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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카불의 책장수 The Bookseller of Kabul 

오스네 사이에르스타드 Asne Seierstad (지음), 권민정(옮김), 아름드리미디어 





카불에서의 일상은 참혹하기만 하다. 실은 믿어지지 않고 믿을 수도 없다. 그렇다고 그들을 비난할 수도 없다. 오스네 사이에르스타드는 비교적 차분하고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지만, 읽는 독자는 차분해지지도 않고 주관적으로 파악할 수 밖에 없다. 남녀간의 사랑이 금지된 곳이라니. 아니, 남자의 사랑은 있지만 여자의 사랑은 없는 곳이 보다 현실에 근접한 표현일 것이다. 



A WOMAN'S LOVE is taboo, banned by the prohibition of the honor code of Pashtun life and by religious sentiment. Young people do not have the right to see each other, love each other, or choose each other. Love is a grave mistake, punishable by death. The unruly are killed, in cold blood. The massacre of lovers, or of one of them (always and without exception the woman), initiates the never-ending process of vendetta between clans. 

- Sayd Bahodine Majrouh(ed), <<Songs of Love and War - Afghan Women's Poetry>>(Other Press, New York), p.3 

 


책은 카불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술탄 칸과 그의 가족 이야기를 담고 있다. 술탄 칸과 여동생 레일라, 그의 아들 만수르는 영어가 가능한 보기 드문 가족의 이야기다. 인구의 사분의삼 정도가 읽지 못하는 문맹의 국가에서, 영어까지 가능한 가족의 이야기, 책을 파는 술탄과 그의 아내들(처음은 한 명이었다가 두 명이 된다), 아들들, 그 외 어머니와 남동생, 여동생 이야기라고 하면, 어떤 기대를 할까. 


책에 대한 이야기? 아니면 어려운 환경이지만 희망을 구하며 살아가는 이야기? ... 하지만 전혀 아니다. 읽으면 읽을 수록 우리가 아는 세계도 아니고 우리가 경험해볼 수 있는 세계도 아님을 알게 된다. 도리어 이 세계 속에서 부르카를 쓰고 다닌 오스네 사이에르스타드를 궁금하게 여기며, 대단하다는 생각 밖에 하지 못하게 된다. 


그 정도로 카불에서의 일상은 지옥에 가깝다. 특히 여자들에게 있어 이 곳은 ...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카불. 그러나 참혹하기 이루 말할 수 없다. 20세기 초반 영국으로부터의 독립 이후 이루어진 여러 근대적 개혁들의 실패, 외세의 개입, 부족 지도자들과 종교 지도자들의 반발 등이 어우러진 결과물이다,라고 말하긴 쉽다. 



"예전에는 샴페인으로 축배를 들었는데."

고모 한 명이 중얼거린다. 그녀는 좀더 자유로운 시절을 기억한다. 그때는 결혼식 때 샴페인과 와인을 마셨다. 

"다시는 그런 날이 오지 않겠지."

고모가 한숨을 내쉰다. 나일론 스타킹, 서양식 옷차림, 팔을 훤히 드러낼 수 있던 시절,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르카를 쓰지 않던 시절은 이제 희미한 추억이 되어버렸다. 

- 133쪽 



현재의 아프가니스탄은 어쩌면 갑작스러운 몰락의 과정일 지도 모른다. 한 때의 과거 - 지금보다 훨씬 평화롭고 자유로운 시대를 기억하는 이조차 드물어지고 있다. 이 와중에서 술탄 칸은 아프가니스탄의 문화와 예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적어도 그는 아프가니스탄의 미래를, 자기와 가족의 미래를 믿으며 앞을 향해 걸어나가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런 그도 집안에서는 전제 군주일 뿐이다. 


책을 읽을수록 그들의 삶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으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살먼 루시디나 이슬람 문화권에 대한 적대적인 글들을 발표한 여러 작가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헌책으로만 구할 수 있는 책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읽을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으며, 많은 이들에게 권할 만하다. 적어도 젊은 남녀간의 사랑이 허용된다는 것만으로도 축복받았음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2003년 사담 후세인 궁전 안 뜰에서의 오스네 사이에르스타드 






카불의 책장수 - 10점
오스네 사이에르스타드 지음, 권민정 옮김/아름드리미디어

Comment +2

  • 재밌을 것 같은데... 품절인 모양이군요 ㅠㅠ

    • 아니 딸기님께서!! ㅎㅎ 바쁘시겠지만 번개나 한 번.. 책 구해서 드릴께요. ^^

      예전에 이슬람문명에 대한 책은 한 권 읽었는데, 그건 역사책이었고 이 책은 현재 삶에 대한 책이니, 차원이 다르더군요. 객관적으로 서술해도 이 정도니, 솔직히 답이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의 조선 시대도 그랬을까 하는 생각까지. ~



오스네 사이에르스타드의 <<카불의 책장수>>(권민정 옮김, 아름드리미디어, 2005년)은 책 제목과 달리 아프카니스탄에서의 일상이 얼마나 참혹한가를 보여준다. 그 참혹함 속에서 평온한 일상이 이어지지만, (다들 잘 알다시피) 여성의 삶은 더 참혹해서 자연스럽게 이슬람에 대한 미움 같은 감정이 싹튼다. 그들(일부 이슬람 국가들과 대부분의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어리석음, 종교와 경전에 대한 (무자비한) 축어적 해석과 현실적 상황을 무시한 (강압적/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를 통한) 적용이 책 곳곳에서 드러난다. 


이 책을 읽기 전, 나는 이슬람 여성에 대한 여러 풍문을 들은 바 있다. 야한 속옷이 잘 팔리며 부르카 밑으로 진한 화장을 하고 집 안에서는 화려한 옷을 입는다고. 이러한 풍문은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선입견을 조장하고 이슬람 여성의 시대착오적 삶의 형태에 대해선 무관심하게 만든다. 


실은 그 풍문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들에겐 심각할 정도로 자유가 없음을 알았다. 심지어 친어머니의 명령으로 오빠들에 의해 여동생을 죽이는 명예살인 이야기까지. 결혼은 자신의 의사가 아닌 집안의 결정으로 이루어지며 결혼 후의 개인 생활이란 일체 없다. 더구나 남편이 두 번째 부인을 가지겠다고 하면, 싫어도 어쩔 수 없으며(심지어 남편을 싫어할 경우엔 두 번째 부인이 오는 걸 반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여성들 간의 또다른 일상이 펼쳐진다.  


사이드 바호딘 마지로흐(Sayd Bahodine Majrouh, 1928 - 1988)은 작가이자 정치가로 몽펠리에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몽펠리에 대학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고향 아프가니스칸 카불로 돌아갔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들 중 하나인 카불로. 그리고 그가 정치적, 종교적 이유로 살해당한 후 나온 시집이 <<자살과 노래 Le suicide et le chant, Poesis populaire' des femmes pashtounes>>(갈리마르, 1988)다.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아프가니스탄의 파슈툰 부족 여인들의 구전되거나 창작된 노래들(혹은 시들)을 모은 것으로, <<카불의 책장수>>에는 그 일부만 실렸다. 그런데 그 일부만으로 그 표현들이 의미심장했고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영역본 제목: Songs of Love and War: Afghan Women's Poetry) 


그래서 아래 그 일부들을 옮겨놓는다. 영역본 시집을 구하는대로 다시 한 번 옮겨볼 생각이다. 그리고 이슬람 문화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성찰을 구할 수 있도록 해야 겠다. 




Sayd Bahodine Majrouh 







잔인한 사람들, 당신들도 보이죠.

내 침대로 다가오는 저 늙은이가.

그러면서 내게 왜 우냐고, 왜 머리를 쥐어뜯느냐고 묻는군요.


오, 신이시여, 당신은 제게 또다시 질흑 같은 밤을 주시고

전 또다시 온몸을 부들부들 떱니다.

증오하는 저 침실로 가야만 하니까요.




* *




손을 주세요, 사랑하는 이여, 그리고 우리 함께 초원에 숨어요.

사랑하거나 칼 아래 쓰러지거나 둘 중 하나.


난 강으로 뛰어들죠, 하지만 강물은 날 데려가지 않아요.

내 남편은 운도 좋지요, 강물이 늘 나를 강둑으로 밀어내니.


내일 아침 난 당신 때문에 죽을 거예요.

날 사랑하지 않았다는 말일랑은 부디 마세요. 




* *



장미처럼 아름다웠던 나,

당신 밑에서 오렌지처럼 노랗게 시들어갔네.


난 고통이라곤 몰랐지.

그래서 곧게 자랐지, 전나무처럼. 




*  *




그대 입술로 내 입술을 덮어줘요.

사랑의 말을 속삭일 수 있도록 혀는 놔두고,


어서 날 안아줘요!

그리곤 벨벳 같은 내 허벅지에 휘감겨봐요.


내 입술은 그대의 것, 맛봐요, 겁먹지 말고!

설탕이 아니니, 녹아 없어지지 않는답니다.


그대, 내 입술을 가져요. 

그런데 자극은 왜 하나요, 난 이미 젖었는걸요.


한순간 그대를 쳐다보는 것만으로 

난 그대를 재로 만들 수 있어요. 



    

불어 원서와 영역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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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하는 근본주의자 The Reluctant Fundamentalist 

모신 하미드(지음), 왕은철(옮김), 민음사 




대화체로 이루어진 소설은 종종 군더더기가 있기 마련인데, 이 소설은 깔끔하다. 이야기하는 사람만 있고 듣는 이는 이야기하는 사람의 대화 속에 등장할 뿐이다. 정치적 논란을 불러올 이야기를 매끄럽게 소화시켰다는 점에서 격찬을 받을 만하다. 


하지만 아직 한국은 전 세계 테러 분위기에서 한 발 비켜서 있다. 몇 번의 피해가 있었지만, 이는 전도 지상주의와 경쟁적이고 배타적 신앙심으로 무장한 이들로 인한 것으로 인해, 이슬람 문명에 대해 우리들의 반감은 적다. 


(특정 종교의 경우에는 이슬람 뿐만 아니라 모든 타 종교에 대해 배타적이므로, 이 종교의 문제라고 보는 편이... ) 


이 소설은 파키스탄인의 대화로만 구성된다. 미국과 파키스탄을 오가며 서로를 이야기하는 목소리 속에 고뇌가 묻어나오지만, 동시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느낌이랄까. 말을 하지만 행동은 없다. 어쩌면 소설의 형식 속에서 두 문명 사이에 끼인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 것일까. 사랑도 없고 문학도 없고 떠돌 뿐이다. 모든 일들은 그저 지나간 일들이고 회상될 뿐이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고 그것이 어떤 모습일지 아무도 모른다. 


과격한 이슬람 무장단체의 테러가 일상화되어 버린 미국와 북유럽에서 이 소설이 보여주었던 충격은 상당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역자인 왕은철 교수는 '나의 번역문이 하미드의 세련된 산문을 우리말로 제대로 살려 냈는지 우려되긴 하지만, 그래도 불편한 주제를 흥미롭게 풀어낸 용감한 소설을 소개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역자 후기를 마무리 짓는다. 세련된 산문이라, ... 아마 이 소설에 쏟아진 무수한 찬사는 뛰어난 문장도 한 몫 했을 텐데, 이를 느끼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듯 싶다. 대화체라서 더욱 그럴 듯 싶기도 하고, ... 영어로도 한 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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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보수, 

이상돈(지음), 책세상 





서평집이다. 두껍다. 색인까지 포함하면 700페이지가 넘는다. 하지만 쉽게 읽힌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문제는 '보수'라는 단어인데, 이제는 그 단어가 조금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현실 속에서 생각할 때, 이명박 정권은 보수를 표방하고 들어선 첫 정권이었지만 독단적인 궁정 운영과 부패, 비리 의혹으로 얼룩져 실패한 정권이었다. 박근혜 정권은 그런 오점을 청산하고 태어난 합리적인 보수정부이기를 기대했건만, 지금까지의 결과로 봐서는 더 이상 기대하기가 어려워 보인다. 한 보수정권은 부패했고, 또 다른 보수정권은 무능이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라 생각하니 허무하다. 

- 11쪽 ~ 12쪽  

 

그래서 이 책은 현 정권과 이전 보수 정권에 대한 반성이 담겨 있어야 할 텐데,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이명박 정권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고 박근혜 정권 하의 정책에 대한 언급은 가끔 보이긴 하나, 직접적이지 않다. 아마 이런저런 이해 관계 속에서 공격적인 발언은 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공격적인 비난 뒤에 올 여러 불이익을 감수할 자신이 없었던 듯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책은 그냥 서평집이다. 그것도 보수주의자들이 쓴 원서를 읽고 쓴 서평집(대부분 번역되지 않았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나는 우파다'라고 했더니 내 주위의 진보좌파들이 크게 웃었다. 그러니 다들 나를 진보로 볼 수 있을 텐데(나는 늘 좌파로 보여지는 것에 대해 이상하게 여기지만), 보수주의 저자들 일색인 이 책에 대한 문제적이고 비판적 읽기는 쉽지 않다. 실은 한국에는 보수라고 불릴 만한 이들이 있다면 도리어 '종북좌파'로 불리는 이들이 서구에서 바라보는 바, 보수에 가깝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에서 '보수'라고 하면 새정치민주연합 정도가 될 것이고(중도 좌파가 아니라), 새누리당은 보수정당이라기보다는 뭐랄까, 보수로 포장한 1950년대 정당같다는 느낌. 


저자들은 보수주의란 '중용과 전통, 그리고 합리성을 존중하며, 기존의 문화시스템 안에서 사회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생각'이라고 정의한다. 보수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진화적 변화를 추구하며, 유토피아를 약속하는 정부 정책을 의심한다. 

- 230쪽 (Edwin Feulnet, Doug Wilson, <<Getting America Right: The True Conservative Values Our Nation Needs Today>>(Crown Forum, 2006)에 대한 서평, '올바른 보수정책이 필요하다' 중에서) 



하긴 이 책에서 소개하는 많은 책들과 저자들도 미국 공화당과 보수 정권들에 대해 공격하고 심지어 진정한 의미로 보수정당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할 정도이니까, 한국에서 보수정당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우스운 꼴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책은 읽을 만한가? 솔직히 나는 지난 1주일 동안 이 책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아마 내 주위의 진보주의자들이 읽으면 화들짝 놀랄 만한 내용도 많다. 가령 피터 스와이저Peter Schweizer의 <<내가 말한 대로 해: 진보의 위선적 모습 Do As I Say (Not As I Do): Profiles in Liberal Hypocrisy>>에 대한 리뷰 일부를 옮겨보자. 


진보주의자들은 자신들이 가난한 사람과 소수인종과 여성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정의로운 집단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보수주의자들이 탐욕스럽고 환경을 파괴하며 비윤리적이라고 비난한다. 

- 333쪽 


 한국에서도 그런가? 잘 모르겠다(여기엔 내 개인적 경험까지 포함되어 있다). 일반적인 경우 위의 인용문처럼이겠지만, 한국 사회에선 일종의 희망 사항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미국은 자본가와 군대가 움직이는 '불량배 국가'이고 이스라엘은 '중동의 악'이라고 비난해서 명성을 얻은 MIT 명예교수 놈 촘스키는 전 세계 진보좌파에게 영웅과 같은 인물이다. 그러나 촘스키는 40년 동안 국방부가 MIT에 지원한 암호 개발 프로젝트로 연구비를 받아왔다. 촘스키는 자기가 자본주의의 희생자인 가난한 민중을 대변한다고 주장해왔지만 사실 그 자신은 매우 영악한 자본주의자다. 강연료와 인세 수입으로 인해 그는 소득이 전체 미국민의 상위 2퍼센트 안에 들 정도로 부자이다. 그는 보스턴 근교 레싱턴이라는 부자 동네의 85만 달러가 넘는 호화 주택에 살고 있으며, 케이프코드에 별장도 갖고 있다. 촘스키는 흑인과 여성이 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평생토록 주장해왔지만 정작 자신의 연구 스태프로는 백인 남성만 고용했다. 그는 9.11 태러 후 강연 요청이 많아지자 9,000달러 받던 1회 강연료를 1만 2,000달러로 올렸고, 변호사를 고용해서 자기가 낼 세금을 줄이기에 여념이 없었다고 한다. 

- 334쪽 


내용이 선정적이어서 아마존에 뒤져보니, 표지도 선정적이다. 촘스키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활동하는 유명한 진보주의자들에 대한 실생활을 까고 있다. 리뷰 평점은 나쁘지 않고 2006년 상반기에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기도 했다. 어쩌면 우리도 그렇지만, 미국인들도 진보주의자들(미국에선 liberals)에 이상하게 높은 절약정신과 도덕율을 요구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마존 리뷰를 보니, '부자 리버럴이 보수주의자들보다 훨씬 낫다'며 이 책에 대해 별 하나를 주는 이도 있었다. (그런데 왜 이 책은 번역되지 않는 걸까? 하긴 내 생각엔 자칭 한국에서 보수주의자라고 하는 이들은 책을 거의 읽지 않거나 다들 영어로만 책을 읽어서 그런 듯 싶다)



- 피터 스와이저의 책 표지. 유명한 사람들이 표지로 등장하고 있지 않은가! 



저자는 미국의 급진 세력을 대표하는 이들이 평등, 정의, 소비자 보호, 환경보호, 여성 해방 등을 내걸었지만 정작 자신들의 사생활에서는 철저하게 개인적 이익을 챙긴 위선자들이라면서, 이제 이들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 이와 비슷한 논지의 이야기를 어느 보수신문이 종종 게재했고,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 정치인들도 비슷한 주장을 편 적이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 이후, 적어도 보수 쪽에서는 그런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보수 쪽 사람들의 윤리 수준이 더 낮기 때문이다. 

- 337쪽 



아, 박근혜 정권은 아예 이야기조차 하지 않는 저 센스.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운 일들이 너무 많이 벌어졌으니 말이다(그러면서 보수 정권 어떠니, 종북 좌파 이야기를 해대는 이들을 보면, 할 말이 없어진다).


이 책에 소개되는 책들 대부분은 보수주의적 입장에서 서서 미국과 세계 정세, 미국 정치, 이슬람, 유럽, 금융 위기를 바라보고 있다. 정말 흥미롭게도 그런 책들 일색이다. 이상돈 교수가 선호하는 저자들도 눈에 보이고 책들 중에서는 서로 비슷한 논지에서 중복되는 주장을 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읽는 중간 가끔 같은 내용이 반복되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서 소개되는 책들 대부분이 번역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국 지식인 사회에 국제 정세나 보수주의자들의 세계와는 참 먼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창설 당시 51개였던 유엔 회원국은 1993년 무려 184개국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184개국 중 민주국가라고 할 수 있는 회원국은 75개국 뿐이니, 유엔에 속한 다수의 국가가 독재국가인 셈이다. 

- 447쪽 


아무런 기능도 수행하지 못하는 유엔을 비난하는 책이라든가(부패했던 코피 아난에서 반기문 총장으로 바뀐 지금도 상황이 별반 나아진 듯 싶진 않지만), 세계 정치 구도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책을 소개할 때면 무능하기만 한 한국을 보며 한숨만 나온다. 


파키스탄 대도시에서는 중국 사업가들을 자주 볼 수 있다. 터키와 중국도 급속하게 가까워지고 있다. 에르도안 총리는 중국을 방문했고, 시진핑 중국 주석은 터키를 방문했다. 중국이 터키에 원전과 항국를 건설하기로 하는 등 두 나라의 경제 협력은 공고해지고 있다. 중국과 이란과의 관계도 깊어가고 있다. 중국은 이란이 수출하는 에너지의 최대 수입국이며, 이란은 중국에 에너지를 가장 많이 공급하는 나라이다. 

- 513쪽 



중국은 머지않은 미래에 미국을 능가할 것이고 러시아는 냉전 시대 만큼은 아니라더라도 서유럽과 미국을 긴장시킬 수 있는 파워를 지니게 되었다.  하지만 일본은 강력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중국이나 러시아에 지지 않으려고 할 것이며, 미국으로선 이런 일본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우방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미군은 국가 방위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에 유럽, 일본, 한국 등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을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460쪽 



미군 철수는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이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미국 합리적 보수주의자들의 목소리다. 즉 공화당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나오고 민주당에서도 나오는 이야기다. 밖에서 쓸데없이 돈 쓰지 말고 국내 재정 적자나 줄이고 나라 살림이나 잘해라는 것이 미국 내 지식인들의 바람이라고 할까. 자연스럽게 군비 축소가 이야기될 것이고 주한 미군 감축이나 철수는 미국이 먼저 통보할 것이다. 전시작전권 문제는 국가를 먼저 생각하는 보수주의자라면 당연히 가지고 와야 하는 것인데, 이를 반대하는 게 한국의 자칭 보수주의자들이다. 그 중의 예비역 장성 한 명은 군사 기밀을 미국 회사에 돈을 받고 팔아넘겼으니..., 황당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리고 미국이 강력하게 주한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 걸까? 아마 주한미군 주둔비용 전체를 한국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할 지도 모른다. 우리가 믿는 바 보수정권이라고 했던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미 미국 내에선 세계 여기저기서 치른 전쟁에 대한 저항이 심각하고 세계 곳곳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철수는 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조지 W. 부시는 성급하고도 오만한 전쟁을 벌여서 미국의 국력을 손상시켰고, 오바마는 뒷수습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다음 대통령에게 정권을 물려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이 대외 관계에서 소극적으로 돌아선다면 이 세상 많은 곳이 보다 불안해지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세계를 책임지는 '자비로운 제국Benevolent Empire' 행세를 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하지만 너무나 분명한 것은 더 이상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아니라는 점이다. 

- 519쪽 



그리고 이 책의 상당 부분은 이슬람에 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실은 미국이나 유럽에서 가장 민감한 문제가 바로 이슬람극단주의자들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소개하는 많은 책들은 이슬람극단주의 뿐만 아니라 이슬람이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미국의 정책 실패와 함께 미디어 전쟁에서 미국과 이스라엘, 유대인은 졌고 이슬람이 이겼다고 진단한다. 더 나아가 서유럽 내 이슬람 인구의 증가로 인해 가까운 미래에 유럽 전체가 이슬람 지역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또한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은 다양성, 다원주의, 종교적 자유와 관용을 미덕으로 지키는 진보주의자들의 탓이다. 왜냐면 미국과 유럽의 진보주의자들이 믿는 이러한 미덕이 무슬림에겐 미덕이 아니며, 도리어 미국과 유럽 내에 무슬림 인구가 늘어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또한 흥미롭게도 반유대주의가 서구 진보주의자들에게 넓게 퍼지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이 또한 이슬람 세계에 대한 관용을 핑계로 그들의 말을 그대로 믿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말한다. 이미 여러 차례 반복된 이슬람극단주의자들의 테러로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지만, 유럽 정치인들과 진보주의자들 때문에 무슬림 인구는 서유럽을 장악하고 있으며, 서유럽인들이 믿는 바 그 가치는 조만간 사라질 것이라고.


책이 두껍다 보니, 서평도 길어지는데(실은 짧게 쓸 수 있으나, 시간이 많이 걸리는 탓에 ㅡ_ㅡ;), 그냥 한 번 읽어볼 만하다는 수준에서 마무리할까 한다(아마 손에 들면 놓지 못할 것이다. 자칭 진보주의자들에게 강력 추천한다). 실은 보수주의자들의 책이 거의 번역되지 않았다는 점이 다소 놀랍고(반대로 서구 진보적 지식인들의 책은 곧잘 번역되는 것과는 반대로), 한국에서 제대로 된 보수주의가 자리잡지 못한 것이 어쩌면 현대 한국 사회의 비극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니 이상돈 교수를 야당에서 영입하려는 시도를 하게 되는 것이다(실은 야당이 서구적 의미에서의 보수주의 정당에 가깝지만, 대다수의 한국 사람들은 중도 좌파 정당이라고 오해하고 있으니). 마지막으로 한 문단만 옮긴다. 


우즈는 하이에크가 '호황과 버블 폭발'을 반복하는 경제 사이클의 근본 원인은 중앙 은행에 있다고 설파한 것이 정확한 분석이라고 말한다. 1930년대 대공황 시절, 하이에크는 이자율을 낮춰서 경기 침체를 벗어나려고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했다. 하이에크는 침체Recession, 또는 공황Depression은 잘못된 투자 때문에 생긴 부작용을 교정하는 과정이며, 이를 통해 경제가 제 모습을 바로 찾는 것인데, 이자율을 낮추면 종국적으로 닥쳐올 붕괴Collapse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 뿐이라고 오래 전에 지적했다. 

- 611쪽 



최악의 경제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한국은 몇몇 글로벌 기업에 의지한지 꽤 되었다. 지난 정권부터 유독 심해졌는데,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너도나도 욕을 해댔던 노무현 정부가 그나마 살만했고 이명박 정권 이후는 엉망이 되었는데도 말이다. 더 큰 일은 지금 정부에서 경기 활성화 정책으로 내놓는 것들이 원조 보수주의자라고 평가되는 하이에크가 반대한 정책들이라는 점이다. 정녕 보수 정권인가 싶다. 진보 정권은 더더욱 아닌데 말이다. 


아마 다음 정권은 정말 잃어버린 10년을 되살리기 위해서 고군분투할 것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되살려놓으면, 그제서야 제대로 된 입과 펜을 가지게 된 언론들이 나서서 공격을 해대며 기자라는 자존심으로 펜을 들었다며 으쓱거릴 게다. 그리고 너도나도 비난을 하는 통에 국민들도 함께 욕을 해댈 것이고, 그들이 지금 어떻게 살았는가는 몇 년 후엔 다 잊어버릴 것이다. 이것이 한국 국민들의 잠재력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다음 정권도 계속 소위 말하는 보수 정권(미국의 관점에선 전혀 보수가 아닌)이 잡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 야당은 무조건 다음 대선 때에는 야당이 된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웃긴 짓이다. 그들은 지금 우리 국민들의 잠재력을 오판하고 있다. 화려하게 가짜 보수 정권이 부활하게 될 지도 모른다. 우리의 잠재력은 대단하다. 다들 지금 일동 침묵하고 있지 않은가. .... (아, 나는 정치 블로거가 아니야)


실은 한국은 정말 위험한 기로에 서 있는데, 한국의 자칭 보수주의자들과 자칭 진보주의자들은 정말 상황을 오판하고 있으며 한국의 미래를 진정 걱정하지 않는 듯 보이니, ... 거참, 내가 나라 걱정을 할 판인가. 이제 다시 40대 중반에 실업자 대열에 합류한 판국에. ㅡ_ㅡ;; 






공부하는 보수 - 8점
이상돈 지음/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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