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내 삶의 전략

지하련 2012. 5. 15. 01:07



내 삶의 전략? 실은 전략이랄 것도 없다. 지금보다 나이가 적었을 땐 제 멋에, 잘난 맛에 살았고, 굶어죽진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굶어죽지 않는다는 말만큼 무책임한 표현도 없다. 사람은 먹기 위해 살지 않는다. 그러나 '굶어 죽기야 하겠느냐'는 말을 상투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니, 우리들은 종종 우리가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가를 잊는 것이다. 


어쩌면 잊고 싶을 지도 모를 일. 


원하는 대로 살아지는 삶은 없다. 그렇다고 원하는 대로 못할 삶도 없다. 이 두 가지 삶 사이의 작은 길이 우리 삶의 길이 된다.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하면서 원하는 대로 살려고 하니, 우리 일상은 한 없이 피곤해지는 것이다.


한 회사에서 이제 4년이 다 되어 간다. 조직 구성원도 두 배가 되었고 일도 많아졌다. 그리고 문득 내 위치를 생각해보게 된다. 스스로 이력서를 제출해 직장을 옮긴 적이 한 번도 없고, 구직 활동이랍시고 한 게 딱 두 번 있었는데, 결과는 좋지 않았다. 


이력서와 자기 소개서로 사람 파악한다는 건 불가능하고 면접을 본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팀원을 뽑을 때도 그렇다. 아직 작은 회사라 많이 지원하지도 않고 '사람 인연은 하늘의 뜻'이며, 대체로 기업에서 원하는 업무 능력은 제대로 가르쳐 주면 못할 사람은 거의 없고, 만일 못한다면 자기에게 맞지 않는 일을 하려는 탓이거나 시간이 부족한 것이라 여긴다. 그러니 성격이 더 중요하다. 거짓말 하지 않을 것, 즉 모르거나 못하는 일은 그대로 이야기할 것. 자기 이야기를 하기 전에 상대방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을 것. 무조건 노트하고 메모해서 정리해 둘 것.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덕목이다. 


그렇다면 내가 그 팀원의 입장이라면, 어떨까? 꽤 조심스럽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덕목은 겪어보기 전엔 알 수 없으니, 알 수 없는 것이고, 그건 그냥 살아가면서 지켜야 하는 상식적인 것에 해당되는 것이니 말이다. 더구나 면접같은 것에서 나를 포장해본 적 없고, 심지어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덕목이 다른 세계에서 과연 강조되어야 할 만한 것인가에 대한 확신도 없다. 솔직히 말해 내가 면접을 당하는 입장에서 나를 알리는 일만큼 얼굴 화끈거리는 일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B2C나 B2B 서비스의 마케팅 전략을 세우고 실행안을 마련한다.


이렇게 보면 살아가는 건 참 재미있기도 하다. 오늘은 문득 팀원들에게 서양 지성사나 서양 미술사 강의를 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요즘 인문학이 유행이라는데, 그런 이벤트 한 번 해주면, 지금 당장은 도움이 안 되겠지만, 먼 미래를 위해선 약간의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에는 '고민하는 힘' - 얼마나 깊이, 얼마나 오래 생각하고 결론나지 않을 듯한 질문을 품고 살아가는가가 우리의 노년을 얼마나 윤택하게 만드는가를 잘 알기에, 아주 엉뚱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가령 '진리란 있는가?', '아름다운 사물이란 무엇인가?' 따위의 질문이나, '왜 추한 것이 현대 미술 속으로 들어왔는가?'와 같은 미술에 대한 주제도 흥미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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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일은 많은데, 정작 다른 생각에 빠져 시간을 보냈다. 문서 작업 조금 하고 새벽에 일어나 정리하고 고객사 미팅을 준비해야 겠다. 


오늘은 스승의 날이고, 나에겐 두 분의 스승이 있는데, 두 분 다 나로선 따라가기 힘들 정도의 공부를 하신 터라, 내 스스로 부끄럽지 않을 책 한 권 내면, 저자 서문에다 두 분의 은혜를 이야기하리라 마음 먹었는데, 마음과 무관하게 책은 커녕, 공부도 못하고 원고 쓸 시간도 없어졌다. 한 분과는 연락이 끊어진 상태이고 한 분과는 아주 가끔 연락을 하고 있으니, 이렇게 예의없는 학생도 없을 것이다. 내 스스로 공부에 불성실하진 않겠노라 다짐하지만, 이것만큼 어려운 것도 없더라. 


아무리 많이 알아도, 생의 정답은 없고, 내가 배운 것은 없는 정답 대신 정답을 찾기 위해 어떻게 해야하는가를 것이다. 그걸 나는 대학 밖에서 배웠고 책 밖에서 배워, 책 속에서 그것의 실마리를 구하고 있다. 다시 말해 '생의 정답이 왜 없는가'를 찾는다고나 할까. 너무 현대적인가. 


아, 이제 일을 좀 해야 겠다. 이 글을 읽으신 분들께 감사를 표하며, 요즘 읽고 있는 플라톤  '향연'의 한 구절을 옮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 선생님이 앉으면서 말씀하셨다고 하네. "참 좋을 것이네, 아가톤. 지혜가 우리가 서로 접촉할 때 우리 가운데 더 가득한 자에게서 더 빈 자에게로 흐르게 되는 그런 거라면 말일세. 마치 잔 속의 물이 털실을 타고 더 가득한 잔에서부터 더 빈 잔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말이네. 지혜도 이런 거라면 난 자네 옆에 앉는 걸 아주 귀중히 여기겠네. 나 자신이 자네에게서 나오는 많은 아름다운 지혜로 채워질 것으로 믿으니 말이세. 내 지혜는 보잘것없고 꿈처럼 의심스런 것이지만 자네 지혜는 빛이 나며 많은 늘품을 갖고 있거든. 바로 그 지혜가 젊은 자네에게서 그토록 맹렬하게 빛을 발하며 밝게 빛나게 되었지. 엊그제 3만이 넘는 희랍 사람들이 증인이 된 가운데 말일세."

"도가 지나치십니다, 소크라테스 선생님." 하고 아가톤이 말했네. 

- 플라톤, <<향연>>, 175d (강철웅 옮김,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