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生의 스산함을 지나

지하련 2009. 5. 27. 13:04


고등학교 때, 나는 일요일마다 경남도립도서관에 갔다. 창원 공단이 즐비하게 늘어선 거리를 지나 아파트 단지들이 시작되는 곳 어딘가에 위치해 있었다. 그 곳에서 탐독했던 책은 헤르만 헤세이거나 오래된 세계문학전집, 혹은 근사한 제목을 가진 수필이었다. 

종종 이쁜 소녀가 도서관에 오길 손꼽아 기다리기도 했지만, 기다린다는 것 자체가 철부지 같은 공상이었다. (하긴 아직 그 공상에서 멀리 벗어나 있는 것같지도 않지만) 

주말에도 찾는 사람이 없었던 그 도서관의 복도는 어둡고 스산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마 지금은 다른 곳으로 이전하지 않았을까 싶다) 

사람들이 찾지 않는 책들 속에선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그 힘으로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고 있었다. 

어제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얼마 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알려진 전직 대통령의 사진을 보았다. 그리고 그 사진 옆으로 길게 늘어선 사람들.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고 사람들의 얼굴엔 깊은 슬픔이 아려 있었다.

참 말 많은 대통령이었지만, 나는 그래서 좋았다. 무언가 이야기를 한다는 건 그만큼 의지가 있다는 것이고, 설득하던지 설득당하겠다는 열정의 제스추어라 여겼다.

하지만 사람들은 시끄러운 대통령보다 조용한 대통령을 원하는 듯 싶었다. 하긴 조용한 대통령 옆에는 언제나 대신 이야기해줄 언론이 있겠지만. 그런데 우리의 시끄러웠던 대통령 옆에는 대신 나서서 이야기해줄 언론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 얼마나 잘못된 정보의 노예인가를 한 번도 깨닫지 못한다. 이 긴 추모의 행렬 끄트머리에 무엇이 있을까. 과연 무엇이 있을까.

인생은 종종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세상은 우리에게 기대하지도 않았던 비극을 안기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살아갈,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힘이 되리라 믿는다. 그리고 하루하루 세상은 전진해나가는 것이라 믿는다. 그것이 철부지 같은 공상일 지라도, 그렇게 믿어야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