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에 시집 한 권을 챙겨 나섰다. 지하철 안에서 시집을 읽는 건 너무 낯설어서, 꺼내지도 못했다. 이는 사무실 안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시집을 읽기 위한 별도의 공간이 필요로만 했다. 어쩌면 모든 시는 위기의식으로 만들어지듯, 모든 시 읽기는 현대적 공간에선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여겨졌다. 시를 읽는 나는 물신적 자본주의가 주도하는 21세기 현대적 공간에서 떨어져 나온 사람 같았다.
한 때 내 모든 것이었던 시는 이제 시 읽기조차도 어색해진 상황이 되었으니, …
그런 내가 들고 나온 시집은 에우제니오 몬탈레의 ‘오징어뼈’였다. 이탈리아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그의 시는 번득이는 슬픈 유머와 깊은 통찰, 그리고 나와 너, 자연을 아우르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의 시는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존재를 하나의 공간으로 수렴하고 이를 다시 배열하며,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그래서 그의 시를 읽으면서 우리는 얇게 웃기도 하고 얇게 울기도 한다.
나는 때때로 삶의 불행을 만났다.
그것은 꼬록꼬록 숨 막히는 개천이었고,
말라비틀어진 잎사귀를 포장하는 것이었으며
넘어지는 말(馬)과 같았다.
신의 무관심을 슬며시 열어주는
경탄스러운 일 이외, 나는 아무것도
잘 알지 못했는데, 그것은 한낮의
잠에 취한 조각상, 구름, 높이 솟은 사냥매였다.
삶의 불행을 노래(?)한 시지만, 끝없이 슬프지 않다. 삶의 불행과의 만남을 이야기하고, 그는 그 불행으로 야기된 결과에 대해선 접어둔다. 그래서 불행으로 야기될 슬픔, 아픔과의 거리를 두고 ‘한낮의 잠에 취한 조각상, 구름, 높이 솟은 사냥매’로 불행을 극복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는 행복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아래 시를 읽어보면, 행복과의 만남을 이야기하며 행복 오기 전의 불행을 되새기며 경계하려는 듯 읽힌다.
찾아온 행복이여, 그대를 향해
우리, 칼날 위를 걷고 있다.
눈에 비친 그대는 깜박이는 불꽃,
발에 깨어져 부닥치는 얼음이어라.
그래, 그댈 더 사랑하는 자, 그댈 다치지 말아야지.
그대 슬픔에 짓눌린 영혼에
이르러 밝게 해주면, 그대의 아침은
달콤하여 새들의 둥우리인 듯 설렌다.
그러나 집 사이로 달아나는 풍선 때문에
울부짖는 아이의 마음, 아무것도 달래지 못한다.
몬탈레의 시는 읽으면 읽을수록 그 시의 깊이에 감동받는다. 그의 언어는 사소한 것으로 시작해 확장해나간다.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자기 바깥의 사물과 존재에 투영시킬 수 있고 이를 다시 자신의 시어로 표상화한다.
‘지중해’는 마치 바다를 노래하는 듯 읽히지만, 실은 바다로 대변되는 사람들 사이의 만남, 대화, 우정을 노래하고 있다.
옛 친구여 나는 취했다오
푸른 종(鍾) 같은 그대의 입술에서
열렸다 다시 오므라져
터져 나오는 소리에.
흘러간 여름마다 살던 내 집이
그래, 그래, 그대 가까이 있소.
태양이 작열하고
모기가 하늘에 구름 이루는 곳에
바다여, 그때처럼 오늘도
그대 앞에 무감각해지는 나.
나 어찌 받을 수가 있을지
그대 호흡이 주는 숭고한 충고를.
내 마음의 미세한 고동일랑
한 순간의 그대 숨결에 그친다고 ……
준엄한 그대 율법이
내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으니
폭넓고 다양하고 견고하게 하라며 … …
그대가 심연에 있는 온갖 쓰레기를
바닷가 불가사리, 코르크 조각, 해초 속으로
내리치듯 나 역시 모든 불결 씻어버리라고 ……
그대가 맨 처음 나에게 일러주었소.
마지막으로 시 한 편을 더 인용하며, 오랜만에 시집을 읽고 싶은 이들에게 이 시집을 추천한다.
당신의 손은 건반을 두드렸고
당신의 눈은 알 수 없는 부호들을
종이 위에서 읽고 있었으니,
음악은 온통 고뇌의 소리처럼 들렸다오.
사방의 사물, 짓눌려 무기를 잃고서
제 언어에도 무지한 당신을 보고
유순해지고 있음을 내 알았다오.
말간 바닷물이 덜 닫힌 창 너머로 철렁댔다오.
나비가 도망치듯 추는 춤 파란 사각형 속을 지나쳤고
잎사귀 하나 해님 속에 펄럭였소.
이웃의 어느 것도 제 언어를 못 찾았으니,
당신의 달콤한 무지는 나의 것, 아니 우리의 것.
오징어 뼈 - 유제니오 몬탈레 지음, 한형곤 옮김/민음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