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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내 마음과, 내 처지와 다르게, 하늘은 맑고 바람은 불고 대기는 상쾌했다. 아마 누구에겐 이런 날씨가 감미로운 휴식이 되겠지만, 누구에게는 감미로운 불안이 되었을테지. 그 불안 속에서도 다행히 한낮의 더위는 견딜만했고 아침과 저녁의 한기寒氣는 때때로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 마음 위에 앉아 아침 저녁으로 지친 손 두 개를 모으고 신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파스칼Pascal을 읽은 까닭에, '저 끝없는 우주의  영원한 침묵' 앞에서도 놀라지 않았다. 그 동안의 독서가 삶의 고통을 견디게 하는 사소한 위안이 될 것이라 여겨지 않았건만, 예상하지 못한 사이, 다행스러운 일 하나가 더 늘어났다. (이렇게 '다행多幸'이 쌓으면 내 삶도 복으로 가득차게 될 지 모른다)


나이가 들자 눈물이 많아지고 건강은 나빠졌다. 주량은 변함이 없으나, 술친구는 줄고 술 깨는 시간은 늘어났다. 여자친구들은 사라졌고 남자친구들은 만나기 어려워졌다. 때로 술에 취해 전화를 하려고 꺼내지만, 걸 곳이 없다. 그 시절, 그 계절, 그 바람 속에서 건조한 전화기 속에 잘도 숨어있었던 그/그녀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그러나 정신없이 바쁜 탓에 쉽게 감상에 젖지 않는다, 못한다. 



8월의 어느 금요일 동네 근처 공원에 올라가 한강 북쪽을 향해 보았다. 남산타워가 저렇게 보이는 날도 일년에 몇 번 있을까 말까 인데, 그런 날 속에 있었다. 하지만 기쁘지도 슬프지도, 그저 무덤덤했다. 무감각해졌다. 애써 태연한 척했던 것일 지도 모른다.  



그 다음 날, 토요일 오후 약속이 있어 집 밖으로 나서는 길가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하늘 모습이 좋았다. 서쪽 하늘은 들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하늘 아래서 저렇게 노래 부를 일들만 생겼으면 하고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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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듯이 누워 밑에서 올라오는 열기와 얇게 흔들리는 콘크리트 건물의 건조함에 묻혀 아주 짧게 내 삶을 되새기며 슬퍼한다. 이름 모를 바람이 들어와 잠시 내 몸 위에 살짝 앉았다 지나고, 매 순간 매 순간, 아니 그 때, 그리고 그 때도, 그리고 그 때도, 후회는 대양의 밀물처럼 밀려와 내 마음을 휩쓸고 지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긴다. 그건 피부가 쭈글쭈글해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렇지 않던 곳이 아파지는 것도 아니다. 갑자기 잘 보이던 글자가 흐릿하게 보인다고 해서 나이가 드는 것도 아니다. 나이가 든다는 건, 후회와 한탄이 많아지는 것이다. 젊을 땐 후회스럽지 않던 것이 갑작스레 잘못한 것임을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잘못으로 나이든 지금 아파하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많이 아프다. 


그렇게 우리는 나이를 먹는다. 나이를 먹는다고 마음이 건강해지는 것도 아닌데, 나이 먹는 게 마치 훈장처럼 보일까 고개를 푹 숙이고 걷는다. 조심하게 된다. 함부로 말을 놓지 못하고 깍듯해지려고 노력한다. 늘 배우려고 하고 겸손하려고 하고 말을 아끼려고 한다. 하지만 나이를 먹은 나는, 그것을 무시라고 종종 오해하기도 한다. 


반듯이 누워 천정을 바라보다, 삶과 죽음 사이를 흐르는 시공간과 숨겨진 우주를 생각했다. 현대물리학에선 미래란 이미 정해져있다고 말하지만, ... 나는 한사코 그걸 부정하고 싶다. 다시, 다시, 나이 먹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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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내 나이에 놀란다. 때론 내 나이를 두 세살 어리게 말하곤 한다. 내 마음과 달리, 상대방의 나이를 듣곤 새삼스레 나이를 되묻는다. 내 나이에 맞추어 그 수만큼의 단어를 뽑아 지금 이 순간의 느낌 그대로 적어볼까 하는 생각만 하고 있다. 그러게. 아직도 나는 내 글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 않는다. 


나이만 앞으로, 앞으로,  내 글은 뒤로, 내 마음은 뒤로, 내 사랑도 뒤로, 술버릇도 뒤로, 뒤로, 내 몸도, 열정도, 돈벌이도, ... 모든 게 뒤로, 뒤로 밀려나간다. 


한때 꿈이, 이번 생의 끝에서 이 생을 저주하고, 다음 생에선 바다에 갇혀 그 바다에서 나오지 못한 채, 깊은 바다로 내려가 사냥을 하다 홀로 죽는 향유고래가 되고 싶다고 말하고, 적고, 읊조렸다. 그 꿈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한 것이 십 여년 전이다. 아무도 귀 기울이지도 않았고, 기억하지 않았고, 가을에 떨어져 겨울을 뒹굴다 다음 해 봄날 따뜻한 햇빛 속에서 때론 축축하게, 때론 건조하게 썩어들어갈 이파리를 그 꿈은 닮았다. 


다행히, 그런 이파리를 닮은 바다표범이 수조를 헤엄치는 모습을 보자, 내 마음이 놓였다. 잠시 눈을 감았다. 그 수조 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말을 잃었고 얼굴을 잃었고 사랑을 잃었다, 그러자 물 속 자유를 얻었다,고 상상했지만, 계속 눈을 감고 있을 순 없다, 없었다.


 


어느 토요일 오후, 가족과 함께 한강대교까지 걸어가 칼국수를 먹었다. 거리는 고요했고 마음은 황폐했다. 대기는 건조했고 높은 하늘은 나에게, 우리에게 무관심했다. 



하지만 무관심할수록 매력적인 하늘은, 때론 우리를 기분좋게 한다. 그게 참 짧은 순간일지라도. 그렇게 오후가 가고, 또 오후가 가고. 어린 아이는 흑석동과 본동 사이의 숲에서 이루어질 숲 체험 교실을 기대하고 있었다. 도시에서의 유년기란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나에겐 없는 풍경이다.


나에겐 있고 당신에 없는 걸 내가 줄 수 있으리라 여겼지만, 알고 보니, 내가 가지고 있는 건 거의 없었다,는 걸 태어난 날보다 죽을 날이 더 가까운 어느 날 새삼 깨닫게 되었다. 4월, 5월, 내내 제안서만 쓰고 프리젠테이션만 하다 시간을 보냈다. 어떤 회사로의 이직은 계속 연기되다가 결국 물거품이 되었고, 그 일 여년 사이 두 세 군데의 입사 제의를 거절한 것을 후회하게 될 줄 몰랐다. 


많은 일들이 어긋나기 시작했고, 진행 중이고,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어느 중년의 봄날들 사이, 방통대 영문과 졸업 논문은 스케치만 하다 결국 작성하지 못했고, 어떻게든 마무리해보겠다는 생각만으로 <<Shakespeare and The Mannerist Tradition>>을 주문했다. 여름이 오기 전에 '제안서 쓰는 법'을 사무실 멤버들에게 강의할 예정이고, 그리고 나는 꿈을 꿀 것이다. 그런데, 


나는 어떤 꿈을 꾸어야 할까. 향유고래는 이미 죽었고 내 마음은 식었다. 그 이전의 기억은 나지 않고 그 때를 수놓았던 무수한 단어들은 공기 속에 묻혀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투명해졌다.  


방통대 졸업 논문 스케치 속, 멕베스는, 그 가련한 멕베스는 마녀들의 예언에 자신을 놓아버렸다. 마녀들의 예언은 실현되지만, 그건 그리스 비극의 신탁이 아니다. 신탁 앞에서 비극의 영웅은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장엄하게 자신의 고결함을 지키지만, 멕베스는 마녀들의 예언 위에서 잃어버린 자신을 찾지 못한다. 고대의 운명과 근대의 운명이 확연하게 갈라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멕베스를 마주 하면서 드는 그 아련한 불쾌감은, 외부의 힘에, 유혹에 끊임없이 흔들리는 나와 닮아있어서 그런 걸까. 


 


늦은 5월의 수요일, 아침부터 덥다. 그대 목덜미도, 내 손도, 당신의 구두도, 내 마음도 쓸쓸한 땀으로 가득 찬다. 두 손을 모아, 행복한 일들이 연거푸 일어나길 기도한다, 마음 속으로, 이 비정한 도시가 떠나갈 정도로 큰 목소리로 외친다, 외치고, 외치지만, 아무도 들리지 않는, 들을 수 없는, 그리고 흔적이 남지 않을 그 소리만 가득 안고 오늘 하루을 산다. 그렇게, 당신과 똑같이, 그렇게 하루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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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쓰진 못했지만, 가을과 겨울 사이 몇 권의 소설들을 읽었다. 루이지 피란델로의 <<나는 고 마티아 파스칼이오>>, 미셸 우엘벡의 <<지도와 영토>>, 조나선 사프란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모신 하미드의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김연수의 <<7번 국도>>.  이 밖에도 몇 권의 책을 읽었고 짧게나마 리뷰를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글은 형편 없고 독서의 질은 끝 모를 바닥으로 떨어졌지만, 책을 읽긴 했다. 의미과 무의미 사이에서 길을 잃어버린 독서였다. 왜 나는 갑자기 이렇게 소설책들을 많이 읽게 된 것일까. 


원하지 않는 일들이 연거푸 초가을부터 초겨울 사이 일어났다. 주말 없이 사무실에 나가고, 밤 늦게 퇴근하는 생활이 반복되었고 욕 먹으면서 일을 했다. 협력업체 직원들은 급여가 밀렸고, 그들과 함께 일하는 나는, 그들의 불성실함 대신 출근하지 않는 불상사를 염려했다. 실은 이때 반대로 움직여야만 했는데, 그러질 못했고 그럴 형편도 되지 않았다.


내가, 우리 팀이 맡은 부분은 종속적 시스템인지라 타 시스템이 끝나야만 처리되는 일이었지만, 다른 시스템들은 우리와 무관하게 미궁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는 사이 아버지께서 입원하셨다. 고향에서 서울로, 다소 생소한 병명으로 송파구에 있는 큰 병원으로 와서 수술 준비에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일을 그만둔다고 했다. 여의도 사무실과 서울 동쪽 끄트머리 병원을 오가는 생활을 몇 주간 했다. 그 사이 회사에선 나를 대신할 사람을 찾았다. 


그러나 일을 그만두지 못했고 대신할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스럽게 수술은 잘 끝나, 아버지께선 다소 고통스러우나, 약간의 희망을 얻을 수 있는 방사선 항암치료를 받고 계신다. 


그렇게 가을이 지나 겨울이 왔다. 미궁으로 빨려들어가던 주 시스템 개발은 제자리로 돌아왔고 프로젝트는 내가 맡은 부분만 남는 상황이 되었다. 스트레스와 부담감은 끝없이 치솟았고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이들마저 그만 두겠다고 나에게 이야기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거의 없(었)다. 그냥, 계속 해왔던 것처럼 욕 먹으면서 일 하는 것. 


이전 회사들을 다니면서 WLB(Work-Life Balance)를 이야기하곤 했는데, IT 프로젝트들 중에서도 최악이라고 알려진 금융권 차세대 프로젝트에선 '일과 일상 사이의 조화'란 불가능하다, 불가능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이상한 상황 속에서 '다들 원래 이래', 그러면서 그걸 묵묵히 견디며 일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다들 SM인 걸까. 얼마나 험난한 일을 거쳐왔는가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날을 기대하는 걸까. 그런 고난 거쳐 성공했다고. 뭔가 이상하지만, 나 또한 그러고 있(었)다. 


우리들의 목표, 우리들의 지향점은 어디일까? 


나도 잘 모르겠다. 스무살 때는 뭔가 변화를 일으킬 수 있으리라 여겼는데, 지금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만 든다. 대단하다고 여겼으나, 다들 평범했고 똑똑하고 영특하다고 여겼으나, 현실적 영향력은 없었다. 그저 다들 별 볼 일 없었다. 


그렇게 나는, 조금 늦었지만, 지금 사무실로 나가 저녁에 돌아올 듯 싶다. 26일도, 27일도.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1월 안에 내가 맡은 이 일들이 끝나게 될 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 이후로 뭘 하게 될 지 모르겠지만.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술을 마시지 않기로 했다. 스트레스로 인해 술을 마시면 폭음을 하게 되고 내 일상을 망가뜨렸다. 내년 2월, 편안한 마음으로 술을 마실 수 있기를 기대해보기로 하자. 전시도 좀 보고 여행도 다니고 ... 그게 가능할련지 모르겠지만... 


마지막으로 계절 사이에서 내가 읽었던 소설들의 짧은 느낌을 덧붙인다. 


피란델로의 <<나는 고 마티아 파스칼이오>>에선 주인공 파스칼은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다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간다. 사랑은 잃어버렸지만,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던 과거의 인생과는 결별할 수 있었다. 하나의 상처는 또 다른 상처로 해소된다. 우엘벡의 <<지도와 영토>>는 현대 예술에 대한 코메디이고, 사프란포어는 특유의 형식 속에 상처를 치유해나가는 어린 소년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나는 마지막 부분에 가서 울컥하기도 했다. 모신 하미드의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는 저널의 찬사와 달리 약간 맥이 풀리는 느낌이랄까. 그만큼 이슬람의 문제가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다. 김연수의 <<7번 국도>>는, ... 아직도 출판되고 있다느 것이 의아스러웠다. 이십대 중반 김연수가 쓴 소설이고 형편없었다. 실은 내가 이 소설을 잘못 구입한 것이다. 


좋은 일이 뜸하다. 기쁜 일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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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놓고 한 페이지도 읽지 못하는 날들의 연속이다. 평균 퇴근 시간 밤 10시. 그래도 일은 끝나지 않는다. 이토록 많은 일들이 필요했는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면서, 한정된 시간과 자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어떻게든 일은 끝내야 하니, 밤 늦게, 주말까지 나가 일을 하고 있다. 


요즘, 정말, 주말이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매일 평일이었다면 기분이 어땠을까. 주말에도 사무실에 나가 일을 하지만, 그래도 조금 늦게 나갈 수 있다는 것에 기뻐하다니. 





고향에 가면 늘 바다 앞 횟집엘 들린다. 서울에도 회를 곧잘 먹는 편인데도, 고향집에 가면 회만 찾는다. 그게 신기하기도 하고 ... ... 


전생에 바다 물고기였던가, 다음 생에 진짜 향유고래가 되려고 그러는 것인지. 




가끔 핸드폰 사진이 잘 나올 때가 있는데, 이런 어슴프레한 저녁 때이다. 이런 바닷가 앞에서 몇 달 지냈으면 좋겠는데, 그게 언제쯤 될련지... 


오늘 퇴근이 밤 11시였고, 그래도 일을 끝내지 못하고 온 탓에, 내일 7시 정도 출근하려고 한다. 과연 지금 잠을 자곤 일어날 수 있을까. 올해 가을 이렇게 일을 하게 되리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다. 실은 정말 다양한 경험을 했다고 자부한 탓에, 예상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아, 나는 아직 멀었구나 하는 생각한다. 


어찌되었건 시간은 흐르고 프로젝트는 끝날 것이다. 그러니, 지금 이 때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아, 벌써 새벽 1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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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짬뽕을 폰 카메라로 찍기란 쉽지 않았다. 임시로 있는 사무실 근처 중화요리점에서 짬뽕에 이과두주를 마셨다. 붉은 색으로 장식된 벽면 아래 짙은 갈색 나무 무늬 테이블과 검정색 천이 씌워진 의자에 앉아, 바람과 오가는 사람들에 흔들리는 출입문을 잠시 보았다. 





이것저것, 그냥, 잠시, 보는 시절이다. 정해져 있지 않아 자유롭고 정해져 있지 않아 불안한 시절이다. 자유와 불안, 혹은 두려움은 등가적 관계를 이룬다. 최초의 인류가 선악과를 먹는 순간, 우리는 자유를 가지게 되었고 그와 동시에 자유 속에 깃든, 끝없는 불안과 두려움도 함께 가지고 왔다.


하지만 중년이 되자, 자유는 보이지 않고 불안과 두려움으로만 채워졌다. 마음 속에서, 육체 속에서 이리저리 부딪히는 불안과 두려움을 조금이라도 달래기 위해 술을 마시지만, ... 술로 태워지고 술로 열광하고 술로 위로받는 건 자유와 사랑, 순결과 불륜이지, 불안과 두려움은 아니었다. 





선사시대 우연히 발견되었을 술은, 인류에게 두 번째로 값진 선물이다. 그래서 나는 어김없이 짬뽕에 독주를 마신다. 싸구려 독주를. 


이과두주. 이 술은 중국 사람들에게 소주와 비슷한 술이다. 실은 소주보다 더 싼 술이다. 알코올 도수는 평균 56도. 



출처: 성학주류 홈페이지(http://www.sunghak.com/)


예전에 마셨던 이과두주는 나쁘지 않았는데, 최근에 마신 이과두주는 알콜 냄새가 심하게 났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 그런 걸까. 어느 주류 회사 홈페이지에서 가지고 온 이과두주 사진이다. 차례대로 알아보면 아래와 같다. 



1. 홍성이과두주(55도, 유한회사 금용 수입)

3.우란산이과두주(56도, Niu Lan Shan Er Guo Tou Jiu,100ml (주)풍원주류 수입 )

4.우란산이과두주(56도, Niu Lan Shan Er Guo Tou Jiu, 125ml (주)풍원주류 수입 )

2(?)/5. 천진식품 제조 이과두주((유한회사 금용 수입)) 



우란산이과두주를 마셨는데, 맞지 않았다. 조만간 다른 이과두주도 마셔볼 요량이다. 


십 수년 전 크리스마스 근처, 대학원 시험을 떨어지고 짬뽕 국물에 이과두주를 마시고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다. 그런데 그 때 대학원엘 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때로는 떨어진 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학문으로 유리된 세상 속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못한 채, 고귀한 언어의 자존심만을 알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그 때 나와 함께 술을 마시며 나를 위로해주시던 분은 계속 공부를 하셨고 지금도 공부를 하고 글을 쓰시지만, ... ...어느 방향이 정답인지 모르겠다. 결국 어느 게 정답인지 모를 땐 자신이 정하는 게 정답인가. 





그리고 나는 짬뽕을 집에서 해 먹었다. 재료의 부실함으로 인해 마법의 가루의 힘을 빌리긴 했지만, 나름 선방했다. 다음 주부턴 여의도에서 프로젝트 PM을 맡기로 했다. 준비 중인 사업은 많은 이들이 지적하던 문제를 극복하지 못한 채 지지부진해졌고, 이 지지부진과 무관하게 경제적 삶은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책 읽고 음악 듣고 글을 쓰는 삶을 한 때 동경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진시황이 분서갱유를 한 것은 책 읽고 글 쓰고 공부하는 이들의 무능함 때문이었다. 춘추전국시대에 난립했던 무수한 사상들은 학문의 세계를 풍성하게 만들었지만, 지나친 학문 논쟁과 쌀 한 톨 만들지 않으면서 사사건건 중앙정부의 정책에 토를 달던 학자들이 싫었던 것이다. 지리적으로는 통일되었으나, 사상적으로는 통일되지 않았고, 통일할 생각도 없었던 셈이다. 무술이라면 싸움이라도 해서 결판을 낼 수 있었지만, 사상과 학설은 이와 같지 않았다.  이후 시간이 지나, 한 무제에 와서야 유교로 사상적 통일을 이룰 수 있었다.

무언가 만들고 생산하며 기여하는 삶. 이게 좋다. 그건 사적인 차원에서 쓰여지는 글 이상이어야 한다. 무언가 생산할 수 있는, 사회에 보탬이 되는 글이라면 괜찮을 게다. 그런데 그런 글이 어디 쉽나. 잡글이 길어졌다.

*     *

재독철학자 한병철의 책 <<투명사회>>를 읽기 시작했다. 결국 한병철의 책 두 세 권을 더 구입했다. 그가 한국에 있었으면 이런 글을 쓸 수 있었을까? 한국에도 한병철 교수 정도 내공이 되는 이들이 있고 그들이 독일적 환경 아래에서 다른 일상을 보내며 고민했다면 충분히 나올 수 있을 글이라 여겨지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이런 글을 쓰지 못한다. 아니 쓸 수 없다. 우리가 마주치는 한국 사회의 일상은 구한말 조선 시대지, 21세기 유럽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상은 말도 되지 않는 일들이 벌어지는, 제 3 세계 한국이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만의 고유한 시각, 고유한 해법, 고유한 이론이 나와야 하지만, 인문학은 이미 수입 보따리 상이 되어버렸거나, 아니면 조선 시대의 성리학이나 또는 동양의 고전들을 들이대거나 하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것, 나는 그것으로 살아가고 싶지만, 나는 반대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걸 늘 확인받고 싶어하고, 나를 진정으로 아는 사람이 이 세상 한 명 정도는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다. 그리고 이게 현대인이다. 한병철 교수는 <<투명사회>>에서 노출된다는 것에 대한 폭력성을 지적하지만, 우리는 노출됨으로써 위안을 얻을 수도 있음을 그는 알지 못한다. 그 위안에 주목하지 않고, 왜 우리는 그 위안에 몸을 맡기게 되었는가를 묻지 않고 투명사회의 한 부분으로 지적하며 그것의 폐해만을 드러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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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번 홈*러스서 팔아서 마셔봤는데 예전 마신 이과두주같지 않게 공업용 독한 향이 심하더군요 잘 보고 갑니다

    • 마트보다는 중국 식품 전문점이 좋은 것같아요. 이과두주도 여러 종류를 가져다놓고 좋은 술로 달라고 하면 주네요. 가격도 큰 병도 1병에 만원을 넘지 않네요. ~ ㅎㅎ

  • 다른 사람들이 나에대해 알지 못하는 것, 나는 그것으로 살아간다.

    너무 마음에 드는 말이네요.

    저것도 읽어봐야겠에요.

    • 아.. 그러고 보니, <<투명사회>>는 읽다 말았어요. ㅜㅜ.. 너무 바빠지는 바람에. 이번 일이 끝나면 다 읽어야겠군요. ~



일주일에 한 번 운동을 한다. 이마저도 힘들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8시. 저녁을 먹고 아이와 놀다 보면 9시, 10시, ... 이러면 운동하러 가지 못한다. 그리고 잔다. 꿈을 꾼다. 꿈 속에서도 나는 쫓기고. 그러다보면 아침이 오고 곱게 잠들어 있는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힘을 내자고 다짐을 한다. 


이렇게 아빠,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 알게 된다. 종종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고 놀란다. 이렇게 늙었다니. 그러고 보면 늙는다는 걸 인식하며 세월을 보내지 않는다. 그냥 어느 순간, 늙었구나 하고 인식한다. 그리고 그 때 뿐이다. 


나는 아직 클럽에 갈 수 있다고 여기고(간 적도 없지만), 아직 옆을 지나는 여대생에게 말을 걸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말을 건 적도 없지만). 




회사 워크샵을 다녀왔지만, 뾰족한 솔루션을 찾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서로를 이해하고 같이 가자는 자리였다. 그 목적이 달성되었는지는 시간이 우리에게 알려줄 것이지만. 그러기엔 산적해 있는 문제가 너무 많고 비즈니스 세계의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이제서야 나는 조직이라든가 인적 시스템라는 것에 대해 조금 이해하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이를 본능적으로 알고 참 잘하는데, 나는 아직까지도 관련 책 읽고 사람들 신경 쓰고 마음을 어루만지면서 앞으로 나가려고 노력한다. 솔직히, 정말 쉽지 않다.




요즘 지나가는 말로, 대체로 무슨 일을 하려고 내가 이러는 걸까 하곤 중얼거리곤 한다. 회사를 옮기고 참 많은 일들을 겪고 있다. 그래서 시간은 흐르고 나는 나이를 먹겠지. 결혼을 하고 보니, 참, 아빠들 어렵게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아빠들 중 돈 많고 힘 있는 이들은 떼지어 이 사회를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거참. 그나저나 글은 언제 쓰나. 전시는 언제 보고 벗들과 술은 언제나 마시나. 할 이야기가 많아지니, 글을 쓸 시간이 없구나.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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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t la vie, C'est tout. 

이게 인생. 이게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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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아주 가끔 ... 그렇게 참고, 참고, 또 참고 ... 시간이 지나간다. 


모든 것들이 선연히 보일 때, 정작 움직이지 못한다. 왜냐면 모든 것을 안다고 착각하기 쉽기 때문이고,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현명한 해답은, 늘 그렇듯이 '시간'이기 때문이다. 


** 


지난 주 목요일에 걸린 목감기(인후염)은 아직까지 현재 진행형이고. 잠을 8시간 이상 자는대도, 사무실에 오면 졸린다. 그간 쌓인 스트레스와 과로가 꽤나 심각한 모양이다. 


이래저래 주변이 시끄럽고 어수선하기만 하다. 하지만 내 꿈은 단연코 '멋지게 사는 것'이었다. 


청춘은 비에 젖지 않는다. 나는 청춘이고 싶다. 

하지만 술에는 젖지, 아름다운 청춘은. 


** 



어제 배달되어 온 LP 관리 용품들이다. 크리닝 매트, 판솔, LP 스프레이. 이제 상점에선 구하기 어렵고 인터넷으로 힘겹게 구한 녀석들이다. (실은 있는지 몰랐다. 오프라인으로 한참 구하다가 포기하였으니..) 


이번 주말 신나게 음악을 듣고 싶지만, 원고 2편을 써야 하고, 시험을 봐야 하며, 친척의 결혼식 때문에 제천까지 내려가야 한다.


2012년 5월달, 6월달, 정말 힘들다. 화끈하게 좋은 일 좀 생겼으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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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해서 뭔가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집중은 되지 않고 마음만 어수선하다. 어제 아침 기사를 보니, "당신없인 살 자신없다"며 기러기 아빠인 중년 남성이 자살을 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혼자 아이와 아내를 그리워했던 아빠는, 물리적 거리만큼 마음까지도 이젠 멀어졌다고 생각한 아내와의 이혼을 거부하다가 끝내 이혼하고 자살을 택한 것일 지도 모른다. 

한국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가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한국에서 오래 있다가 미국으로 건너간 어느 미국인은, 한국에 살면서 '행복하다'는 소리는 한 번도 듣지 못했다고 했다. 그가 살았던 수 십 년 간 한국은 높은 경제 성장과 물질적 부, 그리고 정치적으로 민주화를 이루어 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람들은 도리어 더 불행해졌다고 여긴다는 것을 낯설고 이상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것을 안타까워했다.

우습게도(매우 낯설게도) 우리의 가치 기준은 자기 자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서 나온다. '엄마 친구 아들'이나 '엄마 친구 딸'가 단적인 표현이다. 자기 스스로 세워놓은 어떤 기준이나 목표가 아니라, 그런 기준을 지키거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늘 남과 비교하는 어떤 자리에서, 남과 비교될 수 있는 기준이나 목표를 만들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자극하고 학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종국에 이르러서는, 자신의 실패나 몰락이 자기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외부 환경, 이 사회, 그리고 타인들에게서 기인한 것이라 여기게 되는 것이다(최근 늘어나고 있는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화풀이를 하는 범죄도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이러한 구조는 아주 불행하게도 한국에서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된다. 하나가 유행하면, 그 유행이 전 국토를 휩쓸고 지나가듯이, 우리는 타인에게서 자유롭지 못하고,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하며,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다. 그리고 그러한 비교를 통해 만들어지는 우리의 일상이 무시당하거나 잘못될 땐, 그 잘못의 방향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타인에게 향햐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심지어 현재 정부나 여당의 '잃어버린 10년'도 이러한 맥락 속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타인의 탓으로 돌리는 문화에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비난의 화살을 자신의 책임이나 잘못으로 받아들이고 그 실패를 경험 삼아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사고가 거의 없다(도리어 이것이 이상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공무원의 복지부동도 여기에서 나오고 기업 경영에서 '혁신'이라는 단어가 최근에 들어서야 좀 제대로 먹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하긴 진짜 혁신인 지는 두고볼 일이지만). 

남이 잘 되면, 나도 해야 되는 것이 한국 사회의 특징이다. 조선업의 호황으로 (먼 미래에 대한 예측 없이) 너도나도 조선업에 뛰어든 관계로, 한국의 조선업은 구조조정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는 건설업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무엇을 가지고 있고,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한 채, 남이 무엇을 가지고 있고 남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만 열을 올린다. 그런데 우리 자신도 타인에게는 남이 아닌가. 꼭 불행의 뫼비우스띠처럼 그렇게 연결되어 우리들의 삶을 벼랑 끝으로 몰고 있는 것이다. 

고등학교에서 수능이 끝난 학생들이 자유롭게 논술학원에 갈 수 있도록 한다는 사실에 놀라웠으며, 냉철한 현실 인식이 도리어 낯설게 여겨졌다. 그렇다면 공교육과 사교육은 공생 관계인가. 하긴 그럴 지도 모르겠다. 여당과 야당이 공생관계이듯, 공교육과 사교육도 공생관계일 것이다. 우리 자신이 타인과 공생관계이듯이.

그런데 누군가들은 이 공생 관계를 끊어 자기 스스로의 기준과 목표를 만들어 미래를 개척해야만 한다. 타인과는 전혀 관련없이 말이다.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유일하게 바람직한 공생관계가 있다면 그것은 가족이 될 것인데, 이젠 그 가족마저도 해체되고 있다. 실은 우리 모두가 공범자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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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
        오후와 저녁 사이에 난 경부고속도로 위에 있었다. 그리고, 새벽과
     아침 사이 난 중부고속도로 위에 있었다. 시간과 시간 사이를 난 달렸
     다. 그러나 내가 달리지 않더라도 시간과 시간 사이는  물결처럼 흐른
     다. 하지만 난 달렸다. 희망과 절망 사이를.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것인가를 알게 된 순간, 그것
     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는 것을 동시에  알게 되었다. 그리
     고, 이때까지 그 유일한 일을 난 희망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것은 그
     림자일 뿐이다. 희망의 그림자. 난, 아니  프롤레타리아로서의 우리는
     절대로 희망을 가질 수 없다.
        이 세계의 본질은 '절망'이다. 그  절망을 만든 것은 우리들  옆에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우리들이다. 이 세상 어디에도 희망은 없다. 단
     지 희망의 그림자만    존재할 뿐. 절망 속에 갇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글도 사랑도 꿈도 아닌 울음 뿐이다. 울 수밖에  없다. 고개를 숙
     이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울 수 밖에 없다.
        어제 술에 취해 고속도로 위를  달렸다. 달리면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조치원까지 내려갔다가 술에 취해 중부고속도로 위를 질주
     했다. 내 나이 스물 여섯.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희망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눈물 뿐이었다. 이 세상의  본질은 절망이며,
     그 절망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울음 뿐이다.

        02.
        '울음'으로서의 저항? 그럴 지도 모른다. 운다는 것에 소극적인 의
     미의 저항이 숨어있을 지도 모른다. 저항? 그렇다면, 과연  그 저항은
     성공할 수 있을까? 성공한다면 역사는 그것을 '기적'이라고 명명할 것
     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다. 이 어처구니없는 말
     은 부르조아지들이 가난하지만 순결한  젊은 영혼들을 꼬드기기  위해
     만든 말일 뿐이다. 요즘 세상에 함부로 '고생'하면 큰 일  난다. 장애
     자가 될 수도 있고, 순결을 잃어버릴 수도 있으며, 자칫하면  죽을 수
     도 있다. 그러니, 고생하지 않고 편하게 사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편하게 살려면 '돈'이 있어야  된다. 그리
     고, 돈을 벌기 위해서 '죽음'을 각오하고 고생을 해야만  한다. '세상
     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지랄같은 소리다. 세상이 아무리 넓어도 순
     결한 젊은 영혼이 살아갈 만한 곳은 어디에도 없으며, 할 일이 아무리
     많아도 목숨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세상에서 돈을 벌어 편하게
     살려면, 돈이 있어야 된다. 돈이 없으면 돈을 벌지 못한다. 돈이 없으
     면, 돈을 빌려서라도 돈을  마련해야 한다. 돈을 빌리려면,  변변찮은
     담보물이라도 하나 있어야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긴, 죽음을 각오해야지. 그러다 죽어도  책임지지 못해.
     고작 죽는 것뿐인데, 한 번 죽지, 두 번 죽냐."

        03.
        IMF라고 난리다. 그러나, 이것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어딘가 이상
     하다. 돈이 많은 사람은 계속 돈이 많다. 하지만, 돈이 없었던 사람은
     아예 폭싹 내려앉아버렸다. 몇 해전 운동권 후배들과 술을 마셨다. 난
     그때 이 세상이 똑바로 돌아가게  하려면 아예 뒤집어 엎어야  된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데, 이들은  집회 때면,
     쇠파이프와 짱돌과 화염병으로 무장한다). 그렇다. 뒤집어  엎지 못한
     다. 왜냐면, 인간이 뒤집어 엎을 수 있을 만큼 이 세상은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맨날  '투쟁! 투쟁!'을 외친다. 난  그들의
     순진무구함이 역겹다.
        'YS체포대'는 어떻게 되었을까? YS를 체포하면 어떻게  할까? YS를
     어느 대학 학생회실에 감금할까? 아니면, 검찰에 고발할  것인가? 즉,
     'YS체포대'는 정말로 체포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냥 하
     나의 순진한 이벤트일 뿐이다.  그들은 맨날 '정권타도'을  외치는데,
     만약 그들의 소원대로 '정권'이 물러난다면, 어떻게 할까?  새로 내각
     을 만들고 헌법도 새로 고칠까? 즉, 말도 안되는 소리라는 점이다.
        내가 운동권에 대해 이렇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의  팔할은
     순진한 신입생들이 눈에 보이는 불평등한 풍경에만 민감한  반응을 보
     이는 운동권 바보가 되어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정
     작 중요한 것은 그 풍경 속에 감추어진 이 세상의 본질일 것이다.

        04.
        비가 내렸다. 나에게 소설을 가르쳐주신 한 선생님께서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건 '혁명적 낭만주의'라고 했다. 즉, 프랑스  혁명도 그
     런 것이라는 점이고, 4.19가 일어난 것도 그런 것이라는 점이다. 아무
     리 무수한 사람들이 이성적으로 데모를 하더라도 이 세상은 변하지 않
     는다는 점이다. 정작 이 세상이 변하려는 기미가 보였을 땐, 누군가가
     온몸에 기름을 붓고 자살을 하거나, 고층빌딩에서 떨어져 내렸을 때뿐
     이라는 점이다. 그는 그것을 '혁명적 낭만주의'라고  평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제대로 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혁명적  낭만주의는
     이성적이 아니라, 감정적이라는 것이며, 광기의 산물이다.  광기는 필
     연적으로 피를 부르게 마련이다. 피를 부르지 않게 하기  위해 이성적
     인 작업은 계속 필요한 것이다. 여기에서 모던과 포스트모던이 나누어
     진다. 모던을 믿는 이들은 계속 이성적인 작업을 수행하고자  하는 사
     람들이며, 포스트모던을 믿는 사람들은 역사를 통해  이성적인 작업이
     얼마나 무력했는가를 알았으니, 이성을 버리고 광기를 수용하거나, 그
     러지 못할 바엔 아예 자살하는 편이 낫다는 사람들이다.

        05.
        내가 아는 건 별로 없다. 내가 아는 건 지금 비가 내리고, 창 밖으
     로 새소리가 들린다는 것뿐이다. 순간은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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