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운동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이데아에 공허나 부정적인 것을 덧붙여야 한다. 플라톤의 "비존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는 이런 것들로 구성된다. 그것은 마치 산수의 한 단위에 영이 합쳐지듯이 이데아와 합쳐져서 이데아를 공간과 시간 속에서 다수화시키는 형이상학적 공허인 것이다. 불변적이고 단일한 이데아는 이에 의하여 무한히 퍼져가는 운동으로 분산된다. 권리상으로는 오직 불변적인 이데아들만이 있어서 상호간에 움직일 수 없이 꽉 들어차 있어야 한다. 결과적으로는 질료가 나타나서 공백을 거기에 덧붙여주고, 동시에 우주적인 생성을 분리해 낸다. 질료는 파악할 수 없는 무가치한 것이면서 이데아들 사이에 잠입하여 마치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 사이에 스며든 의심처럼 끝없는 동요와 영원한 불안을 자아낸다. 불변의 이데아의 지위를 하락시켜 보자. 그러면 그에 의하여 우리는 사물의 영구적인 변화를 획득하게 된다. 이데아 내지 형상은 의심할 것없이 예지적인 전 실재, 즉 전부 모여 [파르메니데스적] 존재의 이론적 평형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진리의 전부라고 하겠다. 감각적 실재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것은 이 평형점의 양쪽으로 끝없이 일어나는 동요인 것이다.
- 베르그송, '창조적 진화', 315~316쪽. ('베르그송의 생명과 정신의 형이상학', 서광사, 183쪽)
- 베르그송, '창조적 진화', 315~316쪽. ('베르그송의 생명과 정신의 형이상학', 서광사, 183쪽)
고전주의자, 혹은 플라톤주의자가 되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절대로 낭만주의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그렇게 확신하고 있다. 저 하늘의 별빛과 내 마음의 별빛이 일치하던 시대의 아름다움을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플라톤의 책을 읽으면서, 그의 사상을 접하면서 나는 지고지순한 사랑의 마음이라든가, 이상적인 아름다움, 영원한 가치 따위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퇴근길에 베르그송의 저 문단을 읽으면서 약간 울컥했다. 모험으로 가득찬 그리스 시대를 살았던 사상가들은 마음 속으로 모험이지만 모험이 아닌 어떤 세계, 움직이지만 실은 정지해 있는, 그래서 꽉찬 어떤 세계를 염원했고 그것을 남겨놓았다. 화이트헤드는 서양철학사는 플라톤 철학의 각주 달기라고 하지만, 플라톤 철학도 알고 보면 파르메니데스와 피타고라스에 나왔고 이 둘의 사상은 고대 이집트의 세계관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고대 이집트가 어떤 곳인가. 이 곳에선 죽음은 또다른 탄생이고 영원이며, 운동은 일종의 반복이고 시간을 끊임없이 도는 것이며 직선적으로 변화되는 것이란 없다. 세상은 이미 정해져있는 것이며, 여기에 예외란 없다.
그런데 베르그송은 몇 천 년 후에 이것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지 지적한다. 그의 철학은 여러모로 아슬아슬한 곡선을 그리는 듯 하다. 그의 문장은 대단히 아름답고 비유적이다. 그리고 설득력까지 가지고 있었다. 아마 10년 전의 나라면 베르그송을 인정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의 나, 이래저래 실패의 흔적들만 얼굴에 남긴 채 일상을 보내는 나에게, 베르그송은 아주 슬픈 위안이다. 그는 나에게 정지해있는 모든 것들은 실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고 말한다. 생명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그것의 신비나 가치, 아름다움에 대해서 논한다. 하지만 난 아직 그것의 신비나 가치, 아름다움에는 관심없고 플라톤이 잡고자 했던 어떤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실은 나도 그런 것을 마음 깊숙한 곳에서 추구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내 옆의 사랑이 변치 않았으면 바랬고 내 언어가 영원하길 염원했으며 변하지 않는 어떤 것, 그것이 이데아이든 형상이든 물자체든, 반드시 있다고 믿었다.
'영원의 움직이는 이미지인 시간',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에서 언급한 표현이다. 그는 시간마저도 붙잡아버렸던 것이다. 그는 시간을 부정했다. 그러니 시간이 지배하는 이 현실 세계는 도대체 평가할 만한 가치라곤 손톱만큼도 없는 세계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죽음이 아니라면 우리는 이 현실 세계를 한 발짝 벗어나지 못하지 않는가. 칼 포퍼가 그렇게도 싫어했던 것도 바로 이런 경향 때문은 아니었을까.
베르그송이 그간 읽히지 않았던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