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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토요일, 거칠고 가느다랗게 물이 내려가 커피에 닿는 순간, 참 오랜만이다,라고 속삭였다, 스스로. 내가 나에게 낯설어져 가는 40대구나.



실은 나이가 든다는 것에 대한 지각은 없고 누군가가 나이가 들어가는구나를 보며, 내 나이를 되새기게 된다. 아침에 내린 커피를 다음날 새벽까지 마시고 있다.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은 마음까지 어수선하게 만든다. 미하일 길렌의 음반을 꺼내 듣는다. 베토벤이다. 베토벤도 참 오래만이다. 


그동안 어떻게 살고 있었던 걸까,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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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유리창, 여름의 열기와 도시의 먼지가 덕지덕지 붙은 흐릿함 너머로 김포공항이 한 눈에 들어왔다. 수 년 전 국제선이 사라지면서 김포공항은 예전의 땅을 상당수 잃어버렸다. 실은 하늘에서 내려앉는 비행기 속에서 바라보는 김포공항은 초라할 정도로 너무 작다. 수심 얕은 바다 옆에 바로 붙은 인천공항과 비교한다면, 김포공항은 집들로 둘러싸인 고립된 섬과 같다.

창 너머로 김포공항에서 이륙하는 비행기들이 보였다. 하나, 두울, 세엣... ... 1분, 2분, 3분, ... 13분, 14분, 15분, ... ... 가벼운 옷감의 운동복이 다 젖도록 나는 달렸다. 맨 처음 런닝 머신 위를 달렸을 땐, 꽤 적응하기 어려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두 세 번만에 적응했다. 나는 의외로 적응력이 좋다.

공중으로 자신의 육중한 몸을 들어올리는 비행기를 보면서, 나도 저렇게 나를 끌어올릴 수 있을까 궁금했다. 나는 높은 대지에 세워진 10층 짜리 건물의 5층에서 계속 달리고 있었다. 내 발 밑의 콘트리트 골조가 없다면, 내 시선을 종종 가리는 유리창이 없다면, 나는 하늘을 달리고 있는 거라고 믿고 싶었지만, 그런 기만도 이젠 아무런 위안도 되지 못했다. 

런닝 머신에 붙은 TV 모니터 속에선 게임 관련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계속 달렸고, 그 작은 모니터 속의 게임에선 계속 싸웠다. 치고 빠지고 쓰러졌다. 그러자 화면은 신중한 표정의 게이머를 비추고 웃는 이와 그렇지 않은 이를 보여주었다. 그러자 한 명은 퇴장했고 두 명의 젊은 여자가 금빛 원피스를 입고 자극적인 걸음걸이로 모니터 밖으로 걸어나왔다. 

그녀들은 얇게 웃으면서 나이를 물었고 수입이 얼마인지 따졌으며 차가 뭔지 알고 싶어했다. 나는 그저 달렸다. 말없는 런닝 머신 위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땀만 흘렸다. 황당한 표정의 구름들이 지나치며 날 쏘아보았고 날 위로할 듯하던 태양은 구름 뒤로 숨어버렸다.

어제 누군가가 전혀 몰랐다는 듯이, 결혼하지 않았냐고 반문했을 때, 나는 거의 처음으로 당황했다. 요즘 자주 당황하긴 한다. 며칠 전엔 혼자 사는 게 외롭지 않냐고 물었을 때, 그 물음에 짐짓 태연한 척 하던 내가 너무 부끄러워, 결국 술에 취하고 말았다.

육체를 의도적으로 혹사시키면서, 나는 몇 주 동안 몸무게가 2 킬로그램이나 빠졌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빠졌다는 사실이 기쁜 것이 아니라, 도리어 혼자 사는 남자의 불길한 일상처럼 여겨졌다. 쓸쓸하고 불길했던 운동을 끝내고 들어오는 길에 산뜻한 보라색의 포도를 사왔다. 포도를 텅 빈 냉장고에 넣고 오래 전에 죽은 러시아(정확히는 우크라니아 오뎃사) 출신의 피아니스트가 연주한 베토벤을 들었다.

결국 내가 어쩌지 못하는 어떤 일상 속에서 내가 있을 뿐이다. 나에게 일상의 향긋한 행복이 언제였던가 궁금해지는 토요일 오후다.

에어콘의 냉기로 더 쓸쓸해진 빌라의 창을 열자, 김포공항 위로 에밀 길레스의 베토벤이 날아오르고 있었다. 그의 베토벤은 나를 향해 뜻모를 미소만 남긴채, 황당한 빛깔의 여름 구름 속으로 황급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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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스승의 날이라, 아트페어 준비 행사를 끝내자 마자 바로 수서까지 내려갔다. 수서에서 새벽까지 있다가 홍대로 넘어와, 맥주 한 잔을 더 하고 집으로 왔다. 토요일엔 오랜만에 오후까지 잠을 잤다. 그리고 밤에 다시 간단하게 맥주와 와인을 마셨다. 오늘, 일요일 아침에는 일찍 가평에 있는 쁘띠 프랑스엘 다녀왔다. 너무 먼 거리인지라, 아침 9시 반에 출발했으나, 그 곳에서 일을 보고 넘어오니 오후 4시 가까이 되었다.
 
DSLR 카메라를 들고 갔으나, 사진을 찍을 여유는 없었다. 저녁에 잠시 잠을 잤다가, 밤 9시에 일어나 라면 하나를 끓여먹곤 지저분한 내 방을 보면서 투덜거렸다.

뉴욕타임즈에 실린 미네르바 기사를 프린트해서 몇 구절 읽었다. http://www.nytimes.com/2009/05/16/world/asia/16minerva.html?_r=1 
http://www.asiae.co.kr/uhtml/read.php?idxno=2009051718044913503

황당한 일들이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보면서, 이 나라 국민들은 참 복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스개소리로, '이민간다'가 현실이 되는 이 나라에 대해 누가 책임을 질까. 그건 바로 국민들이다. 

베토벤의 3번 교향곡과 8번 교향곡을 연이어 듣고 있다. 뚝.뚝. 끊어지는 내 사고 대신 음악은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1941년, 1942년, 브루노 발터가 지휘하고 뉴욕필이 연주한 음악이다. 강남 선릉 근처의 작은 커피샵에서 산 코스타리카 따라주 커피를 마시고 있다. 

몸은 피곤하고 마음은 쓸쓸한 일요일 밤이다. 고민은 많고 행동은 점점 느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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