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강철군화, 잭 런던

지하련 2009. 5. 5. 15:02


강철군화 - 8점
잭 런던 지음, 곽영미 옮김/궁리


세계는 앞으로 가는 것일까? 아니면 정지해 있는 것일까? 혹은 뒤로 가는 것일까? 아마 사람들은 앞으로 간다고 믿고 싶겠지만, 실은 '앞으로 간다'라는 진보(혹은 진화)의 개념이 우리의 사고 속에 명확하게 떠오른 것은 18세기 이후부터였다. 그리고 그것이 확실하게 자리잡게 되는 것은 찰스 다윈의 '진화론' 이후였다. 이 점에서 소설 '강철군화'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일군의 사람들에 대해 적고 있다. 

언젠가 평화로운 시위대를 폭도로 만드는, 아주 단순한 방법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 방법인 즉슨, 시위대 속의, 눈에 잘 띄는 젊은 여자(이쁘고 연약하게 보이면 보일수록 좋다)에게 아주 짧은 시간, 집중적으로 폭력을 가하면 된다. 그러면 그 젊은 여자를 보호하기 위해 시위대 속 남자들이 일어날 것이고 나쁜 소문이 삽시간에 퍼질 것이다. 방송이나 신문에서는 최초의 폭력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으며, 폭도로 변한 시위대만 찍어 다음날 뉴스에 보도하면 된다. 

실은 현실 세계에서 이런 종류의 일은 비일비재하다. 선량한 척 이야기하지만, 속으로는 음흉한 욕망을 감춘 사람들이 득세하는 곳이 바로 이 세상이다. 

소설은 짧고 굵으며 강렬하다. 오직 한 방향을 향해서만 가는 이 소설은 다소 억지스러운 면까지 소유한 프로퍼갠다다. 그래서 소설은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고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다. 이런 소설들에서는 왕왕 문학적 완성도나 미학적 구조는 무시된다. 무시된다기 보다는 소설 구성의 요소들 중에서 전통적으로 중요시되던 요소들이 뒤로 밀리고, 정치적 메시지가 우선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은 우리 세계의 일부만 반영할 뿐이다. 아직까지 이 소설이 호소력을 갖는다면, 여전히 빈부격차가 존재하고 밑바닥 인생의 참혹함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만이다. 소설에서처럼 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제로이며, 실제 현실 세계는 누가 노동자인지, 지배계급인지 알지 못하는 회색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 소설은 순진한(직접적 폭력의) 자본주의 시대에 씌여진 순수한 소설이라면, 현재의 자본주의는 보이지 않는 폭력의 안개 낀 대기와도 같아서, 누가 동지이고 누가 적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변해버렸다. 20세기 초반에는 잭 런던의 '강철군화'가 있었다면, 21세기 초반에는 과연 어떤 소설이 있을 수 있을까? 

소설을 읽어나가는 내내 불편했던 것은 프로퍼갠다 문학이 아직까지 읽혀져야 하는 당위성이 우리 시대에도 남아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