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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밀란 쿤데라, 2009년



* * 


요즘 자주 책을 읽다 사진을 찍는다. 

밀란 쿤데라. 

나는 솔직히 그가 노벨 문학상을 받지 못하는 건 어떤 이유에서일까. 

너무 지적(知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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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ersimmon Tree(감나무)

Sakai Hoitsu 

(Japanese, 1761-1828)

Period: Edo period (1615-1868)

Date: 1816

Culture: Japan

Medium: Two-panel folding screen; ink and color on paper

Dimensions: Image: 56 9/16 x 56 5/8 in. (143.7 x 143.8 cm) Overall: 65 1/4 x 64 in. (165.7 x 162.6 cm)

(c)Rogers Fund, 1957. Metropolitan Museum. 




사카이 호이츠(Sakai Hoitsu)의 작품이다. 타라시코미(Tarashikomi)기법으로 제작된 작품으로 일본적이나, 서구적인 태도가 느껴진다. 19세기 초, 일본에는 이미 서구의 문물이 많이 유입된 상태인 듯 싶다. 사카이 호이츠는 유복한 사무라이 집안에서 태어나 나중에 출가하여 스님이 된다. 타라시코미 기법이 어떤 것인가 검색해 보았더니, 한글로는 푸하, 네일아트가 뜬다. 이는 구글도 마찬가지여서, 타라시코미 기법을 알기 위해선 영어로 검색해야 된다. 한글로 온라인 상에서 구할 수 있는 정보는 종종 천박하기 이를 데 없다. 


타라시코미는 일본 회화의 기법 중 하나로, 첫 채색이 마른 후에 두 번째 채색을 하는 기법이다. 두 번째 채색을 할 때 잔 물결이나 꽃잎 등을 흠뻑 젖게(dripping) 표현하는 게 특징이다. 위 작품에선 감잎이나 감에서 이 기법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얼마 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페이스북에 올라온 작품인데, 내 마음에 들었다. 한 쪽을 여백으로 처리하고, 감나무 하나, 그런데 이 감나무도 나무만 남게 될 암시가 가득한 이 작품은 마치 서양의 바니타스(Vanitas)화처럼, 쓸쓸하게 지쳐갈, 외롭게 죽어갈, 그러나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오게 될 봄을 기다리는 느낌이랄까. 벤야민의 페허 같았다. 


우리는 종종 끝없는 절망이나 견딜 수 없는 우울, 감당하기 힘든 슬픔에 빠지지만, 결국 살게 되고 살게 되는 원천이 이런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떤 심연 속에 빠졌기 때문임을 알게 된다. 그러니 언젠간 봄이 올 것이고 그 때를 위해 고통스럽더라도 현재에 충실하고 오게 될 미래에 대해 생각하자. 어차피 인생은 힘들고 외롭고 쓸쓸한 것이니 말이다. 





참고. 

1) 타라시코미 : http://en.wikipedia.org/wiki/Tarashikomi 

2) 일본 에도 시대의 painting 작품들만 모아 한국에서 전시하면 어떨까? 꽤 흥미로울 것같다. 혹시 진행하게 된다면 내가 가서 자원봉사하겠다. 전시설명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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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한참 든 독신자에게 사랑의 도래는 더 이상 기대되지 않는 선물이다. 기적은 조건을 제시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 '울리카' 중에서, 보르헤스 


새삼스럽게 나이가 든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긴다. 무표정한 행인들의 얼굴 밑으로 주체할 수 없는 표정들의 집합체를 읽어낸다. 실은 내 얼굴도 그렇다. 


주말 동안 틈틈히 보르헤스의 <<셰익스피어의 기억>>을 읽었다. 정확하게 보르헤스의 소설을 집중해서 읽은 건 대학 이후 처음이었다. 중국 속담 중에 '회화는 나이 든 사람의 예술이다'라는 문장이 있다고 데이비드 호크니가 나에게 이야기해주었지만, 나는 '위대한 소설은 나이 든 이들의 위안이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문득 집에서 내 마음대로 문을 잠그고 혼자 있는 공간이 화장실 밖에 없다는 사실이 놀랍도록 슬펐고 놀랍도록 기뻤다.  이렇게 사십 대의 나는 분열되고 있(었)다. 


나이 든 보르헤스는 소설 속에서 끊임없이 자기 자신과 마주하고 있었다. 실은 그것 자체가 은유이고 상징이며 알레고리다. 그리고 그것 - 나는 쪼개져 나들을 바라보며 대화를 하고 있어요 - 을 이야기하는 순간 '위대하고 아름다운 정신병'이 된다.  


무너질 듯 쓰러지지 않는 서가를 바라보고 내가 살아오는 동안 쌓아올린 것들의 부질없음을 보며 ... 약간 외로워졌을 뿐, 주말 (이미 죽은) 보르헤스 氏는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가 죽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는 모두 죽어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잊곤 한다. 

- '더 많은 것들이 있다' 중에서, 보르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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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느와르의 초기 작품들은 정말 매력적이다. 그가 배워왔던 페인팅과 앞으로 나아갈 페인팅이 서로 섞이고, 작품을 통해 성취하고 하는 젊은 열망들이 색채로 뿜어져 나온다고 할까. 한 때 '젊음'에 대한 평문을 쓰고 싶었는데, ... 지금이라면 가능할까. 오랜만에 르느와르 작품들을 찾아 봐야겠다. 





-- 

2003년 11월 28일에 쓴 글. 






Young Boy with a Cat

1868-69

Oil on canvas

43 3/4 x 26 1/4 in (124 x 67 cm)

Musee d'Orsay, Paris 



이 그림을 보면서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를 떠올린 이유는 뭘까. 약간 신비스러워 보이는 이 작품은 르누와르의 초기 작품으로 고양이를 스다듬는 소년의 뒷모습을 담고 있다. 앞의 꽃무늬 천이나 고양이의 처리는 무척 마음에 든다. 그리고 소년의 누드는 무척 이국적이면서 애로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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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답네요..카프카라니,.. 공감입니다. 뭔가호밀밭의파수꾼이 되기전모습이랄까요?^^

    • 그 때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를 읽고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잡지에 글 하나를 썼고요. 그 이후로 하루키를 손에 든 적은 없네요. ㅋ. ~ 호밀밭의 파수꾼은 ... 뭔가 사고 치는 이미지가 떠올라요. 파수꾼 되기 전이라면 ... ㅎㅎ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Tim Eitel - Solo Exhibition

The Placeholders

2011. 9. 2 - 10. 23, 학고재 







(이 철 지난 리뷰를 용서하시길... ) 


현대는 본질적으로 외로운 시대다. 자신만만하던 데카르트적 자아가 그 본연의, 바로크적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사라진 의미 위로 부유한다. 마치 스스로의 결연한 의지로 대화하지도, 타인과의 의사 소통을 하지 않겠다는 식으로 귀에는 이어폰을, 손에는 스마트폰을, 시선은 작은 액정 화면에 고정시킨 이들이 우리는 너무 자주 만나게 된다. 소니의 워크맨이 최초로 나왔을 때, 독일의 '슈피겔'(Der Spiegel) 지에선 "인간 상호 간에 의사소통도 사라질 수 있다"는 심리학자들의 의견을 실었듯이, 그러한 이들이 현대 문명 속에서 소리없이 일어나고 이젠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퍼져있는 것이다. 그리고 시대는 거친 홍수에 떠밀려 대화는 사라지고 외로운 몸짓만 남게 된다. 





팀 아이텔의 작품은 그러한 시대의 반영이라고 할까. 공허해지는 배경 위에 인물이 즉물적으로 놓여진다. 살아있다는 것을 알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혼자 내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거나, 볼을 꼬집어 고통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눈맞춤이거나 대화이다. 


하지만 팀 아이텔의 작품 속에 그것은 빠져있고, 그의 풍부한 회화성 너머 남는 것은 쓸쓸한 현대의 풍경이다. 의미는 캔버스 속에서 추상적인 형태로 깃들고 평면성, 인물의 즉물성, 연극성 등으로 포장된 비평 언어로 포장되겠지만, 결국은 혼자 있음에 대해 그 어떤 반항도 없고 묵묵히 수용하는 현대인의 숨겨진 뒷걸음질이 가지는 슬픔일 뿐이다. 그래서 팀 아이텔의 작품은 매력적인 것일까. 숨기고 싶은 우리 자신들의 모습이니 말이다. 





팀 아이텔,

GfZK schwarz, 

Oil on canvas, 180.3x240cm, 2001 

 




팀 아이텔, 

Schwarzer Sand, 

Oil on linen, 261x189.9cm,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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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제(均齊) - 김수영 展
원앤제이갤러리(www.oneandj.com)
2011.9.1 - 10.2




사각의 캔버스 속, 빼곡하게 들어찬 창들을 가진 건물의 숨소리가 바로 귓가에서 들리는 듯하다. 그건 마치 동물의 피부와도 같다. 마치 거대한 식물의 이파리같다. 현대의 건물들, 정확히 말하면 모던 건축물의 외벽을 옮기는 그의 페인팅(회화)는 딱딱하고 건조하지만, 섬세하고 참을성이 있다.

실은 그의 작품 속에 건물들은 어제 밤에 토라진 애인같다. 그의 작품이 차갑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창이 닫혀 있고 벽만 드러내기도 하지만, 그건 거대한 도시에서 마주하게 되는 차가운 건물이 아니라, 우리 마음 속으로 들어온 살아있는 건물이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 우리가 늘 눈으로 마주하는 존재, 그리고 그것들이 우리 마음 속에 비친 이미지들. 




그는 지금 건물의 마음을 알아내려고 노력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건 미술사적인 접근이 아니라, 그저 눈에 비치는 불가해한 건조함으로 서 있는 현대식 건물에 다가가기 위한 심리적 접근이다. 결국 이 차가움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 가회동에 위치한 원앤제이갤러리는 인상깊은 페인팅 작품들을 선보이는 걸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아마 이는 제 취향과도 맞아 그럴 것입니다. 전시를 지난 달에 보았으나, 이제서야 리뷰를 올리네요. 작품에 대한 글을 쓴다는 건 참 어려운 일입니다. 돈 받고 하는 짓이 아니라고 함부로 쓸 수도 없고, 또 돈 받고 글을 쓰기도 하니, 다소 어쩡정한 글쓰기 모드가 몇 해째 이어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사진은 직접 갤러리에서 촬영한 것입니다.

* 주말미술여행 어플 관리가 요즘 뜸했습니다. 성실히 할 것입니다. ^^


올댓 주말미술여행 출시
미술 전시 정보/리뷰, 미술 서적 및 미술 관련 칼럼 등으로 이루어진 '올댓 주말미술여행'이라는 어플을 출시하였습니다. 이 어플은 SKT의 지원을 받아 TNM에서 제작한 콘텐츠 어플입니다. 매주 업데이트를 할 예정으로 있으며, 금요일이나 토요일, 이 어플로 주말에 가볼 만한 전시 정보를 확인하실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많은 이용 바라며, 주위에도 많이 추천해주세요~.

QR코드: 안드로이드마켓에서 다운받아 설치하기


QR코드: T스토어에서 다운받아 설치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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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구 상에는 얼마나 많은 예술가들과 예술 작품들이 있을까? …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아찔해진다. 내가 읽었고 보았던 작품은 극히 일부였고, 그 일부만으로도 내 삶은 변화되었고 내 마음은 감동받았으니, 나는 내가 변할 수 있고 감동받을 수 있는 무수한 기회를 알고 있으면서도 그 기회를 활용하지 못하니 말이다.

서가에 쌓여있던 종이 뭉치들을 정리하다가 2008년에 있었던 쥴리앙 슈나벨(Julian Schnabel) 아시아 순회전 전시 소개 프린트물을 발견했다. 바스키아의 친구로 더 유명한 슈나벨은 1980년대 미국 New Painting의 대표 작가였다. 지금은 영화감독으로 더 유명해졌지만. (역시 영화는 대중적인 매체다. 네이버에서 검색해보니, 감독 슈나벨로 나오는 것이 더 많구나)

갤러리 현대에서 작성한 전시 소개 글을 옮기면서, 줄리앙 슈나벨의 작품들에 대해 되새겨 본다.

1980년대 미국 뉴 페인팅(New Painting)의 대표주자 줄리앙 슈나벨(Julian Schnabel)의 최초의 아시아 순회 회고전이 열린다. 이번 전시는 9월 베이징(Beijing World Art Museum, 9월 12일 ~ 10월 19일)을 시작으로 홍콩(10 Chancery Lane Gallery, 11월 6일 ~ 11월 27일), 상하이(Shanghai Zendai Museum of Modern Art, 2008년 1월 19일 ~ 2월 18일)를 거쳐 3월 서울(Gallery HYUNDAI, 3월 19일 ~ 4월 6일)에서 전시된다. 이번 전시는 1980년대 전세계인의 이목을 주목시켰던 접시 회화(Plate Painting), 블랙페인팅(Black Painting)을 비롯하여 현재까지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의 대표작 30여 점이 소개된다.

슈나벨은 현재 55세로, 1980년대 미국 뉴 페인팅을 선도하였다. 그는 캔버스 대신 도자기가 붙어 있는 표면, 동물가죽, 벨벳, 타르를 칠한 천 등의 특별한 질감을 가진 바탕에 화려한 색채의 공격적이고 과감한 스타일로 명성을 얻었다. 그의 대형 사이즈의 작품과 매체에 대한 주목이 그를 동시대 미술 시장에서 확고히 자리를 잡게 하였다. 1979년 뉴욕 최고의 화랑 메리 분 갤러리(Mary Boone Gallery)에서의 개인전을 시작으로 국제 미술계에 발을 내딛은 슈나벨의 작품은 전세계 미술관과 주요 컬렉터들에게 소장되어 있다.

슈나벨은 화가로서뿐만 아니라 영화 감독으로서도 명성을 얻었다. 그는 동료 작가 바스키아의 인생을 그린 <바스키아Basquiat>를 연출해 주목을 받았으며, 최근 2007 칸느 영화제에서 <잠수 종과 나비 The Diving Bell and the Butterfly>로 감독상을 수상했다.

이번 아시아 순회전은 서울의 갤러리 현대와 뉴욕의 아트 컨설팅업체인 포춘 쿠기 프로젝트(Fortune Cookie Project)가 공동 기획했으며 슈나벨 작가 스튜디오의 협조로 모든 전시되는 작품은 작가 컬렉션이다.


슈나벨의 작품은 아래 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 갤러리 현대의 쥴리앙 슈나벨 전시 관련 웹페이지
http://www.galleryhyundai.com/kor/exhibitions/introduction.asp?SiteNum=1&ArtistsPK=&ExhibitionsPK=21&iExhibitKind=P 

- 쥴리앙 슈나벨 웹사이트 내 Painting 작품 페이지
http://www.julianschnabel.com/category/paint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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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접적인 언어와 침묵의 목소리
모리스 메를로 퐁티 지음, 김화자 옮김, 책세상


1.
1년 전의 메모를 꺼내 읽는다. 모리스 메를로 퐁티의 ‘간접적인 언어와 침묵의 목소리’. 두 세 번 읽어야 할 책이었으나, 한 번 읽었고 읽은 것을 정리하다가 그만 두었다. 결국 그 정리는 포기하고 읽은 지 1년 만에 간단하게 읽은 바를 적어본다.

메를로 퐁티는 프랑스의 현대철학자로, 현상학에 있어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였다. 특히 그의 예술론은 많은 현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그 영향력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아래는 그 메모의 일부분이다. 내가 쓴 것보다 인용한 것이 많다. 원래는 더 많았다. 퐁티의 글이 짧고 압축된 것이라, 어설픈 리뷰도, 상세한 설명도 어려웠다.

2.
우리가 인식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본다는 것, 느낀다는 것은?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시작되는 의식은? 메를로 퐁티의 철학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의식은 내가 경험한 세계를 다만 정리하고 배치해서 ‘나’의 세계를 만들어 내는 것뿐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에게는 의식하기에 앞서서 세계에의 체험과 감각이 있고 우리의 실존은 ‘생활 세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구체적이며, 매순간적인 체험이라는 것이다.
모든 것에 앞서서 이미 존재하는 세계 속에 사는 ‘나’는 의식과 반성의 결과로 나타난 의미와 관념으로는 이해될 수 없는 존재이며, 따라서 정확한 범위 내에 이루어지는 ‘학문의 세계에 가두어 둘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 세계 속의 ‘나’는 바로 신체를 가진 나로서, 몸 전체로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메를로 퐁티는 ‘신체 없이도 존재할 수 있는’ 순수 의식 대신에 신체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신체적 실존을 말하며, 신체가 직접적으로 체험하는 세계를 ‘지각된 세계’라고 부른다.
신체는 감각을 통해서 외부에 있는 것들을 지각하고 세계와 교류하며 관계를 맺는다. 이에 따르면 신체는 세계를 향한 통로이며, 지각은 곧 세계와의 소통 방식이다.
- '철학 용어 용례 사전', 박해용, 심옥숙 지음, 돌기둥출판사, 2004. 176-177.



3.
책에서 몇 문장을 옮긴다.

사유라는 것은, 사유에 적합한 단어를 찾기 이전에 이미, 우리의 문장이 옮기려고 애쓰는 일종의 관념적인 텍스트로 존재하고 있다. (23쪽)

언어는 기호와 의미 간의 대조표를 전제하지 않고 세상의 어린아이들에게 스스로 자신의 비밀들을 드러내어 가르쳐주는, 완전한 드러냄monstration이다. 언어의 애매함, 집요한 자기 지시, 스스로를 향한 방향 전환과 회귀 등은 언어에 정신적인 힘을 불어넣어준다. 언어는 차례로 사물을 의미로 바꾼 후, 그 안에 사물이 머물 수 있도록 하나의 우주처럼 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완벽한 표현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알게 될 것이고, 결국 모든 언어는 간접적이고 암시적인, 소위 침묵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25쪽)

왜냐하면 기호는 자신의 의미가 드러남과 동시에 사라질 것이고, 사유는 사유들 - 기호를 통해 표현하고 싶어하는 사유와, 지극히 명확한 언어로 형성하려는 사유 - 외에는 다른 어떤 것과도 만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26쪽)

회화처럼 인간과 세계와의 생생한 관계를 통해 드러나는 존재를 무언으로 표현하고, 수많은 해석을 내포해 하나의 의미로 환원되지 못하는 침묵으로 인도해야 한다는 것(19쪽)



4.

이 짧은 책은 퐁티 철학에 대한 충분한 개론서이면서 퐁티의 예술론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하지만 한 번 읽기에는 부적합한 책이었으며, 두 세 번 읽고 노트해야 하는 책이었다. 


간접적인 언어와 침묵의 목소리 - 10점
메를로 퐁티 지음, 김화자 옮김/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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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보러 가지 못한 지 2주가 지났다. 이쯤 되면 몸이 근질근질해진다. 바쁜 회사 생활 속에서 그나마 내가 숨을 쉬고 있구나 하고 느낄 때가 근사한 미술 작품을 만날 때이다. 오늘 아침 출근을 해서 월 회의를 끝내고 잠시 쉬는 동안 페이스북을 훑어보고 있을 때였다.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 페이스북 페이지에 소장품 소개 정보가 업데이트되어 있었다. 그 작품이 바로 아래의 작품이다.

The Great Statue of Amida Buddha at Kamakura, Known as the Daibutsu, from the Priest's Garden


1886년 일본 여행에서 돌아온 뒤, 존 라 파지(John La Farge)가 1887년 완성한 수채화다. 푸른 잎들과 대비되어 드러나는 부처의 모습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부처 앞을 가리고 있는 구조물도 꽤 흥미롭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현장감이랄까, 생생함이랄까.

일본에 있는 저 불상의 실제 모습이 궁금해져, 한 번 찾아보았다.

http://www.panoramio.com/photo/14115988


백 년 수채화와 지금 불상의 모습은 별반 달라지 않았다.

존 라 파지(John La Farge, 1835 - 1910)은 19세기 미국 화가로, 당시 미국에서는 보기 드문 화풍을 선보였다. 유화, 수채화, 잡지나 책의 일러스트, 벽화, 스태인드 글라스 제작자 등을 활동하였으며, 심지어 예술과 여행에 대한 책까지 쓴 다재다능한 예술가로 알려져 있다. 세계적인 명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미국 근현대 미술사에 있어 뚜렷한 흔적을 남긴 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의 또 다른 작품을 보자.


Portrait of Faase, the Taupo of the Fagaloa Bay, Samoa
1881

위의 작품에서도 느껴지듯, 그의 색채는 순박하다. 얇게 깔리는 터치는 부드럽고 순수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편안한 위안이 된다. 부처가 그랬고, 사모아 제도의 원주민이 또한 그렇다. 온라인을 통해서도 가끔 좋은 작품을 만나기도 한다. 그런데, 실제로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미술 작품은 무조건 실제로 봐야 하는 것인데 말이다.  ('순박하다'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시간이 지날 수록 이 단어 말고 다른 단어가 필요할 것같은데... 잘 떠오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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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가는사람 2011.06.01 04:23 신고

    옛날에 티비로 <마리온 이야기>라는 다큐를 봤어요 마리온은 주인공 육지거북이의 이름이에요 섬에 혼자 살고요 슬픈사연을 가진앤데.. 걔가 걸음마하면서 풀 뜯어먹고있는 장면이 제 마음에 박혔어요 ㅋㅋ 제 기억속 그 화면의 분위기가 마치 아랫그림이랑 비슷해요 ㅎ_ㅎ...



Andy Denzler

‘Freeze Frame Paintings’

2011.1.27 – 2.27 

Michael Schultz Gallery Seoul

www.andydenzler.com


늦겨울
햇살이 건조한 바람에 희미하게 갈라졌다. 오랜만에 마이클 슐츠 갤러리에 들렸다청담 사거리에 있는 네이처 포엠 빌딩에 때면 빠뜨리지 않고 방문하는 갤러리로, 독일 베를린, 중국 베이징에도 갤러리가 있다.

그리고 천천히 기억을 더듬었다. 나는 마이클 슐츠 씨를 만난 적이 있었다. 서로 명함을 주고 받았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는 우리에게 갤러리스트로 성공할 있었던 이유로 탁월한 안목을 꼽았다. 좋은 작가의 좋은 작품을 찾아 작품을 원하는 고객에서 소개할 있는 안목. 나는  말을 듣고 기분이 좋아졌지만, 한국에 들어와 부딪힌 현실은 전혀 달랐다. 내 안목에 대한 스스로의 신뢰가 시간이 갈수록 사라졌고, 탁월한 안목만으로 버티기엔 한국은 폐쇄적이고 견고했다.

갤러리에, 낯익은 작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2008 겨울 독일 칼스루헤에서 만났던 작품이었다. 앤디 댄즐러(Andy Denzler).

그의 작품은 언뜻 보기엔 단순하고 평범해 보이지만, 은근히 보는 이의 시선을 자극하며, 적당한 속도로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마치 추운 겨울 바람이 부는 거리를 마주한 까페 창가에 앉아 헤어진 연인의 뒷모습을 보는 듯한 기분이라고 할까.

갤러리의 설명을 옮긴다면 이렇다.

덴즐러는 움직이는 피사체를 순간적으로 정지시켰을 정지된 피사체와 함께 움직임에 따른 잔상이 번져 보이는 모션회화에 기반을 작품을 보여준다. 이러한 이미지는 마치 1960년대 전파의 혼선으로 인해 텔레비전 화면 장면이 순간적으로 흔들리면서 일그러지고, 왜곡되는 현상을 평면으로 옮겨놓은 하다.


하지만 작품 설명이 그리 중요할까. 어려운 단어들로 설명하지 않아도, 덴즐러의 작품은 충분히 대중적이면서도, 작품의 완성도는 뛰어나다. 그만큼 좋다. 현대 평면 회화의 지점을 보여주며, 동안 진행되었던 피사체와 평면성에 대한 탐구를 모으고 있다.

겨울이 가기 전에 앤디 댄즐러를 만나러 가는 길은 즐거울 것이다.

tips. 전시 관람 가이드

네이처 포엠 빌딩에 가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예술에 조예 깊은 사람이 있다. 지하부터 3층까지 유명한 갤러리들이 모여 있는 빌딩은 사랑하는 연인과의 데이트 코스로 손색이 없다. 또한 앤디 댄즐러의 작품은 부드러우면서도 서로의 온기를 느끼게 있을 것이다.

 


 




* 위 사진 이미지는 2008년 아트 칼스루헤(Art.Karlsruhe)에 나왔던 앤디 댄즐러의 작품들이며, 아트페어에서 직접 찍은 사진 이미지임을 알려드립니다. 현재 마이클 슐츠 갤러리 서울에서 전시되는 작품들은 2010년 마이클 슐츠 갤러리 베를린에서 열렸던 개인전 작품들로 현재 앤디 댄즐러의 웹사이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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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DEA
Insane Park
2011.1.28-2.20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


종종 미술 감상에 대해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미술 작품들을 자주 접하라고 할 뿐이다. 귀에 익숙하지 않은 클래식 음악도 자주 듣다 보면, 선율이 귀에 익숙해지고 몇 해 지나지 않아 클래식 음악 팬이 될 수 있듯, 미술 작품도 그렇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은 자기 귀에 익숙한 음악을 자주 들을 수 있지만(다양한 경로와 방법으로), 미술 작품은 그렇지 못하다. 특히 아무리 미디어가 발달한다고 하더라도, 미술 작품 관람을 대신할 수 없고, 실제 작품을 관람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 그래서 무조건 작품을 실제로 보아야 한다. (나는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도 잘 알고 있다)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은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서 내려 정독도서관 올라가는 길목에 있다. 자주 좋은 작품이 전시되는 갤러리임으로 삼청동이나 정독 도서관 인근으로 갈 일이 있다면 아라리오 갤러리에 잠시 들렸다가 가는 것도 좋다.

현재 인세인 박의 전시가 2월 20일까지 열리고 있다.

이 젊은 작가는 검은 색 케이블 전선으로 작업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갤러리 안에서 보는 그의 작품은 자세히 보지 않는 이상, 검은 색 케이블 전선이라고 느끼기 어려울 정도다. 그만큼 케이블 전선이라는 소재를 잘 활용하여 평면 회화가 가지는 회화성을 그대로 표현해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그는 케이블 전선을 깎아 내어 색채를 표현하는데, 이러한 작업은 케이블 전선이 가지는 물질적 속성 위로 현대인의 초상이 펼쳐져 중의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전시 제목이 이를 잘 표현하고 있는 듯 싶다.

이 전시는 현대 미술이 시도하는 새로운 소재, 새로운 표현 기법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으며, 동시에 이러한 소재/기법을 통해 형상화된 초상화가 보는 이에게 어떤 것을 환기할 수 있는가에 대해 깊이 고민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tip. 전시 관람 가이드
검은 색 케이블 전선을 깎아서 만든 작품이라는 점을 유심히 살펴보자. 그리고 현대 미술 작품들이 사용하는 다양한 소재에 대해서 흥미를 가져볼 수 있을 것이다. 작품은 쓸쓸하지만, 소재/기법은 재미있다. 이 점에서 이 전시는 혼자 보러 가기에도 적당하고 여럿이 보러 가기도 좋다. 다만 너무 몰입해서 보지만 않는다면. (참고로 최근은 현대 미술에서 추구하는 초상화 작품들은 대체로 우울하고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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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예술 양식을 이야기할 때, '환영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위의 그림에서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벽화인데, 꼭 창문인 것처럼 그렸다. 그래서 창 너머로 다른 건물이 있는 듯하다. 그 옆의 그림은 꼭 액자 속에 담겨져 있는 듯 하다. 그리고 그 너머에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있는 것처럼 보인다. 2차원의 평면에 3차원의 세계, 그리고 그 세계 너머의 어떤 다른 세계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

오래 전에 업로드한 이미지다. 폼페이 유적에서 나온 벽화 사진으로, 시중에 나온 서양 미술사 책에는 거의 나오지 않는 로마 시대의 회화 양식에 대해서 알게 해준다. 실제 로마 시대 내내 회화는 실내 벽 장식으로 주로 그려졌다. 북아프리카에서는 나무판에 그려진 초상화들도 있지만, 로마 전역에 유행했기 보다는 지역적인 경향으로만 보아야 할 것이다. 

폼페이에서 발굴된 회화들의 특징 중의 하나는 창문 너머에 어떤 세계가 있는 것처럼 그려졌다는 것이다. 또한 원근법과 단축법이 제대로 구현되어 있으며(그래서 원근법이 르네상스 시대의 발명이라는 평가는 잘못된 것이다), 도리어 뛰어난 화가였던 로마인들의 회화 작품들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이 도리어 낯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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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멋지네요.이거 보니까,이스탄불 여행할 때 곳곳에 눈에 띄었던 로마양식 건축물과 벽화들이 기억나네요.^^

    • 이스탄불에서 만날 수 있는 로마양식은 동로마제국, 미술사에서는 비잔틴 양식이라고 합니다. 로마 양식 + 동방 양식 + 기독교 등이 혼합되어 나타난 것입니다. ^^




내 마음 전부를 향기나는 솜털 이불같은 흰 구름 위에 가볍게 놓아두고 싶지만, 올해 들어서 그랬던 적이 언제였는가 싶다. 어쩌다가, 올해 단 한 번도 그랬던 적이 없었던 것같다. 즐거운 마음으로 보러 가던 전시마저도, 이젠 작가들의 작품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 전체를 이해해야만 된다는 강박증을 가지게 되었고, 내가 그들과 함께 하게 되었을 때 내 역할은 무엇일까 고민하고 있었다.

어느새, 인생은 쓸쓸한 꿈 같은 것이고, 사랑은 떠나갈 어떤 것이라는, 바람직하지 못한 기분이 서른 후반의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가끔은 술에 취해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곤 하지만, 바로 다음 날 후회를 하곤 한다. 그 후회의 힘으로 몇 주간 디오니소스의 유혹에 자신을 지키곤 했다.

요즘의 나를 지탱하는 건 과거의 실패와 아픔들이다.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건 사실이지만, 이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기분이 언짢아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어느 일요일, 갤러리 현대에 들려 젊은 날의 오치균을 만났다. 나는 단 번에 그가 그의 몸을 그렸음을 알았다. 

그는 자신과 싸우고 있었다. 자기 인생의 처절함을 느꼈고, 그것과 싸우고 싶었던 것이다. 얼마나 많이 싸웠을까. 그리고 그는 자신에게 승리했을까.


나도 나와 싸우곤 한다. 하지만 매번 나와 싸워, 나는 패하고 만다. 내 쓸쓸함에 나는 지고, 내 고통에 내가 지고, 내 언어에 내가 진다. 결국 끊김 없이 흐르는 내 일상은 지는 나의 무한반복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무한반복의 짧은 틈새로, 보이지 않는 속도로 일어서는 내가 있다.


오치균의 작품을 보면서, 나는 절대로 쓰러지지 않으려는 젊은 날의 오치균을 만나고 있었다.

아직까지 오치균이 자기자신과 싸우고 있을 지 모르겠지만, 젊은 날의 오치균은 그 고통스런 현장 속에서 아름다운 조형의 세계를 찾고 있었다. 아픔, 고통, 쓸쓸함을 아슬아슬한 터치의 색채들로 채워내는 그의 작품을 보면서, 현대 한국의 예술가들과 예술작품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혼자 집으로 가, 혼자 잠을 자게 될 나를 만나고 있었다. 

  




* 위의 글에 사용된 작품 이미지의 저작권은 작가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본 블로그는 비상업적 목적으로 운영되는 곳이며, 저작권자의 요청이 있을 경우, 이미지를 삭제토록 할 것입니다.
* 갤러리 현대의 전시 관련 페이지입니다. 전시된 작품들을 작은 이미지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galleryhyundai.com/ko/exhibitions/introduction.asp?ExhibitKind=P&ExhibitionsPK=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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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아_마지막 한 입-everybody's leaving_캔버스에 유채_225×155cm_2008 



술집 테이블을 가득 채웠던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를 떠나고 그녀도 자리를 떠나려던 차에, 마지막으로 한 입 먹는다. 적당하게 오른 취기와 추운 새벽의 허전함을 텅빈 테이블 위의 남겨진 안주가 조금의 위안이 될 지도 모른다. 그리고 막상 되돌아 생각해보면, 꼭 그럴 때마다 드라이크리닝까지 해서 입고 간 외투에 뭔가 떨어뜨리기 일쑤다. 다음 날 오전, 술자리를 후회하게 만드는 '마지막 한 입'인 셈이다.  

작가는 일기를 쓰듯, 자신의 주변을 기록하고 싶어하는 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회화의 본질은 주술이면서 기록이었다. 뭔가 바라는 마음으로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어두운 동굴 벽에 벽화를 그렸고 근대 사람들은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초상화를 의뢰하였다. 결국 우리는 자력으로 뭔가를 이루지 못할 것을 걱정하고 세월이 흘러 자신의 삶이 어두운 세월의 망각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박진아_긴 저녁_the long evening_캔버스에 유채_168×180cm_2007 


하지만 결국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건 우리 자신의 무력함이다. 자신만만하게 시작되었던 바로크적 근대주의(데카르트)가 현대에 와서 무너지는 것도 이제서야 비로소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반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약간 흐트러진 듯한 작가의 터치는, 마치 이룰 수 없었던 무수한 열망들로 가득찬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쳐나와 이제 적당한 포기와 방기를 의미하는 듯하다. 적당하게 자신을 놓아두고, 주위 사람들을 놓아두고, 세상을 놓아두고, 이제 쓸쓸한 박제가 되어버린 지난 사랑마저 잊어버려고 노력하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회화가 가지는 매력은 캔버스 표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불규칙하고 감정적이며 거친 물감들의, 이제 정지된 채 굳어 있는 어떤 운동에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붓이나 나이프에 물감을 묻히고 자신의 손 끝으로 자신의 감정을 실어 보내는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자신의 영혼을, 자신의 언어를.

그리고 작가는 적당하게 그림을 풀어주고 자기 자신을 놓아두려고 한다. 완결성이란 기계적 폭력성의 다른 표현일 수도 있다. 그러니 디테일보다는 분위기를 잡으려고 하고 그 분위기 속에서 우리 청춘의 무의미한 일상을 쓸쓸하게 담아내려는 것이다.


박진아_김밥먹는 Y_린넨에 아크릴_145×112cm_2004


꼭 사랑을 고백해버리자, 떠나버리는 연인의 뒷모습처럼, 그림은 쓸쓸하고 과거의 어느 때를 회상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것은 후회나 절망 보다는 '멋쩍은 웃음'에 가깝다. 기필코 이루려던 어떤 열망이 실패로 결론나자, 도리어 어떤 자유를 느끼는 것과 비슷하게 박진아의 회화는 일상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지 않고 회화의 깊은 곳까지 탐구하지 않는다.

그래서 회화를 자유롭게 하고 보는 이로 하여금 여유를 갖게 만든다.


박진아_잠 Sleeping at the Corner_캔버스에 유채_100×80cm_2008 


하지만 너무 바쁜 현대인들이 박진아의 작품이 우리에게 주는 여유를 알아차릴 수 있을까. 하긴 그 여유는 적당한 포기와 실패, 자기 삶을 느슨하게 풀어주는 에너지가 있어야만 받아들일 수 있는 종류의 것일 테니.





* 작가 박진아는 1974년 생으로, 서울대 서양학과를 졸업하였으며, 런던 Chelsea College of Art & Design에서 수학하였습니다. 현재는 국내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올해 제가 보았던 여러 작가와 작품들 중에서 좋았던 작가들 중의 한 명입니다.
* 본 블로그는 비상업적인 블로그입니다. 위에서 사용된 작품 이미지는 네오룩(www.neolook.com)에서 가지고 왔으며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작가에게 있습니다. 저작권에 문제가 생길 경우, 삭제토록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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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g Jian,
Bad girl no. 2 
Oil on canvas, 250 x 180 cm. 2006 - 2007



1963년 산둥성에서 태어난 링 지안Ling Jian은 1982년부터 칭화(Qinghua) 대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1986년에 칭화대학을 졸업한 그는 1987년에는 비엔나에서, 1989년에는 함부르그에서, 그리고 2000년까지 베를린에서 살며 작품활동을 했다. 그 이후에는 베를린과 베이징을 오가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로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는 피악(FIAC), 퀼른 아트페어(Art Cologne), 뉴욕의 펄스(PULSE Art Fair), 런던의 프리즈(Frieze Art Fair) 등에 소개되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특히 최근 작품들이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그가 중국 여성들을 그리기 전에는 부처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온라인 상으로는 자세한 정보를 알기 어려웠다).

그는 현대 중국 사회의 개방 속에서 변하는 여성들을 그려내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이 '공산주의자 자매(Communist Sister)' 시리즈다. 섬세하고 정교하게 그려진 그의 작품은 자극적인 색채와 노골적이며 가느다란 눈매, 혹은 육체로 보는 이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종종 최근 유행하는 (하이퍼) 리얼리즘 풍의 작품들 앞에서 나는 말을 잃곤 하는데, 그 이유는 너무 표피적이라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별 깊이있는 내용이나 철학을 담고 있는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나를 자극하고 유혹하고 뭔가 이야기를 꺼낼 듯하면서도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링 지안의 작품은 확연히 틀린 지점을 가지고 있다. 재털이나 얼음 등등을 그리는 한국의 작가들과 확연히 비교되는 점은 링 지안은 적어도 동시대의 중국인을 그대로 마주 볼 수 있으며, 그들 속에 숨겨진 은밀한 욕망을 그려낸다는 것이다(나는 도대체 재털이나 얼음이 그렇게 대접받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특히 공산주의를 일종의 알레고리화시키면서 다분히 정치적인 메시지까지 담아낸다.


Revolution Madonna No. 2, 2008
Oil on Canvas
190 in diameter (75 in in diameter)

Grew Up Under the sunshine- Fang Fang, 2008
Oil on Canvas
250 x 180 cm (98.4 x 70.9 in)

Revolution Madonna No. 3, 2008
Oil on Canvas
250 x 180 cm (98.4 x 70.9 in)


링 지안의 작품을 계속 보고 있자니, 19세기 말에 유행했던 팜므파탈이 떠오른다. 빈분리파의 클림트나 에곤 쉴레의 여성들 말이다. 아마 링 지안의 중국 여성들을, 실제 중국 여성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할까? 혹시 한국의 어느 작가가 링 지안처럼 그렇게 한국 여성들을 표현한다면, 한국의 여성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My sister Lulu, 2006

Mao's Love
Oil and Acylic on canvas
180x150cm, 2006-2007


혹시 미국 LA에 살고 있다면, 이번 달 22일부터 내년 1월 17일까지 DF2갤러리에서 링 지안의 개인전이 열리니, 한 번 방문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 위 작품 이미지들은 www.artnet.com, www.df2gallery.com 에서 가지고 온 것입니다. 저에게는 저작권이 없습니다. 본 사이트는 상업적인 목적에서 운영되는 웹사이트가 아니나, 혹시 저작권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바로 삭제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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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1998년 예술사 수업 과제물로 제출한 리포트이다. 참고용으로 활용하기 바라며, 인용 시 출처를 밝혀야만 할 것이다.


1.
지금 당장 밖에 나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그린다면 그것도 하나의 풍경화(landscape painting)가 될 수 있을까? 가령 건조한 표정으로 서있는 건물들이나 건물 앞 둔탁하게 생긴 구조물과 초췌한 빛깔의 나무들, 혹은 건물들 사이로 보이는 하늘을 그린다면 말이다. 그렇게 해서 풀밭이나 산이나 강을 그린 화가에게 깊은 겨울의 우울함으로 물들어있는 도시의 풍경을 그린 그림을 들이밀면서 '이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화인가요'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나 먼저 우리가 여기에 대해 말하기 위해선 우리가 '풍경화'라고 할 때의 그 '풍경'과 철학이나 미학에서 말하는 '자연'-풍경화의 대상이라고 여겨지는-이라는 단어에 대한 정의부터 내려야할 것이다. 철학에서 '자연nature'은 인간에 의해 변형된 세계 바깥의 그 무언가를 의미한다. 그래서 주로 문명이나 문화의 반대를 뜻하며 특히 루소에게는 시원이자 어머니였으며 개인과 사회의 인습을 대체할 수 있는 모델이었다. 하지만 예술에서의 '풍경'은 우리가 어떻게 자연을 바라보는가에 대한 한 양식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그래서 원근법적으로 구성된 자연의 대상도 '풍경'이며 추상적으로 구성된 자연의 대상도 '풍경'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19세기의 보들레르는 지금 우리에게 삭막하게 보이는 도시를 그린 그림도 '풍경화'라고 말했을 것이다. 아니 19세기의 모더니스트라면 모두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2.
중세적 의미에서의 '자연'은 신적인 것과 대비되어 나타난다. 장원이나 성채, 혹은 도시 주변에 펼쳐진 자연, 정확히 말해 '숲'은 이교적 정신의 소유자들의 도피처였으며, 은둔자들, 연인들, 방랑 기사들, 산적들, 무법자들이 도피했던 곳이다. 자크 르 고프의 말을 빌면, "동방에서는 나무가 문명을 의미했지만 서양에서는 그것이 야만을 의미했다. (... ...) 서양 중세에 있어서 모든 진보는 가시덤불과 소관목, 또는 만일 불가피하거나 기술과 장비가 허용된다면, 거목과 처녀림, 페르스발의 '황량한 숲', 단체의 작품에 등장하는 '침침한 숲'에 대한 개간과 투쟁과 승리의 결과이다."(『서양중세문명』, 문학과 지성사) 즉 후세 사람들 눈에 중세가 어느 정도의 어둠으로 뒤덮여 있다고 믿어지듯이, 중세인들에게 숲은 신의 찬란한 빛이 닿지 않는 않는 곳이었다(낭만주의시대 부활되는 중세란 이러한 숲의 중세였다).

하지만 이러한 중세인들의 일반적인 생각과 조형예술의 영역에서 이루어졌던 풍경의 묘사와는 약간의 거리가 있음을 인정해야할 것이다. 왜냐면 중세의 모든 학예활동이 신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듯이 예술에 있어서의 중세 '풍경'은 중세의 '유비론(doctrine of analogy)'으로 인해 '상징의 풍경(Landscape of Symbols)'이었기 때문이다. 즉 꽃이나 정원, 나무들 모두 종교적 상징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것은 신의 권능을 찬양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러한 상징성은 고딕을 지나면서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한다. 이러한 사라짐과 함께 고대 그리스 이후 잃어버렸던 양식 상의 자연주의도 천천히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우리는 랭부르 형제(Limbourg Brothers)의 <<베리 공의 시력(時曆) 그림>>을 통해서 중세 말의 풍경화가 어떠한 모습을 띄었는가를 대략적으로 알 수 있다. 시기적으로는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화려하게 꽃을 피우던 15세기(꽈뜨로첸토)였지만 그 당시 북유럽은 아직 고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정확히 말해 '국제고딕시대'). 이 그림에서 우리는 자연에 대한 묘사가 이전과 달리 매우 자연주의적이며 세련되어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늘은 본래의 파란빛을 되찾았으며 길과 토지는 섬세하게 표현되어있는 것이다. 즉 여기에서 우리는 고딕 말에 이루어진 자연주의의 회복이란 다름아닌 자연에 대한 관심의 회복(또는 증대)임을 알 수 있다. 아마 근대의 자연과학이란 이러한 관심에서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3.
르네상스의 원근법은 그 당시의 사람들이 자연을 어떻게 바라보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들은 고전적인 자연의 이념이라고 할 수 있는 아르카디아(Arcadia)의 이상을 회복하길 원했고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염원했다. 하지만 현실의 자연은 아르카디아가 아니었고 그 때문에 자연 속에서 인간이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그러한 이상은 명확하고 항구적이라고 여겨지던 기하학에 기초한 원근법으로 반영되었으며 그리고 당시의 풍경화를 특징지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분명하게 이해하고 넘어가야할 사실은 이 당시에 '풍경화'라는 장르는 없었다는 점이다. 그러니 지금 이 글에서 이야기되는 풍경화란 풍경 그 자체를 주제로 한 것이 아니라 인물의 배경으로 사용되는 풍경이라는 것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겠다. 그리고 언제나 고전적 시대에는 풍경은 그리 중요한 주제나 소재가 아니었다. 그러니 보다 고전적이라 여겨지는 피렌체의 화가들보다 상대적으로 덜 고전적이며 색채를 중시했던 베네치아에서 풍경화가 많이 그려졌다. 그리고 이 풍경화들은 한결같이 목가적이며 시적인 분위기를 자아내었고 이상화된 상상의 자연을 묘사하였다(조르조네(Giorgione)나 티치아노(Tiziano)의 작품들).

그러나 북 유럽의 풍경화는 이탈리아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즉 고딕의 자연주의가 더 앞으로 나가 북 유럽에서는 실제 풍경에 대한 묘사로 이어진 것이다. 특히 알트도르퍼(Albrect Altdorfer)의 풍경화가 보여주는 사실성은 베네치아의 그것과는 매우 다르다. 우리가 고전적으로 알고 있는 뒤러마저도 매우 사실적인 몇몇 채색풍경화를 남기고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이러한 풍경화들은 자연에 대한 동경이나 혹은 거부와 같은, 어떤 특정한 세계관에 기초해 있는 것이라기 보다는 고딕 시대로부터 이어진 자연에 대한 관심의 증대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할 듯 싶다. 그리고 몇몇 풍경화들은 '풍속화'나 '지도'의 역할도 했음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4.
바로크 시대에 있어서 가장 고전주의적 면모를 보인 푸생(Nocolas Poussin)에게 있어 풍경은 지극히 인본주의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연에다 '질서와 영속이라는 풍채'를 부여하고자 시도했다. 가령, <포키온의 장례식>(1648)과 같은 그림에서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으며, 자연은 기하학적으로 구성되어 있고 수평선적 요소와 수직선적 요소가 잘 조화되어 균형을 이루고 있다. 푸생은 이런 균형을 얻기 위하여 주로 고대 양식에 따른 건축물과 신전등을 도입하였는데, 이는 의심할 바 없이 이상과 영원함에 대한 감정을 부각시키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하지만 같은 시대 끌로드 로렌(Claude Lorrain)의 그림은 약간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는 시간에 따라 변하는 자연 풍경의 인상을 최초로 표현한 화가였으며(인상주의 화가들이 그랬듯이) 언제나 대상을 감싸고 빛나게 하는 빛으로 가득차 움직이는 대기를 통해 작품의 통일성을 유지하였다.

로렌과 비교해, 아니 전 바로크의 화가들과 비교해도 푸생은 확실히 고전주의적이다. 하지만 르네상스 고전주의자들과는 전적으로 다른 세계관에 기초해있으며 그래서 그에게 있어 아르카디아의 이상이란 한낫 허구에 지나지 않았으며 그 이상향 속에서도 사람은 죽는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아르카디아에도 내가 있다(Et In Arcadia Ego)'라는 작품을 그렸던 것이다. 그러므로 양식 상의 유사점을 들어 상이한 시대의 비슷해 보이는 양식을 동일한 심리적 경향의 반영이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가 어떤 항구적인 것을 염원하였음은 분명하지만 르네상스의 화가들처럼 확고한 것은 아니었다.

5.
바로크가 정지해 있는 것보다는 움직이는 것, 존재보다는 운동에 더 비중을 두었듯이 이 양식에서 보여지는 풍경화는 매우 다양한 모습을 띤다. 그리고 우리가 바로크적 풍경화라고 말했을 때 이 단어에 가장 적당한 그림은 아마 루벤스(Peter Paul Rubens)의 <스텐 성이 있는 풍경>(1636)이 될 것이다. 뵐플린은 여기에 대해 "루벤스는 그것(풍경)을 너무도 판이하게 그려내어 우리는 실제 대상 자체가 다른 것이 아닌가 오해할 정도이다. 지면은 온통 구불구불하게 휘어져 있고 나무줄기는 열정적으로 휘감아 올려져 있는가 하면 잎부분은 하나의 덩어리처럼 다루어져 뤼스데일이나 호베마 같은 화가들은 그에 비하면 극도로 꼼꼼한 묘사가로만 느껴진다"(『미술사의 기초개념』, 시공사)고 말한다.

바로크 시대에 있어서 가장 흥미있는 점들 중의 하나는 네덜란드와 플랑드르의 비교일 것이다. 이는 풍경화에 있어서도 그러한데, 가령 네덜란드의 몇몇 풍경화가들-야콥 반 루이스달(Jacob van Ruisdal), 얀 반 호이엔(Jan van Goyen), 마인데르트 호베마의 작품들과 루벤스의 작품을 놓고 본다면 확연히 구분된다. 네덜란드 풍경화에 대해서 말하기 위해선, 그리고 바로 인접해있으면서 양식상 매우 상이한 것에 대한 의문에 대해선 아놀드 하우저의 견해가 설득력을 가질 것이다. 즉 플랑드르는 구교의 세계였고 네덜란드는 개신교의 세계였으며 시민계급이 주류인 사회였기 때문에 플랑드르와 달리 네덜란드에서는 범속한 시민계급의 취향을 위해 풍경화가들이 많았으며 편안하고 끝이 확 트인 풍경화를 주로 그렸던 것이다.

대체로 바로크 양식의 후기 경향이라고 여겨지는 로코코 시대에 풍경화가 활발하게 그려진 곳은 베네치아였다. 특히 이 도시의 궁전이나 운하, 베네치아인들의 생생한 삶을 묘사한 풍경화를 베두테(vedute)라고 불려졌고 이 그림들은 전 유럽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와 달리 실제의 공간과 상상의 공간이 혼합된 풍경화를 카프리치오(capriccio)라고 불렀는데, 이 양식은 목가적이고 전원적인 풍경을 선호하였고, 환상적인 구성과 장식적인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베두테와 카프리치오만 놓고 비교해본다면 후자가 더 로코코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특히 프랑스의 로코코 화가들이 보여준 페트 갈랑트(fe^te galante)류의 그림들 속에서 우리는 로코코의 화가들이 자연을 어떻게 보았는가를 알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바로크에서의 보여주던 자연에 대한 치밀한 묘사가 다분히 후퇴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 자연은 그 생동감을 잃어버리고 화려하고 다분히 향락적인 색채로 치장되어 있으며 도피적이면서 이국적이다. 우리는 앞에서 말한 바 있는 '아르카디아'가 로코코에 와서 어떻게 변했는가를 유심히 살펴보아야할 것이다. 즉 현실의 색채를 잃어버리고 꼭 꿈에서 보았던 것처럼 한없이 몽환적인 색채를 보이고 있는 로코코의 풍경은 고전적 신념이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가를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실제의 자연 대신 그들은 꿈 속의 자연을 택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6.
풍경화가 현대적인 의미로 이해되기 시작한 것은 낭만주의시대부터이다. 특히 영국의 풍경화가들은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전해주었다. 특히 터너의 경우 인상주의 작품들처럼 대상과 풍경은 구분되지 않는데, 그가 끌로드 로렌을 의식하고 있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이다. 터너는 로렌의 그림이 지니고 있었던 명료함과 구체성, 그리고 고요함을 버리고 동적이며 화려하고 현란한, 그야말로 자연이 모든 것을 삼킬 듯할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존 콘스터블은 언제나 야외로 나가 스케치를 했으며 자신의 눈으로 정직하게 자연을 파악하기를 원했고 그런 그림을 그렸다. 이때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picturesque'라는 단어는 이 당시 영국 풍경화가들의 그림들에게 붙여졌다. 로렌이 상상 속으로 헤매이고 있었다면 콘스터블은 인상주의자들이 했던 방식으로 했던 자신이 바라보는 바의 풍경으로 다가간 것이다. 아마 인상주의자들이 사용했던 주석튜브가 만들어졌다면 그는 야외에서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작품들이 한결같이 자연을 소재나 주제로 삼았다고 해서 자연이 우리에게 친근하게 다가오고 있는 중은 아니었다. 도리어 자연은 인간에게서 멀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빅토르 위고는 <크롬웰 서문>에서 '인간은 지상을 향하여 몸을 구부릴 뿐만 아니라, 자신의 본향인 하늘을 몸을 내던지고 있다'고 말했다. 낭만주의자들은 계몽주의를 거부했으며 합리적이며 과학적인 사고들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고 자연은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될 수 있다기보다는 이해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그 무엇을 의미하였다. 특히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일련의 작품들에서 인간은 보이지 않거나 고작 뒷모습만을 드러낼 뿐이며 언제나 자연풍경은 광대하며 끝없이 이어져 있다.

칸트의 '숭고'는 낭만주의의 풍경화가 무엇을 의도했는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단어들 중의 하나일 것이다. 숭고의 느낌은 무형이나 기형(광대함 혹은 강력함)에 직면할 때 체험된다. 미가 오성과 관계한다면 숭고는 이성과 관계하며 생명력의 일시적 정지에 따른 감동이며 외경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나 낭만주의의 풍경화 속에서 인간은 고전주의가 가지고 있었던 중심의 자리를 상실하고 풍경 속에 묻히거나 그 일부가 된다.

7.
낭만주의가 인간 이성의 한계를 말한 최초의 거대한 흐름이었다면 인상주의는 그것을 극단까지 밀고간 양식이라고 말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18세기 후반 영국 풍경화가들가 인상주의를 잇는 19세기 초의 프랑스의 화가들, 으젠느 들라크르와, 장 바띠스트 까미유 꼬로, 사를르 프랑스와 도비니, 나르시스 디아즈, 귀스타브 꾸르베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대해서 언급하기 시작한다면 이 글은 매우 길어질 것이고 한편으로는 이들이 바라보았던 풍경들은 바로 인상주의의 풍경화로 귀결되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아도 좋을 듯싶다.

이제 '자연 그 자체'란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르네상스 고전주의 화가들의 풍경은 인간의 눈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의 풍경이었지만 인상주의에서의 풍경은 파악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의 풍경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즉 내가 보는 풍경과 네가 보는 풍경은 다르며, 그래서 진정한 자연주의란 한 개인의 감각 경험에 집중하는 것이며 이제 풍경화는 시시각각 변하는 빛의 변화에 충실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 시대, 19세기 후반을 보면서 우리는 자연의 이상성이라든지 숭고함, 또는 루소적인 의미에서의 자연이 사라졌음을 알 수 있다. '존재하는 것은 지각되는 것이다esse est percipi'를 실현하는 인상주의는 자연의 광경을 계속 새롭게 하기 위해서 순간적인 것으로 환원시켜버린다.

발레리가 문학에서 있어서 묘사에 대해서 말하기를, '묘사란 일반적으로, 위치를 바꿔 놓아도 좋은 문장으로 이루어진다. 나는 이 방을 그 순서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일련의 문장으로 묘사할 수 있다. 시선은 원하는 대로 방황한다. 이런 방황보다 더 자연스럽고 더 진실한 것은 없다. 왜냐하면 진실은 우연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던 방식과 똑같이 우리는 인상주의자들의 그림에 대해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드디어 '행동에 의해 지배되는 행동의 종속물로서, 풍경은 멋있는 것이 있는 장소, 몽상의 거주지, 방심한 눈의 즐거움이 된다. 그리고는 인상이 승리한다. 질료와 빛이 지배한다.'(폴 발레리, 『드가, 춤, 데생』, 열화당)

인상주의의 풍경화-모네, 피사로, 드가, 르느와르의 작품들을 정확하게 말하자면 '반자연'적이라고 말해야할 것이다. 즉 자연법칙이란 항구적이지도 불변하는 것이 아니며 자연 그 자체란 인간의 이성으로 파악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자연이란 각각의 개인이 가지고 있는 감각이 구성해내는 각기 다른 자연들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낭만주의자들이 인간 이성에 대한 신뢰 대신, 그 반대 급부로 자리잡은 자연에 대해 한없는 경외감을 품었다면 인상주의자들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가 외부 세계에 존재하는 자연마저 무시하고 아예 '자연은 상상력이 없다'라고 말하는 보들레르나 '예술이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예술을 모방한다'고 말한 오스카 와일드에 더 가까이 있는 것이다.

이제 예술가들이 집중하는 것은 외부 세계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내부 세계로서의 자연이며 그 속에서 풍경화는 구체성 대신 추상성을 띄기 시작한다. 세잔느의 기하학주의는 이러한 경향의 최초의 움직임이라고 말해야할 것이다. 세잔느는 '사람의 얼굴도 하나의 대상으로서 그려져야 한다'고 믿었으며, '예술가는 이 완벽한 예술작품을 쫓아야만 한다. 모든 것은 자연에서부터 나온다. 즉 우리는 자연을 통해 존재하며,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란 오직 자연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파악한 자연은 외부 세계에 있는 자연이 아니라 그의 내부에 있는 자연이었다. 그래서 인상주의 이후의 풍경화를 '내면의 풍경화'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적절해 보인다.


* 보론 - 자연주의에 대하여

자연주의란 사실주의라는 단어에서 가치나 도덕, 혹은 신념 따위를 뺀 용어이며 이 용어 또한 사실주의와 비슷하여 그 명확한 정의를 내릴 수 없다. 하지만 예술사에서 자연주의는 사실주의보다 그 사용이 더욱 빈번하고 위의 글에서는 나는 '자연주의'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으므로 적어도 이 글 내에서 자연주의가 어떤 용례로 쓰였는가를 말해야 옳을 듯 싶다.

자연주의란 이성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기 보다는 다분히 심리적인 그 무엇에 기반을 두고 있는 용어임에 분명하다. 그래서 우리는 사진보다 인상주의의 그림을 더 자연주의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고딕의 조각들이 로마네스크의 조각보다 더 자연주의적인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자연주의적이라고 말할 때 그 기초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것의 기초는 우리의 지각에 있다. 우리가 보는 바 우리의 감각에 더 충실한다면(매우 모호한 표현이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우리에게 더 자연스럽게 보인다면') 그것이 더 자연주의적인 양식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상주의는 '반자연적인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감각으로 받아들였던 자연을, 그들의 작품들을 통해 도리어 자연을 부정한 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부분에서의 '자연'과 '자연주의'를 혼동하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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