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리뷰

Inexistence - Leandro Erlich 레안드로 에를리치, 송은아트스페이스

지하련 2012. 6. 8. 12:53


Leandro Erlich: Inexistence
레안드로 에를리치 개인전
2012. 5. 4 - 7. 7 
송은 아트스페이스 





길게 전시 설명을 옮기는 것이, 어쩌면 이 생소한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겠다. 


"레안드로 에를리치(1973 - )는 거울, 비디오 혹은 배경설치 등과 같은 장치들을 갖고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친숙한 공간들을 새로운 영역으로 전환시킨다. 에를리치가 작품에서 재현하는 일상의 건축 구조물과 공간들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마치 미지의 경험을 하게되는 주인공으로 세워주는 무대가 된다. 관람객들은 이와 같이 현실을 다르게 지각하게 되는 경험을 통해 작품을 이해하게 되고 작품 내에서 각자 맡은 역할들을 해석하게 된다.


이번 개인전 "Inexistence"는 현존(現存)과 부재(不在)의 두 가지 상반된 경험을 제시하는 에를리치의 대표작 4점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선보인다. 언어 유희적인 제목 "Inexistence"는 사진적 의미로 '존재하지 않음' 혹은 '실재하지 않음'을 뜻하지만, "in existence"로 띄어 읽을 경우 정반대의 의미인 '현존하는'의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이는 평범하고 익숙한 경험을 교묘하게 비틀어, 보는 이들에게 실재와 가상 사이의 역설적인 교차를 깨닫게 하는 작가의 작품 세계를 함축한다. 본 개인전에 전시된 층별 작품들은 전복된 현실에 대한 지각과 개입에 대한 작가의 탐구를 보여준다." 

- 전시 설명 중에서 


 




이번 송은아트스페이스에 전시된 에를리치의 작품은 끝없는 반복과 중첩을 의도한다. 그것은 끝없는 윤회와도 같은 것일 수도 있고 뫼비우스 띠 같은 것일 수도 있다. 기하학적 동어반복일 수도 있고 끝없는 터널과도 같은 생의 고통일 수도 있다. 





어쩌면 이 미로같은 공간 속에 마주하는 것은 막막한 의문들과 알 수 없는 해답, 그리고 스스로의 모습일지도. 




직선적 세계관 속에서 나고 자란 서구의 작가들에게 이런 공간은 생소하고 즐겁고 낯설지만, 순환적 세계관 속에서 나고 자란 우리들에게 이런 공간은 글쎄, 다소 익숙하면서도 식상하고 종종 고통스러움까지도 전해준다. 





작가가 의도하는 것은 분명하다. 결국에는 같은 것으로 드러나게 될 있음과 없음. 그리고 그 사이에서 끝없이 지연되고 미끄러지는 의미.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 아니다. 종종(혹은 자주) 예술가들이나 사상가들이 오해하는 것들 중 하나. "이미 있는데 어찌할 것인가!"


이미 있지만, 우리는 그것에 대해 알지 못할 때, 그것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데, 어쩌지 못할 때의 문제가 중요한 것이지, 그것이 있거나 없거나, 혹은 있는데 그것을 부정할 수 있다거나 실은 없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일종의 가상적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작품은 딱 여기에 멈추어 있다. 


그래서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작품은 일종의, 즐거운 유희가 되고, 이렇게 본다면 이 전시는 확실히 흥미롭게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작가가 의도한 바이기도 하다.