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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죽은 전원시 




지금 이 시간에 

내 안데스의 사랑하는 동심초와 앵두 같은 리타는 뭘 하고 있을까;

비잔티움은 날 질식시키고

내 몸속엔 풀어진 코냑 같은 피가 잠을 청하는데.


하얀 오후에 속죄의 자세로 옷을 다리던

그녀의 손들은 어디에 있을까;

지금 비가, 내 삶의 의욕을 앗아가는 비가,

가없이 내리는데.


그녀의 플란넬 치마랑 무슨 상관일까;

그녀의 열망; 그녀의 걸음새;

달콤한 사탕수수에 바친 노동.


문에 기대어 황혼 한 줄기를 바라보고 있겠지.

마침내 떨며: "이런 ...... 오늘은 정말 춥구나!"

한 마리 야생의 새도 울겠지, 기왓장 위에서. 


- 세자르 바예호 지음, 구광렬 옮김 



세자르 바예호César Vallejo의 시다.  20세기 남미 최고의 시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한국 독자에겐 생소하다. 나도 십수년 그의 이름을 르네 샤르를 사랑하는 소설가가 쓴 어느 프랑스 소설에서 '세자르 발레조'로 읽었다. 그 이후 잊고 지내다 노트 정리 중에 그를 발견하곤 번역된 시집을 찾았다. 


잠시 집에서 쉬는 어느 아침, 그의 시를 읽으며,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내 삶의 의욕을 앗아가는 비가 내리지도 않는데, ... 이미 사랑은 지나가 잊혀졌는데, ... 세상은 이미 어두워져 포기만이 남았는데, ... ... 그런데도 왜 울컥했던 걸까. 


그래, "이런 ... ... 오늘은 정말 춥구나!" 




세자르 바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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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 10점
로맹 가리 지음, 김남주 옮김/문학동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로맹 가리(지음), 김남주(옮김), 문학동네, 2001

세상에 이렇게 비극적이며 냉소적인 소설가가 또 어디에 있을까. 그리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로맹 가리, 또는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 또한 세상에 대한 끝없는 냉소로 일관하듯이 이 소설집 또한 그러하다. 군데군데 등장하는 유머러스함마저도 로맹 가리의 냉소적인 시선을 배가시킬 뿐이다.

그의 냉소는 어디에서 시작한 것일까. 하긴 우리는 늘 어딘가에 속고 산다. 어린 시절 읽었던 위인전으로부터, 교과서로부터, 하이틴로맨스로부터 속고 청년 시절 사랑스럽던 그녀‘들’에게서 속고 장년 시절 남편에게서, 아내에게서, 직장 상사에게서, 동료에게서 속임을 당한다. 정치인에게서도 속고 장사꾼에게서도, 심지어는 길거리 행인에게서도 속임을 당하기거나 죽을 고비를 넘기기까지 한다. 도대체 태어났을 때, 이 세상에 드디어 존재하게 되었다는 찬란한 신비와 성스러운 기쁨은 다 어디로 가고 끝없이 속고만 사는 걸까.

이 소설집은 몇 편의 ‘속는 것’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다. 그리고 몇 편은 ‘과거를 벗어나지 못하는 노예적 태도’에 대한 것이며 몇 편은 ‘사랑’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결론은 우리는 그 어느 것에도 기댈 곳이 없다는 것이며 그저 무너지기만 기다릴 뿐이라는 것.

참혹함을 기다린다는 것만큼 참혹한 것이 또 어디 있을까. 1980년 12월 2일, 로맹 가리는 권총 자살을 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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