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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반듯이 누워 밑에서 올라오는 열기와 얇게 흔들리는 콘크리트 건물의 건조함에 묻혀 아주 짧게 내 삶을 되새기며 슬퍼한다. 이름 모를 바람이 들어와 잠시 내 몸 위에 살짝 앉았다 지나고, 매 순간 매 순간, 아니 그 때, 그리고 그 때도, 그리고 그 때도, 후회는 대양의 밀물처럼 밀려와 내 마음을 휩쓸고 지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긴다. 그건 피부가 쭈글쭈글해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렇지 않던 곳이 아파지는 것도 아니다. 갑자기 잘 보이던 글자가 흐릿하게 보인다고 해서 나이가 드는 것도 아니다. 나이가 든다는 건, 후회와 한탄이 많아지는 것이다. 젊을 땐 후회스럽지 않던 것이 갑작스레 잘못한 것임을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잘못으로 나이든 지금 아파하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많이 아프다. 


그렇게 우리는 나이를 먹는다. 나이를 먹는다고 마음이 건강해지는 것도 아닌데, 나이 먹는 게 마치 훈장처럼 보일까 고개를 푹 숙이고 걷는다. 조심하게 된다. 함부로 말을 놓지 못하고 깍듯해지려고 노력한다. 늘 배우려고 하고 겸손하려고 하고 말을 아끼려고 한다. 하지만 나이를 먹은 나는, 그것을 무시라고 종종 오해하기도 한다. 


반듯이 누워 천정을 바라보다, 삶과 죽음 사이를 흐르는 시공간과 숨겨진 우주를 생각했다. 현대물리학에선 미래란 이미 정해져있다고 말하지만, ... 나는 한사코 그걸 부정하고 싶다. 다시, 다시, 나이 먹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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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 까페 하나가 생겼다. 몇 번 지인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그 까페 한 쪽 면의 창문들은 어두워지면 저 멀리 63빌딩이 보이고 강변북로를 잔잔하게 물결치는 파도처럼 수놓는 자동차 불빛들이 한 눈에 들어오는 야경을 가졌다. 사무실의 술자리를 줄이니, 동네 술자리가 늘어났다. 동네 술자리가 마음 편하다. 술을 많이 마실 염려도 없고 많이 마시더라도 걸어서 집에 가니 걱정 없다. 


비가 많이 내렸다. 내린 비만큼 내 치아와 잇몸 상태도 엉망이었음을 최근에서야 알았다. 매주 치과에 가서 치료를 받고 있다. 나이가 든다는 걸 마음보다 몸이 먼저 안다. 우리는 나이 드는 훈련을 받지 못했다. 늘 상투적으로 말한다. "몸은 늙었으나, 마음만은 이팔청춘이야"라고. 


그런데 저 상투적 표현이 얼마나 우리 사회를, 우리 마음과 몸을 병들이는가에 대해선 주목하지 않는다. 청춘의 마음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경험해본 이는 다 아는 사실 아닌가. 무수한 도전과 실패로 얼룩져 중년의 몸과 마음까지 영향을 주는 그 이팔청춘! 이팔청춘이 뭐가 좋다고. 


그래, 이팔청춘 시절 그대의 사랑은 행복했나요? 그대의 학창 시절은 즐겁고 유익했나요? 그대의 대학 시절은 바람직했나요?  


제대로 된 사회는 그 나이에 맞는 역할과 책임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제대로 된 역할과 책임에 대해 고민해 볼 시간 없이 오직 대학 입학만을 준비한다. 사춘기의 철없지만 향기롭게 들뜬 사랑에 대해서도 그 어떤 조언도 받지 못하고, 머리 가득하게 퍼지는 성적 유혹에 대해서도 온 몸으로 부딪히며 아파할 뿐이다. 그렇다고 대학이 딱히 나은 것도 아니어서, 그 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건 성적 방종이거나 자유, 혹은 학문 탐구에 대한 무책임함이다. 그리고 이 때부터 갑자기 괴롭히는 것이 생기는데, 그건 취업 준비다. 



이팔청춘이 한참 지난 사람들끼리 모여 앉아 와인을 마셨다. 비는 쉴새없이 내렸고 투명한 유리잔은 채워졌다가 비워지길 반복했다. 말은 끊겼다가 이어졌고 시간은 쉼없이 흘렀다. 어느 새 나이가 들어 이제 살아갈 시간이 살아온 시간보다 적게 남은 우리들에게 청춘이란 무엇일까. 늙어간다는 건 무얼까. 인생은, ... ... 


그저 의미없이 지나갈 뿐이다. 아. 다행이다, 까뮈와 베케트를 읽어둔 것은. 까뮈와 베케트는 내가 젊었던 시절, 이 생이 아무 의미 없음을 알려주었기에, 나는 어떻게든 살아있는 것이다.


치과 치료가 있는 날이면 아련한 고통에 정신이 없다. 진통제를 먹어야 하나. 그나저나 목요일 통영에 가는데, 가서 뭘하지. 회의를 끝내고 뭘하지. 혹시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통영에 사는 이가 없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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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 di Campiano Primitivo Di Manduira 2015 

와인너리 홈페이지 : http://www.contedicampiano.it/en/ 



100% 프리미티보(primitivo) 와인이다(미국의 진판델과 동일한 품종이다). 가벼우면서도 풍성한 느낌을 주는 와인이다. 바디감에 있어서는 약간 부족한 느낌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가격대에서 이 정도의 풍미를 준다면, 누가 마다하겠는가. 국순당에서 수입하고 있는 와인이며, 롯데백화점 와인샵에 가서 구할 수 있다. 


소매 가격이 1-2만원대로 예상된다. 와인바에서 4만원대로 마실 수 있었으니. (저 정도의 소매가격이라면 추천한다!) 


Manduria는 이탈리아 남동부 지역의 작은 도시다. 아래 지도에서 표시된 지역, 타란토Taranto 지방에 위치해 있는 해변도시다.  



아래는 Manduria 지역 사진이다. 가고 싶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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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5일 

혼란스러운 사각형의 냉동, 냉장 공간 탐험 끝에 만난 또띠아, 치즈, 오래된 소시지. 늦은 퇴근. 혼자 식탁에 앉아 먹는 맥주. 어쩔 수 없이 아저씨가 되어가는 밤의 쓸쓸한 어둠.




4월 7일 

#혼술 생활의 연속. 아슬, 아슬, 하늘, 하늘, 흔들, 흔들, 빙글, 빙글, 그렇게 #혼술 #중년  



4월 24일 

혼자 술만 마시다 나이가 들었다는 걸 문득 깨달았을 때, 찾는 건 그 때 그녀,들,목소리,들,그,손길,들,그,술자리,로 이루어진 대명사들. 

책상에 앉아 이리저리 흩어진 내 현재를 추스리다가 '내 길이 뭘까', 하고 생각했을 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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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잠 들었는데, 새벽에 눈을 떴다. 마음이 무겁고 복잡한 탓이다. 

나이가 들면 사라질 것이라 믿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근심 걱정은 더 많아진다. 

내 잘못으로 그런 건지, 아니면 원래 인생이라는 게 이런 건지 모르겠다. 


젊을 땐 내 잘못이 아니라 원래 인생이라는 게 이런 것이라 여겼지만,

지금은 원래 인생이 이런 게 아니라 내 잘못이라 여기게 되는 건 왜 그런 걸까. 

내가 제대로 나이가 들고 있긴 한 건가. 


인터넷을 떠돌아다는 영상이 기억나 다시 보게 된다. 

사랑이라 ~. 

참 미안하고 참 슬프다. 


예능프로라 왁자지껄 웃고 떠드는 사이, 

지나간 사랑에 대한 후회와 회한으로 살아온 지난 세월 사이로 고백하고 되돌이고 싶은 저 노인의 외침이

흰 눈들 사이로 사라진다. 

방송 출연진의 탄식이 흘러나오고 ... ... 

참 미안하고 슬프다. 

그게 첫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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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에 쓴 포스팅이라니. 벌써 12년이 흘렀구나. 함민복과 채호기의 시다. 


*** 2004년 1월 27일 *** 


강화도 어느 폐가에 들어가 산 지 꽤 지난 듯 하다. 세상의 물욕과 시의 마음은 틀리다는 생각에 인적 뜸한 곳으로 들어가버린 시인 함민복. 그의 초기 시들은 무척 유쾌하면서도 시니컬했었는데. 어느 순간 보니 연시들이 많아졌다. 외로워서 그런 걸까. 아니면...


광고를 위해 지은 그의 시 "설중매"는 세상의 술에 취한 영혼을 살며시 깨우고 저기 멀리 달아나는 그리움을 조용히 잡아 세운다.



설중매



당신 그리는 마음 그림자
아무 곳에나 내릴 수 없어
눈 위에 피었습니다.

꽃 피라고
마음 흔들어 주었으니
당신인가요

흔들리는 마음마저 보여주었으니
사랑인가요

보세요
내 향기도 당신 닮아
둥그렇게 휘었습니다.



이 시 때문에 설중매를 얼마나 사 마시려마는, 내 마음 외로운 탓에 차가운 겨울 오후부터 술 생각 동하게 만드는 건 함민복의 시가 가진 힘일 게다. 사랑하는 이가 옆에 있어 술을 마시면 좋을련만, 그 꿈 접은 지 오래. 하지만 꿈을 가지는 상상은 때로 좋을 때가 있다. 그런 상상 속에서 오래된 시 한 편 읽어본다.



몸 밖의 그대 1


1

그대와 마주앉아 그대의 술잔에 술을 따릅니다. 그대의 몸
을 조금씩 채워가는 술. 그대와 마주앉아 내 몸에 따르어지
는 그대를 봅니다. 내 몸 속에 채워지는 그대. 술은 그대 핏
속으로 스며 구멍마다 붉은 꽃송이 내질러 숨막히는 향기로
내 몸을 묶어놓습니다. 그대는 내 몸으로 들어와 영혼을 점
령하고 옴쭉달싹 못하게 합니다.


2

내 몸 속에는 그대가 들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당신을 죽
었다고 하지만 내 몸 속에는 그대가 온전히 살아있습니다.
내가 더 이상 나일 수 없는 슬픔과 절망의 사막에 홀로 버려
질 때 그대는 내 몸을 찢고 밖으로 나옵니다. 내가 그대를
그토록 사랑했듯 그때야 비로소 나는 없고 오로지 그대만이
있습니다.


********


어느새 십이년이 넘어버린 채호기의 시다. 술에 취해 이 시를 읽으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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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마루야마 겐지(지음), 김난주(옮김), 바다출판사 




1. 부모를 버려라, 그래야 어른이다

2. 가족, 이제 해산하자

3. 국가는 당신에게 관심이 없다 

4. 머리는 폼으로 달고 다니나 

5. 아직도 모르겠나, 직장인은 노예다

6. 신 따위, 개나 줘라 

7. 언제까지 멍청하게 앉아만 있을 건가 

8. 애절한 사랑 따위, 같잖다 

9. 청춘, 인생은 멋대로 살아도 좋은 것이다 

10. 동물로 태어났지만 인간으로 죽어라 


- 이 책의 목차다. 정말 이 내용으로만 채워져 있다.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을 언제 마지막으로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의 소설이 국내에 번역 소개된 것도 이십 여년이 지났다. 그의 소설, 투명한 서정성이랄까, 그런 느낌으로 채워져 있지만, 그의 산문은 거침없다. 그가 소설에서 보여주는 문장과 달라, 다소 의외이긴 하지만, 어쩌면 그런 각오로 소설을 써야 된다는 점에서 도리어 감동적인 면까지 있다. 그런 면이 잘 드러난 산문집은 <소설가의 각오>(김난주 역, 문학동네)다. 그리고 이번에 읽은 이 산문집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도 거침없다 못해 도발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렇게 주장하는 것도 가능하다. 식상하다고! 


'부모를 버려라, 그래야 어른이다'나 '가족, 이제 해산하자'는 루소의 <사회계약론> 초반에 언급된 가족 사회, 즉 필요에 의한 계약 관계로만 유지된다는 것과 별반 달라보이지 않았다. 국가가 국민에게 관심 없는 건 다 아는 이야기고 직장인이 노예라는 거나 애절한 사랑에 대한 내용도 다 아는 내용이긴 매 한가지다. 


그런데 이런 식상한 이야기가 마음을 흔드는 건 무슨 까닭일까. 수업 시간에 배우는 내용이 아니라, 마치 술자리에서 인생 선배가 말하는 느낌이랄까. 우리들은 종종 '알아, 그래 알고 있다고'라고 습관처럼 말하지만, 알고 있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알지만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아니 전부이지 않은가. 


이 책을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 적어도 인생이 무의미하기 때문에, 살아볼 만한 것이 된다는 점을 깨닫기 위해서라도.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 8점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바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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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루야마 겐지
    라는 이름 잘 기억해 둘께요
    감사합니다.

    • 이 산문집보단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들이 좋습니다. ~ 산문집은 <소설가의 각오>가 이 책보단 나아요. 그의 소설은 참 서정적인데, 그의 산문은 직설적입니다. ~ 너무 직설적이라서 의외라는 느낌을 읽을 때마다 받아요. ㅎㅎ


상명대 앞까지 걸어갔다. 십 수년 전, 자주 다니던 길이었다. 내가 자취를 했던 곳들 중 많은 곳이 번화해졌다. 가을이면 노란 단풍으로 물들던 신사동 갤러리 길은 이젠 신사동 가로수길로 불린다. 호주로 떠난다는 여자 선배를 보았고 짝사랑하던 여자에게, 마음에도 없는 터무니없는 고백을 하기로 했다. 자취하던 집에서 걸어 3분이면 표갤러리가 있어, 프랭크 스텔라를 보기도 했다. 날카로운 진지함으로 무장한 스텔라는 보는 이의 시각에 도전하며 보는 것, 보여지는 것, 우리가 느끼고 인지하는 것들에 대해 의문을 던지며 미술을 다시 물었지만, 그 때 내가 관심 있던 건 오직 사랑 뿐이었다. 쓸쓸한 사랑.   





이제 자본주의 깊숙한 곳까지 내 몸이 빠져, 나이가 들수록 허우적, 허우적, ... 이젠 그럴 힘조차 없어졌다. 부암동 동사무소에서 내려 환기미술관을 지나 골목 깊숙한 곳에 있던 자취방은 너무 추웠다. 하지만 골목 맨 끝 집, 옆집의 버드나무 잎파리들이 집 뒷마당에 드리울 때의 늦 봄은 너무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청춘은 아니었지만, 그 때 우리 모두는 아름다움을 꿈꾸기에 여념없었다. 그리고 그 쓸쓸한 사랑도, 실패하고 상처입게 될 사랑도, 그 땐 참 아름답다고 여겼다. 





부암동에서 신영동을 지나 구기동으로 ... 이 깊은 곳까지는 아직 상업화의 바람이 들어오진 않았지만, 길을 걸어가면서, 멋진 까페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면 오후부터 영업하는 작은 술집이나. 


우리는 술 속에서 사랑을 찾았고, 술 속에서 사랑을 나누었으며, 결국 술 속에서 사랑을 잃어버렸다. 어쩌면 우리가 그 때 마신 건 차가운 술이 아니라 얼어붙은 숲이었는지 모르겠다. 




마을은 그대로였고 사람들은 변했다. 그리고 나도 허우적거리는 만큼 세상 삶에 대한 이해를 가지게 되었다. 


삶을 이해하는 것과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과는 우리가 믿을 만큼 연관 관계를 찾기 어렵다. 도리어 반대다. 삶을 이해하면 세상을 잘 살아갈 듯하지만, 삶의 이해가 늘수록 세상에서 왜소하기만 나를, 우리를 만나게 되니까. 어쩌면 나이가 들어 스폰지처럼 종교에 빨려들어가는 사람은 삶에 대한 이해와 비례하여 커지는 이 세상에 대한 절망, 탄식, 슬픔 때문은 아닐까. 


말 없이 버스가 지났다. 어쩌면 그 때 사랑을 했던 그녀가 저 버스를 타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수 십 분을 걸어가 길가 카페에 들어갔다. 그러나 여유는 없었다. 마음에도, 몸에도, 지갑에도. 한 잔의 커피 사이로 몇 개의 문장을 노트했지만, ...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읽으니, 너무 형편없다. 


형편 없는 인생이다. 혹은 갈수록 형편 없어지고 있다. 세상의 황혼이 다가오고 보이지 않는 신들은 슬픔에 빠진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 자본주의화되고 있다. 중세말 성직자 자리를 돈을 주고 살 수 있었던 것처럼, 아름다운 사랑도 돈을 주고 살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슬픈 사랑도 돈으로 아름다워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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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보엠 2015.07.29 20:36 신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국내 미술관이 환기미술관인데, 근처에서 지내셨었다니 그저 부럽기만 하네요. 저도 여전히 계산많은 차갑고 건조한 세상을 잠시 떠나 공부를 목적으로 피안의 세계에 들어와 있지만 이곳도 치열하기는 그지 없더군요. 무엇보다 자신과의 대결에서 주도권을 쥐는 게 어려운 것 같아요.

    • 옆에 있을 땐 자주 가지 않고, 도리어 멀리 떨어지니 생각이 나더군요. 그 땐 조용한 동네였는데, 지금은 다소 어수선하게 변했죠. 그래서 주말만 다소 붐빌 뿐, 평일은 여전히 조용한.
      공부도 쉽지 않지요. 특히 인문학은 끊임없이 반성을 요구하며 자신의 생각이나 태도를 뛰어넘어야만 어떤 각성에 이르게 되니 더욱 어려운 듯합니다. 저의 경우에는 20대에 읽었으나, 이해하지 못했던 책들을 이제서야 읽고 이해하게 되더군요. 가끔 대학 권장 도서같은 것을 보며 웃지만, 중고등 논술 권장 도서를 보면 절망하곤 합니다. 그 책들 대부분은 논술을 가르치는 선생들 조차 읽고 이해하기 어려운 책일텐데 말이죠. ~


요즘 페북과 인스타그램에 빠져 블로그짓에 뜸하다. 몇 장의 사진을 올린다. 인스타그램을 한다면, 내 아이디는 yongsup이다. 요즘은 먹스타그램으로 빠지긴 했지만. 




퇴근길, 나이가 들었다. 조금 있으면 사십 중반이 될 텐데, 스스로 아직 청춘인 줄 안다. 밤 11시, 술 생각이 나는 건, 오늘 때문일까, 아니면 내일 때문일까. 아니면 어제들 때문일까. 나이가 들었다. 그러나 질문들은 줄지 않고 믿었던 답들마저 사라진다. 그렇게 나이를 먹었다. 




참 맛없는 치킨 옆의 맥주가 안타까웠다. 참 맛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 대박을 꿈꾸긴 않았지만, 적어도 여유롭게 살 수 있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그건 서울, 한국을 사로잡은 21세 자본주의에서 불가능한 일이었다. 



최선을 다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엉망으로 된 전 회사에서 가지고 온 난 화분들. 화분을 선물 받고 그 화분이 죽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지 않은가.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이 아프지 않았다. 나는 조금은 아팠고 그래서 내가 화분을 챙겨가지고 왔다. 생명에 둔한 사람들은 정말 싫다. 



평창동 밤 10시. 금보성아트센터 앞 평상에서 술을 마시며 예술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술을 알지도 못하면서 나는 예술에 대해서 아는 척 했다. 결국 나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한 채 죽을 것이다. 나는 지금 죽는 연습을 하고 있다.  



동작도서관. 집에 이런 서가를 가지고 싶다. 로또에 걸리면 이런 서가를 꾸밀 수 있을까? 아니면 이런 도서관에 사서로 취직하면 ... 사서로 들어가기도 쉽지 않던데. 사소하게 보이는 꿈이 어쩌면 더 어려운 일이다. 이젠 늙은 장정일의 소설 <<아담이 눈뜰때>>의 첫문장이 떠오른다. 그리고 아담은 젊음을 버리고 그것을 이룬다. 


내 나이 열아홉 살, 그때 내가 가장 가지고 싶었던 것은 타자기와 뭉크화집과 카세트 라디오에 연결하여 레코드를 들을 수 있게 하는 턴테이블이었다. 단지, 그것들만이 열아홉 살 때 내가 이 세상으로부터 얻고자 원하는, 전부의 것이었다. 그러나 내 소망은 너무나 소박하여 내가 국립 서울대학교에 입학기를 원하는 어머니의 소망이나, 커서 삼성 라이온스에 입단하기를 꿈꾸는 어린 사촌동생의 소망보다 차라리 더, 어렵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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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또에 당첨되면 도서관지을수는 없어도

    어지간한 서재와 그 서재를 가득 채울 책은 충분히 사고도 남을 듯...


    힘내요!!

    • 글쎄요.. 서재와 그 서재를 가득 채울 책도 안 될 것같은데요.. ㅎㅎㅎ
      먼저 집부터 사야되나서.. ㅋㅋ 댓글 감사합니다. : )








요즘 듣는 노래다. 
지드래곤의 '삐딱하게' ... 

20살 때 진짜 이렇게 살았는데. ㅡ_ㅡ;; 
나이가 두 배가 된 지금, 다시 삐딱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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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회의를 끝내고 내 스타일, 즉 상대방의 말을 귀담아 듣고 난 다음 판단하려는 이들은 단단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5월의, 낯선 여름 같은 대기 속에 느꼈다, 강남 차병원 사거리에서 교보생명 사거리로 걸어가면서. 


하루 종일 전화 통화를 했고 읍소를 했다. 상대방이 잘못하지 않은 상황에서, 강압적으로 대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어떤 일은 급하게 처리되어야만 하고, 내가 하지 못하는 일이니, 읍소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다수의 외주사를 끼고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내가.


5시 반, 외주 업체 담당자, '내가 IT 개발자 출신인가'하고 묻는다. 차라리 '작업하는가'라는 물음이 나에게 더 어울린다고 여기는 터인데. (* 여기에서 '작업'이란 '예술 창작'을 의미함)


그리고 오늘 '멘탈붕괴'라는 책이 번역되어, 인터넷서점 메인에 걸린 모양이다. 


아버지께서 '갑상선암'으로 내일 수술을 하시고, 아이는 걸렸던 감기에서 어느 정도 회복된 것같다고 한다. 현재 몸담고 있는 프로젝트는 갖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새로운 이슈들을 발굴해내고 있다.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해결해야 될 과제들을 찾아내는 프로젝트가 되고  있다. (변명 같긴 하지만, 다른 이들을 중간에 그만둔 것을 수습하러 들어간 프로젝트이니, 상황이 나쁜 건 애초에 짐작했다.)


그리고 오래 전에 적은 메모를 읽는다. 이런 날, 혼자 앉아 아비정전을 보며 여러 병의 맥주를 마시면 참 좋을 것이다. 젊음은 지지 않는 태양이며, 우리 마음 한 켠의 쓸쓸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태양은 너무 뜨거워 우리는 결코 소유할 수 없는 것이고 쓸쓸함은 끝내 떨쳐낼 수 없으니, ... 어찌해야 되는 것일까. 











2004년 5월 7일 - 낡은, 낡은, 너무나도 낡은 



날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더워지면 누가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하늘에서 비가 떨어졌다. 24살 여름, 견디기 힘든 무료함을 오래된 비디오로 견디고 있었다. 새벽 세시, 네시가 되도록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비디오샵에서 나오지 않고 영화를 봤다. 그 때 날 매혹시켰던 이름들, 아비정전, 레올로, 비포더레인, 희생, 아이다호, 천국보다낯선, 현기증... ... 그 때만 해도 내겐 꿈이 있었다.

 

그 시절, 그 꿈은 너무 견고해서 깨지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 때 날 아프게 하던 여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눈(雪)에 취해, 술에 취해, 내게 마지막 목소리를 들려주고는 떠나갔다. 그녀들이 떠나가고 난 다음 난 아프지 않았다. 그 땐 아무렇지 않았는데, 가끔 생각나면 서글픈 생각이 앞을 가린다.

 

사연 많은 여자들이었고 그 사연에 못 이겨 사연과 함께 거리 속에 묻혀가는 여자들이었다. 내겐 그녀들에게 내밀 손이 없었고 내 얼굴은 착하게 생긴(실제로는 음흉하고 어두운) 가면으로 씌어져 있었다.

 

그 때 아비정전을 봤다. 몇 번을 봤는지 모르겠다. 유덕화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리고 이미 죽어버린 장국영도. 비가 많이 오는 영화였고 무더운 영화였고 이미 지쳐버린 젊음들이 나오는 영화였다. 내가 젊었을 때, 나에겐 이미 젊음이 없었다.

 







"I finally arrived at my mother's house, but she didn't want to see me. The maids told me she no longer lived there.

As I was leaving, I could feel a pair of eyes watching me from behind,

but I was determined not to turn around. I just wanted to find out what she? looked like. Since she wouldn't give me that chance, I wouldn't give it to her ei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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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는 힘
강상중(지음), 이경덕(옮김), 사계절



고민하는 힘 - 10점
강상중 지음, 이경덕 옮김/사계절출판사




 

비가 온 뒤 땅은 굳어지는 왜일까. 사랑했던 연인과 헤어진 다음에서야 우리는 왜 사랑에 대해 (철저하리만큼) 숙고하고 보잘 것없이 여겼던 연애의 기술을 반성하는 것일까. 거친 홍수처럼 세차게 밀려들었던 후회와 끔찍한 반성의 세월을 술과 함께 보내며, 나는 얼마나 많이 ‘철 들지 않는 나’를 괴롭혔던가. (그리고 결국 ‘철이 든다는 것’을 지나가는 세월과 함께 포기했지만)

이 책을 읽게 될 청춘들에게 자이니치(재일한국인) 강상중은 힘들었던 자신의 이야기 너머로 막스 베버와 나쓰메 소세키를 등장시킨다. 이미 베버와 소세키가 죽었던 그 나이보다 더 살고 있으면서(그래서 그는 이 책의 말미에 청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일까).

강상중 교수가 막스 베버와 나쓰메 소세키를 인용하면서, 이 책을 서술하고 있다는 건 의외의 일이긴 하다. 허나 막스 베버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 문학에서 나쓰메 소세키 같은 작가가 있다는 건 정말 기적적인 일이 아닌가!(한국에는 과연 누가 있을까?)

하지만 ‘인간의 마음 자체는 사고하고 성찰하는 데 부적합한 것’(1)일 지도 모르니, 거의 1세기가 지난 지금, 나쓰메 소세키는 세계문학전집에서나 볼 수 있는 과거의 작가이고, 막스 베버는 전공자들에게나 읽히는 사회학자 쯤으로 여겨지는 요즘에, 강상중 교수의 이 책이 이렇게나 많이 팔리고 읽혔다는 건 참 낯선 일이다(그리하여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가 더 많이 읽혔다면 얼마나 좋을까).

삐딱하기만 한 내 눈엔, 저자는 진실한 마음으로 ‘고민하는 힘’을 이야기했지만, 대다수의 독자들에겐 ‘고민하는 힘을 읽은 위안’만 전해준 것은 아닐까. 몸으로 부딪히며 고민하라는 저자의 조언 대신.

현대, 즉 모던(Modern)과 그 이후에 있어서 자신의 문제는 자기에게로 돌아온다(자기반영성의 시대인 것이다). 그래서 데카르트 이후의 우리에게 ‘자아의식(self-consciousness)은 결국 신경쇠약을 낳는다. 신경쇠약은 20세기의 모두가 공유하는 병’(나쓰메 소세키)이 되어, 우리는 그 정신병과 싸우거나, 반대로 그까짓 것 하는 심정으로 ‘본 투 비 와일드(Born to be Wild)’가 되어야 할 것이다(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채 거대한 세상에 끌려 다니다 죽을 수도 있겠지).

강상중의 이 짧은 책은 독자에게 많은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끔 요청하지만, 책은 너무 간략하고 강상중 교수의 문장은 종종 넋두리 같이 들렸으니, 이는 결국 살아가야 하는 건 나이거나 독자이고, 저자인 강상중 교수도 그렇게 살아왔다는 걸까. 

자살을 생각하는 한 여인을 앞에 두고, “죽지 말고 살아야해”라는 소세키의 조언 다음에 나오는 ‘죽음은 삶보다 귀하다’라는 독백은 우리 인생이 어떤 대지 위에 서 있는가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 같아 가슴 아팠다. 이 책 속에서나 밖에서나 삶(인생)의 문제란, 근대(Modern)의 문제이고, 청춘의 문제이며, 젊음의 문제였다. 

그래서 스물 살 때의 고민이나 스물 다섯이나 서른 다섯, 혹은 쉰 다섯이라고 해서 그 고민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며, 자기 삶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이나 질문이 달라지지도 않을 게다. 고민하는 시간이 오래 되었다고,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그 고민이나 의문에 대한 답이 나온 것도 아닐 것이고. 단지 고민과 의문에 답을 구하는 자신의 태도가 달라져 있을 뿐.

결국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고민이나 의문이 아니라 그 고민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가 될 것이니, 비가 온 뒤 땅이 굳어지는 것은, 앞으로 살아가면서 대하게 될 비에 대한 자신의 태도가 달라진 것이고, 잔인한 슬픔을 동반한 헤어짐 뒤에, 새로 만나게 되는 연인에 대해선 과거 자신이 했던 행동과는 다른 태도로 연인을 대하게 될 것이니, 인생은 관객은 없고 오직 주인공만 혼자 이리저리 부딪히고 힘들어하는, 한 편의 잔인한 드라마는 아닐까.(2)

그저 인생은 원래 쓸쓸했고, (주위의 조력자) 없이 고민하는 나로 인해 세상은 조금이나마 살만한 곳이 될 터이니, 나이가 들수록 스스로에 대한 공허한 위로만이 저 차가운 대기를 채운다.

이 책을 감히 추천하기에는, 이 책을 번역한 역자도 나쓰메 소세키를 번역하면서 읽었다고 하니, 과연 이 책이 얼마나 깊은 호소력을 가지게 될 지는 미지수다. 그나저나 막스 베버의 책은 서가 어디에 있는 걸까. 오래 전에 읽었으니, 다시 꺼내 읽어야겠다. (이 책을 읽게 된다면, 다 읽고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를 읽기를!)



1)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블랙 스완Black Swan’(동녁사이언스) 중에서
2) 하긴 이런 경우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는 그의 아버지로부터 ‘인생을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문제들의 99%는 돈으로 해결 가능한 것이다’라고 들었다. 그리고 그는 부자가 되었다. 돈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1%의 문제로 인해 우리의 인생은 파멸을 향해 달려갈 테지만, 이 얼마나 현실적인 답변인가! (출처: 잭 트라우트, 알 리스, '마이 포지셔닝My Postioning'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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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hind Innocence
February 7-25, 2007
갤러리 현대
(* 저작권 관계 상 본 블로그에 있었던 작가들의 작품 이미지를 삭제합니다. 작품 이미지는http://www.galleryhyundai.com/new/kr/exhibitions/past73_1.htm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본 웹사이트는 개인 블로그이며, 올라와 있는 작품 이미지는 비영리적 목적입니다. 하지만 저작권을 득하지 못한 것들이 대부분이므로, 저작권자의 요청이 있을 경우, 언제든지 삭제할 수 있습니다.)

1. 젊다는 것.

젊다는 건 뭘까. 이 물음 앞에서 언제나, 늘 머뭇거린다, 머뭇거렸다.

1994년, 창원, 지방 도시의 거친 먼지를 먹고 자란, 호텔 지하, 나이트클럽에서 나와, 뽀얀 내 손을 잡고 가던 그녀의 찬 손,가락,마디,마디,에서 흘러나오던, 이미 늙어버린 스물 하나의 슬픈 노래 소리. 그 때, 1994년의 추운 겨울 어느 날 새벽.

젊음이란, 적도, 벗도 존재하지 않는, 낙후된 회색 빛깔 지대. 연인은 존재할 수도 없을 건조한 대기로 가득 차 있는 그 곳. 희망도 없이, 절망도 없이, 그저 단조로운 우울함만, 밝게 부서지는 오후 햇살들의 자위행위에 묻어나오던 시절. 차라리 적들로 가득 차 있었다면, 그로 말미암은 적개심으로 나는 이렇게 쉽게 늙지는 않았을 텐데.

2007년 늦겨울 어느 날, 미혼의 서른 중반 나이로, 창원을 향하기 몇 시간 전. 갤러리 현대에 들려 전시 하나를 본다. 그리고 오랜만에 만난 익숙한 젊음.들. 너무 익숙한 나머지, 자연스레 터져 나온 웃음, 또는 울음. 하지만 내가 웃는 동안, 내가 우는 동안, 내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내가 그들, 그녀들을 쫓아내고 난 다음이었거나, 그들, 그녀들이 오기 전 어떤 시공간. 나에게 젊다는 건 이미 지났거나, 아직 오지 않은 어떤 시절인 셈이었다. 그건 공상의 세계이며, 거울 속 공간이며, 유치한 사랑고백이거나 늙음을 피하기 위해, 죽음을 피하기 위해, 아무 의미 없이 가상의 몸짓으로 자신을 치장하는 이들의 세계였다.


2. Norbert Bisky - 달려라, 투명한 대기 속을.

밝고 투명한 Bisky의 세계는 잠시 머물다가 사라지는 젊음의 은유로 구성되어 있다. 그가 그린 얼굴들은 금방이라도 나를 향해 말을 건넬 것 같은 표정으로 햇살이 밝게 비치는 대기 속을 뛰어놀고 있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이 세계에 대해서, 인생에 대해서,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눈앞에 보이는 젊음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몰입은 그로 하여금 어떤 세계관, 어떤 철학의 구현이 아니라 감각적인 기교와 색채로서 표현되도록 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한 순결함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게 된다. 사랑하던, 사랑하지 않던, 태어나서 처음 하는 이성과의 첫 키스가 언제나 매혹적이듯이, 그 매혹의 순간에만 몰입하는 어떤 세계가 있다면, 바로 Bisky의 세계인 것이다.


3. Anthony Goicolea - 순결한 자위

오래된 숲속. 미끈하게 생긴 소년들. 여름 정장에서 흰 셔츠. 목화를 수확하고 양털을 깎고 오징어를 잡아 먹물을 따로 모아 염색을 하고, 강 아래편으로 세 명의 소년이 떠나고 한 명의 소년이 관 속으로 들어가고 한 명의 소년은 관 위에 올라가 강을 따라 내려가고 떠나간 세 소년과 한 명의 소년이 서로 엇갈리면서 만나고.

Goicolea의 사진 작품들은 그의 ‘The Septemberists’라는 30분짜리 필름 속에서 가져온 작품들이다.(*) 모노톤의 필름은 이쁘게 생긴 소년들이 잠에서 일어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비밀스러운 예식을 하는 것으로 끝난다. 모든 하나하나의 장면마다 어떤 설명들을 갖다 붙일 수 있을 정도로, 장면 장면마다 비현실성, 은유, 상징을 드러낸다. 젊은 소년들로 이루어진 이 필름 속 세계는 제의적인 (동)성애로 가득하고 이미 사라져버린 어떤 젊음, 또는 지금 있는 젊음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어떤 열망을 다룬 듯 보인다. 젊음의 나르시시즘은 밝은 햇살 아래 부서지고야 말, 제의적인 열망을 닮아가고 있었다.

4. Martin Maloney - 순수하고 아름다운 유치(幼稚)


그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선 아무런 관심도 없다. 그가 세상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세상이 그에게 관심을 가져줄 가능성은 이미 제로이기 때문에, 세상에 대해 그가 관심을 가진다는 건 불공평한 일이다. 그럴 바에는 좀 더 솔직해지고 좀 더 자유분방해지며 훨씬 더 뻔뻔스러워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21세기형 청춘이 추구할 만한 태도이다. 그리고 이것이 Maloney의 세계다.

솔직히 그의 그림은 아무나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아무렇게 그려진 듯이 보인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찾아나간다. 다행스럽게 그가 보는 세계는 혼란스럽지 않다. 그의 유치함은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에만 열중하며 자신이 원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몰입하는 그의 정직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어쩌면 이것은 현대 영국 미술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 아닐까. 한편으로는 소심해 보이지만, 그 작은 세계 속에서 나름대로의 가치를 찾아나가는 적극성을 보일 때, 그만의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5. 젊음, 그건 이미 부서진 거울.

하지만 이미 젊음 뒤의 어둠이 내리고 그들, 그녀들의 흔적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으니, 젊음은 상상으로 존재하는 것. 이미지로만 존재하는 것. 갤러리 안에만 있을 수 있는 것. 술잔 속에만 있는 것. 찢어진 연애편지 같은 낡은 시집 속에만 있는 것. 그래서 이젠 존재하지 않는 것들. 그러니 이제 그리워하지 않아도 될 어떤 것.들.


* 뉴욕의 패션디자이너 톰 브라운의 협력 아래 제작된 이 필름은, 등장하는 모든 남자 배우들이 실제 패션모델이며 이들이 입은 옷들 모두 올 봄/여름 남성컬렉션 발표를 위해 만든 것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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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창동거리에서 어시장 쪽으로 내려오는 길, 동성동인가, 남성동 어디쯤 있었던 레코드점에 들어가 구한 음반이 쳇 베이커였다. 그게 94년 가을이거나 그 이듬해 봄이었을 게다. 그 때 우연히 구한 LP로 인해 나는 재즈에 빠져들고 있었고 수중에 조금의 돈이라도 들어오면 곧장 음반가게로 가선 음반을 사곤 했다.


어제 종일 쳇 베이커 시디를 틀어놓고 방 안을 뒹굴었다. 뒹굴거리면서 스물두 살이 되기 전 세 번 정도 손목을 그었던 그녀를 떠올렸다. 그리고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삶의 치열함이라든가 진정성 같은 거라든가.


스무살 가득 나를 아프게 했던 이들 탓일까. 아직까지 인생이 어떤 무늬와 질감을 가지고 있는지 도통 아무 것도 모르겠다. 문학도, 예술도 마찬가지다. 이집트 예술가의 진정성과 현대 예술가의 진정성은 전적으로 다른 양식을 향해 간다. 그러니 내가 누군가를 탓할 수도 없고 내가 누군가에게 탓함을 당할 이유도 없다. 나라는 개별자만 있을 뿐, 보편적인 개념으로 날 구속할 순 없다.


그런데 이 얼마나 슬프고 기가 막힌 일인가. 내 삶의 가치나 의미 같은 건 순전히 내 속에서만 존재 가치를 가질 뿐, 이 건조한 도시의 거리에선 아무 가치도, 의미도 가지지 못하는 것이니.


누군가 내 옆에 누워 자기가 누렸던 사랑의 기억을 더듬기 위해 내 사랑의 흔적을 물었던 적이 있었던 것같다. 기억의 아련함. 그 때 내가 한 말은, 사랑은 지나가면 그저 잊혀질 뿐, 그걸 되새기기 위해, 그걸 되돌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 ..., 그런데 과연 그런 걸까. 하긴 그 때 내 옆에 누워있던 그 이는 바로 떠나버렸고 그 이후 소식을 알지 못한다. 그 사람은 누구였을까. 꿈이었던가, 아니면 내가 쓴 소설 속이었나.


과거는 중첩되어 쌓여져가고 가끔 내 마음 안 쪽으로 바람이 불어 들어올 때만 되살아날 뿐이다. 그냥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뿐. ‘이제 네가 싫어졌어. 그 뿐이야’라고 말했던, 나에게 청혼했던 그녀는 잘 지내고 있을까. 가끔 과거는 날카로운 송곳이 되어 내 폐 깊숙한 곳의 H2O를 사라지게 한다. 금세 호흡곤란을 느끼며 자리에 눕는다. 그렇게 누워 남극의 얼음들처럼 천 년이고 만 년이고 그렇게 잠만 잤으면. 우리 인간이 아는 영원함이란 고작 몇 천 년이거나 몇 만 년 수준이다. 영원함이란 애초 존재하지 않는 상상적 개념일 뿐이다. 그러고 보면 그런 상상적 개념은 너무 많고 그런 개념에 목을 매는 꼴이라니.


당인리 발전소 안 길에 벚꽃이 활짝 꽃망울을 터뜨렸다. 하지만 꽃향기는 내 몸에 닿지 못한 채 강바람에 이리저리 날아다니기만 할 뿐이었다. 꽃을 입 안 가득 씹어 먹지 않는 한, 순결한 꽃향기가 먼저 다가와 말을 건네지 않는다. 그리고 말을 건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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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인리 발전소 안의 벚꽃길


오늘 자전거를 샀다. 자전거를 타고 행주대교 옆으로 들어가 강을 따라 올라갔다. 계속. 계속. 가양. 양화. 성산. 서강대교를 지나 여의도로 들어갔다. 여의도를 지나가 한강대교까지 올라갔다. 계속 올라가고 싶었다. 계속 올라가면 양수리까지 이어진다고 했다. 그리고 양수리를 지나 계속 올라가고 싶었다. 계속 오르고 오르면 내가 알지 못하는 그 곳에 가 닿을 수 있지 않을까. 한강대교를 건너 동부이촌동으로 들어와 다시 김포공항 쪽으로 향했다. 나는 지쳐가고 있었다. 그렇게 지쳐갔다. 한강을 보면서 오늘 산 자전거의 이름을 생각해냈다. 소설가 김훈은 그의 자전거를 ‘풍륜’이라고 부른다는데, 나는 내 자전거를 뭐라고 붙여야할까.


내 자전거의 이름은 ‘머저리’다. 너무 좋은 이름인 것 같다. 머저리. 머저리. 머저리. 이 세상도 머저리고 나도 머저리다.


다시 양화대교에서 강을 건너 행주대교 아래까지 왔다. 날은 이미 어두워져있었고 방화동으로 들어가기 전 강가 매점에서 맥주캔 하나를 먹었다. 바람에 내 다리가 흔들거렸다. 아, 머저리를 타면 바람에 흔들거릴 정도로 내 몸도 가벼워진다고 여겼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정말 그랬다.


베란다 화분에 물을 주고 나면 일요일 밤도 자정을 향할 것이고 알게 모르게 월요일이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하루가 가고, 하루가 가고, 그러다 보면 죽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사소한 위안처럼 느껴지는 밤이다. 서글픈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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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화동에서 나오면 있는 강서 한강시민공원. 한강 하구인지라, 좁은 물길을 따라 있는 바다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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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보이는 가양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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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한강시민공원 앞 강물 위의 백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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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르는 내 인생의 카아~를 위한 캔 맥주 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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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난데없이 자전거 가게를 방문한 이에게 팔려 고단한 하루를 보낸 내 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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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 고향 집 근처 어느 거리의 오후


창을 열면 들판이 보이고 멀지 않은 곳에 나무와 풀들로 가득한 숲이 있으리라는 상상을 해본다. 만약 그것이 이루어진다면, 그러면 내 상상력은 좀더 풍성해지고 내 우울함도 가라앉으리라. 내 영혼은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해지고 내 언어는 진실하면서 감동적으로 변하리라.

시간이 흘러 서울로 올라온 지 벌써 12년이 되었다. 그 사이 내 나이는 서른을 넘겼고 부모님은 그만큼 늙으셨다. 고향집 내 작은 방은 가끔 집에 들르는 여동생 내외가 자다가 가는 방, 내가 명절 때 잠시 지내는 방으로 변해버렸다. 그 사이 부모님과 할머니와의 사이는 더욱 나빠져 아흔을 향해 가시는 할머니는 늙은이들이 사는 집의 외딴 섬같이 변해 버렸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꼭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살아남은 한 명의 베로니카가 죽은 베로니카의 집에 찾아가는, 그 때 그녀의 다른 아버지는 혼자 집 서재에 앉아 있었다.

근대적(Modern) 삶 속에서 늙는다는 건 혼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혼자 죽는다. 그건 진리를 파악하는 자로, 이 세계를 인식하는 자로 ‘생각하는 나’를 두었을 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쓸쓸함을 노발리스는 ‘고향상실’이라고 말했다. 신을 믿었던 키에르케고르는 ‘신 앞에 선 단독자’라고 했지만, 여기서도 인간은 혼자다. 포스트모더니즘이란 혼자 있는다는 것이 너무 싫은 인간이 더 이상 진리의 파악도, 이 세계의 인식도 싫어, 싫어라고 외치는 흐름이다. 그래서 모더니티, 즉 근대성은 외로움과 쓸쓸함을 가슴에 앉고 난 이 세계를 알아낼 수 있을거야라고 시작하는 것이라면 포스트모더니티, 탈근대성은 외로움과 쓸쓸함에 지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던 길을 멈추고 자리에 앉아 내가 왜 이렇게 외로워하고 슬퍼하는가가 물어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이는 엉엉 울기 시작한다.

며칠째 슬픔이 너무 밀려들어 견딜 수 없었다. 꿈 속에서 어떤 이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그는 이미 없고 그의 이미지들은 내가 혼자 있다는 공포 속에서, 그 공포에서 도망치면서 축조해낸 것들이었다.
장정일은 80년대 후반 문단에 나오면서 자신은 도망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몇 권의 시집을 내고 몇 권의 소설을 내고 몇 개의 희곡을 내었다. 나에게 아직도 그는 소년처럼 보인다. 중졸이었나. 소년원 생활에다 문제아로 자라난 그였다. 그의 소설 중에 ‘아담이 눈뜰때’가 있다.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내 나이 열아홉 살, 그때 내가 가장 가지고 싶었던 것은 타자기와 뭉크화집과 카세트 라디오에 연결하여 레코드를 들을 수 있게 하는 턴테이블이었다. 단지, 그것들만이 열아홉 살 때 내가 이 세상으로부터 얻고자 원하는, 전부의 것이었다. 그러나 내 소망은 너무나 소박하여 내가 국립 서울대학교에 입학기를 원하는 어머니의 소망이나, 커서 삼성 라이온스에 입단하기를 꿈꾸는 어린 사촌동생의 소망보다 차라리 더, 어렵게만 느껴졌다.”

지금 이 소설을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대학 2학년 때, 내 나이 스물이었을 때 이 소설을 너무 좋아했었다. 한 때 타자기를 가지고 있었고(지금은 노트북을 가지고 있다) 뭉크화집이 있으며 오래된 오디오를 가지고 있다. 음반은 한 육 백장 정도 있고 책은 몇 천 권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내가 가진 물건들이 늘어날수록 내 영혼은 초라해지고 빈곤해지고 슬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내일보다 어제를 떠올리는 시간이 많아지고 겁이 많아지고 뜨거움을 잃어버리고 한발한발 세상으로부터 멀어지려고 노력하는 듯하다. 정말일까.

오후 늦게 외출해 영풍문고 강남점에서 그라모폰 2월호를 샀다. 지금 부록으로 들어있는 시디를 듣고 있는데, 무척 좋다. 이제 수입도 없는 주제에 하는 짓은 여간 고급스러운 게 아니다. 사려고 적어놓은 클래식 음반, 재즈 음반 리스트는 늘어가고 사려고 하는 책도 여럿 된다. 온라인 서점의 wish list만으로도 보통 회사원 한 달 월급이 날아갈 정도다. 그리고 서브시스템으로 사용 중인 오래된 리시버 앰프와 작은 스피커가 마음에 들지 않아 바꾸고 싶고 우드 케이스의 이쁜 턴테이블도 다른 것으로, 보다 좋은 것으로 바꾸고 싶다.

대책 없는 인생을 살고 있는 셈이다. 자기 전에 ‘아담이 눈뜰때’를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 슈퍼에서 사온 맥주 한 병 홀짝거리면서 말이다. 가령 이런 문장들은 지금 봐도 찡하다.

‘우리는 부산행 보통열차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갔다. 가슴에는 창녀의 마음을 안고.’ 

‘내 성감대는 모의고사에 있어. 시험때만 되면 바짝 달아 오르곤 해.’

‘그리고, 끝이었다. 심육일간의 올림픽 일수를 자신의 죽음을 위한 카운트 다운으로 삼았던지, 그녀는 올림픽이 끝난 다음날 저녁, 그녀의 아버지가 지었을지도 모르는 빌딩의, 자신이 애용하던 디스코 클럽의 십층 유리창을 깨고 보도로 떨어져 내렸다.

지방의 석간 식문을 통해 현재의 죽음을 접했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난 것은 그녀의 팬티였다.’

‘- 나는 행복한 거지가 되고 싶은 염세주의자다.
- 우리는 성적 욕구까지 억제하며 떳떳하게 도망을 다녔는데 그게 아니었어
- 경찰놈들, 그렇게 비상을 쳐놓고도 우리를 못 잡으면 간첩은 어떻게 잡느냐.
- 돈 있으면 판, 검사도 살 수 있는 더러운 세상이다. 이 새끼들아.
- 열두 시까지 차를 대기시켜라. 공기 좋은 산이나 강에 가 죽고 싶다.
- 무전유죄, 유전무죄
- 나는 대한민국의 마지막 시인이다.

생으로 중계되는 티브이로 툭툭 던져지는 지강헌의 말을 들으면서, 주위의 많은 사람들은 그를 영웅으로 떠받들었다. 그는 경찰에게 비지스의 <할리데이>가 들어 있는 테이프를 갖다 달래서, 그 노래를 들었다. 그리고 나서 대한민국의 마지막 시인은 자신의 목에 유리를 그었고, 몇 시간 뒤엔 특공대의 총을 맞고 죽었다.’

‘대구에 내려온 나는, 등록금의 매우 적은 일부를 덜어 중고의 사벌식 타자기를 한 대 샀다. 나는 늘 타자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왔고, 스무 살이 되어서야 그것을 갖게 되었다. 나는 이것으로 무엇을 쓸 수 있을 것이다. 편지나, 일기, 아니면 진짜 창작을 말이다. 그리고 만약, 내가 소설을 쓰게 된다면 제일 먼저, 이렇게 시작되는 내 열아홉 살의 초상을 그릴 것이다.

내 나이 열아홉 살, 그때 내가 가장 가지고 싶었던 것은 타자기와 뭉크화집과 카세트라디오에 연결해서 레코드를 들을 수 있게 하는 턴테이블이었다. 단지, 그것들만이 열아홉 살 때 내가 이 세상으로부터 얻고자 하는 전부의 것이었다.’

이렇게 끝나는 소설을 다 읽고 나면 내 슬픈 영혼도 조금의 위안을 얻을 수 있겠지. 아마 얻을 수 있을 거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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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산 그라모폰 잡지.(* 월간 클래식 전문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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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
        오후와 저녁 사이에 난 경부고속도로 위에 있었다. 그리고, 새벽과
     아침 사이 난 중부고속도로 위에 있었다. 시간과 시간 사이를 난 달렸
     다. 그러나 내가 달리지 않더라도 시간과 시간 사이는  물결처럼 흐른
     다. 하지만 난 달렸다. 희망과 절망 사이를.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것인가를 알게 된 순간, 그것
     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는 것을 동시에  알게 되었다. 그리
     고, 이때까지 그 유일한 일을 난 희망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것은 그
     림자일 뿐이다. 희망의 그림자. 난, 아니  프롤레타리아로서의 우리는
     절대로 희망을 가질 수 없다.
        이 세계의 본질은 '절망'이다. 그  절망을 만든 것은 우리들  옆에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우리들이다. 이 세상 어디에도 희망은 없다. 단
     지 희망의 그림자만    존재할 뿐. 절망 속에 갇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글도 사랑도 꿈도 아닌 울음 뿐이다. 울 수밖에  없다. 고개를 숙
     이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울 수 밖에 없다.
        어제 술에 취해 고속도로 위를  달렸다. 달리면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조치원까지 내려갔다가 술에 취해 중부고속도로 위를 질주
     했다. 내 나이 스물 여섯.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희망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눈물 뿐이었다. 이 세상의  본질은 절망이며,
     그 절망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울음 뿐이다.

        02.
        '울음'으로서의 저항? 그럴 지도 모른다. 운다는 것에 소극적인 의
     미의 저항이 숨어있을 지도 모른다. 저항? 그렇다면, 과연  그 저항은
     성공할 수 있을까? 성공한다면 역사는 그것을 '기적'이라고 명명할 것
     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다. 이 어처구니없는 말
     은 부르조아지들이 가난하지만 순결한  젊은 영혼들을 꼬드기기  위해
     만든 말일 뿐이다. 요즘 세상에 함부로 '고생'하면 큰 일  난다. 장애
     자가 될 수도 있고, 순결을 잃어버릴 수도 있으며, 자칫하면  죽을 수
     도 있다. 그러니, 고생하지 않고 편하게 사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편하게 살려면 '돈'이 있어야  된다. 그리
     고, 돈을 벌기 위해서 '죽음'을 각오하고 고생을 해야만  한다. '세상
     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지랄같은 소리다. 세상이 아무리 넓어도 순
     결한 젊은 영혼이 살아갈 만한 곳은 어디에도 없으며, 할 일이 아무리
     많아도 목숨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세상에서 돈을 벌어 편하게
     살려면, 돈이 있어야 된다. 돈이 없으면 돈을 벌지 못한다. 돈이 없으
     면, 돈을 빌려서라도 돈을  마련해야 한다. 돈을 빌리려면,  변변찮은
     담보물이라도 하나 있어야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긴, 죽음을 각오해야지. 그러다 죽어도  책임지지 못해.
     고작 죽는 것뿐인데, 한 번 죽지, 두 번 죽냐."

        03.
        IMF라고 난리다. 그러나, 이것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어딘가 이상
     하다. 돈이 많은 사람은 계속 돈이 많다. 하지만, 돈이 없었던 사람은
     아예 폭싹 내려앉아버렸다. 몇 해전 운동권 후배들과 술을 마셨다. 난
     그때 이 세상이 똑바로 돌아가게  하려면 아예 뒤집어 엎어야  된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데, 이들은  집회 때면,
     쇠파이프와 짱돌과 화염병으로 무장한다). 그렇다. 뒤집어  엎지 못한
     다. 왜냐면, 인간이 뒤집어 엎을 수 있을 만큼 이 세상은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맨날  '투쟁! 투쟁!'을 외친다. 난  그들의
     순진무구함이 역겹다.
        'YS체포대'는 어떻게 되었을까? YS를 체포하면 어떻게  할까? YS를
     어느 대학 학생회실에 감금할까? 아니면, 검찰에 고발할  것인가? 즉,
     'YS체포대'는 정말로 체포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냥 하
     나의 순진한 이벤트일 뿐이다.  그들은 맨날 '정권타도'을  외치는데,
     만약 그들의 소원대로 '정권'이 물러난다면, 어떻게 할까?  새로 내각
     을 만들고 헌법도 새로 고칠까? 즉, 말도 안되는 소리라는 점이다.
        내가 운동권에 대해 이렇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의  팔할은
     순진한 신입생들이 눈에 보이는 불평등한 풍경에만 민감한  반응을 보
     이는 운동권 바보가 되어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정
     작 중요한 것은 그 풍경 속에 감추어진 이 세상의 본질일 것이다.

        04.
        비가 내렸다. 나에게 소설을 가르쳐주신 한 선생님께서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건 '혁명적 낭만주의'라고 했다. 즉, 프랑스  혁명도 그
     런 것이라는 점이고, 4.19가 일어난 것도 그런 것이라는 점이다. 아무
     리 무수한 사람들이 이성적으로 데모를 하더라도 이 세상은 변하지 않
     는다는 점이다. 정작 이 세상이 변하려는 기미가 보였을 땐, 누군가가
     온몸에 기름을 붓고 자살을 하거나, 고층빌딩에서 떨어져 내렸을 때뿐
     이라는 점이다. 그는 그것을 '혁명적 낭만주의'라고  평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제대로 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혁명적  낭만주의는
     이성적이 아니라, 감정적이라는 것이며, 광기의 산물이다.  광기는 필
     연적으로 피를 부르게 마련이다. 피를 부르지 않게 하기  위해 이성적
     인 작업은 계속 필요한 것이다. 여기에서 모던과 포스트모던이 나누어
     진다. 모던을 믿는 이들은 계속 이성적인 작업을 수행하고자  하는 사
     람들이며, 포스트모던을 믿는 사람들은 역사를 통해  이성적인 작업이
     얼마나 무력했는가를 알았으니, 이성을 버리고 광기를 수용하거나, 그
     러지 못할 바엔 아예 자살하는 편이 낫다는 사람들이다.

        05.
        내가 아는 건 별로 없다. 내가 아는 건 지금 비가 내리고, 창 밖으
     로 새소리가 들린다는 것뿐이다. 순간은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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