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무인도를 위하여

지하련 2009. 3. 1. 10:35


서가에서 오래된 시집 한 권을 꺼내 소리내어 읽는다.

박꽃


신대철


박꽃이 하얗게 필 동안
밤은 세 걸음 이상 물러나지 않는다

벌떼 같은 사람은 잠들고
침을 감춘 채
뜬소문도 잠들고
담비들은 제 집으로 돌아와 있다

박꽃이 핀다

물소리가 물소리로 들린다



소리 내는 사이사이로 생의 거친 바람과 서늘한 도시 풍경이 밀려온다. 일주일 내내 목 염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이젠 두통까지 생기는 느낌이다. 몸은 너무 피곤하고 음악 소리는 귀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햇살은 부드럽지만, 늘 그렇듯,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늘 따로따로 움직일 뿐, 서로를 간섭하지 않는다. 대학시절, 신대철의 시를 끼고 살았다. 딱 한 권만 나와있던 그의 시집. 몇 년 전에 새로 시집이 나왔으나, 읽히진 않았다. 첫 시집 내고 두 번째 시집 내는 기간이 무려 20년 가까이 되었으니.

휴식을 취해야할 일요일, 완전 요양 모드여야 하지만, 딱히 그럴 여유도 없다. 누군가 내 일상을 공유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지만, 그것마저도 이제 그만둘 예정이다.

하지만 시가 있으니... 위안 삼아야겠다.


무인도를 위하여 - 10점
신대철 지음/문학과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