경(Landscape of Symbols)'이었기 때문이다. 즉 꽃이나 정원, 나무들 모두 종교적 상징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것은 신의 권능을 찬양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러한 상징성은 고딕을 지나면서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한다. 이러한 사라짐과 함께 고대 그리스 이후 잃어버렸던 양식 상의 자연주의도 천천히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우리는 랭부르 형제(Limbourg Brothers)의 <<베리 공의 시력(時曆) 그림>>을 통해서 중세 말의 풍경화가 어떠한 모습을 띄었는가를 대략적으로 알 수 있다. 시기적으로는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화려하게 꽃을 피우던 15세기(꽈뜨로첸토)였지만 그 당시 북유럽은 아직 고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정확히 말해 '국제고딕시대'). 이 그림에서 우리는 자연에 대한 묘사가 이전과 달리 매우 자연주의적이며 세련되어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늘은 본래의 파란빛을 되찾았으며 길과 토지는 섬세하게 표현되어있는 것이다. 즉 여기에서 우리는 고딕 말에 이루어진 자연주의의 회복이란 다름아닌 자연에 대한 관심의 회복(또는 증대)임을 알 수 있다. 아마 근대의 자연과학이란 이러한 관심에서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3.
르네상스의 원근법은 그 당시의 사람들이 자연을 어떻게 바라보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들은 고전적인 자연의 이념이라고 할 수 있는 아르카디아(Arcadia)의 이상을 회복하길 원했고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염원했다. 하지만 현실의 자연은 아르카디아가 아니었고 그 때문에 자연 속에서 인간이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그러한 이상은 명확하고 항구적이라고 여겨지던 기하학에 기초한 원근법으로 반영되었으며 그리고 당시의 풍경화를 특징지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분명하게 이해하고 넘어가야할 사실은 이 당시에 '풍경화'라는 장르는 없었다는 점이다. 그러니 지금 이 글에서 이야기되는 풍경화란 풍경 그 자체를 주제로 한 것이 아니라 인물의 배경으로 사용되는 풍경이라는 것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겠다. 그리고 언제나 고전적 시대에는 풍경은 그리 중요한 주제나 소재가 아니었다. 그러니 보다 고전적이라 여겨지는 피렌체의 화가들보다 상대적으로 덜 고전적이며 색채를 중시했던 베네치아에서 풍경화가 많이 그려졌다. 그리고 이 풍경화들은 한결같이 목가적이며 시적인 분위기를 자아내었고 이상화된 상상의 자연을 묘사하였다(조르조네(Giorgione)나 티치아노(Tiziano)의 작품들).

그러나 북 유럽의 풍경화는 이탈리아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즉 고딕의 자연주의가 더 앞으로 나가 북 유럽에서는 실제 풍경에 대한 묘사로 이어진 것이다. 특히 알트도르퍼(Albrect Altdorfer)의 풍경화가 보여주는 사실성은 베네치아의 그것과는 매우 다르다. 우리가 고전적으로 알고 있는 뒤러마저도 매우 사실적인 몇몇 채색풍경화를 남기고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이러한 풍경화들은 자연에 대한 동경이나 혹은 거부와 같은, 어떤 특정한 세계관에 기초해 있는 것이라기 보다는 고딕 시대로부터 이어진 자연에 대한 관심의 증대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할 듯 싶다. 그리고 몇몇 풍경화들은 '풍속화'나 '지도'의 역할도 했음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4.
바로크 시대에 있어서 가장 고전주의적 면모를 보인 푸생(Nocolas Poussin)에게 있어 풍경은 지극히 인본주의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연에다 '질서와 영속이라는 풍채'를 부여하고자 시도했다. 가령, <포키온의 장례식>(1648)과 같은 그림에서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으며, 자연은 기하학적으로 구성되어 있고 수평선적 요소와 수직선적 요소가 잘 조화되어 균형을 이루고 있다. 푸생은 이런 균형을 얻기 위하여 주로 고대 양식에 따른 건축물과 신전등을 도입하였는데, 이는 의심할 바 없이 이상과 영원함에 대한 감정을 부각시키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하지만 같은 시대 끌로드 로렌(Claude Lorrain)의 그림은 약간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는 시간에 따라 변하는 자연 풍경의 인상을 최초로 표현한 화가였으며(인상주의 화가들이 그랬듯이) 언제나 대상을 감싸고 빛나게 하는 빛으로 가득차 움직이는 대기를 통해 작품의 통일성을 유지하였다.

로렌과 비교해, 아니 전 바로크의 화가들과 비교해도 푸생은 확실히 고전주의적이다. 하지만 르네상스 고전주의자들과는 전적으로 다른 세계관에 기초해있으며 그래서 그에게 있어 아르카디아의 이상이란 한낫 허구에 지나지 않았으며 그 이상향 속에서도 사람은 죽는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아르카디아에도 내가 있다(Et In Arcadia Ego)'라는 작품을 그렸던 것이다. 그러므로 양식 상의 유사점을 들어 상이한 시대의 비슷해 보이는 양식을 동일한 심리적 경향의 반영이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가 어떤 항구적인 것을 염원하였음은 분명하지만 르네상스의 화가들처럼 확고한 것은 아니었다.

5.
바로크가 정지해 있는 것보다는 움직이는 것, 존재보다는 운동에 더 비중을 두었듯이 이 양식에서 보여지는 풍경화는 매우 다양한 모습을 띤다. 그리고 우리가 바로크적 풍경화라고 말했을 때 이 단어에 가장 적당한 그림은 아마 루벤스(Peter Paul Rubens)의 <스텐 성이 있는 풍경>(1636)이 될 것이다. 뵐플린은 여기에 대해 "루벤스는 그것(풍경)을 너무도 판이하게 그려내어 우리는 실제 대상 자체가 다른 것이 아닌가 오해할 정도이다. 지면은 온통 구불구불하게 휘어져 있고 나무줄기는 열정적으로 휘감아 올려져 있는가 하면 잎부분은 하나의 덩어리처럼 다루어져 뤼스데일이나 호베마 같은 화가들은 그에 비하면 극도로 꼼꼼한 묘사가로만 느껴진다"(『미술사의 기초개념』, 시공사)고 말한다.

바로크 시대에 있어서 가장 흥미있는 점들 중의 하나는 네덜란드와 플랑드르의 비교일 것이다. 이는 풍경화에 있어서도 그러한데, 가령 네덜란드의 몇몇 풍경화가들-야콥 반 루이스달(Jacob van Ruisdal), 얀 반 호이엔(Jan van Goyen), 마인데르트 호베마의 작품들과 루벤스의 작품을 놓고 본다면 확연히 구분된다. 네덜란드 풍경화에 대해서 말하기 위해선, 그리고 바로 인접해있으면서 양식상 매우 상이한 것에 대한 의문에 대해선 아놀드 하우저의 견해가 설득력을 가질 것이다. 즉 플랑드르는 구교의 세계였고 네덜란드는 개신교의 세계였으며 시민계급이 주류인 사회였기 때문에 플랑드르와 달리 네덜란드에서는 범속한 시민계급의 취향을 위해 풍경화가들이 많았으며 편안하고 끝이 확 트인 풍경화를 주로 그렸던 것이다.

대체로 바로크 양식의 후기 경향이라고 여겨지는 로코코 시대에 풍경화가 활발하게 그려진 곳은 베네치아였다. 특히 이 도시의 궁전이나 운하, 베네치아인들의 생생한 삶을 묘사한 풍경화를 베두테(vedute)라고 불려졌고 이 그림들은 전 유럽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와 달리 실제의 공간과 상상의 공간이 혼합된 풍경화를 카프리치오(capriccio)라고 불렀는데, 이 양식은 목가적이고 전원적인 풍경을 선호하였고, 환상적인 구성과 장식적인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베두테와 카프리치오만 놓고 비교해본다면 후자가 더 로코코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특히 프랑스의 로코코 화가들이 보여준 페트 갈랑트(fe^te galante)류의 그림들 속에서 우리는 로코코의 화가들이 자연을 어떻게 보았는가를 알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바로크에서의 보여주던 자연에 대한 치밀한 묘사가 다분히 후퇴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 자연은 그 생동감을 잃어버리고 화려하고 다분히 향락적인 색채로 치장되어 있으며 도피적이면서 이국적이다. 우리는 앞에서 말한 바 있는 '아르카디아'가 로코코에 와서 어떻게 변했는가를 유심히 살펴보아야할 것이다. 즉 현실의 색채를 잃어버리고 꼭 꿈에서 보았던 것처럼 한없이 몽환적인 색채를 보이고 있는 로코코의 풍경은 고전적 신념이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가를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실제의 자연 대신 그들은 꿈 속의 자연을 택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6.
풍경화가 현대적인 의미로 이해되기 시작한 것은 낭만주의시대부터이다. 특히 영국의 풍경화가들은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전해주었다. 특히 터너의 경우 인상주의 작품들처럼 대상과 풍경은 구분되지 않는데, 그가 끌로드 로렌을 의식하고 있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이다. 터너는 로렌의 그림이 지니고 있었던 명료함과 구체성, 그리고 고요함을 버리고 동적이며 화려하고 현란한, 그야말로 자연이 모든 것을 삼킬 듯할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존 콘스터블은 언제나 야외로 나가 스케치를 했으며 자신의 눈으로 정직하게 자연을 파악하기를 원했고 그런 그림을 그렸다. 이때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picturesque'라는 단어는 이 당시 영국 풍경화가들의 그림들에게 붙여졌다. 로렌이 상상 속으로 헤매이고 있었다면 콘스터블은 인상주의자들이 했던 방식으로 했던 자신이 바라보는 바의 풍경으로 다가간 것이다. 아마 인상주의자들이 사용했던 주석튜브가 만들어졌다면 그는 야외에서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작품들이 한결같이 자연을 소재나 주제로 삼았다고 해서 자연이 우리에게 친근하게 다가오고 있는 중은 아니었다. 도리어 자연은 인간에게서 멀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빅토르 위고는 <크롬웰 서문>에서 '인간은 지상을 향하여 몸을 구부릴 뿐만 아니라, 자신의 본향인 하늘을 몸을 내던지고 있다'고 말했다. 낭만주의자들은 계몽주의를 거부했으며 합리적이며 과학적인 사고들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고 자연은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될 수 있다기보다는 이해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그 무엇을 의미하였다. 특히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일련의 작품들에서 인간은 보이지 않거나 고작 뒷모습만을 드러낼 뿐이며 언제나 자연풍경은 광대하며 끝없이 이어져 있다.

칸트의 '숭고'는 낭만주의의 풍경화가 무엇을 의도했는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단어들 중의 하나일 것이다. 숭고의 느낌은 무형이나 기형(광대함 혹은 강력함)에 직면할 때 체험된다. 미가 오성과 관계한다면 숭고는 이성과 관계하며 생명력의 일시적 정지에 따른 감동이며 외경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나 낭만주의의 풍경화 속에서 인간은 고전주의가 가지고 있었던 중심의 자리를 상실하고 풍경 속에 묻히거나 그 일부가 된다.

7.
낭만주의가 인간 이성의 한계를 말한 최초의 거대한 흐름이었다면 인상주의는 그것을 극단까지 밀고간 양식이라고 말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18세기 후반 영국 풍경화가들가 인상주의를 잇는 19세기 초의 프랑스의 화가들, 으젠느 들라크르와, 장 바띠스트 까미유 꼬로, 사를르 프랑스와 도비니, 나르시스 디아즈, 귀스타브 꾸르베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대해서 언급하기 시작한다면 이 글은 매우 길어질 것이고 한편으로는 이들이 바라보았던 풍경들은 바로 인상주의의 풍경화로 귀결되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아도 좋을 듯싶다.

이제 '자연 그 자체'란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르네상스 고전주의 화가들의 풍경은 인간의 눈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의 풍경이었지만 인상주의에서의 풍경은 파악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의 풍경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즉 내가 보는 풍경과 네가 보는 풍경은 다르며, 그래서 진정한 자연주의란 한 개인의 감각 경험에 집중하는 것이며 이제 풍경화는 시시각각 변하는 빛의 변화에 충실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 시대, 19세기 후반을 보면서 우리는 자연의 이상성이라든지 숭고함, 또는 루소적인 의미에서의 자연이 사라졌음을 알 수 있다. '존재하는 것은 지각되는 것이다esse est percipi'를 실현하는 인상주의는 자연의 광경을 계속 새롭게 하기 위해서 순간적인 것으로 환원시켜버린다.

발레리가 문학에서 있어서 묘사에 대해서 말하기를, '묘사란 일반적으로, 위치를 바꿔 놓아도 좋은 문장으로 이루어진다. 나는 이 방을 그 순서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일련의 문장으로 묘사할 수 있다. 시선은 원하는 대로 방황한다. 이런 방황보다 더 자연스럽고 더 진실한 것은 없다. 왜냐하면 진실은 우연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던 방식과 똑같이 우리는 인상주의자들의 그림에 대해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드디어 '행동에 의해 지배되는 행동의 종속물로서, 풍경은 멋있는 것이 있는 장소, 몽상의 거주지, 방심한 눈의 즐거움이 된다. 그리고는 인상이 승리한다. 질료와 빛이 지배한다.'(폴 발레리, 『드가, 춤, 데생』, 열화당)

인상주의의 풍경화-모네, 피사로, 드가, 르느와르의 작품들을 정확하게 말하자면 '반자연'적이라고 말해야할 것이다. 즉 자연법칙이란 항구적이지도 불변하는 것이 아니며 자연 그 자체란 인간의 이성으로 파악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자연이란 각각의 개인이 가지고 있는 감각이 구성해내는 각기 다른 자연들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낭만주의자들이 인간 이성에 대한 신뢰 대신, 그 반대 급부로 자리잡은 자연에 대해 한없는 경외감을 품었다면 인상주의자들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가 외부 세계에 존재하는 자연마저 무시하고 아예 '자연은 상상력이 없다'라고 말하는 보들레르나 '예술이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예술을 모방한다'고 말한 오스카 와일드에 더 가까이 있는 것이다.

이제 예술가들이 집중하는 것은 외부 세계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내부 세계로서의 자연이며 그 속에서 풍경화는 구체성 대신 추상성을 띄기 시작한다. 세잔느의 기하학주의는 이러한 경향의 최초의 움직임이라고 말해야할 것이다. 세잔느는 '사람의 얼굴도 하나의 대상으로서 그려져야 한다'고 믿었으며, '예술가는 이 완벽한 예술작품을 쫓아야만 한다. 모든 것은 자연에서부터 나온다. 즉 우리는 자연을 통해 존재하며,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란 오직 자연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파악한 자연은 외부 세계에 있는 자연이 아니라 그의 내부에 있는 자연이었다. 그래서 인상주의 이후의 풍경화를 '내면의 풍경화'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적절해 보인다.


* 보론 - 자연주의에 대하여

자연주의란 사실주의라는 단어에서 가치나 도덕, 혹은 신념 따위를 뺀 용어이며 이 용어 또한 사실주의와 비슷하여 그 명확한 정의를 내릴 수 없다. 하지만 예술사에서 자연주의는 사실주의보다 그 사용이 더욱 빈번하고 위의 글에서는 나는 '자연주의'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으므로 적어도 이 글 내에서 자연주의가 어떤 용례로 쓰였는가를 말해야 옳을 듯 싶다.

자연주의란 이성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기 보다는 다분히 심리적인 그 무엇에 기반을 두고 있는 용어임에 분명하다. 그래서 우리는 사진보다 인상주의의 그림을 더 자연주의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고딕의 조각들이 로마네스크의 조각보다 더 자연주의적인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자연주의적이라고 말할 때 그 기초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것의 기초는 우리의 지각에 있다. 우리가 보는 바 우리의 감각에 더 충실한다면(매우 모호한 표현이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우리에게 더 자연스럽게 보인다면') 그것이 더 자연주의적인 양식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상주의는 '반자연적인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감각으로 받아들였던 자연을, 그들의 작품들을 통해 도리어 자연을 부정한 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부분에서의 '자연'과 '자연주의'를 혼동하면 안 될 것이다.


 

신고

Comment +0

늦은 봄날의 일상

가끔 내 나이에 놀란다. 때론 내 나이를 두 세살 어리게 말하곤 한다. 내 마음과 달리, 상대방의 나이를 듣곤 새삼스레 나이를 되묻는다. 내 나이에 맞추어 그 수만큼의 단어를.....

웹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필립 솔레르스(Philippe Sollers)가 사드(Marquis de Sade)에 대해 인터뷰하는 영상을 보았다. 영상 속에서 한국에서 사드의 책을.....

보르헤스, 문학을 말하다

보르헤스, 문학을 말하다 This Craft of Verse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박거용 옮김, 르네상스 우리는 시를 향해 나아가고, 삶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리고 .....

대학로 그림Grim에서

"글을 쓰지 않아요?"라고 묻는다. 매서운 바람이 어두워진 거리를 배회하던 금요일 밤, 그림Grim에 가 앉았다. 그날 나는 여러 차례 글을 쓰지 않냐는 질문을 받았다. 가끔.....

아우스터리츠Austerlitz, W.G.제발트Sebald

아우스터리츠 Austerlitz W.G.제발트(지음), 안미현(옮김), 을유문화사 병상에 누워, 안경을 쓰지도 못한 채, 제발트의 <<아우스터리츠>>를 읽었다. 병상에서의 소.....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평전, 다나카 준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평전 다나카 준(지음), 김정복(옮김), 휴머니스트 일본인 저자가 쓴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평전이라니! 놀랍기만 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The Sense of An Ending, 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The Sense of An Ending 줄리언 반스(지음), 최세희(옮김), 다산책방 나는 우리 모두가 이러저러하게 상처받게 마련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

쓸쓸한 커피숍

2016. 06. 10 오늘도 기다림은 이어진다. 그리움은 늘 그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다....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기시 마사히코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기시 마사히코(지음), 김경원(옮김), 이마, 2016 현대적인 삶은,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조각나고 파편화되어, 이해불가능하거나 수용하기.....

서양철학사, 윌리엄 사하키안
서양철학사, 윌리엄 사하키안
요즘 근황과 스트라다 로스터스 STRADA ROASTERS
요즘 근황과 스트라다 로스터스 STRADA ROASTERS
요즘 근황과 스트라다 로스터스 STRADA ROAST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