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부끄러운 이 나라

지하련 2009. 7. 22. 14:51



최근 '미디어법 통과'는 여러모로 여당에게 유리한 정치적 포석이다. 그들은 이른바 보수언론이라 일컬어지는 '조중동'의 바람을 들어주었으며, 앞으로도 그들의 입을 빌어 자신들의 정치 행보나 정책 입안에 대한 대 국민 홍보 매체를 가지게 된 것이다. 법적 해석을 통해 이번 통과가 무효가 되더라도(이것이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보수언론을 향해, 우리는 할 만큼 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들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선 여론이나 합리적 추론이나 사고, 정치적 신념의 일관성 따윈 헌 신짝 버리듯 버릴 수 있음을 몸으로 보여주는, 마치 '정치판'라 불리는 비옥한 평원에서 살아가는 원시적 감각으로 번뜩이는 야생 동물처럼 보였다.

이에 비해, 야당은, 뭐랄까, 마치 야생의 감각을 잃어버렸다고 해야 할까. 동물의 세계에서 이제 말을 하기 시작하고 대화를 통해서 뭔가 해결해야 된다고 막연하게 믿는 초등학생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막상 말이 되지 않을 때 떼를 쓰는 모습도 동시에 보여주었다. 야생 동물처럼 원시적 감각으로 같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상황 전개 속에서 승패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런데 너무 우습지 않은가. 대화와 타협을 교과서 읽듯 이야기하다가 조금 더 놔두면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갈 것이라는 걸 직감하자, 기본적인 가치를 헌 신짝처럼 버리고 야생 동물로 변해 자신의 이득을 취해버리는 것. 찬사를 불러일으킬 만한 행동이지 않은가.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21세기의 이 나라가 한없이 부끄럽고 걱정스러운 것일까. 무식하면 용감하다지만, 이토록 무식하고 용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나는 몇 달 전에 '지금 세상이 무섭다'고 했다. 소리소문 없이 다음(Daum) 아고라 배너가 다음 메인 페이지에서 사아지고 블로거 뉴스가 뷰로 바뀌고 미디어 다음에서 프레시안이 빠졌다. 아마 현 정부가 보기엔 온라인에서의 여론 독과점이 일어나고 있다고 판단될 지도 모를 일이다. 진짜 그렇게 믿을 것이다. 그러니 어떤 방식으로든 정부나 여당에서 하는 것들에 대해 딴지 거는 매체는 포털 사이트에서 빼야 되는 것이다. 더구나 그 매체가 포털 사이트 다음에 있다면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혹시 그것이 진짜 여론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을 형성하는 공간 - 만나는 사람들이나 보고 읽는 신문이나 방송, 개인의 아비투스, 문화자본 등 - 이 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으며 살아간다. 이 점은 지식인에게도, 공무원에게도, 정치인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머리 속에서 산더미 같은 전문 지식이 있어도, 그것들이 그들의 일상 생활과 긴밀한 연관관계를 맺고 있지 못할 경우, 그것은 아무 쓸모도 없는 것이다. 반대로 자신들이 영위하고 있는 일상 생활 속에서 의미를 가지는 것만이 가치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될 때, 과연 서민적 가치가 고위 공직자나 국회의원들에게 의미가 있을까? 이런 말을 해서 씁쓰리하긴 하지만, '아무런 의미도 없다.'

학교 폭력이나 학업 스트레스로 매분 매초를 시달리는 10대에게 그들은 어려서 그렇다고 이야기할 것이며, 취업하지 못하는 20대에겐 도전의식이 부족하다고, 노력이 부족하다고 이야기하면서, 3D 직업이라고 찾아서 무조건 시작하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하긴 자신들이 살아왔던 세계 속에서 그들은 한 발짝도 밖으로 나갈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긴 하다. 하지만 리더라면, 좀 달라져야 할 텐데, 한국은 그것이 요원해 보인다.

(한국의 리더의 문제에 대해서는 미 로체스터대의 장용성 교수의 칼럼을 한 번 읽어볼 만하다. 한국의 노동생산성이 미국의 절반 밖에 안 되는 이유.)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사실을 일반 서민들이 부정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놀랍게도 고위 공직자나 국회의원들이 그들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투표를 했을 때부터 세상이 이렇게 변하게 될 것임을 알아야만 했다. 실은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표현은 이 나라 전체에 해당되는 말이다.

지난 정부 때라면, 도대체 황당해서 이루 말할 수 없었던 일들이 지금 정부에서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태연자약한 국민들을 보면, 나는 종종 이 나라가 그 나라였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상황이 이러니, 미디어법을 한사코 막아야 되는 어떤 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