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4

요리하는 나에 대한 반성

냉장고에서 길을 잃어버린 무우 하나가 몇 달째 냉기를 먹으며, 한때 딴딴하고 신선했던 탄력을 상실해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나는 숙취와 스트레스의 바다 속에서 겨우 살아나와, 푸르딩딩한 겉이 살짝 물렁해진 무우를 꺼내 껍질을 도려내고 네모나게 잘랐다. 하나, 하나, 하나 그릇에 담고는 꽃소금 몇 스푼을 뿌려 같이 놀게 해주었다. 소금 알갱이들이 네모난 무우 사이에서 낄낄거리며 노는 소리가 작은 집 부엌 한 구석에 쌓여갔다. 그러나 봄햇살은 놀러오지 않았고 내가 사랑하는 아이는 그 노는 소리에는 관심이 없었다. 십대란 부모가 관심 가지는 것과는 정반대로 나아가며, 그렇게 자신만의 세계와 정의를 만들어 간다고 여겨졌다. 고향 집에서 가져온, 정체를 알 수 없는, 심하게 짜 바다 향이 그 소금기에 짓눌려 응축된..

낮잠

살짝 감긴 눈으로 희미한 빛이 들어찬다. 한낮의 빛은 소란스럽게 망막을 자극한다. 그제서야 내가 낮잠 중임을 알게 된다. 아이의 웃음소리가 귀를 간지럽힐 때, 얇은 잠은 편안해진다. 겨울 햇살은 따갑지만, 따스하고, 누군가 옆에서 떠들고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있는 동안, 나는 미동도 없이 잠을 잔다. 세상이, 사람들이, 우리 가족이 어떤 시간을 보내는지 알 수 있는 잠이다. 그런 낮잠이었다.

어느 2월의 화요일

월요일 출근길, 몸이 무거웠다. 미세먼지로 가득찬 일요일을 보내고 난 다음날 아침, 일어나기 조차 힘들었다. 약 두 시간 정도의 운전, 약 삼심분 정도의 대기 시간 끝에 만난 도너츠 위의 말똥, 기름지고 맛있었으나, 살짝 비린내가 올라왔던 방어회, 소주 반 병, ... 일요일 저녁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왜 월요일 아침 피곤한 것일까. 소주 반 병 탓일까, 아니면 날 것들을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했던 것일까. 월요일 오전 회의 하나를 끝내고 휴가를 내어 바로 집에 들어와 누웠다. 계속 누워있었다. 잠이 오지 않았지만, 누워있었다. 그리고 계속 누워있으면 허리가 아프다. 계속 누워있을 수도 없다. (운동을 해야 하는데, 코로나 이후 가끔 가던 피트니스 센터도 끊은 상태라...) 잠은 오지 않고 딴 생..

2021년 10월, 작은 생각

몇 주 전부터 알람 시간을 새벽 3시로 맞추어놓았지만, 한 번도 제 때 일어나지 못했다. 실은 겨우 출근 시간에 맞추어 일어난다. 일찍 일어나려고 집에 오자마자 씻고 오후 9시나 10시에 바로 눕는데도, 하루 두 세 차례의 회의와 업무 긴장감, 순간순간 엄습해오는 초조함과 압박으로 인해 저녁이 되면 녹초가 되고 하루 일곱시간 수면도 부족하다고 할까. 그 마저도 스트레스로 깊은 잠을 자기 어려우니. 선잠을 자고 내일 일과를 생각하면 피곤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잠자리는 끝없이 불편해진다. 그래도 끝나지 않는 일들은 나로 하여금 비현실적인 알람 시간에 기대게 하고, 내 불안과 근심은 결국 불가능한 기상 시간과 불편한 잠자리를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이 내가 원하던 삶일까, 일상일까. 내가 원했던 삶은 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